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필자의 저서, 『구글의 달로 가는 길』 원고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사물끼리 소통이 가능하다?
모바일 다음의 기술로 회자되는 사물인터넷을 정의하자면, 사물들끼리 의사소통을 주고받으면서 ‘인간의 개입 없이’ 알아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자동화와 사물인터넷의 개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사실상 노동이 기계화된 시점부터 사물인터넷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제어실에서 작업장에 발생하는 위치, 온도, 압력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제어해 왔기 때문이다.
프레데릭 윈슬로우 테일러(1856~1915)가 제창한 작업 표준화를 살펴보자. 1914년 헨리 포드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을 적용해 시카고 하이랜드파크의 자동차 공장에 최초로 컨베이어 벨트를 적용했다. 포드는 조립 과정을 29개로 분리한 분업 체계를 도입해, 한 대의 조립 시간을 20분에서 13분대로 줄였다. 그다음, 라인의 높이를 조정해 노동자들이 허리를 굽히는 시간을 줄였다. 그러자 조립 시간은 대당 7분으로 줄었고 노동자가 좌우로 이동할 필요가 없게 된 다음부터는 5분이 되었다.
하지만 자동화가 더욱 발달하면서 인간의 노동을 표준화하려는 의미도 사라졌다. 기계와 산업용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아예 대체해 버렸고, 더 나아가 사물인터넷 기술은 이제 공장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반경에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당분간은 모바일과 사물인터넷 기술이 중첩되는 시대가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물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완전히 도래해 사물들이 정말 알아서 움직이기 전까지는 이 방법이 대세를 이룰 것이다. 많은 기업은 사물인터넷 비즈니스 분야 중 하나인 스마트홈에 집중하고 있다. 가정에는 많은 전자제품이 있고, 사람들은 그나마 가족의 물건을 사는 데에는 소비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더 발전된 IT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대신, 우리의 생활은 조금 더 편리해질 것이다. 아이러니한 문제는,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삶을 더욱 안락하게 해줄 IT 제품을 살 돈이 있는가이다.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의 출현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쏟아 내는 미래학자의 말만큼 믿기 힘든 것은 없다.
사물인터넷이 바꾸어갈 우리네 일상
사물인터넷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좀 더 가까운 일상의 이야기들을 해 보자.
알랭 드 보통의 첫 번째 에세이인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 2007년)에서 주인공인 ‘나’와 클로이는 브리티시 항공에서 출발한 보잉 767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것은 ‘내’가 계산한 확률에 따르면, 989.727분의 1에 이르는 우연이다. ‘나’는 소수점까지 계산할 정도로 그 우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의 작은 부분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원래 클로이는 10시 30분 행 에어프랑스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행 가방에 들었던 샴푸가 새는 바람에 귀중한 10분을 낭비했고, 에어프랑스 비행기를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말았다. 클로이는 10시 45분 발 런던행 비행기를 브리티시 항공에서 다시 예약했다. ‘나’도 마침 그 비행기를 타기로 예정돼 있었다. 클로이는 좌석 15A에 앉았고 ‘나’는 15B에 앉았다. 그들이 나란히 앉을 확률은 ‘나’의 계산에 따르면, 989.727분의 1이었다.
그는 클로이에게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런던에 도착한 뒤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수하물 벨트에서 가방을 기다리는 동안, 클로이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한다. 그때 클로이는 말한다.
“부탁 좀 해도 될까요? 화장실에 갔다 올 테니까… 광택 있는 녹색 손잡이가 달린 분홍색 가방이 보이면 내 것인 줄 아세요.”
클로이는 원래 가방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비행기에서도 가방에 대해 약간의 불안 증세를 보이며 없어지지도 않은 짐에 대해 ‘내 짐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라고 걱정했다.
이 작은 우연 하나가 발생할 ‘화장실 상황’이 없었다면, 주인공인 ‘나’는 클로이를 뒤로 하고 먼저 공항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숫자 몇 개를 잊어버려 런던 전화번호 책을 뒤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클로이에 대해 애달파할 일도, 사랑할 일도, 헤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때 클로이의 여행 가방이 사물인터넷 기술이 적용된 블루스마트(Bluesmart) 가방이었다면, 클로이는 그에게 그런 부탁을 했을까? 블루스마트는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를 연동해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면 원격으로 가방을 잠글 수 있다.
사물인터넷이라도 사람의 운명까진 변화시킬 수 없다
영화 <클로이>에도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의 여주인공 이름과 같은 클로이 스위니가 등장한다. 그녀는 고급 창녀로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그 욕망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던 와중에 교수 데이빗과 의사 캐서린, 그리고 클래식을 공부하는 아들 마이크 스튜어트로 구성된 상류층 가족을 만난다. 같은 여자지만 클로이는 캐서린에게 사랑을 느끼고, 캐서린은 여자 문제로 남편 데이빗을 의심한다. 캐서린은 젊고 예쁜 클로이에게 묘한 제안을 한다. 클로이에게 남편 데이빗을 유혹해 달라고 한 것이다.
클로이는 캐서린을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했고 그녀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그녀와 남편 사이를 멀어지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한다. 데이빗이 마치 자신과 섹스를 한 것처럼 캐서린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캐서린은 실수로 클로이와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를 거부한다.
