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 니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한국인을 짓누르는 트라우마가 있다. 학벌, 군대, 성차별 등등.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런 것들에는 문제가 없다고 배워 왔다.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네가 노력을 안 하기 때문이야, 남들은 괜찮은데 왜 너만 그러냐, 그렇게 해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겠냐, 일단 좀 참고 견뎌봐, 다들 참는 거 너도 좀 참아봐…
사람들은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힐링”이라는 이름의 진통제를 먹으며 견뎠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채 언제까지고 진통제만 먹으며 참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짜 치유를 위해 중요한 건, 이 사회에 반드시 손을 써야만 하는 암 덩어리가 있다는 것을 먼저 직시하는 것이다. 그래야 무조건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할 두 만화는, 우리로 하여금 곪아터진 상처와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참아내야 하는 더러운 현실 <단지>
<단지>는 연재 시작 한 달 반만에 누적 조회수 300만을 넘겨 레진코믹스 사상 최단 기간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런데 도저히 ‘인기 있는 만화다운’ 유쾌하고 재미있는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작가 본인이 만화 속에서 한 말마따나 “기분 존나 더럽”고 “좆 같은” 게 이 만화의 화자가 늘어놓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아선호적 사상을 가진 부모와 폭력적인 오빠 밑에서 자라났다. 그 속에서 받아온 온갖 무관심과 차별과 폭력이 웹툰의 형식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만화를 보는 내내 차마 계속 보기 어려운 고통이 독자에게 엄습한다. 도대체 이런 만화를 사람들은 왜 볼까 싶다.
해답은 간단하다. 이건 단지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작가는 어떤 독자로부터 “주작이네(꾸며낸 얘기네)”라는 반응을 받았다고 한다. 그 독자는 <단지>에 나오는 일들을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적도, 듣거나 본 적도 없으므로.
그러나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도 많이 존재한다. 다만 잘 이야기되지 않을 뿐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한 가정의 개인적인 문제로, 기억 저편에 묻어버릴 것을 요구받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피해자가 계속 생겨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는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건넨다. “이건 내 한풀이 만화야. 하지만… 넌 어때?”라고. 작가가 겪은 일은 분명히 작가의 개인적인 가정사지만, 동시에 이 시대 수많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혼자 참고 견디던 현실을 웹툰으로 소통하다
작가는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다는 것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깨닫는다. 자신과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위로가 됐다고 이야기한다.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상처는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작가는 독자에게 당신이 지금까지 받은 고통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리고 그 상처에 공감하고 치유에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실제 페이스북 페이지 “단지 널 사랑해”에는 단 2주만에 400건 가까운 사연이 접수됐다고 한다. <단지>의 이야기가, 어느 운 나쁜 이의 특수한 사연이 아닌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자, 함께 해결해가야 할 문제임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대목이다.
<D.P 개의 날> 개 같은 군대 속 개가 되어버린 나 자신
<단지>가 주로 여성들이 마주해왔을 폭력을 다룬다면, <D.P 개의 날>은 남성들이 경험해온 군대라는 조직의 폭력성을 폭로한다.
주인공은 군에서 탈영병을 좇는 일을 맡고 있는 안준호 상병이다. 그의 동선을 따라 독자는 온갖 탈영병의 사연을 접하게 된다. 도망갈 수도 없는 폐쇄된 사회, 피할 수 없는 주먹 앞에서 무기력했던 자신과 동기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연’들이 탈영병들 개인의 잘못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아마 탈영병들을 쫓는 주인공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그러나 이 만화는 가차없다. 폭력의 트라우마와 도피생활 중의 불안에 밤낮 시달리던 탈영병들은 결국 다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다. 반면 그들에게 고통을 준 가해자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기는커녕 아무 죄책감 없이 다시 일상을 영위한다.
안 상병은 피해자들을 구원하지 않으며, 체제를 개선하고자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체제가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적당히 기름칠할 뿐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이것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모두가 암묵적 피해자인 공간, 군대
건조한 화자의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작가가 작품 속에서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군대의 폭력은 끔찍하다. 이 모든 내용들이 그저 작가의 악랄한 상상에서 나온 픽션일 뿐이라 믿고 싶어질 정도로, 생생하고 잔인하다. 그리고 사병들은 누구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청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폭력을 감수한다.
이런 군대 내 폭력이 잘못된 일임은 간부들은 물론 심지어 가해자들조차도 잘 알고 있지만, 모순이 해소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사병들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부조리를 재생산하고, 대물림한다.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것이 또 다른 사병이라는 작품의 설정은 그런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답답하다. 억울한 마음까지 든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답답함은 만화의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그와 다르지 않은 현실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답답한 한편, 통렬한 고발에서 어떤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진짜 사나이>나 “국방일보” 기사들에 구역질을 느꼈던 사람들이 비로소 위로를 받는다.
현실을 고발하는, 그리고 함께 고민하게끔 하는 웹툰 <단지>와 <D.P 개의 날>
언제나 개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구조의 문제를 인지하고 바꿔나가는 건 어려우며,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류의 문제에 개인의 ‘노력‘ 따위가 먹힐 여지는 별로 없다. ‘단지‘처럼, ‘안준호 상병‘처럼, 거대한 문제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다.
현실은 ‘니가 참으면 돼. 그걸 왜 못 참아?’라는 말과 함께 상처를 그저 덮어두라고, 숨겨두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싸구려 힐링팔이, 진통제가 아니라 매스를 대는 일이다. <단지>와 <D.P 개의 날>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고통스러운 만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작품들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위로가 되며, 치유를 가능케 한다. ‘참아라, 니가 잘하면 된다’는 메시지에 우리는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공통의 과제를 던진다. 우리가 현실에서 목도하고, 웹툰을 통해 간접 경험한 이 구조적 모순을, 그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독자들은 언젠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독자들이 답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답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때, 비로소 근본적인 사회 차원의 치유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