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앱 출시 3개월만에 10만 다운로드에 달한 ‘해먹남녀’
리(리승환): 아이 앰 그라운드 자기 소개 하기…
정(정지웅): 정지웅입니다. 해먹남녀라는 요리∙음식 콘텐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리: 장사는 좀 되나요?
정: 요새 좀 잘 됩니다. 콘텐츠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아요. 앱도 출시한지 3달이 안 됐는데, 곧 10만 다운로드 넘을 것 같고…
리: 빠르네요. 광고한 건가요?
정: 많이는 안 하고 있고, 테스트 삼아 조금씩 하고 있어요. 페이스북, 웹을 통해서 자연히 입소문이 나는 것 같아요.
리: 돈은 어떻게 벌고 있습니까?
정: 아직은 투자 단계에요. 돈은 나중에는 유저들이 원하는 간편식 등을 중개하는 커머스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 전에도 ㅍㅍㅅㅅ가 사랑하는 네이티브 애드나 쉐어하우스 등에서 하는 동영상 광고를 실험할 생각이고요.
리: 직원이 10명이 넘는데 비용이 버틸만한가요?
정: 초기에는 제 자금이 많이 들어갔고 해먹남녀 오픈 전후로 투자도 좀 받았어요. 예전에 비하면 투자가 용이해져서, 연초부터 투자금으로 운영해오고 있어요.
리: 투자 전 개인자금도 많이 들었을 텐데…
정: 그 때는 팀원도 적고 헝그리하게 돌렸어요. 해먹남녀로 방향을 바꾸고 나서야, 규모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외부 투자를 유치한 거죠.
2. 씹덕이 삼성에 입사하기까지
리: 학창시절부터 사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나요?
정: 아뇨. 원래는 그냥 디아블로 만렙 캐릭만 가득한 씹덕이었고… 뭔가 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학자는 학점이 안 돼서…
리: …….
정: 사실 교수님한테 찍혔죠. 삼성 멤버십하면서 밤 새고 수업시간에 맨날 졸아서, 교수님들이 안 뽑아주실 것 같아서…
리: 삼성 멤버십은 어떤 내용이었죠?
정: 저 같은 괴짜들 모아서 숙식 지원하면서, 삼성 사내 프로젝트나 자유 프로젝트를 시키면서 용돈도 주는 참 좋은 프로젝트였죠. 2년 정도 멤버십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리: 캬… 역시 글로벌 일등 기업.
정: 역시 놀게 해줘야 인재가 양성된다는 믿음이 이 때부터 생겼어요.
리: 아무튼 실전력은 꽤 붙었다…
정: 네. 사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맨파워가 큰 영향을 줬어요. 학생들이지만 알바 경력이 많거나 책을 쓴 사람들이 잔뜩 있어서, 서로 경쟁도 하고 답변도 해주고 하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리: 그리고 삼성 특채?
정: 네. 항상 요즘 세대에 미안함을 느끼는 기성세대입니다. ㅎㅎ
리: 왜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았나요?
정: 사실 삼성에서 몇 년 다니다가 유학 가고 싶은 꿈이 컸는데… 제 학점을 메우려면 삼성 경력밖에…
리: ……
정: 입사지원서를 자바로 짜라고 하면 모를까…
3. 좋은 뜻과 아이디어, 하지만 아픔으로만 남은 첫 창업 아이템
리: 삼성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정: 은근 일이 재미 있더라고요. 지금은 잊혀진 와이브로 개발을 했어요. 달리는 KTX에서 코딩하고 테스트하는… 경부선에서 100km/h로 달리면서 인터넷 끊기는지 보고… 근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때 삼성에서 12시 퇴근이 일반적이었는데, 그냥 재미있기에 ‘아, 난 현업 개발자 체질이구나. 학자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약간 야근은 스포츠다… 마인드였는 듯..
리: 그런데 왜 때려치웠죠…
정: 신사업 팀에서 일했는데, 안에서 보니까 안 되는 이유가 너무 많이 보였어요. B2B라서 특수성도 많고요… 통신사나 관계업체나 등등… 분명 기술은 괜찮은데 기술만으로 신사업이 안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B2C를 하자, 인터넷을 하자… 그런 생각을 했지요.
리: 그래서 게임업계로 이직?
정: 아, 그때 김택진 대표님이 인터넷 사업에 열정을 가지고 신사업을 조직을 만드셨다고 해서 NC소프트의 오픈마루라는 신사업조직으로 옮겼어요.
리: 아, 오픈마루. 스프링노트랑 오픈아이디랑… 거기선 뭐했죠?
정: 여기선 소셜 플랫폼 인프라도 만들고, 나중엔 검색 서비스 기획도 하고 그럤어요. 오픈마루가 세상에 빛을 못 본 프로젝트가 참 많은데… 공교롭게 제가 한 프로젝트는 거의…
리: 네… 거기까지…
정: 아무튼 이때도 엄청 괴수분들 사이에서 엄청 배우고 좋았는데, 여기서도 신사업이 안 되니 뭔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난 어디로 가는가… 돈과 사람도 있는데 안 되고… 심지어 좋은 문화도 있는데 안 되고… 그래서 에라, 내가 한번 해 보자… 이런 마음에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리: 창업은 언제, 누구와 하게 됐지요?
정: 2009년 비슷한 생각 가진 친구들과 창업했어요.
리: 4년 간 모은 돈이면 시작할 때 자본이 많지는 않았겠군요?
정: 네. 2009년에는 지금처럼 엔젤 투자나 VC가 잘 없었어요. 그래서 선배들이 하지 말라는 외주나 정책자금이나… 이런 거 다 했어요. 그러다가 버티다가 클럽 베닛으로 방향 정하고 보니, 이건 자본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다 받았죠. 엔젤, VC…
리: 멤버들은 어떻게 모였나요?
정: 처음에 일요일마다 창업 스터디를 했어요. NC소프트, 네이버, 다음의 기획자, 개발자가 모여서 주로 해외 서비스를 벤치마킹했지요. 거기서 3명이 나와서 창업했어요. 14명이서 스터디 했었는데, 거기서만 회사가 5개 정도 나왔고, 지금도 2~3개 있어요.
리: 그렇게 대박이!
정: 그런데 우리 스터디보다 옆방이 대박이었어요. 옆방에도 우리가 아는 분들이 스터디를 마찬가지로 했는데, 거기는 게임을 주로 다뤘어요. 일요일마다 토즈에서 모였다고 해서 나온… 바로 선데이 토즈죠. 그때 이정웅 대표, 임현수 이사 등이 있었죠.
리: 3명이서 내놓은 첫 아이템은 무엇이었나요?
정: 원포미라고 수공예 업자들 중개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리: 그리고 망했군요.
정: 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잘 안 됐는데… 근데 우리가 참조한 엣시(etsy)는 얼마 전 미국에서 상장에 성공했어요. 무려 30만명이 참여하고 거래액만 1조에 이르죠.
리: 왜 안 됐을까요?
정: 생각해보니 미국, 유럽처럼 소비 문화가 성숙한 나라에서 가능한 모델이었는데… 그때는 엔지니어다 보니 멋있는 플랫폼에 끌렸던 거죠. 홍대와 인사동 중심으로 영업해 수공업자를 100분 정도 모셨어요.
리: 매출이 없었나요?
