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로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는 콜린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여자를 대하는 법도 서툴고 인기도 없는 그는, 영국 여자들은 매력도 없고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미국에는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을 거라는 환상을 갖는다.
“영국 여자들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난 미국으로 떠나야 돼. 가자마자 바로 애인이 생길 것 같지 않아?”
“허튼 소리 같은데.”
“미국 여자들, 내 귀여운 영국 억양에 푹 빠질 걸?”
“하나도 안 귀엽거든?”
“무슨 소리! 그래, 미국에 가는 거야.”
“넌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루저일 뿐이야.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아니야. 나는야 섹스의 화신 콜린. 엉뚱한 데서 태어난 것뿐!”
결국 그는 큰 배낭에 콘돔만을 가득 채워 미국으로 갔고,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어느 술집에서 섹시한 미녀 세 명을 만나 그들의 집에서 자고 가라는 제안을 받는다. “침대도 하나뿐이며 잠옷 살 돈도 없어서” 벗고 자야 하는 그녀들과 그날 밤을 보내게 된다.
영화의 막바지에 그는 미녀 여친을 데리고 영국으로 금의환향했고, 그의 얘길 믿지 않았던 친구에게도 또 다른 미인 여자친구를 안겨다준다. 초면임에도 그 여자는 자신의 상대 남자를 알아보고는 그를 안고서 키스를 퍼붓는다.
우크라이나 여자에 대한 환상
수년 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재생산되며 남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해온 ‘우크라이나 여자’ 이야기는 이 영화의 에피소드와 같은 종류의 판타지가 반영된 또 하나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한가인이 밭을 갈고, 김태희가 소를 모는 나라’가 있다니. 얼마나 다양한 얘기가 있을지 새삼 궁금해 대표 포털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김태희가 밭 갈고 한가인이 소 몰고 다닌다는 러시아”
“흔히들 김태희가 그냥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나라 우크라이나. 여자들은 가면 안 되는 나라.”
“김태희가 밭 갈고 한채영이 소를 모는 나라”
“아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보고 왓는데여. 그 나라는 진짜 김태희가 밭갈고 한가인이 소 키우나요.. 난생처음 국적을 바꾸고 싶네여..”
“김태희가 밭 갈고, 송혜교가 지게 메고, 한가인이 소를 몬다는… 가고 싶습니다.” (네이버에서 발췌)
대략 2007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런 류의 글들이 굉장히 많이 조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하는 나라의 공통점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후 생긴 CIS 국가들, 그러니까 러시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의 나라다.
그 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이 나라는 소수의 슬라브계가 있지만 몽골로이드계 황색 인종이 주류인 국가다.
중앙아시아 중부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은 실제로 러시아인의 비율이 4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러시아인의 비율이 35퍼센트에 이르렀지만, 이 나라의 경우 독립 이후에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여러 이유로 인해 러시아인 상당수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그 비율이 대폭 감소했다.
오히려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는, 중앙아시아 북부 지역인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 국가 중 러시아인의 비율이 40퍼센트 가량으로 가장 높다. 우크라이나인과 독일인도 각각 5-6퍼센트 가량. 카자흐스탄은 독립 후에도 러시아어를 계속 사용했고, 북부 지역인 만큼 러시아 본토와 지리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이다.
슬라브족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는 단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다. 특히 우크라이나인은 동슬라브인 중에서도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편에 속하며,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다양한 민족의 침략을 받은 까닭에 페르시아는 물론, 터키와 몽골계가 섞여 혼혈 인구가 많다.
러시아의 경우도 구소련의 민족말살 정책과 러시아어로의 언어동화 정책 등으로 인해 혼혈이 많이 생겨났지만, 발칸 반도 부근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의 지역적 특성상 우크라이나 여성이 러시아 여성보다 더 아름답다는 평이 많다. 우크라이나의 모델 에이전시인 ‘리니아12’는 “터키 등의 침략으로 생겨난 혼혈이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낳았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우크라이나는 그냥 ‘김태희’와 ‘한가인’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탑 연예인급 미녀들이 ‘밭을 갈고, 소를 몬다.’ 이 말처럼,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곡창 지대로 농산물 수출을 가장 많이 하며, 경제에서 농업 비중이 높은 나라다. 반면, 1인당 GDP가 2천 달러 가량밖에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다. 국제 곡물가 하락으로 경제가 침체된 데다가 동서 간의 갈등으로 인한 내전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았다.
그러니까 ‘한가인이 밭을 갈고 김태희가 소를 몬다는’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정황이 전제되어 있는 셈이다. 비주얼로는 세계 최고에 가까운 동슬라브족 계열의 미인의 나라, 농업 비중이 높은 농부의 나라, 그리고 가난한 나라. 바로 이 지점이 이 이야기가 십 년 가까이 재생산되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 더구나 지역적으로도 가깝지 않으며 문화적으로도 친숙하지 않은 곳이다 보니 우크라이나에 대한 판타지가 더욱 극대화된 듯하다.
