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격투 게임의 중흥
〈스트리트 파이터 2〉는 명명백백한 르네상스였다. 변함없이 이어져 오던 Player vs COM의 게임 개념을 Player vs Player로 바꾸며 오락실을 파이트 클럽으로 만들었다. 슈팅이나 액션게임보다 훨씬 빠른 회전율을 자랑하는 대전격투게임은 점주들에게도 사랑받았고 오락실에는 동전을 걸고 차례를 기다리는 게이머가 줄을 섰다. 목표에 경쟁심이 더해지니 오락실 분위기는 그간과 사뭇 다른 양식으로 타올랐다.
〈스트리트 파이터2〉에 이어 SNK가 〈아랑전설〉 〈용호의 권〉 〈사무라이 스피릿츠〉를 연속 히트시키며 오락실에는 점점 격투게임이 늘어갔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버추어 파이터〉 〈철권〉 〈소울엣지〉 등3D 격투게임이 출시되어 새로운 시스템과 재미를 자랑하며 대전격투게임은 날로 성장해갔다. 한국에서는 다소 썰렁했지만, 일본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던 〈버추어 파이터〉는 고수들을 ‘철인’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최초의 대전격투게임최초로 세계단위 대회가 열렸으나 한국의 신의욱(아키라 꼬마), 조학동(이게라우)이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해 죽 쒀서 개 준 꼴이 된 것도 유명한 일화. 당시 신의욱의 ‘한국대쉬’는 개발자인 스즈키 유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후문. 게임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뉴스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버파를 하지 않는 아이들도 ‘붕격운신쌍호장’, ‘수라패왕고화산’은 알았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엔 KOF가 있었다. 내가 특정연도에 무슨 학교 몇 학년이었는지는 그 시절에 어떤 KOF 시리즈를 하고 있었는지만 떠올리면 된다. 여름이 다가오면 KOF 새 시리즈가 나온다는 소식에 흥분했으며, PC통신을 통해 간간이 들려오는 괴소문을 갈무리하고 게임잡지에 실린 개발 중 스크린샷을 오려 모으며 흥분했다.
당시 어울리던 친구들과 기술이름을 외치며 흉내를 내다 여학생 무리를 마주쳐 뻘쭘했던 기억도 부지기수. 1997년 여름 거평프레야타운에서 열린 KOF 97 발표 축제에 달려가 경기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같이 간 친구에게 1회전에서 처참히 발리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온 기억도 있다.
철권 시리즈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KOF를 필두로 2D 게임류를 즐기던 나는 3D게임을 은근 무시했지만, 주변에는 철권을 즐기는 인구가 훨씬 많았다. 간단한 조작으로 큰 데미지를 뽑을 수 있는 공중콤보와 호쾌한 연출로 버파를 압도한 철권은 TT시리즈까지 명실상부한 오락실의 지배자였다. 철권 특유의 기합소리와 10단 콤보 동작을 그대로 외워 따라한 친구들은 방과후 좁디좁은 동네 오락실에서 난투를 벌이며 즐거워했다.
조금 별개의 이야기를 하자면 격투게임이 한창 흥하던 시절 게임잡지를 학교에 가져갔다 걸리면 중징계 of 중징계가 일상이었다. 격투게임이 폭력성을 부추긴다는 여론이 번지며 학교에서도 철권통치가 이어졌다.
그런 나날 중 코앞에서 TV 뉴스까지 보도된 초유의 학교폭력 사태가 불거졌다. 자기들 무리에 끼워준다는 일종의 ‘신고식’ 의미로 중학생 무리가 한 명을 두들겨 팼는데 행여 집에서 비명이 새나갈까 크게 틀어놓은 전축 소리에 민원이 들어와 적발된 것이다.
학교 전경과 교복이 전파를 탔고 해당 학교에 다니던 우리는 한동안 아줌마들의 손가락질과 수근거림을 받으며 등교했다. 가해자는 게임은커녕 오락실도 안가는 날라리 여자아이들이었고 피해자는 내 옆자리 짝꿍이었다. 하지만 게임잡지를 사유로 두들겨 맞는 일은 더 빈번해졌다.
기울어가는 장르
영원한 챔피언은 어디에도 없듯, 오락실을 휩쓸던 격투게임에게 싸우지 않는 라이벌이 등장했다. 1997년 겨울 코나미에서 출시한 〈비트매니아〉를 시작으로 한 〈댄스 댄스 레볼루션〉 〈펌프 잇 업〉 등 리듬게임 장르다.