정: 매출이 나오긴 하는데, 성장을 오거닉하게 할 것 같지가 않았어요. 생산자들은 너무 좋아하는데, 소비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이 모델이 한국에서 되려면 아직 3~4년은 필요한 것 같아요. 한국은 이제서야 디자인 상품을 구입하는 게 정착되고 있는 단계에요. 이게 더 성숙해서 장인이 브랜드가 되고, 그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관여도가 높아져야 돌아가는 것 같아요.
리: 아직은 시장이 미성숙하다…
정: 그래야 전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생산자가 늘어나거든요. 현재의 공방은 작은 팀 단위 수준이 한계라 영속하기 힘들어요. 미국, 일본, 유럽은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이미 기업 단위로까지 성장했거든요. 이에 반해 한국은 생산력도 약하고 소비자 인식도 약하죠. 장인이 한 달 고생해 10만원에 파는데, 비슷한 중국산을 3만원에 사고 하면, 시장이 만들어지기 힘들더라고요.
리: 그래서 매출은 얼마나?
정: 그때는 월 수백만 원 수준이었어요…
리: 이익은?
정: 솔직히 형편 없었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산자가 혼자 하는 게 많으니 물량이 수십 개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하나 만드는 데만 며칠 걸리니 물량을 처내질 못했어요. 매스 생산이 안 되면 결국 대규모로 발주할 수 있는 기업이 끼어들기 힘들거든요. 지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좀 더 성숙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리: 얼마만에 접었죠?
정: 4달 정도 운영했어요.
리: 밥은 굶지 않았나요?
정: 첫 아이템이라서 이때까지는 외주를 안 했어요. 이미 1억의 창업자금은 거의 쓴 상태고, 외주를 하면서 두 번째 서비스를 준비했죠.
리: 외주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정: 돈이 있어서 좋긴 한데 돈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더라고요. 서비스가 잘 돼야 하는데, 돈 버는 일에 자꾸 신경 쓰이고 멤버들도 똘똘 뭉치기도 어렵고… 서비스 의욕도 떨어지고, 그래서 두 번째 서비스 런칭 후 외주 관두자는 쪽으로 돌아섰어요.
리: 그래도 외주는 잘 됐나 보군요?
정: 창업자 3명이 다 개발자인 데다가, 2명이 더 온 상태였어요. 다들 경력이 있으니 외주는 끊임 없이 들어왔죠. 거기서 달콤하게 돌렸으면 외주 회사가 됐을 것 같지만, 서비스 만들 시간은 없었겠지요.
4.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하던 온라인 명품 시장, 콘텐츠에서 답을 찾다
리: 두 번째는 어떤 서비스를 런칭했나요?
정: 첫 번째 만난 수공예 생산자 중 블로그에서 가내수공업 생활하시는 분이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자신이 공동구매로 꽤 수익을 올리는데, 하다 보니까 관리 비용이 든다는 거죠. 상품 애프터서비스나 에이전시 상대도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토스토라는 서비스를 런칭했어요. 블로그와 카페의 공동구매를 도와주는 플랫폼이었죠.
리: 반응은 어땠나요?
정: 초반 반응은 괜찮았어요. 블로거 150명, 카페 200군데 이상을 섭외했어요. 이 비즈니스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첫 번째 외부 투자를 유치했어요. 그 비즈니스는 런칭 첫날 매출 천만 원이 찍힐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어요.
리: 그런데 기존 에이전시도 하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 맞아요. 블로그, 카페 시장은 이미 그때도 상업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어요. 그리고 소비자들도 이를 알게 됐죠. 그래서 매출은 계속 났지만 레드오션에 시장 성장도 크지 않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비즈니스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죠. 결국, 그 모델도 6~7개월 후 접었어요.
리: 그래도 돈이 되는 사업을 정리하는 건 아쉽지 않았나요? 그냥 마케터 고용해서 돌려도 어지간한 돈은 벌 것 같은데?
정: 솔직히 BEP(손익분기점)는 못 맞췄지만, 거의 근접한 상황이긴 했어요. 하지만 플랫폼 비즈니스 위해 창업했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돈은 벌지만 규모의 비즈니스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리: 결국 또 외주의 세계로(…)
정: 그건 아니고… 투자자도 있다 보니 좀 더 하고 싶었던 것, 큰 비즈니스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다음 비즈니스로 들어갔어요.
리: 투자금이 얼마였죠?
정: 3억 정도였어요.
리: 엄밀히 말해 큰 돈은 아니군요…
정: 그때만 하더라도 2010년이라서, 엔젤 투자… 이런 게 거의 없을 때였어요. 3억만 해도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였죠.
리: 그래서 다음 서비스는 무엇이었나요?
정: 클럽 베닛이었어요. 명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한다는 컨셉이었죠.
리: 이건 진짜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이군요(…)
정: 네. 그래서 추가 투자를 유치해야 했는데… 투자금이 많이 들어서 기존 투자자도 말렸어요. 그래도 기존 모델과 차이가 있다면, 클럽 베닛을 시작한 후에야 알았는데… 재고 없이 상품을 사지 않고 했던 모델이 우리뿐이었어요. 다른 곳은 이미 명품을 구입한 후 거래를 했죠. 그래서 업계에서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리: 초기에는 명품 소셜 커머스로 알려졌는데, 자연히 알려진 것인가요? 아니면 스스로 네이밍을 한 건가요?
정: 반반이에요. 우리가 하는 모델은 엄밀히 말하면 소셜 커머스와는 차이가 있었어요. 회원에게만 싸게 공급하는 프라이빗 세일즈 모델이었거든요. 처음에는 그루폰 모델과 프라이빗 세일즈 중 무엇을 할까 고민했는데… 그루폰은 티몬이 이미 등장했고, 쿠팡도 준비 중이라 뛰어들기 힘들다 생각했어요. 프라이빗 세일즈 모델은 여주에 프리미엄 아울렛이 생겨서 인기를 끄는 등 시장 기회가 아직 열려 있다고 생각했어요.
리: 해외에도 이와 같은 모델이 있었나요?
정: 많았죠. 프라이빗 세일즈는 50개국 이상에서 지금도 운영 중이에요.
리: 그런데 왜 투자자 반응이 싸늘했나요?
정: 우리 때는 한국에서는 어렵다 생가각했던 게… 이거 시작하다가 런칭도 못하거나 런칭하고 금방 접은 곳이 10군데 이상이었어요. 투자 많이 받은 사람도 고전하고 있으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죠.
리: 그런데도 밀어붙인 이유는?
정: 유통업체와 소비자 계속 찾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했어요. 그런데 소비자 패턴이 해외와 한국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리: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정: 한국 명품 시장이 세계 8위에요. GDP 대비로도 엄청 높아요. 한국이 소비 문화에 있어서는GDP 대비 쓸데 없이 크고 빨리 발전했어요. 또 트렌드도 매우 빠르게 변화해요. 한마디로 한국은 명품시장에서 한 발 앞서 있는, 소비 패턴이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에요. 그래서 재고도 생각보다 많은 편이고요.
리: 여기에서 또 다른 기회를 본 것이군요.
정: 네. 명품 시장이 온라인에서 열리지 않은 걸 모두 단품 이슈라 생각했어요. 어차피 온라인에서 팔 정도면, 이미 끝물이니 안 산다는 생각.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명품은 온라인에서 안 산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사지 않으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명품을 구매하지 않았던 건 콘텐츠, 주로 사진이 별로였기 때문이에요.