미인을 미인이라 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그 안에 여자는 없다
나 역시 예쁜 여자를 보면 감탄하고,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다. 미인을 미인이라 하는 것이 뭐 그리 큰 문제인가.
그런데 이 우크라이나 여자 이야기에는 어딘지 불편한 지점이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은 단순히 ‘아름답다’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그토록 예쁜 여자들이 ‘밭을 갈고, 소를 몬다’는 게 이 이야기의 포인트다.
“미인도 많은데 가난하기까지 해서 뭇 남성들의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그곳의 처자들” (네이버에서 발췌)
사실 김태희, 한가인이 어떤 여자들인가. 비나 연정훈(급기야 이 사람은 급이 맞지 않는다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정도가 되어야 ‘소유’할 수 있는 미모의 여인들이다.
그러나 이 우크라이나 여자 이야기에는, 한국의 평범한 남자인 나도 그 정도 미인들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어떤 가벼운 환상에서부터 시작해, 실제로 국제 결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떤 성사의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다. 특별한 지위도 재력도 없는 평범한 한국 청년이 무슨 수로 김태희를 ‘차지’할 수 있는가. 남자의 부와 명예에 따라 여자의 외모 등급이 결정된다는 식의 사고, 능력이 있으면 미인을 얻는다 등의 공식들이 이이야기에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네이버 검색창에는 “우즈벡 여자와 결혼할 수 있나요?” 등의 질문이 등장한다. 그 기저에는, ‘나 정도의 능력으로, 실제로 김태희 급의 미녀를 소유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궁금증이깔려 있다. 내 능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미인의 등급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 흔녀를 겨우 만날 수 있는 ‘조건’으로, 얼굴은 김태희, 몸매는 유승옥인 우크라이나 농부 아가씨를 얻고 싶다는 바람. 이것이 바로 여자를 선택하는 기준이다.
여기에는 여자라는 ‘사람’의 인격성이나 개인의 의사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사실 이것은 전형적인 남자 중심 판타지의 공식이기도 하다.
“김태희가 소 몰고 한가인이 밭 갈고 신민아가 가정부인 꿈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으로 다 떠나라. 님들이 다 떠나야 내 소원대로 일부다처제를 할수 있음.”
“우즈벡 여자랑 결혼까진 몰라도 돈 있으면 그 나라 가서 사먹을 순 있다.”
“우크라이나는 심지어 할매들까지 봐줄 만하다”
“안녕하세요. 우즈벡 여자와 국제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20대 후반 남성입니다. 말 들어보니 김태희가 밭 갈고 한가인이 소를 몬다 이런 소리가 있어서 국제결혼 사이트에 가입해서 여자분들 프로필 봤는데… 김태희 한가인은 둘째치고 구잘 자밀라 급 애들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좀 이쁜 애들은 다 백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이런 쪽이고 우즈벡은 피부색이나 생긴 건 인도 아랍삘 나는 애가 대부분인데 우즈벡 예쁜 거 맞습니까?? 우즈벡 외노자는 나름 서양삘 나는 애들 많은데 국제결혼회사에 나와 있는 애들은 왜케 다 별로인 겁니까?” (네이버에서 발췌)
왜 농담에 불편해 하냐고? 외모에 따라 달라지는 계급
이 이야기가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여자들 간에도 외모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는 개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실제로 눈이 파랗고, 피부가 하얗고, 팔다리가 길고, 몸매가 훌륭한 사람이 많다. 내가 지냈던 러시아도 마찬가지여서 길을 걸을 때면 예쁜 여자들이 쉽게 눈에 띄곤 했다. 그러니 밭에서 일하는 여자, 시장에 채소 파는 여자도 ‘예쁠’ 확률이 높다. 신민아 급의 외모가 가정부로 일하고, 전지현 급 외모가 편의점에서 일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정부, 편의점 알바생, 시장에서 채소 파는 사람,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표상이 아니다. 더욱이 여자일 경우, ‘그들이 미인일 리가 없다.’ 미인은 더 높은 지위와 계급을 갖는 게 ‘상식’인데, ‘비상식적’으로 허드렛일, 고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이 이야기에 담긴 재미의 포인트이며, 그 점이 나는 불편하다.
사실 한국 남자들이 어떤 이들인가. 동일한 이유로 인한 차별과 선입견을 치가 떨릴 만큼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특정 사람이 하는 일로, 지위로, 돈으로, 타고 다니는 차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우리나라를 지긋지긋해하는 사람들이, 바로 같은 방식의 얘기를 십 년째 생산하고 있다.
