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메이커와는 다르다! 프린세스 메이커와는!
가이낙스의 영원한 명작 프린세스 메이커2의 영향으로 국산 최초의 육성 시뮬레이션으로서 발매된 로즈 나이트.
멸망한 왕국의 전 기사단장이 (오프닝에서는 젊었지만 순식간에 삭았습니다. 고생인지 병인지 분장인지..) 우연히 왕족의 피를 이은 여자아이를 발견하여 육성한다는 내용입니다. 현저히 열등한 짝퉁게임 같지만 그만의 특징이 있었으니..
1. 딸의 대사보다 아버지의 대사가 많다.
2. 딸의 표정보다 아버지의 표정이 많다.
딸 걱정을 하는게 아니라 등장 못 해서 환장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무튼…
더 나아가 엔딩까지 가서도 아버지는 반드시 언급됩니다. 가장 보기 힘든 엔딩이자 진엔딩은 멸망한 왕국을 일으켜 세워 여왕이 되고, 아버지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내용인데 이 엔딩을 제외한 모든 엔딩은 배드엔딩 취급됩니다(…) 가령 상위직업에 해당하는 여전사나 재상도 ‘갑자기 사라져 여기저기서 영웅담을 펼치다가 시들해진 중년의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타남’ / ‘재상이 됬지만 원수의 국가에 충성을 맹세해서 아버지가 실망함’ 이런 식이죠.
광대 엔딩은 세뇌교육을 받은 딸이 황제를 암살하고 사형에 처해지자 아버지가 무릇 자랑스러워하는 결말입니다. (물론 아버지는 처벌 안 당함)아버지는 황제를 암살하거나 지가 재상 안 되면 성에 안 차는 듯. 본격 아버지 재상 만들어야 하는 게임. 이런 인격파탄자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으니 딸도 정상인일 리가 없습니다.
일단 이벤트들이 전부 건성입니다, 딸이 활약하는 이벤트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은게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지금까지의 전개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저때 불쑥 나타나 ‘아니 당신은 숲의 주인! 이년! 이분이 누군지 알고 그렇게 무엄한 태도를!’라고 호통을 치자 딸이 ‘하지만 기분나쁘게 생겼는걸요’ 라고 대답하니 ‘닥쳐라 이 예의도 없는 고얀것!’ 이러고 일침을 박는 이벤트… 일 것 같지만 그것조차 쓰기 귀찮았는지 숲의 주인은 의미 없이 등장했다가 의미 없이 사라지는 일회성 캐릭터 입니다.
아버지의 엄청난 무게감과 공기같은 딸의 존재
아버지는 시도때도 없이 4가지 대화창 얼굴을 들이대며 떠들지만 딸은 대화창 얼굴도 1개에 불과합니다. 성장상태에 한 개씩 총(…) 두 개(…)가 있습니다만 버그 때문에 90%의 경우 한 개밖에 안 쓰입니다. 여기에 대사도 몇 마디 없고 그것도 대부분 아버지의 잔소리에 대한 응답에 불구하며 성격도 때에 따라 중구난방. 예로 들면 자기가 멸망한 왕국의 공주라는 것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워 하다가도 한 달 뒤에는 결혼 하겠다며 난리를 부립니다.
더 나아가 이 게임이 얼마나 가부장적이냐면 딸 이름 짓는 것 의미 없을 정도. 프롤로그에만 이름이 삽입되 나오고 작중엔 ‘얘야’ 혹은 디폴트 네임인 ‘세실리아’로 부릅니다. 딸 따위 재상이 되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외의 시스템에서도 드러내는 딸혐오를 언급하자면…
1. 격월간으로 아버지 친구의 아들과 대결을 하는데(이 게임 유일한 전투모드.형편없음.) 둘 다 수치가 만땅일 경우, 남자가 반드시 승리합니다.
2. 가끔씩 월말에 치뤄지는 대회에선 능력치가 만땅이라도 절대 우승 못 함. 에디터까지 돌려봤으나 마찬가지. 프로그램 자체에 딸의 우승가능성을 배제한 듯 함. 세상은 넓고 사회는 비정하다는 리얼리즘을 드러내고자 의도한 이벤트 일까요?
3. 스트레스 수치가 없다. 재상이 되려는데 딸의 건강따위 신경쓸 틈이 있을리가… 딸의 사망엔딩이 있는 것으로 봐 숨겨진 스트레스 수치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차피 중요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4. 프메2 흉내내서 바캉스는 있는데 계절별 CG 그런거 없습니다. 2년 내내 똑같습니다. 딸의 모습만 2년주기로(…) 바뀌죠.
