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의 역사라… BL의 역사를 이야기하자니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 먼 고대 그리스의 우정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 그 옛날 일본의 <준(JUNE)>이라는 잡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야마나치 오치나시 이미나시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마치 성교육 시간에 ‘자, 정자랑 난자가…’ 같은 느낌도 든다. 하위문화로서 BL이란 장르의 역사는 따로 연구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서, 나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아는 이야기 정도만 해보려 한다.
팬픽으로 문을 열어젖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단짝 친구가 팬픽이라는 걸 알려줬다. 남자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는 게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재밌다고 하길래 추천해주는 대로 읽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민셩’이 잘못한 것이다.
제목이 무슨 호스트부였는데, <오란고교 호스트부>가 2002년 연재였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면 2001년이니까 제목이 오란고교 패러디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작가분은 고등학교 호스트부를 하토리 비스코보다 먼저 생각한 분이라 하겠다.
신혜성이 김치찌개를 끓이려다가 식용유 대신 세제를 넣고 유통기한 지난 스팸에 배추김치가 아니라 깍두기를 넣고 뭔가 이상한 것을 만드는 대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2살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웃기고, 가장 야한 소설이었다.
팬픽 게시판은 이성/동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나는 동성밖에 안 읽었다. 왜냐면 친구가 이성은 안 야하고 동성은 야하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결같은 취향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성 팬픽도 조금은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접 쓸 생각은 없었다. 본격적으로 내가 창작(…)에 뛰어든 건, <원피스> 때문이었다.
<원피스>로 창작을 시작하다
어릴 때부터 동네 대여점에 드나들던 나는 대여점 아저씨의 추천으로 <원피스>를 읽었는데, 엄청 재밌었다. 2003년도쯤이니까, <원피스>가 6권까지 나왔을 때였다. 이전까지 나는 만화책을 하루에 한 권씩 빌려 온종일 한 권을 봤었는데, <원피스>는 이모에게 돈을 달라고 하여 하루에 6권까지 내달렸다.
감질나고 몸이 달아 다음에 <원피스>를 검색했다. <원피스> 팬카페가 나왔다. 거기도 팬픽 게시판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비엘 만화를 2차 창작으로 처음 접했다. (팬픽은 다 소설인 줄 알았고, 팬아트는 그림인 줄 알았다. 만화가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게 이치노미야 시한의 동인지였다. 물론 스캔본이었다. 그때는 저작권이니 하는 걸 몰랐다. 인터넷에 있는 것은 전부 그냥 공짜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대전에 살던 나는 서울의 책 도매상을 찾아가 이치노미야 시한의 <원피스> 동인지 세 권을 샀다. 그때 도매상 아저씨가 ‘하이북스는 책을 냈다 안 냈다 해서, 지금 안 사면 언제 또 나올지 몰라’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걸 가져다 친구들에게 돌렸다. 생애 첫 영업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거 같은데, 그때는 부끄러운 걸 몰랐다. 그리고 동지가 몇 명 생겼다.
슬슬 지식이 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학교, 일진, 왕따, 패싸움 같은 것들. 머릿속에 들은 온갖 것들을 조합해서 엔티카 <원피스> 카페에 올렸다. 상디랑 조로가 고등학생인데… 상디가 괴롭힘을 당하고… 조로가 구해주고… 전형적인 왕따와 일진 쌈 싸먹는, 외로운 늑대 조합에 피바람 부는,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과 그간 읽은 야오이에서 가장 흔한 클리셰만 뽑아다 날 것으로 늘어놓은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부끄럽다. 당연히 완결을 낼 이야기 실력은 없었다. 하지만 여섯 개 정도의 덧글을 받았고, 그때 이후 계속 뭔가를 써냈다.
그리고 미네쿠라 카즈야가 있었다. <최유기>는 정말 내 중학 시절을 온통 지배해버렸다. 물론 <나루토>와 <블리치>도 재밌었다. 하지만 <최유기>의 그 분위기, 그 문구들… 저팔계가 아련한 표정으로 서 있고 그 옆에 ‘신이여, 나를 벌하소서’가 놓인 그 문구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멋있을 수가… 그렇게 2차 창작을 하라고 대놓고 판을 깔아준 만화는 나에겐 <최유기>가 처음이었다.
