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한다. 지옥(Hell)과 조선의 합성어. 말 그대로 이 나라가 지옥 같다는 말이다. 유사어로는 지옥불반도 등이 있다.
헬조선
디시인사이드가 만든 위키, 디시위키는 헬조선을 이렇게 요약한다.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면 빨갱이/패배자가 되는 국가. 젊은이들이 아프면 청춘이 되는 국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 부리면 안 되는 국가. 니 목숨은 니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국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너무 많이 눌러서 IMF가 왔다는 말을 정설로 믿는 국가. 3류 가설에 불과한 낙수효과를 최고 대학 교수들이 15년간 검증된 정설인 줄로 진심으로 믿고 있었던 국가…
계급은 금수저부터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똥수저로 나누어진다. 물려받은 재산, 사회적 지위 따위가 그대로 내 계급으로 굳어진다는 자조적인 의미다. 흙수저나 똥수저도 노오오오오력 – 허구한 날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세태를 그들은 ‘노오오오오력’이라는 단어로 희화화한다 – 을 통해 계층 이동을 할 수는 있다고 한다. 로또에 당첨되는 노오오오오오력을 통해서 가능하다나.
옛날에는 말이야…
젊은 세대의 이 자조적인 목소리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시리아 난민들을 보라, 저 정도는 돼야 지옥(헬)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 80년대 밥을 굶고 하루 열 몇 시간씩 주 6일을 일하던 때, 작업복이 땟국물로 범벅이 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실로 풍요로운 시대가 아닌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름이 붙는다. 꼰대.
하지만 꼰대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한국은 선진국이다. 실업률도 (의외로) 높은 편이 아니다. 빈부 격차 등 각종 지표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 하물며 부모 세대, 70년대, 80년대에 비하면 물질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풍요롭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치로 여겨졌던 커피전문점은 우후죽순 골목을 점령했다. 주 5일 근무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고, 여가를 즐길 여유도 한결 늘었다.
누군가가 이미 말한 것처럼, 이곳을 지옥이라 말하기엔 이보다 더한 지옥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헬조선은 물질적인 빈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헬조선에서는, 현실과 이상이 곳곳에서 추돌 사고를 일으킨다. 현실은 오늘날의 현실이며, 이상은 과거의 이상이다. 젊은 세대가 직시하는 현실과 윗세대가 요구하는 이상 사이의 괴리가 너무나도 크다.
청년들은 알고 있다. 이 나라의 잠재성장률은 3% 대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다시 높일 혁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도성장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윗세대는 한국 경제의 제 2의 도약을 이야기하며, 청년들에게 청년다운 도전정신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조차 학원 뺑뺑이에 시달리며 압박받는다. 스펙 경쟁, 입사 경쟁, 사내 경쟁은 어린이부터 중노년의 사회인들까지 모든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좀먹는다. 그러나 윗세대의 무리한 주문들은 ‘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어른이 되면 다 이해하게 될 거야’ 같은 말들로 포장되어 정당화된다.
착하고 정직하게 살라던 도덕 교과서의 문구는 갈 길을 잃어버렸다. 기회의 평등, 공정한 과정, 결과의 정의, 그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다.
돈은 나날이 힘이 세지더니 모든 가치를 재단하는 잣대가 되기에 이르렀다. 본인이 아무리 보람을 느끼더라도 연봉이 적으면 좋지 못한 직업을 구했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 되어야 할 결혼은 누가 집을 얼마짜리를 해 왔네, 누가 혼수를 얼마를 해 왔네 하는 말들에 물들어버린다. 오지랖들이 그리 넓다.
옛 세대의 이상, 현 세대의 현실
극한까지 사람을 몰아넣는 경쟁, 인간다움과 같은 가치의 상실, 현 세대의 현실과 옛 세대의 이상 사이의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한 정신적인 피폐는 헬조선을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옛 세대는 취업 경쟁에 지친 새 세대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눈높이를 낮춰라”. 인간다움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하루 열 몇 시간씩 주 6일을 일해왔던 옛 세대에게, 새 세대의 취업 고민은 철없는 투정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취업의 문은 실제로 좁아졌고,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가 곧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 어찌 “눈높이를 낮추라”는 게 해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한 아이돌 가수는 이렇게 노래했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그럼 난 육포가 좋으니까 육포세대?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 얼핏 우스워보이는 이 가사야말로 사실 새 세대의 심정이 아닐까. 새로운 세대는 너무 쉽게 실패를 규정당한다. 옛 세대의 이상적인 ‘정상 상태’에서 벗어난 것들은 쉬이 매도된다. 가족을 형성하고 내 집을 마련하는, 과거에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로 여겨졌던 일들이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범상치 않은 과업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언론과 어른들은 이를 ‘포기’라고 단정 짓는다.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온 옛 세대와 새로운 세대는, 결코 완전한 화해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성장의 시계는 멈춰버렸지만 여전히 고도 성장의 꿈을 꾸며, 무한경쟁이 성공을 담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오오오오력을 요구한다. 유교적 가치는 해체되고 있고, 가족과 내 집을 갖는다는 게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구하지 않는 삶은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받는다.
지옥이자 지옥이 아닌 곳
난 헬조선이 지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꼰대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리아처럼 난민 처지가 되지도 않았고, 당장 이 반도의 옛 세대처럼 인간답게 살 권리조차 잃어버리고 일에 치여 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겐 여전히 성공 신화란 이름의 목줄이 메여져 있고, 안분지족 하는 삶은 곧 실패와 포기로 규정된다. 그렇게 OECD 회원국이자 세계적인 경제 강국,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헬조선이 된다.
난 내 삶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 집을 가질 계획도 없고, 가족을 만들 계획도 없으며, 돈벌이가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술과 친구가 있고, 취미가 있고, 이를 즐길 시간이 있다. 꼰대들의 말처럼 우리는 과거에 비해 충분히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은가.
그러니, 굳이 이 땅을 헬조선으로 만들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내 멀쩡한 삶을 실패한 것으로 만들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좋은 직업이 곧 성공의 기준인 것처럼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달에 버는 돈을 삶의 질과 행복의 척도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월세집에 사는 것을 실패의 기준으로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결혼하지 않는 것을 패자의 낙인처럼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난 괜찮다. 헬조선에 살아도, 괜찮다.
원문: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