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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2일 박근혜는 여야 대표 및 원내대표와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5자 회동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여야는 현재 가장 첨예한 현안 중 하나인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다루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교과서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국회는 경제와 민생에 집중하자면서도, 바로 그 전문가들이라 할 역사학자들이 90% 이상 좌파들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했다. 또한 국민들이 국정 교과서를 친일미화, 독재미화 교과서로 생각한다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주장에 대해, 많이 참았으니 그만하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역시 – 늘 그랬다시피 – 박근혜로부터 나왔다. 그는 현재 검정 교과서가 현대사를 못난 역사로, 남한 정부를 태어나서는 안 될 정부로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어떤 부분이 그렇게 기술되어 있느냐고 따져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전체 책을 다 보시면 그런 기운(느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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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의 검인정 역사교과서에 사실 오류와 편향성 논란이 있다고 지적하며,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자라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 편향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냐는 것이다. 하물며 그나마 가장 학식을 갖췄다 할 역사학자들을 죄다 좌편향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그 기준점은 박근혜 본인이 찍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박근혜란 기준점은 얼마나 중립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배우 오달수는 ‘암살’ ‘베테랑’ 등 출연작이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버스 운전사의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들을 좌편향시킨다”는 말을 인용해 대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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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뉴라이트 챙기기’는 비밀도 아니다. KBS 이사장 이인호는 “김구는 대한민국 공로자로 언급하는 건 맞지 않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이전에도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감동적” “낙마하면 이 나라를 떠날 때라고 느낄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역사의식 문제로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고영주는 한술 더 뜬다. 그는 공안 검사 출신으로서 부림사건을 공산주의 운동이라 주장하고 이를 변호한 문재인이 공산주의자라 확신한다는 등 매카시즘적 언행을 서슴치 않는다. 이 부림사건은 피해자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자행하여 공산주의자로 조작했던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으로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기도 하다. E.H.카의 ‘역사는 무엇인가’ 등 멀쩡한 학술서를 불온서적으로 몰아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박효종은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인사 중 하나다. 교과서포럼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5.16이 민주주의의 보루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주장했으며, 정의구현사제단을 이념의 포로라 일컫기도 했다. 그런 그가 방송 및 정보통신 – 특히 인터넷 – 심의를 담당하는 방심위 위원장에 임명됨으로써, 안 그래도 우편향을 지적받던 방심위 심의는 더 막장으로 치달았다.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위원들의 개인적인 감상을 내세워 징계를 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문창극 망언을 보도한 KBS 뉴스 9을 징계하는 등 정치적인 균형도 상실했다.
모두 역사 바로 세우기를 그토록 강조한 박근혜 정권 하에서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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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기존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를 지적하며 등장한 교학사 국사 교과서. 뚜껑을 열어보니 부실의 총체였다. 사실관계 오류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보일 정도였으며, 엔하위키, 네이버, 구글 등을 자료 출처로 제시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5.18과 5.16 등 이견이 첨예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수파의 주장에 경도되어 기술하였다.