클로이는 아들인 마이크에게도 접근한다. 마이크는 클로이에게 반해, 어느 날 저녁 클로이가 선물해 준 음악 CD의 곡들을 기타로 연습하는 중이었다. 그때는 클로이의 거짓말이 밝혀져 부부 사이가 회복된 날의 저녁이었다. 클로이는 집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보라는 마이크의 외침을 거부한 채 옷장에 걸린 캐서린의 옷을 보며 섹스를 한다. 그들이 캐서린의 방에서 한창 정사 중일 때, 캐서린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격렬한 다툼 끝에, 클로이는 창 밖으로 떨어져 자살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낯선 사람이 문 앞을 자꾸 서성이거나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할 때 주인의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촬영해 전송해 주는 사물인터넷 기술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날 클로이가 죽지 않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물인터넷 상품이라 해도 그것은 보완재일 뿐, 그것 자체가 운명을 바꾸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앞으로 쓰지 못하게 될 영화시나리오는 많아질 것이다
영화 <행복>에서, 은희(임수정)와 영수(황정민)는 시골 요양원인 ‘희망의 집’에서 만난다. ‘희망의 집’은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텃밭을 가꾸며 술과 담배와 인스턴트 식품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은희는 폐 기능이 40%만 남은 폐병 환자이고, 영수는 지나친 음주와 거친 도시생활 때문에 간경화를 앓고 있었다. 은희와 영수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렇게 가까워지면서 그들은 ‘희망의 집’을 떠나 시골의 빈 집에 살림을 차린다.
은희는 1년 동안 영수의 병이 완쾌될 때까지, 질경이, 엉겅퀴, 민들레, 돌미나리, 돌나물을 직접 채취해 먹이며 그를 돌본다. 하지만 영수는 이런 그녀에게 지겨움을 느끼고 서울로 떠난다.
“은희야, 너 밥 천천히 먹는 거 지겹지 않니? 난 지겨운데…. 너 그냥, 나보고 헤어지자고 하면 안 되니? 네가 좀 떠나 줘. 나 그런 얘기 못 하는 거 네가 더 잘 알잖아.”
하지만 서울로 다시 올라간 영수의 삶은 전보다 더 망가지고 건강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중 우연히 ‘희망의 집’ 원장을 만나 은희가 곧 죽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의 임종을 지키며 영수는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나 죽을 때, 자기가 옆에 있어 줘. 그러면 무섭지 않을 것 같아.”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은희에게 호흡 패턴을 분석하고 호흡 훈련까지 시켜 주며, 이상한 징후가 발생하면 위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물인터넷 제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영수 없는 그녀의 삶은 더 행복해졌을까? 영수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 은희를 내려다보는 마지막 장면은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를 떠올리게 한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중략)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중략)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러시아 혁명 전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닥터 지바고>의 엔딩 장면만큼 인상적인 라스트 신도 없을 것이다. 의사이기 이전에 시인인 유리와 라라는 시대의 운명처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헤어짐은 얼음성에서 일어난다.
유리와 라라는 그간의 삶의 행적 때문에 어차피 붙잡힐 것을 예감하고, 마지막 평화를 위해 바라키노로 떠난다. 그곳은 유리가 어릴 적에 숙모로부터 처음으로 글을 배운 곳이다. 저택은 완전히 얼어붙어 얼음성으로 변해 있지만, 책상과 서랍 속의 펜과 종이는 그대로다. 유리는 책상을 한참 동안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다.
어느 날 한밤중에 일어난 유리는 라라를 위해 시를 쓴다. 이튿날 아침 라라는 책상 위에 놓인 그 시를 보고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건 내가 아니에요.”
“아니, 당신이야.”
그들은 수완가이자 극동부 법무성 장관으로 임명된, 그리고 라라 어머니의 애인이자, 라라의 순결을 빼앗은 코마로프스키의 도움으로 러시아를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코마로프스키를 극도로 혐오하는 유리는 라라를 먼저 보내고 얼음성에 남는다.
그 뒤로 라라와 유리는 8년 동안 만나지 못한다. 8년 동안 유리는 아주 가난한 삶을 산다. 하지만 다시 우연히 만난 볼셰비키 간부인 형의 도움으로 겨우 일자리를 구한다. 그리고 첫 출근 날, 유리는 버스 창문 바깥으로 지나가는 라라를 본다. 그는 너무나 약해진 심장을 움켜쥐고 억지로 내리지만 불과 라라와 3m 떨어진 곳에서 쓰러지고 만다. 사람들은 유리 주위로 몰려들지만, 라라는 이미 모퉁이를 돌아선 뒤이다.
자, 이때 만약, 약 먹을 시간을 제때 알려 주는 사물인터넷 제품이 있었다면(지금도 실제로 있다. 안에 탑재된 센서를 통해 약 먹는 시간을 체크하고 환자에게 약 먹는 시간을 알려 준다.) 또 심장 박동수를 분석해 심장의 나이를 알려 주는 루마핏(LumaFit)이 있었다면, 라라와 유리는 과연 재회할 수 있었을까?
사물인터넷을 포함한 IT기술이 더 발전해서 보편화되면, 예전에는 쓸 수 있었던 영화 시나리오는 이제 많이 수정되거나 아예 쓰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IT기술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훨씬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몸속에 근접해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