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땅 중국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의 인터넷국장이자 중국 인터넷언론연구센터 류정룽(劉正榮) 주임은 2009년 인민일보 사이트에서 네티즌과 가진 인터넷 대담에서 그 기준을 공개했다. 류 주임은 “음란물은 외설적인 행위를 퍼뜨리거나 사람들의 성욕을 불러일으켜 대중을 부패하게 하고 타락시키는, 예술적인 가치가 없는 글이나 사진, 음악, 영상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뭐 거의 대등소이한 반응들이다. 그런데 이 여성들 참…그렇다
중국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중국의 섹스 하면, 뭐가 떠오르시는가? 4대기서(四大奇書) 중 금병매(金甁梅)를 떠올리며, 반금련의 에로틱한 체위를 회상하신다면, 조금 나이 드신 분이시고, 소녀경을 생각하신다면 나름 이쪽 방면(?)에 조예가 있으신 분이라 하겠다. 최근에 유출된 서기의 에로틱한 동영상을 떠올리시는 독자시라면 시대와 호흡을 같이 하시는 분이라 인정해드리겠다.
여기서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간다면, 전족(纏足 : 발을 묶어 작게 만드는 것)이 섹스어필한 페티시즘의 극단이란 것도 확인 할 수 있다.
툭 까놓고 말해서 사람이 많으면, 그 안에 별별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다. 동북아 삼국의 춘화를 비교해 보면, 일반적으로 일본의 춘화가 제일 야하고 변태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실상 따지고 들어가면 중국의 춘화도가 가장 직접적이고(직접을 넘어 적나라하다), 그 내용도 충격적이다(온갖 기기묘묘한 체위가 다 등장한다). 일본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중국의 쪽수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춘화에서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할 수 있겠다.
자, 그렇다면 현대에 들어와서 포르노는 어떠할까? 과거 일본을 압도했던 중국 춘화의 명성! 동북아 최고의 방중술 이론서인 소녀경의 본고장 중국! 이런 중국에서의 포르노는 어떠했을까? 오늘의 이야기는 중국의 포르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에또…인민에, 인민에 의한…인민을 위한 중국 공산당이 되기 위해서…”
“저기, 주석님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요?”
“뭐…뭐가?”
“아뇨, 어디서 많이 들어본…미묘하게 표절의 냄새가 나는…혹시 링컨이 게티스…”
“야! 링컨은 국민이랬잖아! 나는 인민이라고 했잖아.”
“저기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people은 인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요?”
“……”
1949년 중국의 모택동이 중국공산혁명을 성공시킨다. 이때부터 중국 포르노는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게 된다.
“포르노는 서구 문화의 폭력이다!”
“포르노는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장이다!”
혁명에 성공한 중국공산당은 포르노를 공공의 적이자 사회의 악으로 규정하고, 포르노 일소를 위한 범국가적 운동을 벌이게 된다. 뭐 여기까지는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한 국가들의 기본적인 행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포르노를 권장할 만한 미덕이라고 말하지는 않지 않은가?(만약 그랬다면, 교과서에 춘화도가 실리고 수능시험에서는 각 시대별 인기체위를 구분하란 문제가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문화대혁명이 터지고, 뒤숭숭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중국포르노의 암흑기가 찾아오게 된다.
“동지, 이대로 가다간 중국은 자멸하고 말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것들이 밤에 할 일이 없으니까, 덮어놓고 애 만드는 짓만 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이웃나라 한국에서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면서 전 국가적인 인구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간 쪽박 찹니다.”
그랬다. 한국이 인구 3천만이었을 때 중국 인구는 10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막강한 인구가 중국의 힘이라 자랑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않은가? 이대로 가다간 그 인구에 짓눌려 중국 사회가 질식사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중국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게 된다. 과연 중국의 노력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잠재적인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가장 큰 요소가 인구라고 한다. 사람이 많아야 생산을 하던, 소비를 하던 할 게 아닌가? 그러나 만고불변의 진리인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중국의 인구는…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결과 불똥이 포르노로 튀게 된 것이다.
혁명 초기에는 보편타당한 사회주의 국가 잣대로 포르노를 재단한 중국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포르노를 ‘중국인민의 생존’과 결부하게 된다. 10억이 넘어가는 인구 덕분에 골머리를 썩던 중국은 강력하게 한 집에 한 명씩으로 산아제한정책을 펼친다(임신한 산모도 강제로 낙태를 시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포르노는 인민의 적을 뛰어넘어 국가적 차원의 악으로 규정하게 된다.
“포르노는 인민의 성욕을 자극시킨다!”
“멀쩡하게 잘 있던 인민도 이런 음란한 영화를 보고 나서는 벌떡 서버린다! 포르노를 방치했다간, 중국 인민은 햄스터가 되어 먹고, 싸고, 떡치는 짓만 할 것이다. 포르노를 없애버려야 한다!”
1982년부터 중국은 강력한 음란물 퇴치운동을 벌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보호와 사회 건전화를 위해서란 명분이었지만, 중국 정부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음란물 퇴치였다. 그 결과 중국은 10년 동안 21명의 업자들을 색출해 포르노 유통, 판매혐의로 사형을 시키게 된다.
