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빌 에모트 전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이 PROJECT SYNDICATE에 기고한 「The Great Emerging-Market Bubble」을 번역한 글입니다.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것이라던 신흥국들이 주춤거리고 있다. 그 이유로 원자재 가격 하락, 미국의 셰일 원유, 미국 금리 정책 전망, 엘니뇨, 중국 등 끝없이 많은 핑계가 거론된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면 원인은 하나로 모인다: 바로 정치 실패다.
브라질을 보자. 브라질 경제는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2년 넘게 제자리걸음 뒤 이제 후퇴하고 있다. 원자재 수출가격 하락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주범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도 성장은 하고 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문제가 더 복잡하다. 중국의 둔화는 다른 신흥국들의 성장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다. 중국에서는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수많은 민간 전문가들이 공식 GDP 통계를 믿지 못하겠다며 자체적인 추산을 하기도 한다. 정부는 성장률을 맞춘 듯 7%라고 발표하지만 민간 전문가들은 사실 성장률이 4% 내지 6%에 불과하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세계 경제가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변하지 않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흥국 경제의 미래는 그래도 아직 밝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져도 신흥국들은 결국 선진국보다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며 서서히 선진국들로부터 기술도 습득하고 생산성도 개선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중ㆍ남미, 아프리카, 동유럽 등 다양한 지역에 퍼져 있는 신흥국들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고 묘사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점은 신흥국 성장이 당연한 것이라면 오랜 과거부터 신흥국 부상은 계속 이어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이는 곧 신흥국이 성장을 지속하느냐 못하느냐의 여부는 정치와 정책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정치제도에 문제가 있어도 일시적으로는 원자재 붐과 같은 환경이 조성되면 성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나빠지고 변혁이 필요해지면 비로소 정치와 정책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브라질이 4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본적인 요인도 바로 이런 정치 역량 부족에 있다. 브라질이 경기침체 예방과 인플레이션 억제를 동시에 달성하지 못한 데에는 바로 정치 실패가 원인이 된 것이다. 정부는 방만한 공공부문을 개혁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었고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가운데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 정부주도 자본주의 방식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권이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사회조직들과 정치세력들 사이에 조정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모두를 위한 이익이 우선시되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다.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 국가적 자원의 비생산적 이용을 지양하고 보다 생산성 높은 이용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와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을 허용하지 않는 경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법의 지배와 표현의 자유를 원칙으로 하는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미성숙 민주주의 국가들이 드러내는 취약성이 바로 이런 것이다.
형식적으로 민주화된 이런 국가들과 싱가포르를 비교해 보자. 싱가포르는 올해 건국 50주년을 맞고 있으며 비록 불완전한 ‘관리형 민주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지만 브라질 같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인 이익집단 고착화 및 부패 현상은 극복해 냈다.
브라질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은 중국의 사례다. 중국도 역시 공산당이 국영기업의 독점권을 개혁하지 못했으며 보다 많은 영역을 민간에 개방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이 현재 겪고 있는 경기 둔화의 큰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에 어떤 제도가 최상이냐의 여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유연성과 적응력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면 신흥국은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 국가가 유연성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 국가가 이익집단에 굴복하지 않고 사회갈등을 중재하며 법의 지배를 유지할 제도와 의지가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제는 바로 정치인 것이다.
원문 : KoreaVi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