리: 그건 정말 의외로군요.
정: 네. 이게 글로만 알았던 시장조사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흔히들 이야기하는 두 가지 문제가 모두 진짜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거죠. 먼저, 재고 문제는 애초에 물건을 굳이 우리가 매입하지 않고 중개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쉽게 풀어갈 수 있었어요. 명품은 너무 비싸니까 조금만 사도 매입금이 10억을 금방 넘어요. 그렇다고 너무 적게 사들이면 남는 게 없고요. 이걸 우리가 리스크 감수할 필요가 없었어요.
리: 하지만 반대로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를 꺼릴 것 같은데요. 애초에 잘 안 팔리면 자신에게 이익이 별로 안 돌아가니…
정: 그게 한국이 트렌디하다는 점을 노린 건데요… 기존에 명품 시장과 온라인을 잘 엮지 못했던 이유는 명품 땡처리만 생각했던 거에요. 그런데 한국은 워낙 트렌디해서 한두달 전 백화점에 나왔던 상품도 금방 교체돼요. 신상에 가까운 상품이니 재고가 많이 남지 않고 잘 팔렸어요.
리: 다음 문제는 뭐였지요?
정: 가품, 그러니 짝퉁 문제였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콘텐츠더라고요. 대형 마켓도 명품을 명품스럽게 꾸미지 않았어요. 사진 대충 찍고 하니 신뢰가 없던 거죠. 그래서 그건 프리미엄 사진 촬영으로 풀었지요.
5. 데이터는 양이 아니라 고객 니즈에 기반한 분석이 중요
리: 그래서 온라인 구매로 깔끔하게 이어진 거군요.
정: 네. 기존 명품은 오프라인 마케팅에 의존했어요. 그때만 해도 스타트업이 티비 광고를 하는 일은 드물었는데, 홈쇼핑에 광고하던 경쟁업체도 있었고요. 우리는 어쨌든 온라인에 걸었어요. 기존에는 온라인에서 가격비교 후 백화점, 아울렛 가는 게 한계라 생각했지만, 디자인이 훌륭한 사이트와 질 높은 콘텐츠가 있다면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리: 프라이빗 세일즈는 회원제인데 회원비도 있었나요?
정: 아니오. 그보다는 명품 업체들의 체면과 브랜드를 챙기는 데 주력했어요. 명품 업체는 자신들이 할인가에 판다는 걸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아요. 소셜커머스는 싸게 파는 걸 대놓고 홍보해서 인기를 끌었어요. 그래서 소셜커머스를 통해 홍보하면 물 흐린다고 서로 업자들끼리 욕했거든요. 반면 클럽 베닛은 딜이 끝나면 사이트 내부에서도 판매기간이 지나면 할인 정보 자체를 삭제하며 브랜드를 보호했어요. 소비자들은 자신이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느낌을 받으니 반응이 좋았고요.
리: 클럽 베닛은 초반부터 성장가도를 달렸나요?
정: 솔직히 그래요. 런칭 후 2~3개월부터 바이럴이 일어나고, 거의 몇 달마다 2~3배로 성장했어요.
리: 존나 좋군?
정: 정신이 없더라고요.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조직도 빠르게 팽창했고, 업체 관리도 힘들었어요. 초반에서는 소싱이 안 돼서 도와주는 20개 업체 챙기기도 힘들었는데, 금방 500개가 되어 버린 거죠. 업체 잘 매출 나게 도와드리고 관리하고… 이런 거 고민하면서 많은 내부적 이슈가 있었어요.
리: 원래 물류 사업은 커질수록 이슈도 늘어나니까요.
정: 네. 지금은 시장이 성숙해 커머스 관련 업체는 다 알겠지만… 프로세스를 유지하는 데, 상당히 비용 최적화가 필요해요. 요새 O2O 고민도 다 그런 것이겠죠. 배송, 매입 과정… 그런데 다 제쳐두고 일단 커머스다 보니 매출이 중요했죠. 결국 소비자 관리도 관리이지만, 업체 만족이 정말 중요했어요. 저희와 거래하는 분들이 많이 벌어야 우리도 사는 거니까요.
리: 결국 매출 올리는데 성공했다?
정: 사실 그게 좀 의외였는데, 업체들이 우리를 좋아한 게 우리가 제공하는 리포트 때문이기도 했어요.
리: 리포트?
정: 이게 사실은 저희가 살기 위해 개발한 거였어요. 온라인이니까 데이터가 수집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장님, 제품 중 빨간 색이 잘 나가고 검은 색은 안 나가니까…” 이런 가이드를 줬어요. 그런데 이걸 매출보다 더 좋아하는 거에요. 오프라인 기반 업체라 해도 젊은 세대들은 온라인으로 넘어가 쇼핑한다는 거 업자들도 다 알아요. 그런 새로운 소비 트렌드 데이터 제공하니 만족도가 정말 높아지더라고요. 나중에는 우리가 제공하는 리포트를 소싱하기 위해 해외 업체들이 찾아오기도 했어요. “정대표 이야기 듣고 소싱하니 온라인에서는 팔리더라”는 입소문도 생겼고요. 지금에야 빅데이터로 어쩌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하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된 사실이었지요.
리: 리포트에 따른 결과도 좋았나요?
정: 네. 실제 결과도 좋았어요. 한국인은 트렌드를 선행하다 보니, 백화점 반응 보고 해봐야 이미 시즌이 지난 낡은 데이터가 됐어요. 반면 우리 유저는 온라인이라 선행이 가능했죠. 하다 보니 저도 자라 등의 SPA 업체가 왜 잘 되는지 알겠더라고요. 빠르게 할수록 전통 제조∙유통업은 시장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하용호 넘버웍스 대표가 이야기하듯 빅데이터는 그냥 양만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데이터 주도(data driven)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리: 그렇게 매출이 성장했는데, 영업이익은 어땠나요?
정: 이미 매각은 했지만, 지금 본사도 BEP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내년 상장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죠.
리: 중간에 자금 위협은 없었나요?
정: 일단 2011년 12월에 20억 받은 걸로 버텼어요. 당시에는 굉장히 큰 규모였죠. 그런데 클럽 베닛을 운영하며 알게 됐는데… 결국, 온라인에다 백화점이나 프리미엄 아울렛을 하나 짓는 것이나 다름 없었어요. 브랜드 가치나 이런 걸 지키고 키우려면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지속돼야 했고, 이에 따른 자본도 계속 필요했어요. 그래서 고민에 빠졌죠. 이미 세계적으로는 지역별, 권역별로 M&A가 이뤄지며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고 있었어요. 지금 같은 시기라면 투자 시장이 활성화돼 있으니, 이를 기반으로 갈 수도 있었겠죠.
리: 사실 유통업이라는 관점에서 20억이 그리 큰 돈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정: 작았죠… 추가 투자 유치도 고민했고요. 요즘 같으면 계속 가는 비즈니스로 베팅했을 거에요. 그런데 그때는 투자 환경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어요. 지금이야 50억, 100억 투자도 많지만… 직원들이나 주주들이나, 이대로 계속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지요. 계속 가려면 100억 펀딩까지 가야 했는데… 상황상 M&A가 더 현실적이라 생각했어요.
리: 그래서 얼마에 팔았나요?
정: 그건 기밀이라 말할 수도 없지만… 사실상 내년 상장이 얼마에 되느냐에 달려서 저도 잘 모르겠어요.
