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미국으로 출장 와서 TV를 보니 True Detective라는 드라마를 하는데, 오프닝에 나오는 랩송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부 가사를 못 알아 들어서 가사를 인터넷에서 뒤져 보니, 인상적인 이유가 있더군요. 레오너드 코헨이 짓고 부른 노래였습니다.
The war was lost
The treaty signed
I was not caught
I crossed the line
I was not caught
Though many tried
I live among you
Well-disguised
…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첫부분, “전쟁은 졌고, (항복) 협정이 서명되었다”는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가 그렇다 보니 전쟁이란 점령 및 항복, 그에 따른 협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외계인의 침공처럼 끝장이 나는 야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원래 근대적인 전쟁이란 저 노래 가사처럼, 패전으로 끝나더라도 일정한 조건으로 항복 협정을 맺고 배상금을 갚는 정도로 끝납니다. 나라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 죽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야만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끔씩은 승자가 무리한 조건을 패자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결국은 끝이 안 좋습니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르사이유 조약이 결국 히틀러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때 배운 교훈 덕분에,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에게도 너그러운 조건을 제시하여 결국 오늘날 그들과 좋은 동맹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사람들에게는 능력의 차이와 노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당연히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됩니다. 또 능력이 좋고 성과가 우수한 사람이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탐욕스러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공산주의는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 지난 20세기에 입증이 되었지요.
그러나 야만적인 전쟁에서의 경쟁 결과도 그런데, 일반적인 경제 활동에서의 경쟁 결과가 지나치게 잔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사회에서 상위 10% 혹은 1%만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고, 나머지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 전전긍긍하며, ‘왜 나는 능력이 이것뿐일까, 왜 그때 노력을 더 안 했을까’ 라는 후회와 반성에만 젖어 살아야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닙니다. 비록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90% 혹은 99%도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희망을 가지고 근로를 하며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부 편협한 보수층이 비아냥거리듯, 일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최소한 열심히 일을 하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고, 또 적어도 자식들에게는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도록 제대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즉, 적정한 최저임금제와 저비용의 교육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또 그를 위해서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과 기업들에 조금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가령 중소기업 공장의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이, 결국 그쪽에 하청을 주는 대기업의 이익 감소로 이어져야지, 대기업이 아예 방글라데시 등으로 하청업체를 옮겨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자본에는 국경도 없고 인정도 없으며, 애국심도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그 승패의 결과가 당대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진다는 것은 더더욱 부당한 일입니다. 혹자는 인간의 본성상, 자신이 이룬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길을 막는다면 부를 이룰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회와 경제가 쇠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맞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그에 대해서 적정한 수준의 재분배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상속증여는 수혜자 입장에서는 분명히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중과세를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연재하는 나폴레옹 전쟁사를 보고 계신 분들은 왜 나폴레옹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다고 보시는지요? 그냥 초인적인 불세출의 반신반인 지도자 나폴레옹 1인의 능력 때문이라고 보시는지요?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가만 보면, 신기하게도 프랑스에는 명장들이 수두룩한데, 오스트리아나 스페인 등에는 왜 이리 지휘관들이 무능력한지 한숨이 나올 정도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프랑스는 혁명 직후라서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의해 승진한 지휘관들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나 스페인은 그저 좋은 가문에 태어나는 행운을 누린 귀족들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과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그런 기업과 돈의 지휘권은 아버지가 부자인 사람이 아니라, 정말 능력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런 경영권과 부가 아무 댓가없이 자자손손 물려져서는 안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적정한 수준에서 상속증여세를 부과하여 지속적으로 사회에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며, 또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의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기업과 사회가 발전하는 길이지요.
가끔가다 보면 재벌 2세가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데, 해당 기업이 마비가 된다는 둥 엄살을 피우며 야단법석을 피우는 모습을 봅니다. 또 경영권 방어 때문에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헛소리도 듣지요. 그렇게 부자집 자식들이 못난 짓을 하는데 왜 기업이 마비되어야 하나요?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 정말 국가와 사회를 위한 제대로 된 길일까요?
‘돈이 없어서 복지를 할 수 없다, 그리스 꼴 난다’며 아우성치는 정부가 아래와 같은 세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더 이해가 안가는 것은, 이런 뉴스가 버젓이 나가는데도 국민들이 별로 분노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년부터 고가의 핸드백이나 모피, 보석 등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적용 기준이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됩니다. 소비 활성화를 위해 과세기준을 올렸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하지만 500만 원짜리 핸드백이나 모피를 구입하는 서민들이 많겠느냐는 지적과 함께 부유층을 위한 감세란 비판이 나옵니다.
또 해외 주식 투자전용펀드에 대해 1인당 3000만 원까지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한 것도 혜택이 고액 자산가에 한정될 것이란 지적입니다. 상속이나 증여 재산의 액수를 산정할 때, 평가받던 기관 수를 2곳 이상에서 1곳으로 줄인 것도 논란거리입니다. 감정기관과 짜고 상속이나 증여재산의 가치를 낮춰 세금을 덜 내더라도, 이를 가려내기가 어려워질 거란 우려 때문입니다.
또 이번 개정안에는 야당이 주장했던 법인세나 소득세의 과표나 세율 조정 등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부디 우리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저런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을 해보고, 결과적으로는 투표를 좀 더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당을 뽑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민주당 싫어합니다. 국민들이 관심이 없으면 정부는 돈 있는 사람들의 편을 들 수 밖에 없고, 국민들이 관심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투표입니다.
원문: Nasica의 뜻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