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의 한 장면
한 남성이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있는데 웬 초등학생이 물총으로 장난을 친다. 장난에 기분이 나빠진 남성은 그 아이로부터 물총을 빼앗아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그곳은 배수장치에서 공기를 빼서 압력을 만드는 배기구였다. 때마침 올려놓은 물총이 떨어지면서 배기구의 스위치를 켜고, 곧 엄청난 수압으로 수영장 물을 빼내기 시작한다.
그때 남성은 자신의 동전을 튕기면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골프공이 동전을 맞추고, 동전은 수영장에 빠진다. 남성은 그 동전을 찾기 위해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집으려 했으나 배수구에 빨려가 엉덩이가 배수구에 붙는다. 엉덩이가 배수구를 막는 바람에 더욱 세진 압력으로 남성은 결국 다 빨려 들어간다.
이때 화면이 전환되면서 타인의 시점에서 본 남성의 죽음 장면이 화면에 나온다… 상황이 모두 정리(잔인한 장면 삭제…)되고 동전 하나가 배수구로부터 튕겨 나와 데굴데굴 구른다. 죽은 남성이 “행운의 동전이 있으니 난 괜찮아”라며 계속 몸에 지니고 있던 그 동전이었다. 공포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안전 의식을 고취시키는 한 장면이다.
더위에는 역시 공포 영화란 말이 있듯이 여름만 되면 수많은 무서운 영화가 영화관을 점령한다. 실제로 심리학에 따르면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 매운 것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풀어주는 효과가 있으며, 더위도 어느 정도 가시게 해준다고 한다.
여기에는 일종의 클리셰가 있다. 주인공 일행이 밀실 같은 곳에 갇히고, 통신이 두절된 채 고립된다. 무리 중에는 언제나 “난 괜찮아”라며 조심성 없이 무리를 이탈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죽는다는 것이다.
만화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도 그렇다. 주인공이 하지 말라는 것을 그들은 항상 괜찮다며 무시하고(범인은 이 안에 있어!)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며 독단적 행동을 하다가 살인범에게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한다. 다들 알지 않는가?
과신 오류의 세계
우리는 평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교육을 받는다. 언론에서도 소극적이고 섬세한 사람보다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사람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자신감이 지나치면 일을 그르치는 법이다.
경영학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을 ‘과신 오류 효과(overconfidence effect)’ 또는 ‘기만적 우월감 효과(illusory superiority effect)’라고 부른다. 조직에 있어 과신 오류는 조직원의 안정을 해치는 독과 같다.
이러한 과신 오류는 ‘과거의 영광’에만 취해 있는 사람에게서 많이 보이는 현상 중 하나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커서도 반드시 공부를 잘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잘하던데요?
과신을 연구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고 오늘날 행동경제학(Behavior Economics)의 선구자로 인정받은 미국 프린스턴대학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다음처럼 설명한다.
“사람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 미래에도 여전히 일어날 것으로 오해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건 과신에서 발생하는 오류다.”
대니얼 교수 TED 강연 ‘경험 대 기억, 그 수수께끼 같은 관계’.
주식 투자의 세계로 가면 과신 오류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스 중에는 일정 기간 투자수익률 1위를 기록한 펀드들을 소개하는 사례가 많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과거 수익률이 높았던 펀드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입을 서두른다. 하지만 이런 투자법이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과거에 수익률이 좋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많은 수익을 안겨준다는 보장은 없다. 같은 펀드매니저가 운영하는지, 기업은 과거와 운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중국 미국 경제 등 외부요인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내 돈이잖아.
과신 오류는 남녀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2014년 소셜 데이팅 업체 이츄가 ‘솔로 기간별 연애 자신감’을 주제로 미혼 남녀 2,7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31.5%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연애가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한다(읭?).
그 뒤를 이어 △1개월 내 23.3% △3개월 내 16.9% △6개월 내 16.4%의 응답률을 보이며 전체의 90%에 가까운 남녀들이 현재 솔로 생활이 6개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함을 알 수 있었다(이 설문대로라면 남녀 열에 아홉은 짝이 있어야 한다). 이를 두고 심리학자 에이미 메즐리스는 “대다수 사람은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IMF 위기 때를 떠올려 보자.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 때 불과 구제금융 며칠 전까지만 해도 최고를 자처하는 많은 경제전문가와 고위 관료가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은 튼튼해서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카너먼 교수는 “사회적으로 비관주의보다 낙관주의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불확실성보다 자신감이 더 인정받기 때문에 과신 오류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과신을 넘어 자신감으로
물론 과신 오류가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생활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확신은 꼭 필요한 요소다. 자신감이 부족하면 의욕도 사라진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 10명 중 6명이 ‘수학 포기자(수포자)’이며 초등학생 36.5%도 수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암기 위주 교육으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한 탓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과신은 오만함과 게으름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만화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피해자들이 처음부터 김전일과 코난 말을 들었다면 범인의 타깃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펀드 투자자도 운용사나 기업을 꾸준히 탐방하면서 ‘앞으로 이 펀드 수익률은 어떨까’ ‘올해는 이 기업 업황이 괜찮을까’를 계속 점검한다면 과신 오류가 벌어질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하긴 ‘나 잘난 맛에 산다’는 사람이 주위에 많이 보이고 이들이 타인의 눈치를 신경 쓰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세상은 참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래도 과유불급이란 말을 명심하도록 하자. 자신감과 허세는 한 꺼풀 차이인 것이다. 예컨대 “지금이라도 당장 쟤랑 사귈 수 있어”라는 말을 했다고 할 때, 같은 말이라도 남이 보기에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법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