본격적 덕질이 시작되다
중학교 1학년 여름, 나는 ‘낭만야오이’에 가입했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들어간 큰 카페였다. 2차 창작도 루비코믹스도 그때부터 본격적이었던 같다. 큰 카페니까 덧글이 많아서 글 쓰는데 신이 났다. 낭만야오이에서 파생된 카페들에서 노는 것도 재밌었다. 역극에, 정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강철의 연금술사>, <데스노트>, <은혼>이 코믹월드 부스의 반을 차지했고, 남자애들은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이야기를 했다.
맨날 촬영회 가고 길코하고 앤캐오너랑 채팅하고 펜팔하고 놀았다. 그때는 ‘앤캐오너(애인 캐릭터의 오너)’라는 말도 없었다. 지금도 캐릭터와 오너가 뒤섞이는 것을 전해 듣고는 있지만, 그때는 정말로 역극캐가 곧 자기 자신이었다. 그래서 딱히 마음도 없는 소녀와 사귀는 사이의 의무 때문에 기념일을 챙겨 택배로 선물 보내기 따위를 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축제에서 코스프레를 하고 나서, 우리 만화 동아리에 ‘노는 애들’이 가입하겠다고 우르르 찾아왔었다. 이게 보기엔 화려해도 쉬운 게 아니라고 겁을 줬더니 다 나갔다. 중요한 건 그때 코스는 뭔가 좋아보였다는 거다. 일본 예능과 연예인도 인기가 많았다. 다음카페 ‘일본TV’에서 <도모토 쿄다이>, <우타방>, <헤이헤이헤이> 같은 방송을 볼 수 있었다.
투니버스 세대보다 살짝 아래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좋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일본문화 유입이 문제라는 기사도 있었고 ‘일빠’라는 말도 있었다. 나도 같은 반 남자애한테 내가 왜 일빠가 아닌지 설명하느라 애쓴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 나 일빠다. 됐지?”하고 말아도 괜찮았을 일이었는데 말이다.
고등학교 1학년, 선생님들은 이제 고등학교 들어갔으니 각잡고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각잡고 덕질을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코믹월드 가고 종일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 모으고 키배도 뜨는 훌륭한 오덕녀로 거듭났다. 이글루스가 아직 미성년자 가입을 막아놓은 시절이었지만 나를 막지는 못했다. 눈팅 열심히 하며 망콘콘 블로그 옆에 챗방에 끼어들다 강퇴 당하고, 익명 덧글 하나 잘못 달았다가 덧덧글로 엄청 물어뜯기고, 그랬다. 나는 내가 꽤 어른인 척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가소로운 덕후였다.
암흑기, 그리고 새로운 도약
내가 즐겁게 놀던 그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작품의 수나 퀄리티면에서는 호시절이었으나, 야오이 쪽은 유명한 무슨 무슨 동들이 완전히 무너진 때였다. 지금의 동인녀들이 미성년자를 경계하듯, 그때는 신고쟁이 남덕이 무서운 재앙이었다. 남덕 일부가 동인녀들을 미워하여 야오이 커뮤니티마다 신고를 열심히 해서 전부 망하게 만든 것이다. 정부는 야오이는 동성애라고 단속하고, 남자들의 은꼴사나 성인 카페는 놔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모두 꼭꼭 숨다 보니 신규 회원도 들어오지 않고, 자료는 시간이 지나 링크가 끊어지고, 나 역시 커뮤니티에 흥미가 떨어졌다.
이후 네이버 블로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지만,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남녀공학이던 중학교를 벗어나 여고를 간 나는 만화 동아리에 들어 오프라인에서 더더욱 맘껏 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때 파던 커플링이 나인 인치 네일즈x마릴린 맨슨이라 국내 상황에는 관심이 없기도 했다. 나는 ‘팬픽션닷넷’에서 살았다. 인쇄하고 밑줄 치고 사전 찾아가며 읽다가 영어 선생님에게 걸린 적도 있다.
