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전화할 일이 생기면
몇 주 전 서부에서 전화 인터뷰를 준비하는 친구랑 통화하고 나서 써야겠다고 생각한 글입니다. 마침 얼마 전 저와 피플웨어를 함께 번역하시는 박재호 님께서도 트윗으로 전화 영어의 어려움을 토로하셨던 터라…
조기 교육은 고무줄과 공기놀이가 전부인 세대로 자라나 어설프디어설픈 영어 실력으로 유학 생활과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이도 쪽팔려 가며 익힌 잔머리 술수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저처럼 학교에서, 회사에서, 출장에서 언어로서가 아니라 생존 수단으로 영어를 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쪽팔리다는 표준어랍니다 🙂
1. 몸으로 뛰어라
여건이 허락하면 어떻게든 얼굴 보고 해결하는 방법이 최고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 딱 그렇습니다. 유학 생활 때 친구들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는데 저는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회사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입사 후 처음 3~4개월 동안은 디버깅만 시켰는데 그게 결국 다른 개발자들에게 묻고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같이 입사한 미국인/인도인 친구들은 전화로 많이 해결했는데, 저는 일일이 다 찾아다녔습니다. 가서 얼굴 보고 물어보면 훨씬 더 친절하게 대답하고 설명해주니까요.
약속이 필요하면 메일로 해결했습니다. 덕분에 중견 개발자들이 저를 많이 알았고 저도 그분들 자리는 몽땅 꿰고 있었습니다. 물론 버그를 해결하는 속력도 동료 신참들보다 빠르게 좋아졌습니다. 보고 듣는 것이 더 많았으니까요. 지금 돌아보면 개발팀이 있는 2층과 3층을 참 열심히도 돌아다녔습니다.
2. 분위기를 잡아라
반드시 전화해야 한다면 자신이 전화하기 편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화 인터뷰를 제대로 갖춰 입고 하신다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제 얘기는 아닙니다^^; 저는 메모지와 펜을 준비합니다.
낙서를 하더라도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일어서서 통화하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기 수월합니다. 닫힌 공간이 편해서 회사에서 제 자리에 전화가 있어도 빈 회의실을 이용했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자기 분위기를 찾으십시오.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야 귀도 편합니다.
3.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라
상대방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기 바란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하십시오. 쓸데없이 혀 굴리지 마십시오.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소리로 알려주십시오. 상대방의 기대치를 낮추십시오.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최선을 다해 어필하십시오.
얼굴 보고 하는 대화에서는 상대의 언어 수준을 금방 파악합니다. 그래서 서로 배려하며 대화하고 회의합니다. 그런데 전화로는 헷갈리기 쉽습니다. 특히 그동안 연습한 쉬운 표현 몇 개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쓰면서 대화를 시작하면 상대의 기대치가 올라갑니다. 상대도 속사포처럼 대답합니다. 수습이 불가능합니다.
전화 영어든 대면 영어든 상대의 기대치가 높으면 그만큼 실수에도 너그럽지 않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를 너무 자연스럽게 하는 외국인이 어른에게 ‘야, 이놈아!’ 그랬다면? 반대로 말이 아주 어눌한 외국인이 그랬다면? 어느 쪽을 더 너그럽게 넘겨주시겠습니까?
4. 똑같이 느리게 한 번 더 말해줘!
A: 혹시 우체국 어딘지 아세요?
B: 네?
A: 우체국 가는 길 아세요?
B: 네? 뭐라고요?
A: 이 동네에 우체국 어디 있죠?
B: T_T;;;
대화하다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우리는 쉽게 표현하려고 애씁니다.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한 그대로 한 번만 더 반복해 주면 알아들을 텐데 매번 다르게 표현하니 당황합니다. 세 번 정도 반복하면 패닉에 빠져 쉬운 말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상대도 무안합니다. 어색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옵니다.
못 알아들으셨다면 ‘네?(Pardon?, Sorry?)’ 이런 표현보다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하십시오. ‘느리게 한 번 더 말씀해주시겠어요?(Could you please repeat that more slowly?)’
5. 질문으로 확인하라
상대가 무엇을 묻는지 감이 옵니다만 확실치 않습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살짝 의심스럽습니다. 그냥 넘어가기 찜찜합니다. 그럴 때는 내가 이해한 내용을 질문으로 확인하십시오.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는 말이지? 너 방금 이렇게 말한 거 맞지? 상대가 맞다고 하면 내가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아니라면 상대가 다시 말해줍니다.
A: 혹시 우체국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세요?
B: 우체통 찾으신다는 말씀이시죠?
A: 아뇨, 우체국요.
B: 아, 네.
6. 전자 편지로 확인하라
말 그대로입니다. 통화가 끝난 후 전자 편지를 보내서 확인하십시오. 그래, 우리 통화한 대로 내가 언제까지 이걸 이렇게 해서 보낼게, 그럼 너는 언제까지 저걸 저렇게 해서 보내 줘. 별 답장 없으면 맞다는 뜻입니다. 물론 서로 동의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효과도 있습니다.
전화 영어는 원래 어렵다
이상입니다. 전화 영어는 원! 래! 어렵습니다. 그러니 전화기 들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정 힘들면 솔직히 털어놓으십시오. ‘나는 말하기/듣기(Speaking/Listening)보다 읽기/쓰기(Reading/Writing)를 더 잘한다, 우리 차라리 채팅하자.’ 어떻게든 일을 진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함께 일할 사람이라면 반기지, 거절하지 않습니다. 거절하면 자신의 영어를 탓할 때가 아니라 상대의 의도를 의심할 때입니다.
참고로 전화 인터뷰는 역학이 조금 다릅니다. 나와 함께 일하겠다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평가하겠다는 사람과의 대화입니다. 팁 1번과 6번은 아예 해당하지 않으며 팁 2~5번은 지나치면 내 이미지를 깎아 먹습니다. 연습이 최선입니다.
원문: Hae-young Lee
참고
- Peggy McKee, 『How To Ace Your Phone Interview』: 이미 아는 내용이 많습니다만 1) 혹시나 미처 몰랐던 내용이 없는지 점검하는 차원에서 2) 영어 공부하는 차원에서 읽을 만한 책입니다.
- Paul Bailo, 『The Essential Phone Interview Handbook』: 리뷰는 괜찮은데 비싸서 목차만 확인했습니다. 혹시 읽으시면 감상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