리: 지갑에는 얼마 꽂혔나요?
정: 이것도 비밀입니다. 하지만, 아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은 액수라고는 밝힐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스톡 옵션이 훨씬 중요한지라.
리: 엔지니어 셋이서 창업해서, 기술보다 다른 쪽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됐는데… 업자들 설득도 쉽지 않았겠습니다.
정: 네. 커머스나 영업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그냥 많이 만났어요. 스토리가 많은데 한 업체만 13번 찾아가서 리젝된 적도 있어요.
리: 어딘지 깝시다.
정: 지금은 도산해서(…) 명품 브랜드 가진 중견기업이었는데 망하기 직전까지도 도도한 측면이 있었어요. 그 업체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다…
6. 그 어떤 기술도, 결국 발품보다 중요하지 않다
리: 하긴 명품 업체가 좀 그런 면이 있죠. 지금도 구질구질한 패션을 자랑하고 있는데,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정: 그때 6개월 정도 영업 직접 하면서 막 뛰어다녔어요. 직접 뛰니 좋은 게 시장 어찌 되는지 알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MD 본부장을 맡을 분을 약 80분 정도 면접 봤어요.
리: 대체 몇 달 동안 면접을 한 겁니까…
정: 거의 6개월 동안… 그런데 이게 정말 큰 경험이 됐어요. 20명 정도까지는 오히려, 이 분들이 저를 걱정했어요. 산업도 잘 모르는 친구라고 열심히 잘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40명 정도 만나니까 최소한 말이 통해요. 60명 정도 되니까 우리가 설득이 가능하더라고요.
리: 회사 매출이 올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정: 아뇨. 그게 런칭 전이었어요. 준비만 6개월 넘게 한 거죠.
리: 참으로 신중하시군요…
정: 워낙에 쉽지 않은 사업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 6개월 간 영업, 시장 조사, 채용, 혼자서 다 했어요. 시작 전에는 매우 암울했어요. 시장 실패 케이스도 많고 업계 분들도 다 부정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6개월 넘어 조사를 하니 시장이 점점 보였고, 60번째 이후 면접 본 분들에게는 비전 공유가 가능했어요. 결국, 80번째 뵌 분과 함께 사업을 하게 됐죠.
리: 그 분은 어떤 역할을 해주셨나요?
정: 샤넬 등 명품업계에만 20년 있던 분이세요. 이 분은 클럽 베닛이라는 신사업이 될 거라고 생각하셔서 함께 하게 됐죠. 많은 도움. 우리는 이 업계에 초짜이다 보니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리: 시장 조사 기간이 굉장히 길었는데 주로 어떤 조사를 했죠?
정: 발품이죠. 6개월 간의 그 과정 안 거쳤으면 실패했을 거에요. 계속 돌다가 느낀 건데, 오프라인 사업이다 보니 너무 잘 아는 분들은 안 하고 포기한 영역이 있더라고요. 반면 저는 산업을 잘 몰랐기 때문에, 뭐가 풀려야 하고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거고요.
리: 발품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정: 시장조사 데이터를 역으로 안 믿게 됐어요. 한국 시장이 매우 유니크했어요. 경쟁업체들이 시장 조사 하고 데이터를 신뢰하다가 망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터키에서도 우리와 유사한 모델로 자회사 진출한 적이 있었어요. 경력 많은 대기업 CEO도 끼고 투자금도 많았는데 실패했어요. 앞서 말한 한국 시장 소비자 특수성을 간과한 거죠.
리: 원래 신중한 스타일이었나요?
정: 네. 공부하는 거 되게 좋아하고… 그런데, 사업하면서 특성이 생긴 게 공부한 걸 반만 믿게 됐어요. 직접 가서 보고 느낀 걸 중시하게 됐죠. 항상 글이나 이론적인 건 반만 맞는 것 같아요. 습관이 들었는데 직접 현장에서 느끼자. 특히 오프라인 속성이 강한 사업은 업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듣고 소비자 이야기 듣고 드독. 그런데 이미 현재 헤게모니에 익숙하다 보니 어떻게 바꿔야 할지 본인들은 잘 모른다. 그거 반, 내가 고민하는 거 반. 이렇게 문제 푸는 게 익숙.
리: 아무리 그래도 이거 하자, 돈 된다 설득하기 힘들었을 텐데?
정: 어려웠죠. 완전 하이엔드 명품은 소싱은 꿈도 못 꿨고, 목표 중 하나가 제발 프라다 급 한 번 소싱하는 거였어요. 코치 등 메스티지 브랜드가 한계였지요.
리: 주로 브랜드에 직접 영업을 했나요?
정: 병행수입, 본사 반반 만났어요. 상위 브랜는 브랜드는 주로 병행수입을 만났죠. 이 과정도 참 지난했는데, 유통구조라는 게 까면 깔수록 신기하더라고요. 덕택에 유통구조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어요.
리: 유통구조의 지도?
정: 사실 그렇잖아요. 다들 자기 입장에서 유통의 지도를 그리게 되는… 우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크로스 체크하다 보니 그들의 지도를 합치게 됐어요. 유명 브랜드라 해도 그냥 지사에만 보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유통 경로가 있어요. 예로 오프라인에서 키워진, 대기업 분들은 중간 유통상들이 많이 껴요. 아직도 벤더 계약이 많죠. 우리는 죽어라 발품 팔고 해외에도 연락하다 보니, 어디가 최단 경로인지 알게 되고, 단가를 맞출 수 있게 된 거죠. 결국 유통업은, 유통구조의 지도 최신버전을 누가 들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됐죠.
7. 엑시트의 성공, 끝이 아닌 시작인 이유
리: 그래도 돈이 워낙 많이 드는 일인데, 접어야겠다는 생각은?
정: 클럽 베닛은 어쨌든 계속 성장했으니, 관둬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런칭 6-7개월 전이 문제였죠. 다들 못 할 거라고, 우리 방식으로는 안 될 거라 하니까… 내부에서 확신 가지고 밀어붙이는 게 문제였죠. 나중에는 멤버들한테 이야기 많이 했는데, 에피소드 하나가 있어요. 업체만 잡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는데, 미팅 계속 연기되다가 문전박대만 당하고 온 적이 있어요. 제가 잘 안 우는 사람인데 사무실 복귀하면서 계속 눈물이 펑펑 나오더라구요. 도저히 못 하겠다, 접어야겠다… 들어가서 그만두겠다고 말하려 작정했어요. 그런데 사무실 복귀하자마자 동료들이 잘 될 거 같다며 각종 아이디어를 내는 거게요. 이게 런칭 2-3개월 전인데… 그때 계속 해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리: 멤버들이 어떤 의견을 내던가요?
정: 여럿이 있지만 마케팅에서 정말 도움이 됐던 건 온라인 마케팅 쪽이에요. 사실 처음부터 콘텐츠도 사진 퀄리티 중요하단 걸 깨달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멤버들이 계속 테스트를 했어요. 어느 채널에 명품 관심자 있는지, 어떤 식으로 발행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지…
리: 온라인 마케팅이라 하면 결국 비용이 관건 아닌가요?
정: 그게 엄청 싸게 했어요. 10만원 이하로 각종 채널에 쫙 뿌리며 AB 스플릿 테스트를 했어요. 돈 없으니까 잘 되는 데에 올인하자는 식이죠. 당시만 해도 빅데이터나 그로스 해킹 같은 이야기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이걸 이미 멤버들이 접목시킨 거죠.
