지난 토요일은 아이의 보육원 튤립반(2~3세 반)의 부모 참관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3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평소 아이들이 지내는 모습을 부모들에게 보여주는 행사로, 일본에서는 이맘때면 으레 하는 행사인 것 같다.
예전에 갔던 참관 보육의 날은 대단히 내향적인 엄마와 상당히 내향적인 아빠,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어색함의 앙상블이 절정에 달하여 굉장히 이질적인 경험으로 남았는데 그럼에도 우리집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중한 시간이었다. 참고로 그 날 우리가 본 것은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집 아이였다…
참관교육에서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보육원에는 여러 부모와 여러 아이가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있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 아이를 포함해 많은 2세 아이가 발달장애 아동의 행동 일부를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건 내가 우리 아이를 보며 예민하게 느끼던 부분이었다.
이날을 계기로 아직 만 2살은 특별히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면 크게 고민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발달장애’가 아니라, 2살 아이 자체가 아직 발달이 덜 된 것일 뿐이란 생각에 약간의 반성과 내심의 안도를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영재라 생각해도 모자랄 시간에 나는 왜 ‘이상하지는 않나’ 하고 의심했는지 우습기도 했다.
아이의 부모들도 인상적이었다. 세련되고 멋지고 성격 좋은 부부들이 몇 팀 보여 ‘신주쿠에서 맞벌이하며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는 부모들은 역시 이런 모습인 건가’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돌이켜 보니 나의 자격지심(살찌고 늙었다…)이 그렇게 느끼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나의 자격지심은 논외로 하더라도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자 딸의 손을 잡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던 즐거운 표정의 어떤 엄마, 아빠도 집에서 요리하느냐는 질문에 짐짓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그렇다고 대답하던 잘생기고 멋쟁이인 어떤 아빠는 참 인상적이었다.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다는 이유[1]로 앞에 불려 나가 피망 썰기를 했던 나와 크게 반대되는 모습들이라 긍정적인 성격과 사교성, 센스가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했다.
이번 참관에서는 우리도 무척 재미있었다. 매의 눈을 가진 원장 선생님이 잘 챙겨주신 데다 아이 엄마가 평소부터 다른 사람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놓은 덕분에 이전 보육원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즐겁게 있다 왔다. 아이가 평소 집에서 하는 정체 명의 액션, 말, 노래의 정체를 알게 된 것도 무척 큰 수확이었다(어제오늘도 한참을 자전거-곰-거북이 리듬 체조를 같이하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원래 있는 2~3살 아이들과 그날만 놀러 온 6살 아이들이 함께한 의자게임이었다. 음악이 나오면 원형으로 모아놓은 의자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음악이 멈추면 재빨리 의자에 앉는 바로 그 게임이다. 처음에는 머릿수만큼의 의자로 시작한 뒤 점점 그 수를 줄여나가서 경쟁이 계속해서 치열해지도록 고안되었다.
우리 아이는 상당히 초반에, 의자가 넉넉하게 남았음에도 자기가 앉으려는 의자에 다른 아이가 와서 앉겠다고 밀자 밀려나며 으앙 울음을 터트려 대단히 내향적인 엄마와 상당히 내향적인 아빠의 자식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는 결국 엄마 품에 안겨서 다른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막 자신과 친구와 세계를 인지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더 좋아 보이는 의자에 앉겠다며 다른 의자가 비었음에도 먼저 차지한 다른 아이를 밀치기도 하고(우리 딸래미가 이렇게 탈락ㅋ), 정당한 룰에 의하여 탈락했지만 그게 분하다고 울기도 하고(우리 딸래미를 탈락시킨 녀석의 두 번째 희생양ㅋ), 자기를 미는 아이를 다시 밀어내기도 하고(여러 희생자를 속출시켰던 연쇄 푸쉬어는 결국 다른 아이에 의해 이렇게 탈락 당함ㅋ), 탈락했지만 그런 건 아랑곳 않고 계속 게임에 참가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상살이란 본디 비정하고,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하는 룰은 엄격하며, 경쟁에서 지는 법도 있다는 교훈을 어릴 때부터 알려주는 데는 무척 좋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딸래미가 자기보다 더 작은 남자애에게 툭 밀려 울음을 터트리는 걸 보며 스쳐 지나간 생각은 ‘아니, 자기를 건드리면 돌로 찍어버려야지’ 같은 것이 의외로 아니었다. 우리 딸이 ‘잘 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 스테이지에서 살아남았어도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더 큰 애들과 경쟁해야 하고, 거의 마지막 스테이지에서는 곧 초등학교 입학 전의 몸도 머리도 한참 큰 6살 아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어쩜 이렇게 딱 우리 인생 같을까 싶은 그 게임에서는 그 순간 살아남아 봐야 기다리는 건 결국 패배였다.