그리고 고1 말에서 고2 초. 나는 오만석을 알게 되고… <헤드윅>을 알게 되고… 이석준의 이야기쇼를 보게 되고.. <쓰릴미>를 알게 된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아아, 이 사람 정말 인생 말아먹는 루트가 어쩜 이리 정석인가?’ 싶을 것이다.
서울 가서 공연 보는 건 정말 엄청 큰 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엄두도 못 내던 나는 고3이라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받은 세뱃돈을 들고 서울로 갔다. 한 번 지르고 나니까 금전 감각이 사라졌다. <헤드윅>과 <쓰릴미> OST를 반복해서 들으며 공연을 복기하다 밤을 새고 해가 뜨는, 그런 고3 시절이었다. 극장 앞에 쪼그려 앉아 배우님 퇴근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런 고3…
그 때문에 친구랑 한예종에도 지원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덕질에 인생을 통째로 바치려고 했었구나 싶다.
그때는 그때의 덕질이 있을 뿐
그리고 한동안 동인질을 쉬었다. 물론 애니랑 만화는 계속 봤지만 연성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마블이 <어벤져스>를 만들어냈고… 나는 ‘하하, 그럼 그렇지, 메주가 도로 콩이 되냐…’ 하며 데비앙 아트와 텀블러, 트위터에 상주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결국 지금도 덕질에 인생을 바치고 있는 것 같다.
후죠시 문화는 곧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곧 그냥 로맨스가 될 것이고, 진짜 원작에서 다 할 거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아쉬울 건 없다. 그때는 또 그때 즐거운 덕질이 있겠지.
부끄러운 기억도 많고 흑역사라고 부를 부분도 있지만, 그건 어렸으니까 그런 거지 내가 오타쿠라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동인녀라 즐거웠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덕질의 미래
고등학생의 바쁜 시기를 대충 넘기고 이내 나도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된 나는 인터넷에서 중고로 파는 것들이나 각종 루비코믹스를 신나서 사들였다. 그리고 책상 밑에 두었던 게 가지런히 책꽂이에 꽂혀있을 때의 공포…
그때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웹에서 만화를 보고, 소장할 수 있게 된 건 길게 잡아도 불과 3, 4년 사이의 일이다. 지금이야 BL 카테고리가 따로 있는 웹툰 사이트도 많아졌고, 스마트폰 덕에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대중교통 등에서 BL을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손 안의 기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단행본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웹툰 플랫폼의 정착과 함께 이제 BL도 차츰 플랫폼화되고 있다. 처음부터 여성향을 표방하고 나온 봄툰이나 이미 작품 개수 자체가 많은 레진코믹스에는 국내 BL 작가들의 작품도 좀 있는 편이다. 그 외 여러 웹툰 서비스가 장르별 정렬을 통해 BL 작품을 서비스하고 있긴 하지만, 정리가 잘 된 곳은 의외로 드물고, 한 사이트에 있는 BL 작품의 개수도 많지는 않다.
만두코믹스처럼 아예 BL을 메인으로 밀고 있는 사이트도 있다. 다른 플랫폼에 비해 보유한 BL 작품이 많고, BL 탭을 메인에서 바로 클릭 할 수 있게 위치시켜 놓았다. B-가든에서 나온 대부분의 작품을 웹으로 볼 수 있다. 2007년도쯤 뷰티풀라이프에서 연재하던 양여진 작가님의 <소야곡>이나, 국내 작가들의 비엘 단편 모음, 최근엔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었던 아거 작가님의 <관계의 형태>도 있다.
BL을 전면에 내세우는 웹툰 사이트들이 늘어나는 것은 BL 독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비록 그 옛날 한 작품 한 작품 조심스럽게 공유하던 선덕선덕함은 없겠지만 말이다. “물밑에서 놀자”는 이 세계의 오랜 격언이었으나, 그것은 작품을 감상할 때 적절한 예의를 지키는 미덕을 발휘하자는 것이지, BL 문화가 없는 척하자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즐길 때는 즐겁게 즐기자. 그리고 무엇보다 국내 BL 작품의 수도 일본만큼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콘텐츠는 만두코믹스에서 후원한 네이티브 애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