리: 하긴 그로스 해킹 이야기하면 게임회사들은 “우리 그거 이미 하고 있었거든요?” 하더라고요.
정: 네. 그 과정에서 콘텐츠가 고급스러우면 먹힘을 알게 됐어요. 나중에 스타일난다 대표님 인터뷰 보며 공감한 게 버티컬 비즈니스, 특히 커머스는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내용이었어요.
리: 개발자 위주의 회사가 오프라인, 콘텐츠로 확장하는 건 힘들지 않았나요?
정: 오히려 용이했던 건, 이 산업에 온라인 전문가 분들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에요. 우리처럼 개발 베이스의 기업이 오프라인과 콘텐츠 분야에서 사람을 뽑으니 비전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스타트업의 특성상 처우가 좋을 리가 없는데도, 흔쾌히 베팅했어요. 회사에서 계속 명품 보는데 일도 하고 돈도 되니까 좋다는 분도 있었고, 가면 갈수록 채용이 쉬워지더라고요.
리: 아무튼 엑시트를 축하 드립니다. 이후 왜 회사를 그만두게 됐나요?
정: 엑시트 후에도 인수한 회사에서 계속 근무했어요. 당시에는 본사에서 CEO를 새로 임명하고 저는 CTO를 맡았죠. 당시 더 좋은 제안이 많이 와서 고민에 빠졌어요.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좋은 조건을 받아들여서 지분을 통해 리스크와 레버리징할지, 아니면 새로 사업을 할지… 답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엑시트 전에는 한 번 성공하면 인생이 고속도로처럼 뚫릴 지 알았어요. 정답 있고 고르기만 하면 되는… 그런데 사춘기 비슷한 게 뒤늦게 오더라고요. 더 이상 대표가 아니니까 주말에 여행 다니며 고민들 했어요. 선배들 찾아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상담도 하고…
리: 선배들은 어떤 조언을 하던가요.
정: 다 답이 다르고 나름의 일리가 있었어요. 그 중 제일 공감한 게… 한 선배가 “10년 후 뭐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3년 후에 할 일이 떠오르고, 또 3년 후 할 일을 떠올리면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이 나올 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10년 후 뭐하고 싶은지 생각하니…
리: 하니…
정: 나는 왜 엔지니어 출신인데, 아무도 안 하려는 전통 산업 비즈니스로 가고 있을까… 지금이야 O2O라는 팬시한 단어가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잘 되고 나니까 오히려 전통산업 대표들이 뭔가 알려달라고 찾아 오더라고요. 그 과정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난 왜 이런 사람 됐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전 카카오, 페이스북 만드는 게 관심대상이 아니라, 전통산업과 IT 비즈니스를 결합하는 걸 좋아하고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그래서 앞으로의 꿈은…?
정: 10년 후에는 앨런 머스크처럼 전통 산업 2~3개를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기에야 맨땅에 헤딩하겠지만, 전통 산업과 결합할 때 IT 가 더 파워풀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하고 나서 샤워를 하다 보니까… 3년 후에는 제가 새로 시작한 기업을 기반으로 가져야 할 텐데, 그럴 거면 하루라도 더 일찍 시작하자… 그래서 다음 날 대표님께 새 사업 하겠다 했다고 했어요.
리: 앨런 머스크라니, 정말 꿈이군요.
정: ……
8. 시장을 읽지 못한 데이터 기반 스타트업, 좌절을 맛보다
리: 그래서 다음 사업이 힌트와 해먹남녀가 됐습니다.
정: 네. 패션 쪽에 도전했으니 의식주 중에 남은 건 먹고 자는 거였죠. 원래 여행하며 생각한 건 직방 모델이었어요. 그런데 이건 잘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러면 음식 쪽에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두 번째 창업은 테마를 음식으로 잡았죠.
리: 엑시트 했으면 투자 받기 쉬울 텐데, 왜 투자를 받지 않았죠?
정: 제가 준비됐을 때 투자 받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사서 고생한 거지만… 제가 좀 더 고생하더라도 제 돈 넣더라도 답을 찾을 때까지 버텨 보기로 했어요. 사실 첫 사업이 두 번 사업 모델을 바꿨는데, 그 과정에서 주주분들도 고생했고… 그런 점에서 돈부터 받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한동안 투자를 받지 않은 거죠.
리: 두 번째 창업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정: 클럽 베닛 멤버 중 같이 하고 싶은 친구 한 명과 같이 시작했어요. 음식과 IT를 어떻게 연결할까 하다가 역시 헬스케어가 헬스케어가 IT 친화적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내 몸에 맞는 음식을 추천하는 서비스 ‘힌트’를 런칭했어요. 비즈니스 분야는 기존에 해왔던 커머스와 연결시켜서 음식상품을 배달했고요.
리: 새롭게 시작해 보니까 어떻던가요?
정: 너무 어렵더라고요. 헬스케어란 것 자체가.
리: 어떤 점에서?
정: 제가 IT 엔지니어 출신이라 욕심은 많은데…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음식이 다 데이터화 다 돼 있어요. 그래서 업계에서는 가공만 하면 되죠. 그런데 한국은 가공이 아니라 아예 데이터가 없어요. 완전 노가다 판이 펼쳐진 거죠.
리: 그밖에 어떤 문제가 있던가요?
정: BM의 문제였어요. 첫 BM으로 삼은 게, 주문하면 바로 건강식이 배달되는 모델이었어요. 그런데 깨달은 게, 한국은 소비자의 음식 눈이 너무 높아요. 어설픈 음식이나 가격으로는 정말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렇다고 가격 낮추며 타협하면 정말 헬게이트가 열리고요. 한국에서의 소비자음식 관여도는 명품만큼이나 높아요. 어디든 GDP 대비로든 탑 규모… 정말 의식주에 있어서는 대단한 민족이에요.
리: 그래서 직접 데이터를 구축하기 시작했나요?
정: 네. 로우 데이터 만들고 추천 알고리즘을 짰어요. 그래도 업계 관계자들의 평은 정말 좋았어요. 정부에서나 대기업이 해줘야 할 일을 스타트업이 하고 있으니. 하지만 정작 저희 쪽에서는 정말 고통스러운 길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익화는 커머스에 달려 있는데 이것도 규모화가 돼야 가격을 낮추거나 맛있게 할 수 있거든요. 결국, 데이터 쪽은 스타트업이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더 잘 할 수 있는 뭔가를 찾기 시작했지요.
리: 기술로 풀어나갈 길이 보이지 않던가요?
정: 시장이 올 것 같은데 좀 멀다고 생각했어요. 기술도 쉽게 되는 게 아니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특히 데이터는 오래 쌓아야 하는 일이라…
리: 매출이 아예 없었나요?
정: 네. 많지는 않았어요. 월 1천 수준…
리: 정말 별로 안 됐네요.
정: 근데 음식 쪽은 마진 생각보다 괜찮아요. 지난 번 토스토, 그러니까 카페와 블로그 에이전시처럼 운영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다른 쪽도 그렇지만 음식도 아예 작은 규모에서는 이익이 나요. 그런데 한 번 잘 돼서 키우기 시작하면, 외려 규모의 경제가 돼서 이윤을 내기 어려워져요. 그래도 클럽 베닛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어서, 영업할 때 OEM, ODM 등 다 만나봤는데… 다들 커지면 영업 이익 못 나는 구간을 강조하더라고요.