“남자애들아, 너희들에게 유토피아를 소개한다! 김태희가 소 몰고 한가인이 밭 갈고 신민아가 가정부인 꿈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으로 다 떠나라!!!”
“김태희가 밭 갈고, 한가인이 우유배달 하고, 전지현이 매점에서 일하고, 고소영이 소를 몬다는 우즈벡. 장가 못 가신 분들은 눈을 돌리세요. 우즈벡은 장모님의 나라라고 불립니다.” (네이버에서 발췌)
다른 나라 이야기 아니냐고? 상대적인 한국 여성 외모비하
이런 이야기가 불편한 세 번째 이유는, 특정 나라의 미인에 대한 언급인 만큼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한국 여자들에 대한 외모비하가 잇따른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게 어째서 한국 여자 비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러 방식으로 재생산된 이 이야기에 덧붙여진 각각의 내용들에는 한국 여자에 외모 평가 및 비하의 내용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우크라이나 여자 아무나 한국 오면 모델만 해도 먹고 산다.”
“우크라이나랑 우즈베키스탄이랑 어디가 더 미녀가 많을까요? 확실한 건 둘 다 적어도 우리나라보단 많을 거라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진짜 환상의 나라. 여자들 예뻐지고 싶은 거 당연한 건데 지 상판대기들에 칼질은 말아라. 전 세계적으로 얼굴성형 1번 국가는 한국이랜다. 얼마나 못난이들만 사는 나라면.” (네이버에서 발췌)
하와이의 에메랄드빛 바다에 감탄하는 것과 ‘하와이 가보니까 제주도 바다는 똥물이더라’는 다르다. 어떤 대상을 아래에 깔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와는 다른 문제다. 더구나 여자는 바다가 아니라 ‘사람’이다. 가볍게 디자인이나 성능을 품평할 수 있는 물건이나 기기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과 인간성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문제다.
단순히 외모 문제? 이것은 인종의 문제다
여기에서 조금 더 확대를 해서 살펴보자면, 이것은 인종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점이 이 이야기가 불편한 네 번째 이유다.
한국인은 동양인이며, 시베리야 몽골족 계열로 추운 기후에 맞게 광대뼈, 눈꺼풀 등이 발달했다. 즉, 인종은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골격, 피부, 모발 등의 생물학적 특성의 차이다. 그러나 서구의 백인 미인상이 전 세계적인 미인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동양에는 그리고 한국에는 서구적 미인형에 부합하는 소수의 미인들(한가인, 김태희, 전지현, 한채영 등)이 존재할 뿐이다.
여자를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로 나누고, 거기에 ‘백인’, ‘흑인’, ‘동양인’ 등의 인종 개념까지 들어간 상황이라면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서양 여자와 비교해서 동양인인 한국 여자의 외모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과 태도를 갖거나 이를 노출하는 것은 분명한 인종 문제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고? 이건 사소한 게 아니다
이 네 가지 이유들로 인해 나는 이 이야기가 불편하다. 이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어떤 불편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풀어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유명한 한국 속담이 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나는 어쩌면 예능을 다큐로 받고 있으며, 사소한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에 진지각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 나라는 사소한 무례함과 불편함과 폭력이 넘치는 나라가 아닌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못해 나이가 들어버린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는 농담으로 웃어넘겨야 하는 것이 마땅한 ‘미덕’이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자라는 동안 한국은 고도성장을 이뤘고, 장기 침체의 길에 들어섰다. 우리가 살 길은 어디에 있을까. 미래는 어디에 있나. 희망이란 것이 과연 남아 있기는 한가.
나는 우리 주변에 널린, 이런 사소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힌 불편한 지점들을 바로 잡아가는 작업을 해야 하는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것들이 바로 잡힐 때 우리에게 여전히 모호하고 희미한 희망이란 것이(혹은 행복이라는 것이) 조금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당신이 모든 것에 잘 적응하는 물렁물렁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그래서 무척 격분케 하는 일 앞에서도 가벼운 한숨이나 맥주 한 잔으로 자신을 달래고 넘어간다면, 당신은 이러한 대비에 결국 익숙해지고 동물적 속성이 보태지면서 쾌락을 좇는 사람들 무리에 섞이려는 생각만 하게 될 것입니다. 가련한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참된 인간이라면, 그래서 당신이 느끼는 감정마다 의지적 행동으로 나아가고 당신 안의 동물성이 지성을 죽이지 않는다면, 어느 날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건 아니야. 이건 불의야. 이렇게 계속되어선 안 돼.’”
P. A. 크로포트킨
『청년에게 고함』 p.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