5. 10년을 키운다는 설정이지만 만들기 귀찮았는지 2년마다 2년씩 점프됩니다. 1680->2년 키워서 1682->2년 키우고 1686->2년 키우고 1690년으로.
실로 이해할 수 없는 아스트랄한 게임성
게임 플레이도 불편한 점이 한두개가 아닙니다만 몇 개 꼽자면…
– 아버지, 딸 이름과 생일 설정화면에서 생일은 아무리 발악해도 못 바꾸겠음. 스샷에 보이는 이름 뒤에 붙어 있는 번호도 생일 정하려다가 삐꾸난 것임…
– 장비를 변경하거나 세이브/로드가 성공적이었다는 메시지가 표시되지 않는다.
– 능력치 상승/하향 표시 안 됨. 부킹맨도 없었던 것으로 봐 프로그래머의 한계가 아니었나 싶기도..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꼰대스럽긴 해도 그정도는 제대로 다 나왔는데..
– 능력치 변동이 개같음: 상승능력치가 1000오르면 하향능력치는 2000떨어짐.
– 월별 스케쥴 캔슬 안 됨 ㅋㅋㅋㅋ
– 월말 이벤트는 능력치에 따르거나 랜덤이 아니고 필수적인 고정 이벤트. 자객이 딸의 정체를 말하는 이벤트 말고는 전부 의미없어서 웬 듣보잡이 ‘난 누구다!’ 하고 등장하면 딸이 ‘꺼져!’ 라며 쫓아내는 내용.
적어도 엔딩과(10종류밖에 안 됨) 스텝롤은 있습니다. 개발은 총 여덟명의 타이트한 팀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프메2가 인기 많으니까 비슷한 게임 하나 만들라는 높으신 분들의 요구에 맞췄다고 생각하면 좀 불쌍함. 사실 그럴 수도 있는게 게임 내내 아버지의 열성적인 교육열을 제외하곤 제작자의 열정이나 의욕이 1mm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 음악은 좀 좋을수도.. 특히 프롤로그곡은 들어줄 만 합니다.
게임의 제목이 로즈 나이트인 이유 : 사실 기사는 아버지였다?!
비고: 프린세스 메이커2를 어설프게 갔다베낀 아버지의 개성이 넘처흐르다 못해 짜증나는 게임. 국산 최초의 에로게(부킹맨)와 육성시뮬은 엄청난 쿠소게였다!
하지만 한국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울 나라는 옛부터 효심이 철철 넘치는 동방예의지국인지라 딸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엄격한 아버지를 찬사하되, 자식은 얼마든지 낳을 수 있우나 부모는 한 분 뿐, 본디 자식은 부모보다 나서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굳이 끼어들어 제제를 가해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아버지.
일본게임인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와 비교하면 어린 딸이 혼자 (정확히는 조랑말을 데리고) 외출함에도 불구하고 걱정하는 기색도 없고, 딸에게 힘든 일을 시키면서 격려 한마디 안 하는 아버지는 기계적이고 냉랑하며 책임 없는 귄위를 상징할 뿐 소통이 막힌 부녀관계에서는 한국 특유의 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화려하고 외설적인 옷을 입혀 인형처럼 꾸미고 막바지에는 결혼하기까지 이르니 경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어린이들의 건전한 정서가 오염될 가능성을 염두하면 부녀 결혼엔딩의 삭제는 적당한 조취였지요.
그러고보니 이 게임의 제목은 로즈 나이트 였습니다. 게임 패키지에는 한글로 ‘장미의 기사’라 써져 있죠(…) 아버지가 전 기사단장이니 게임의 제목은.. 딸이 아니라 아버지를 가리키고 있던 겁니다!! 물론 ‘프린세스 메이커’도 딸 제조기 아버지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의 내용을 고려하면 게임 자체- 즉 딸을 키우는 툴의 명칭이라고 생각됩니다. 전자의 의미를 포함하더라도 딸 제조기=툴을 사용하는 플레이어라는 다소 메타적인 의미로 해석 가능하죠.
로즈 나이트와 프린세스 메이커의 가장 큰 차이는 딸이 아니라 아버지가 중심! 바로 아버지가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딸은 언제까지나 자신을 여’전사’로 훈련시켜 달라고 말할 뿐 기사로 성장한다는 암시는 전혀 없었으니니까요!!! 진엔딩도 기사가 아니라 여왕되는 것!! 즉 멸망한 왕국의 기사단장 (로즈 나이트) 이었던 아버지가 왕족의 피를 이은 왕녀를 내세워 나라를 세우고 재상으로 앉는 내용.
아버지니가 주인공이니까 아버지의 등장비율이 더 높은 것은 ..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