“음란물을 제작, 판매, 유통시킨 이들은 공산주의의 적이며, 인민의 적이다! 이들을 방치시켰다가는 중국은 인구 때문에 자멸할 것이다. 포르노 업자들은 무조건 잡아 족쳐!”
중국 정부는 사활을 걸고, 범죄와의 전쟁…아니, 포르노와의 전쟁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포르노와의 전쟁도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저기…동지, 도저히 저희 단속인력으로는 포르노 제작 업자를 단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잘 했잖아?”
“원래, 울나라가 불법복제 하나는 끝내주지 않습니까?”
“그렇지.”
“복제속도를 못 따라가겠습니다.”
“맨 처음에 카피 뜬 놈이나, 원본을 들고 오는 애를 잡아들이면 되잖아!”
“처음엔 그랬는데, 워낙 들고 오는 애들이 많아서…걔들을 다 잡아 죽일 수는 없잖습니까?”
“죽이면 되잖아? 지금까지 잘 죽여 놓고는 왜?”
“그때는 몇 명 이었지만, 지금은 개나 소나 다 포르노를 들고 옵니다. 옛날처럼 문 걸어 잠그고 산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모택동이 죽의 장막을 펼치며, 독자노선을 걸었을 때만 해도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서구 제국주의 문화를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등소평(鄧小平)이 예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들고 나온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의 생활만 윤택하게 만든다면 된다는 실용주의 노선! 그 덕분에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게 되었고, 그 결과 서구 자본주의가 들어오게 된다. 문제는 인민을 윤택하게 만드는 자본과 기술만 들어오면 좋았겠지만, 여기에 묻어 자본주의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포르노도 덩달아 같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민을 위해선 개방을 해야 했지만, 개방을 계속 했다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버린 중국공산당! 과연 그들은 어떤 해법을 내놨을까?
등소평(鄧小平)이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들고 나오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중국의 포르노 정책! 인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개혁개방 정책을 유지해야 하지만, 서구 자본주의에 묻어 들어오는 포르노 때문에 중국의 인구정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중국정부는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떻게 막을 수 없겠냐?”
“불가능합니다. 들어오는 단위부터가 다릅니다.”
“세관검색을 강화한다거나, 유통조직을 박살낸다거나 하면…”
“예전 같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겠는데, 우리 애들이 또 불법복제에 눈을 떠버려서요. 비디오 데크 몇 대만 있으면 바로 공장이 되는 상황이라 어떻게 손 쓸 방도가 없습니다.”
단속만으로는 포르노를 규제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중국정부. 이때 중국정부 일각에서 묘한(?) 의견이 나오게 된다.
“포르노가 꼭 인구를 늘린다는 통계는 없잖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제발 머리에 생각 좀 넣고 다녀라. 빨간 거 보면, 땡기잖아? 땡기면 하고 싶고, 하다보면 싸게 되고…싸다보면 애 생기는 거 아냐!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듣냐?”
“그런 논리라면, 미국은 벌써 인구가 10억 넘었게요? 걔들 포르노 공장이잖아요? 그런데도 인구 걱정은 안하잖아요?”
“흠흠…뭐 그거야 청교도적인 생활방식에 입각해서…”
“청교도가 포르노 공장을 차립니까?”
“그래서 뭐 어쩌자고?”
“조사를 좀 해보자구요. 포르노가 직접적으로 부부생활에 영향을 끼치는지, 끼치면 어느 정도 끼치는지 뭔 통계가 있어야지 단속을 하던, 허용을 하던 할 거 아닙니까?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막자, 막지말자 하지 말구요.”
이렇게 해서 중국정부는 정부 최초로(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포르노시찰단’을 구성하게 된다. 마치 19세기 후반, 동북아 3국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시찰단을 꾸렸듯이 중국 정부는 국가의 섹스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포르노시찰단을 꾸려 해당국가(?)에 시찰을 보내기에 이른다. 이때 걸린 나라가 일본이었다.
“같은 아시아 국가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넘버 원 포르노 생산국이잖습니까? 미국 애들은 우리랑 사이즈부터가 다르니까…”
“야! 거기서 사이즈가 왜 나와?”
“아니 뭐…체형도 비슷하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제일 발랑 까진 애들이니까…괜찮은 통계가 나올 겁니다.”
이리하여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중국 포르노시찰단은 보무도 당당히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포르노…아니 AV보면, 땡기나 해? AV보고 마누라랑 한다 해?”
“미쳤스므니까?”
“에? 그게 무슨 소리나 해?”
“AV에 나오는 것처럼 하면 좋겠는데, 어떤 여자애들이 그렇게 하겠스므니까?”
“!”
당시 일본에서는 부부간의 성행위가 줄어드는 섹스리스 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었다(덕분에 인구가 줄고 있었다). 이런 섹스리스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AV의 범람이라는 것이 중국 조사단의 판단이었다. 어려서부터 AV를 손쉽게 접하게 되므로 성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나이 들수록 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면서 일상의 섹스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를 보고 받게 된 중국정부는 포르노의 묵시적인 허용을 결정하게 된다(막으려고 한다고 막을 수도 없었다).
참으로 중국인다운 접근이라 볼 수 있겠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계속되는 포르노 시청이 오히려 성에 대한 환상을 깨버린다는 판단에 의해 오늘도 중국 젊은이들은 포르노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