리: 결국 또 클럽 베닛처럼 돈을 끌고와야 하는 것인가요?
정: 작게 장사할 게 아니면 확실히 돈이 필요하긴 했어요. 그런데 클럽 베닛도 그렇듯 흔한 비즈니스로는 답이 없고, 프리미엄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건강에 강하게 포커스를 맞추거나 사람들이 핫하게 보는 새로운 음식 카테고리로 가야 했는데 여전히 답이 없더라고요. 답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9. 고객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은 방향 전환
리: 영업 단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정: 그래도 이쪽은 명품 쪽보다는 접촉이 쉬웠어요. 음식 쪽은 기본적으로 경쟁이 치열하고 군소 사업자가 많다 보니, 업자들이 온라인과의 접점을 원했어요. 자기들이 나머지는 책임질 테니, 온라인 쪽 연결만 해달라는 거죠. 컨텐츠나 구매전환 같은 IT업체들이 잘하는 부분들을요. 클럽 베닛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난이도는 더 높았어요. 명품에 비해서 구입 전후에 신경 쓸 게 훨씬 많았거든요.
리: 어떤 점에서 더 신경 쓸 게 많았나요?
정: 구입 전후로 해서 구입 전에는 유저들의 기대치가 기본적으로 높아요. 즉, 상품의 가격을 포함한 퀄리티가 매우 높아야 했죠. 더군다나 패션은 상품을 사놓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음식은 유통기한 등의 이슈가 있잖아요. 보관, 배송 측면에서 신선도나 고객경험을 만족시켜야 하는 게 힘들었죠.
리: 하지만 어차피 중간유통 아닌가요?
정: 네. 그런데 중간유통업자가 특화될 수 있는 시장일수록 상품 퀄리티등 차별화나, 보관을 포함한 물류 이슈의 중요성이 커지는 게… 규모의 경제를 필두로 한 쿠팡 등 전체 시장을 잠식하려는 커머스 기업과 특정 분야에 꽂히는 버티컬 커머스의 차이인 것 같아요. 음식은 가장 큰 버티컬이지만, 그만큼 상품 퀄리티와 고객만족도를 만족시키기 무척이나 힘들었죠. 이걸 한 기업에서 다 한다는 건 정말 어려웠어요.
리: 유통업이라는 점에서는 클럽 베닛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은 많이 다르군요.
정: 네. 그래도 기대를 가졌던 게… 명품 비즈니스는 생각보다 이윤이 안 높아요. 해외 브랜드 위주에 고관여 상품이다 보니 마진을 높게 잡을 수가 없거든요. 반면 음식은 훨씬 더 다양하고, 때문에 브랜드화된, 특화된 상품도 많이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식당만 해도 잘 되는 곳 보면 다 자기 브랜드가 있잖아요.
리: 정작 내놓으니 반응은 어떻던가요?
정: 저희는 젊은 층을 노리려 했는데, 의외로 건강에 관심이 많은 나이드신 분들… 50대 이상의 반응이 좋았어요. 그런데 정작 힌트는 모바일 앱이라… 아무래도 한국에서 헬스케어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건강과 음식이 고관여상품이긴 한데, 앱 사용자가 적은 50대 이상으로는 시장이 작았어요.
리: 건강과 음식이 고관여라는 게 놀랍네요. 싸잖아요?
정: 네, 이제 나라가 발전하니까 조금씩 관심이 옮겨가는 것 같아요. 단순히 영양 섭취의 관점만은 아니에요. “탈모에 좋은 음식 추천해 달라.”, “머리 좋아지는 음식 추천해달라.”, 이런 문의를 많이 받았어요.
리: 커뮤니티 기능이 있었나 봐요?
정: 커뮤니티가 없었는데도 메일로 제보를 많이 받았어요. 그때 음식 데이터의 포텐셜은 느꼈죠. 다만, 시장이 미성숙한 상태라… 기술로 이 문제를 풀려면 정말 오래 버티고 버텨야 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말씀드렸듯 한국에는 데이터가 없어서, 구축 비용이 만만하지 않아서…
리: 뭔가 데이터만 잔뜩 쌓아도 엑시트하기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 네. 사실 그러려면 그렇게 갔었겠죠. 근데 저는 이미 엑시트를 경험했잖아요? 이게 2번째 창업자들의 고집이라… 계속 가는 그런 기업에 대한 꿈 같은 게 있어서요.
리: 이제 방향을 선회할 때가 왔군요.
정: 네. 힌트는 오래 쌓는 장기적인 싸움이고 결국 기업은 BM이 필요하니, 어떻게 하면 제가 해온 버티컬 비즈니스를 정착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버티컬 비즈니스는 결국 콘텐츠 아니면 물류의 싸움이에요. 이 중에서 물류는 너무 큰 자본이 필요했죠. 결국,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게임은 콘텐츠라고 답을 낸 거죠.
리: 이번에도 클럽 베닛과 마찬가지로 시장 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인가요?
정: 아니오. 이번에는 유저들이 준 답이었어요. 힌트 유저들도 가장 많이 한 얘기가 “이 음식 어디서 구하냐?”, “레시피 정보는 왜 없냐…”와 같은 이야기였거든요.
리: 레시피 서비스는 한국에 꽤 많지 않습니까?
정: 네. 하지만 일본에서는 쿡패드라는 서비스가 음식 계의 네이버 같은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없어요. 네이버도 키친이라는 쿡패드 비슷한 서비스를 하다가 벤처상생 등의 이유로 접었고요.
리: 이유가 뭐든, 사실상 돈이 안 되어서 아닙니까? 부동산이나 윙버스처럼…
정: 네. 그런데 부동산, 윙버스, 키친, 셋 다 네이버 수준에서는 계륵이죠. 하지만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네이버 사이즈에서 건드리기 애매한 영역을 잘 키우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커머스나 여타 다른걸 붙이면 직방처럼 웬만한 규모는 될 수 있겠죠. 특히 모바일 시대에서는요.
리: 그렇죠.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경쟁자가 없는 건 시장이 없는 거다…
정: 그래서 왜 안될까… 한국은 뭐가 문제일까를 계속 조사했어요.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은 요리가 완전 양극화되어 있더라고요.
리: 어떤 양극화지요?
정: 주부분들은 기본적으로 요리 고수가 많아요. 네이버 블로그도 참고만 할 정도로 요리에 매우 익숙하시고… 정말 대한민국 5천만이 정치평론가인 것처럼, 모든 주부는 요리평론가라 할 수준… 반대로 20~30대나 남성들은 요리초보를 넘어… 요리고자에 가까운…
10. 움짤, 젊은 층에게는 필요가 아닌 필수 요소
리: 그렇네요. 제대로 양극화…
정: 네. 요리는 유독 한국적 유교문화나 바쁜 라이프 사이클 때문에, 딱 단절된 선이 보였어요. 그래서 일본을 보았더니 일본도 사실은 요리가 이렇게 대중화된 게 얼마 되지 않았더라고요. 4~5년 전에 마치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쿡방(요리 방송), 요리 만화, 예능 등을 점령하는 트렌드가 있었고, 그 뒤에 40~50대 중년남성이 쿠킹클래스에 다니는 흐름으로 이어졌어요.
리: 하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흐름이 많지요.
