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가 아닌 사람에게 한 최초의 커밍아웃은 스무 살 여름이었다. 그때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애를 하고 있었고, 여름방학 고향 집에 가족들이 모두 모이자 가족들의 관심사는 나의 첫 연애 상대가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 둘 모두에게 나는 알 필요 없다고, 물어보지 몰라고 정색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안 계신 자리에서 누나들이 계속 관심을 가지며 물어보자, 거의 충동적으로 누나들에게 사귀는 사람이 남자라고 이야기했다.
누나들은 아주 잠깐 동안 자신들이 받은 충격을 숨기지 못했지만, 금세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해 당황한 기색을 숨겼다.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물론 아직 우리 사는 세상이 너한테 불리하고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네가 사랑하는 우리 동생이라는 게 변하는 건 하나도 없잖아. 그래서, 네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누나들도 처음 겪어보는 일─동성애자에게 커밍아웃을 받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누나들의 대처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당황하지 않고, 혹은 당황한 기색을 최대한 감추고, 퀴어인 상대를 사소하게 궁금해하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답답함
사실 퀴어가 커밍아웃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답답하기’ 때문이다. 어디 말할 데가 없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퀴어가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는 말하게 해주는 것이다. 슬프고 비관적이고 비장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둘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게 됐는지, 어떤 스타일이 이상형인지,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배우는 누구인지, 첫사랑은 언제 누구였는지, 뭐 이런 사소한 것들. 무거운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차차 하는 게 좋다.
나의 첫 커밍아웃 결과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그 이후로 아래와 같은 기준을 세운 후 그 기준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 동성애에 혐오감이 없는 사람
- 어디 가서 함부로 남의 비밀을 말하지 않을 사람
- 내 속 이야기를 더 꺼내서,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
이 세 가지 조건은 지금까지 내 커밍아웃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두 번째 커밍아웃 상대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교 동창인 남자사람 친구였다. 언제나처럼 게임하러 피씨방 가기 전에 맥주 한 잔 하던 밤이었다. 이 친구의 대응도 고마울 정도로 훌륭했다. 야 너는 그래도 연애라도 해봤지 나는 아직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아 열받아. 오늘 게임 잘 해라, 20킬 0데스 간다 아우씨. 그리고 평소처럼 밤새 게임을 했다. 그때는 불쌍한 게이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자기비하를 수단적으로 사용한 거였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자기 비하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둘 사이에 있는 정말 두꺼운 하나의 벽을 허물어버린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내 진실된 이야기를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도 기능이 작용하기도 한다.
세 번째로 커밍아웃 했던 대학 동기 여자사람 친구의 경우가 그랬다. 인간관계에 큰 벽으로 존재하는 건 소수인 성적 정체성만이 아니란 것을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는 내가 그 동안 겪었을 힘겨움을 공감해주면서, 자신이 그 동안 가지고 살아왔던 상처와 아픔을 내게 말해주었다. 나와는 다른 성격의 아픔이었지만, 그건 그 친구에게 있어 다른 의미에서의 커밍아웃이었다. 서로가 지니고 있던 벽들을 허물고 났더니 훨씬 더 소중한 친구 사이가 된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부모님의 경우는 물론 조금 특별했다. 부모님께도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커밍아웃 한 것이긴 하지만, 당신들의 자식이 힘겨운 나날을 지나 왔다는 생각에, 그리고 앞으로 더 힘든 나날들을 지내야 할 거라는 생각에 굉장히 가슴 아파 하셨다. 어쩌면 내가 겪었고, 또 겪을 힘겨움보다 훨씬 더 비관적으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런 걱정과 근심의 고통을 부모님께 드린 건 자식으로서 너무 죄송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 모두 날 변함없이 사랑하고 지지하셨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도 응원해 주셨다. 아버지는 내가 커밍아웃을 하고 몇 년 뒤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는데, 나는 오히려 아버지가 생전에 내 진짜 모습을 알고 가셨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커밍아웃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이렇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대부분 커밍아웃을 했고, 군대 있을 때는 많이 의지했던 같은 중대 선임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다. 누나들의 의견대로 매형들에게도 결혼 전에 커밍아웃을 했고 자라나는 조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게이 삼촌이 될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도 친하게 지내며 의지하는 선배 동료 몇에게는 커밍아웃을 했다. 모두 내겐 소중한 사람들이고, 내 커밍아웃이 이들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본다.
커밍아웃이란 사실 그렇게 쉽고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인생의 무게만큼 무거울 수 있는 문제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감히 말하자면, 무작정 겁내고 두려워할 것도 아니다. 아직도 많은 퀴어들이 죽을 때까지 평생 주변 사람들에게 숨기며 살아갈 거라고 다짐하고 있는데, 세상에 이보다 더 슬프고 외로운 다짐이 있을까 싶다.
소중한 나의 가족들이, 친구들이, 동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만큼 안타까운 게 있을까. 그들에게 축복받는 사랑, 지지 받고 응원 받는 사랑을 포기하고 평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숨겨야만 한다면, 이보다 더한 불행이 있을까.
함부로 누구에게 커밍아웃을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퀴어들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종로 뒷골목의 술집이나 이태원의 시끄러운 클럽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건 자기 자신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날 정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상대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 말해보는 게 어떨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더 이해하고 더 사랑하고 더 응원할 수 있게.
오픈퀴어
성소수자들을 위한 LGBT 커뮤니티 ‘오픈퀴어‘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오픈퀴어는 기존의 폐쇄적인 LGBT 소사이어티에서 벗어나 성소수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을 지향한다. 커뮤니티의 기능과 함께, 30만 성소수자를 대변할 공신력 있는 매체의 기능까지 담당하려 한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원문: 오픈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