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세간에 떠들썩한 아이유 사건을 정리해보자면, 어느 날 아이유가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인터뷰 중에 도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가 있는데 성적이 나빠서 속상하다는 발언을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내 평생토록 이해가 안가는 것이 왜 Morning Glory 앨범만 사고 Definitely Maybe 앨범은 안 샀을까 하는 거다” 라며 한탄하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상황은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아이유가 만든 곡에 소설 속 주인공인 5세 아이(제제)를 성적으로 묘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중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노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급기야 도서를 발행했던 출판사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입장을 발표했다.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상처받고 있을 수많은 제제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이기도 하구요. 그런 작가의 의도가 있는 작품을 이렇게 평가하다니요. 물론 창작과 해석의 자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대로 인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다섯 살 제제를 성적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입니다. 표현의 자유도 대중들의 공감 하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제제에다가 망사스타킹을 신기고 핀업걸 자세라뇨…
대중이 아이유에게 비판을 가하는 것이야 개인의 의견 표현에 해당하므로 우선 논외를 하기로 하더라도 출판사의 위와 같은 입장은 잘못되었다. 독서 감상에 정답과 오답이 어디 있는가. 설사 누군가 정답이 있다고 가르치려 들어도 출판사는 모든 감상을 존중해야 한다고 알려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위와 같은 입장을 발표한 것은 작품에 대한 모독이며 독자의 감상을 방해하는 명백한 월권행위다.
단호하게 말하건데 출판사가 옳다고 주장하는 도덕 개념은 이 책의 생명력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책 안에서 더러움을 발견해내기 위한 그릇된 일념으로 책을 읽어나갈 때 새로운 가치와 더불어 생명력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책은 다양한 방면으로 해석이 가능할수록 새살이 붙고 피가 돌기 때문이다. 획일한 가치로 굳어진 책이야말로 점점 잊혀진다. 어느 작가라도 자신의 작품이 잊혀지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신성하게 생각하는 문학은 사실 저급하고 더러운 상상력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대다수이다. 대중에게 맞춰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일 뿐, 문학의 뿌리는 대게 어두침침하고 질척거리며 때론 송곳처럼 날카로워 다치기 쉬운 곳에 있다. 왜 그런 곳에 문학의 뿌리가 존재하냐 묻는다면, 그런 곳이야말로 희망의 빛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작가는 온갖 추악하고 더러운 상상들을 조합하고 편집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직업이다. 당장에 책장으로 달려가서 꽂혀있는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아라. 우리가 고전이라고 불리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윤리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작품들은 작가가 금기된 상상을 마음껏 펼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책을 만드는 출판사라면, 진정으로 작품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점은 당연히 인지하고 행동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경험한 아름다운 페이지에 대한 예의이다.
‘책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다’ 이 말은 살아오면서 적어도 수십 번은 들었을 법한 이야기다. 이 말처럼 독자가 책에 어떠한 가치관을 부여하던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독서는 작가가 글로 표현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행간과 자간에 자신의 경험, 가치관, 상상력 등 온갖 것을 집어 넣어가며 읽어가는 특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독자마다 다른 감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독서의 특징으로 유추해보건데, 아이유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고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희열에 차 당장에 곡을 만들고 기뻐했으리라. 그것이 비록 잘 전달되지 못하고 수위조절에 실패하여 대중에게 분노를 일으켰을지언정, 독서 과정에서 내가 못 찾은 그 무엇을 찾아 새로운 창작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은 부럽다. 그것도 아주 많이 부럽다.
부록
내 뜻과는 다르지만 이번 사태에서 아이유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존중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말도 안 되는 듯한 내용들이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롭다. 나 역시 개인에 해당하므로 의견표명을 할 자유가 있는 바, 지지를 받고 있는 내용들에 소심하게 한 줄 말을 보태어본다.
-
언제부터 표현의 자유가 보편적 윤리 위에 있었나?
→언제부터 표현의 자유와 보편적 윤리가 상하 관계로 바뀌었나? 그 둘은 모두 중요한 가치로서 서로 상생해야 하는 관계 아니었나? -
아이유는 유명 가수다. 그의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동 성학대는 엄연한 범죄 행위로 곡에 쓰여져선 안 된다.
→ 이런 논리가 잔인한 게임을 많이 하면 살인하게 된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것도 엄연한 범죄다. -
아이유는 인터뷰에서 ‘아이’라고 명시했다. 그리고 ‘섹시하다’라는 말을 이어서 했다. ‘섹시’와 ‘아이’가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하는가
→ 뇌도 섹시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우리집 화장실 수건도 잘 보면 섹시하다. 수건 패티시로 규정해도 좋다. -
책을 제대로 읽었으면 이런 가사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해당 출판사 직원 인터뷰 중에서)
→ 우연히 읽은 한 문장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책을 제대로 정독하던, 그렇지 않던 모두 존중 받아야 할 독서습관이다. 위와 같은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