정: 네. 한국이 소비문화는 무섭게 일본을 따라가는 유사성이 요리 쪽에도 있다고 보았는데요. 이때 딱 한국에도 쿡방 트렌드가 터진 거죠. 아, 이때다… 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리: 결국 도저히 데이터 기반의 힌트로는 답이 없고, 좀 더 연성 콘텐츠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가요?
정: 네. 사실 그리고 길게 보면 이게 맞물려요. 힌트로 하려고 했던 데이터 축적만 해도, 우리만 데이터 쌓는 게 아니라, 유저 데이터를 함께 모아야 하거든요.
리: 데이터는 영양학적 측면이니 유저 참여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정: 레시피가 상당히 재미있는 데이터인 게… 제가 엔지니어라서, 음식을 미분한다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레시피에는 영양 외에도 다양한 데이터가 있어요. 그런데, 음식, 재료, 조리법, 난이도, 시간, 카테고리 데이터를 유저가 직접 올려주는 거죠. 시간을 내서 기꺼이! 제가 소셜 플랫폼 기획개발할 때는 꿈도 못 꾸던 유저참여도죠. 그래서 레시피 분야에서 콘텐츠를 계속 모으면 힌트에서 하고 싶었던 음식 데이터 기반 게임이 더 빨리 쉽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유저 레시피는 파워블로거 제휴로 해결했나요?
정: 처음엔 그랬었죠. 해먹남녀도 사실 작은 사업 전환이 한 번 있었어요. 4월에 처음 웹버전을 낼 때는 단순하게 블로거분들 모아서 시작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지향하는 25~35 세대, 요리고자 세대들은 모바일에 최적화된 컨텐츠, 그러니까 쉽고 재미있고… 요리 자체도 15분 내에 끝낼 수 있고, 재료도 구하기 편하고, 콘텐츠도 일상이나 수다가 아니라, 모바일스럽게 끊어지는, 그런 콘텐츠를 원하시더라고요.
리: 이것도 AB 스플릿 테스트로 나온 결과인가요?
정: 아니오. 저희 팀은 기본적으로 서비스를 출시하면, 비 인터넷 업계 유저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계속 해요.
리: 왜 인터넷 업계가 아닌, 비 인터넷 업계이지요?
정: 이미 웹과 너무 친숙하신 업계분들은 시장과 간극이 조금 있으시더라고요. 한 발 앞서 계시고, 해외사례도 아시고… 그런데 유저는 딱 반 발 앞선… 익숙한데 새로운, 그 미묘한 간극을 원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타겟으로 하는 25~35세 자취남, 워킹맘, 취미로 요리하는 젊은 여성분들을 만나봤더니 그분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알겠더라고요. 이분들이 원하는 포맷으로 콘텐츠와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국에서 쿡패드가 가능하고, 이 세대가 성숙해야 우리나라도 Eat Home 문화가 정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하지만 파워블로거 제휴 없이 콘텐츠 수량을 맞추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정: 초반에 콘텐츠 양이 무조건 중요한 건 아니라 생각해요. 이미 네이버 블로그에 수많은 레시피가 있는데, 우리 세대는 그걸 안 본다… 이게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리: 하긴 네이버 블로그 글은… 좀 뭐랄까, 이미 요리 할 줄 아는 사람들 대상이에요. 요리고자는 따라하기 힘들죠.
정: 네. 기존 블로거 독자층은 이미 요리를 할 줄 아는 분들이에요. 실제 레시피를 다 보는 게 아니라, 휙 읽고 영감만 얻는… 그래서 설명이 부실해도 되는데, 요리고자들은 글로는 몰라요. 글로 키스 배우는 느낌? 유저들 이야기 중 이 말이 가장 공감됐어요.
리: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 포맷을 내세웠나요?
정: 움짤 레시피를 첫 번째 포맷으로 내세웠죠
리: 움짤을 택한 이유는?
정: 우리 타겟 세대들로부터 재밌는 얘기를 들었는데, 자기네들은 요리를 목적성 가지고 보기 보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먹음직스러우면 충동이 일어서 요리를 하거나, 관련 상품을 찾아본대요. 처음에는 먹방에서 착안했어요. 그래서 사진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 같고, 움짤을 선택했죠.
리: 움짤이라면 주로 어떠한?
정: 먹방의 핵심… 그러니까 음식의 완성-과정 샷을 움짤로 보여줘요. 누텔라 잼을 질질 바른다거나, 삼겹살에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거나… 시각적인 충동이 일어날만한 움짤을 삽입하죠.
리: 개발 위주의 조직에서 콘텐츠 조직을 확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정: 네. 콘텐츠 팀을 확충했죠. 조리학과나, 소셜미디어에서 이미 연성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분들을 찾아서 리쿠르팅을 했죠. 여기에는 또 추가로 비용이 필요했고요.
리: 그래서 허생이 되었습니까?
정: 네. 그래서 보류해왔던 투자 기반 스타트업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클럽 베닛 때도 그랬듯, 방향 찾고 투자를 통해 가속화하는 게 제가 잘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리: 사람 뽑고 투자 유치로 들어간 건가요?
정: 네. 투자 받기 전 세팅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사람 뽑고 방향성을 정한 후,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투자유치를 진행했습니다.
리: 투자자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정: 쿡패드를 아시는 분들은 저희 방향을 매우 공감해주셨어요. 마침 푸드 테크 바람도 불 때였고요. 투자자분들도 이런 방향성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신 게 놀라웠습니다
리: 허나 한국에서 쿡패드 모델로 달려든 곳은 몽땅 망하지 않았습니까.
정: 네. 클럽 베닛 때도 같은 상황이었고 같은 말을 들었죠. 그래서 사실 이제 그런 반응은 놀랍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전 경험이 있어서 시작점이 명확했어요. 한국은 뭔가 특별한 시장이라는 것. 특히 소비시장은 GDP규모 대비 과열되어 있고, 오히려 빠른 트렌드도 있으며, 소비자 기준은 엄청 높죠.
리: 헬조선의 현명한 소비자들.
정: 네. 그래서 동일모델을 가져와도 완전 다르게 해석해야 하는 시장인 것 같아요. 그리고 트렌디하고 콘텐츠 질이 우수한 만큼, 우리나라는 이제 이런 소비자 트렌드를 맞춘 콘텐츠와 브랜드를 수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 그래서 투자유치는 성공했습니까?
정: 네. 다행히 저를 좋게 봐주고 방향성에 공감해주신 분들이 있어서 무난히 유치를 했습니다
리: 얼마입니까?
정: 아직 거액이 아니라 금액 밝힐 수는… 그냥 시드 펀딩 정도 규모입니다.
11. 두 번째 성공한 아이템에서도 힘을 발휘한 콘텐츠의 힘
리: 이제 투자금으로 콘텐츠를 강화할 때가 왔군요.
정: 네. 7월 중순에 자체 콘텐츠를 포함한 모바일 플랫폼 ‘해먹남녀’를 런칭했어요.
리: 해먹남녀의 준비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클럽 베닛은 엄청 길었잖아요.
정: 해먹남녀는 이미 힌트라는 연관 업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기도 했고… 3개월 준비해서 웹버전 런칭하고, 3개월 준비해서 새 컨셉 모바일 버전 런칭했어요.
리: 이번에는 확실히 빨랐네요.