이처럼 교학사 교과서의 부실 문제가 대두되자, 교육부는 엉뚱하게도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 뿐 아니라 당시 검정을 통과한 모든 교과서에 딴지를 걸어 수정 명령을 내린다. 자연히 교학사 교과서의 심각한 부실 문제를 희석시켜 교학사 교과서를 감싸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교학사 교과서의 부실 문제가 널리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학교는 교학사의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았으며 일부 채택한 학교도 여론의 규탄과 재학생 등의 반대에 밀려 채택을 철회하였다. 이에 보수파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폭넓은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결국 채택률 0에 가까운 참담한 성적을 냈다. 훗날 교육부는 2014년 1월 8일 이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고, 같은 날 새누리당은 역사 과목을 하나의 국정 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흐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며 등장한 우편향 교과서를 학교와 학생들이 외면하자, 우편향 교과서를 지지하던 정부와 여당이 모든 교과서를 없애버리고 스스로 교과서를 만들겠다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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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2013년 8.15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신체의 일부를 떼어가려고 한다면, 어떤 나라, 어떤 국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이런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용이야 좋은 말이지만, 문제는 그가 인용한 구절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짜 사서, ‘환단고기’의 일구라는 것이다. 타국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면서 가짜 사서를 인용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가 바로 그렇게 했다.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의 글에 따르면, 사학계는 저 구절이 한국통사(박은식, 1915)의 ‘나라는 형(形, 형상)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을 잃고 혼이 보전될 수 있겠는가’ 라는 구절을 본딴 것으로 본다고 한다. 박근혜가 이토록 역사에 조예가 없고, 그가 좌편향되었다 무시하는 사학계가 이처럼 역사에 대해 지식이 넓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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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6일, 박근혜는 뉴라이트 계열 단체 ‘교과서포럼’이 펴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판 기념회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
당시 출간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는 훗날 출간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판에 부딪쳤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식민지 시대 이뤄진 산업화 작업이 근대화의 초석이었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에 경도되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같은 시대 이뤄진 억압과 착취 등의 측면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이승만, 박정희 등 일부 지도자를 과하게 조명한 나머지 다른 지도자들과 민중의 역할을 축소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수십 군데에 이르는 사실 관계의 오류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한편, 이 대안 역사교과서의 편집진에는 역사학자가 없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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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대선 후보 당시 ‘(인혁당 사건에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는 황당무계한 발언을 했다.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인 공안 사건이자, 세계 사법 역사의 치욕으로 일컬어지는 사법 살인 사건이었던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냐 묻자 내놓은 답이다.
물론 두 가지 판결이 있긴 했다. 첫 번째는 수사기관에서 혹독한 고문을 자행하고서도 이를 은폐했으며, 사형이 선고된 지 20시간만에 형을 집행했던 바로 그 판결이다. 한국 사법 사상 최대의 오욕, 국제적으로 사법 역사 암흑의 날로 규정되었고, 판사들이 뽑은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으로 꼽히는 바로 그 판결 말이다.
그리고 재심을 통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하여 판결을 바로잡은 두 번째 판결이 있다.
박근혜는 이를 ‘두 가지 판결’이라는 말로 눙쳐버린다. 이 사건에 대한 그의 퇴행적인 인식은 여기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는 인혁당 무죄 판결 등에 대해 “나에 대한 정치공세”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의 역사관은 이토록 확고하게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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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혜는 ‘박경재의 시사토론’ 인터뷰에서, 10.26이 없었더라도 유신 통치를 자행한 박정희는 결국 국민 저항에 맞닥뜨리지 않았겠냐는 질문을 받자 이런 요지의 답변을 한다.
10년간 박정희를 왜곡 일변도로 깎아내리기만 했기에 인터뷰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실제로 국민들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악인들이에요? 왜 그렇게 저항을 하고 그래요?”
그는 유신 또한 어쩔 수 없는 결단으로 미화했으며,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 주장했다.
이런 그의 인식은 이후로도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인터뷰에서는 박정희가 “억울하게 그동안 당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벗겨드려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꽉 차있다”고 말했고, 2007년 자서전에서는 “아버지의 오명을 벗겨 드려야 한다”고 썼다.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그러나 심지어 유신조차 선의로 포장하고, 이에 저항하는 민주국가의 국민들을 악인으로 칭할 정도로 역사의식이 편향된 인물은 실로 찾기 힘들 것이다. 박근혜가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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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역사교과서의 어디가 편향되어 있냐는 질문에 “전체 책을 다 보시면 그런 기운이 온다”는 황당한 답을 했다. 역사교과서야 이미 사학에 정통한 사람들이 검증하고 검증하고 또 검증하여 만든데다가 정부의 검정 과정까지 거친 물건이니 그 편향성을 내가 또 판단할 게 있나 싶다.
의심되는 것은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박근혜다. 그렇다면 박근혜의 어디가 편향되어 있는가? “박근혜의 언행 전체를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는 훼이크고, 그의 언행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말과, 그의 행동과, 그가 쓰는 사람들, 그가 상찬하는 책들, 그가 인용한 문구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에 한 가지 희극적인 요소가 있다면, 이를 밀어붙이며 올바른 역사관을 부르짖는 정권의 압제자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역사에 대해 식견(識)이 없다(無)는 것이다. 만일 사학계의 90%가 좌편향되었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박근혜와 김무성, 작금에 이르러 국정화를 서두르는 이 정권이야말로 세상이 온통 빨갛게 보이는 극우라 말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원문: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