예전에 포커게임 관련 일을 할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포커는 기본적으로 질 확률이 높은 게임’이라는 얘기였다. 각종 잡변수를 제거하면 5명이 게임을 했을 때 나의 승률은 게임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20%에 수렴한다. 게임을 하면 대충 4번 지고 1번 이기는 것이 포커게임의 특성이다. 물론 나의 포커게임의 승률은 18% 수준으로 앞에서 제거한 잡변수가 사실은 잡변수가 아니고 유의미한 변수인데 어쨌거나 더 많이 지고 더 적게 이기는 게임이라는 큰 논지에는 변함이 없다. 5명이 하루 밤 동안 벌이는 게임에서 한 사람이 다음 날 아침까지 다른 4명의 돈을 모두 따서 살아 남았다고 했을 때 그의 승률 역시 154승 282패쯤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듣는 무수히 많은 1승 0패 같은 신화는 사실 152승 282패라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의 포커 버전이라 할 수 있다.[3]
이길 때야 기쁘고, 돈도 벌었으니 인생을 다 가진 것 같고, 샤를리즈 테론하고 저녁 식사도 할 수 있을 듯하지만(쓰다 보니 제대할 때의 정신상태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질 때는 그 반대가 된다. 여기서 인생을 1승 0패처럼 살아갈 수 있는 4가지 힌트를 추출할 수 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이겼을 때 오버하지 않고 졌을 때 무너지지 않으며,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질 때 적게 지고 이길 때 크게 이기는 것이다.
승리보다 패배가 많은 인생에서 결국 우리 아이가 가졌으면 하는 것은 자신을 밀어내는 남을 밀쳐내고 의자를 따내는 것과 같은 이기기 위한 정신이나 기술이 아니다. 그보다 져도 무너지지 않고 이겼다고 기고만장하지 않는 정신, 질 때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길 때 성과를 최대로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우리 집 아이가 살아갈 날들을 고민할 때면 일단 나부터 잘 살자는 결론에 이른다.
사족
의자게임 결승전 결과. 2.7살(추정) 여자애 1명과 비겁한 술수로 끝까지 남은 6살 남자애와 여자애, 3명이 남은 의자게임 결승의 승자는 옆에서 구경하다가 의자가 비어서 얼떨결에 앉은 막 2살 지난 남자아이였다. 사실 룰에 맞는 건 아니었지만, 6살 아이들의 경쟁이 너무 치열했고 ‘룰을 지키지 않아서 너희들이 진 것이다’라는 설교를 하기에도 좋아 그 2살 남자애의 우승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당사자는 왜 사람들이 빵 터지면서 자기에게 박수를 쳐주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원문: Alex Lim의 미디엄
- 나는 요리는 안 하지만 기본적인 집 안 청소, 화장실/욕실 청소, 설거지 등은 내가 한다. 시간이 되면 빨래하고 널고 개는 것도… ↩
- 이건 나의 작은 트라우마 같은 건데 중국집에 요리를 주문하면 내가 주문한 것만 빼고 배달이 온다거나 하는, 남들은 다 받는 보통의 상황에서 나만 뭔가 받지 못해 애매하고 뻘쭘한 상태가 되는 경험이 꽤 있는 편이다. 자꾸 나만 뭔가 못 받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계속 이런 내용을 쓰다 보니 무슨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의 염전 같은 글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
- 문득 그래도 잡스 형님이라면 7승 2패 쯤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 쫓겨나고 넥스트 망해서 2패 정도. 뭐 어차피 형님은 인과율에서 벗어나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