정: 네. 스타트업을 운영한지 꽤 되다 보니, 이제 시장 흐름에 맞춰서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몸이 익은 것 같아요. 점점 느끼는 게 아무리 사업을 잘 해도 타이밍은 창업자가 어찌 할 수 없다는 사실인데… 그게 몸에 밴 것 같아요.
리: 발매 전에 콘텐츠는 충분히 영혼까지 끌어 모은 상태였나요?
정: 한달치 정도는 웹툰작가가 예비원고 준비하듯 준비해놓고 시작했었죠. 그래도 영혼까지는 아니었어요.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이제는 끝까지 준비하는 걸 초기단계에서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리: 현재 비용은 콘텐츠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건가요?
정: 일단은 그래요. 그 다음은 플랫폼이고요. 전 버티컬은 결국 콘텐츠에서 커뮤니티로, 커뮤니티에서 커머스로 나아가, 그 3가지 영역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하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버티컬 영역의 콘텐츠 충성도를 기반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를 엮어내는… 그래서 플랫폼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리: 플랫폼이라 하면 결국 해먹남녀 앱인가요?
정: 네. 결국 해먹남녀 콘텐츠를 보고 공감한 유저들이 앱에서 검색이나 추천은 물론, 나중에는 해당 음식을 보고 관련 상품을 구매하는, 그런 해결 단계까지 원하실 거라 생각해요. 쿡패드를 비롯한 많은 해외 업체들도 결국 레시피를, 푸드 콘텐츠가 필요한 오프라인 업체들을 위한 게이트웨이로 활용하며 확장하시더라고요.
리: 이를 위한 전제는 유저 확보로군요.
정: 네. 결국 충성유저가 모이면 저희는 컨텐츠와 관련 상품으로의 전환에 집중하고 오프라인 업체분들이 좋은 상품을 제공해주시는, 그런 상생이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리: 쿡패드는 유료 회원이 받쳐줘서 돌아가는데, 유료화 생각은 없었나요.
정: 네. 한국에서는 전혀… 유료 콘텐츠는 힘든 시장이니까요. 엄청 커질 때나 가능하다고 보고 있어요.
리: 사스가 헬조선. 돈은 쓰지 않는다.
정: 그래도 한국은 충동소비가 매우 잘 이뤄지는 나라에요. 그래서 간편식이나 컨텐츠에 맞춰진 스토리텔링 상품을 통해 충분히 이윤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바일 커머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리: 그건 액티브 엑스 때문에 PC 결제가 힘들어서. ㅋㅋㅋ
정: 그것도 한 요인인것 같습니다. ㅋㅋㅋ
리: 일단 내놓으니 반응은 어떻던가요?
정: 모바일 버전은 초반부터 반응이 괜찮았어요. 다만, 움짤 레시피 초반에 피키캐스트 등에서 하는 것처럼 스토리를 길게 넣어보았는데, 그건 저희 타겟군이 꺼리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나, 마지막 먹는 샷 같은 음식 본연의 콘텐츠를 더 강조하는게 좋다는 피드백이 많아서 그쪽을 강화했어요.
리: 그러니 반응이 확!
정: 네. 확실히 컨텐츠가 좋으니 앱도 쉽게 성장하고, BM고민할 단계가 아닌데도 푸드 쪽 업체분들이 좋은 제안들 많이 주고 계시고요.
리: 어떤 제안을 주던가요?
정: 다양해요. 네이티브 광고 붙이자, 동영상 광고 붙이자, 우리 식품상품 구매 붙이자, 배달 인프라 붙이자… 오프라인에서 음식 고민하시는 분들은 거의 다 한번씩 물어보신 것 같아요. 덕택에 저희는 오히려 BM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있고요.
리: 그래서 반영한 아이디어는?
정: 지금 동영상 쪽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는데, 관련해서 꼭 광고가 아니더라도 상품 연동한 컨텐츠를 여러 개 실험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동영상에서는 광고를 콘텐츠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의 전환을 실험해볼 생각입니다.
이 짧은 영상으로도 그 느낌이 전해진다
12. 비요리인구의 요리 해결을 위한 그날까지
리: 이미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는 건가요?
정: 아닙니다. 당분간은 생각이 없어요. 일단 콜라보할 수 있는 방안들만 생각하고 또 이야기해보고 있는 단계에요. 콘텐츠 기반 플랫폼과 커머스까지 가려면, 오히려 유저가 먹고 싶은, 또는 해먹고 싶은 콘텐츠들을 다양히 실험하고, 유저들도 참여하게 하는 단계가 먼저인 것 같아요
리: 그렇다면 참여는 성공적인가요?
정: 특이한 게 저희 컨셉이 요리초보-고자… 사실상 비요리 인구 대부분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희한한 커뮤니케이션 모습이 많이 보여요. 보통 요리 커뮤니티는 서로 요리를 자랑하는 경연대회 같잖아요? 그런데 실패한 요리 사진 올린다던가, 서로 위로해준다던가… 그냥 그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공감 받는 것 같아요. 여기는 나같은 고자들이 있어! 이런 컨셉이랄까요?
리: 그들간의 인터랙티브도 좀 있나 보군요.
정: 네. 서로 위로, 공감, 질답 같은 게 많아요. 곧 출시될 아이폰 버전 이후부터 더 본격화 해볼 생각입니다.
리: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군요. 해먹남녀의 가치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정: 어쩌면 쿡패드나 미국과 유럽의 레시피 문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그 유저들에게 시작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해먹남녀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지향점은… 집밥이 그립지만 낯선 요리초보-고자… 어쩌면 대다수의 젊은 비요리 인구들이 요리∙음식 컨텐츠를 통해서 자신도 먹어보고 싶다는 걸 알고, 직접 요리를 하든, 아니면 관련된 상품을 구매해서 간편하게 그 욕구를 해결하게끔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리: 비요리인구의 집밥, 요리 고민을 해결해주는 앱이다…
정: 맨날 맛이 정해진 배달음식만 먹거나, 시간과 돈은 부족한데 매번 맛집을 찾을 수는 없으니까요. 해먹남녀 보시고 직접 요리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냥 가공식품 몇개 조합해서 집밥을 드시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 그 분들에게 꼭 필요한 앱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도 할 수 있어’, ‘여기에는 나 같은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가 가득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리: 앞서 시장 타이밍은 아무리 사업을 잘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하셨는데, 트렌드는 잘 탄 것 같네요.
정: 네. 어쩌면 포스트 백주부 시대에 필요한 그런 서비스인 것 같아요. 쿡방은 지나가도 Eat Home 문화는 이제 시작인데 한국인들은 너무 바쁘고 방법을 모르니까요.
리: 그렇다면, 이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정: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더욱 다양화하는 게 일차 목표입니다. 전통적인 레시피만이 아니라 먹고 싶어지는 푸드 포르노 같은 콘텐츠라던가, 자취, 혹은 1~2인 가구의 키친 라이프를 위한 콘텐츠라던가… 이걸 다양화하고 그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 과정에서 힌트 때 꿈꾸었던 음식 사전을 유저 참여로 늘려간다면 나중에는 진짜 데이터 기반 컨텐츠 제공이나 개인화 추천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해요.
리: 대단하십니다. 저는 망했어요.
정: 저도 마찬가지에요. 모든 창업가가 그렇지만 꿈이라도 크게 가지고 현실은 두발로 부단히 매일매일 노가다 하면서 뛰어 보는거죠.
리: ……
정: ……
리: 그러면 전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정: 네. 저도 요리 콘텐츠 만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