진화를 거듭할수록 신규 유저의 진입 장벽도 함께 높아진 대전격투게임이과는 다르게 몹시 단순한(그래서 어려운) 리듬게임 조작법은 라이트 유저에게 쉽게 녹아들었다. 한국 노래를 사용한 국산 리듬게임 〈펌프 잇 업〉과 〈EZ2DJ〉는 전례 없는 인기를 얻으며 동호회가 생겨났고 지역마다 대회가 열렸다.
격투게임 고수가 나왔다 하면 몰려들던 갤러리(구경꾼)들도 줄어들었다. 갤러리는 물론 라이벌까지 빼앗긴 고수는 켠김에 왕까지 깨고 쓸쓸히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당시 군대에 다녀온 고수는 ‘격투가는 어디 가고 딴따라만 남았느냐’며 개탄했지만 이미 흐름은 넘어간 뒤였다.
PC방, 온라인 시대의 도래
그나마 같은 오락실에서 경쟁하던 리듬게임보다도 강력한 적은 다른 장소에서 자라났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히트작 〈스타크래프트〉가 PC방 시대를 이끌기 시작했던 것이다.
뭐라 말을 더하기가 뭣한 대히트작 〈스타크래프트〉가 세상을 휩쓸며 ‘게임=오락실’의 패러다임이 ‘게임=스타크래프트’가 되어가는 추세였다. 아무도 격투게임을 신경 쓰지 않았으며 수많은 오락실이 PC방으로 업종을 바꿔갔다. 그리고 〈레인보우 식스〉 〈디아블로〉등 PC방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점차 인기를 얻으며 격투게임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져갔다.
그 와중에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며 온라인 대전이라는 희망을 품고 PC용 격투게임이 하나 둘 출시되었으나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메가 엔터프라이즈에서 KOF 시리즈를 온라인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포포루〉가 올드 유저를 끌었으나 마땅한 수익구조가 없어 얼마 버티지 못했다. 이후 온라인 대전에 목마른 유저들은 마메 넷플, 중포루 등으로 근근이 연겜하고 있다.
PC방에 밀려 그 많던 오락실은 불닭집이나 해물탕집이 되어갔다. 한 해에 십여 차례 대회가 열리며 ‘격투가의 성지’로 불리던 조이플라자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2012년 문을 닫았다. 게임인구는 늘어났지만 대전격투게임을 즐기는 유저는 급속히 줄어갔고 형광등 나간 오락실에는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격투게임 BGM이 간간이 울렸다.
코어 게이머는 살아있다
한국에서 격투게임은 지나간 문화가 되어 추억이라는 형태로 남았다. 격투게임이라는 장르를 사랑하는 게이머로 장르의 몰락은 무척이나 아쉽다. 그러나 그 이유는 격투게임이 사회악이라거나 완성도가 부족하거나 이름난 대회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저 시대가 오락실에서 온라인으로 흐르고 ‘싸움’보단 ‘성장’의 가치가 중요시되어 대전격투게임에게 어려운 환경을 맞았기 때문이 더 크다.
메인스트림에서 멀어지며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게임’보다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게임’ 을 하는 코어 게이머만이 격투게임에 남았다. KOF 팬페이지 ‘배틀페이지’와 철권 팬페이지 ‘텍켄센트럴’에서는 아직도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개발사의 인사채용기준이 요런 쪽이니 신작에는 어떠어떠한 점에 중점을 두어 이러이러한 시스템이 나올 것까지 예측하는 게이머들을 보면 좋아하는 것을 하는 힘(=잉여력)에 무한한 경의가 느껴진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그 희귀한 코어 플레이어들의 기량이다. 현존하는 최대의 격투게임 대회 ‘Evolution 2012’의 공식종목 6종목 중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IV〉 〈스트리트 파이터 X 철권〉 〈KOF Xii〉 3종목의 우승을 한국인이 거머쥔 것이다. 최신작은커녕 구작 기판도 찾기 힘든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쿨러닝에 비견할 성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선우 선수는 스파4와 스파X철권 양종목에 우승하며 ‘권의 극에 달한 잠입’이라는 별명(or 칭호)를 얻기도 했다. ‘인생은잠입’ 이선우 선수와 ‘Madkof’ 동네형 이광노 님 사랑해여~♡
2011년 여름, 자전거여행 중 지리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해발 1090m 성삼재 휴게소에서 와이파이를 연결해 어느 멕시코 사람과 온라인 대전을 할 때… 무참히 변한 시대엔 어떤 가능성은 남아 있구나 싶어 묘한 기분에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