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이라고 쓰고 실제로는 국책경고기관)인 KDI에서 작심하고 우리경제의 일본화를 경고하고 나섰다. 세미나도 하고 책도 냈다.책 제목은 ‘우리 경제의 역동성: 일본과의 비교를 중심으로’이다. 좋은 일이다. 뭐든 열심히하면 칭찬해줘야 한다.
일본 따라하기의 명과 암
사실 일본경제와의 비교(라는 쓰고 실제로는 따라하기)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진 일이다. 연구자들과 정책가들이 1997년까지 영어보다는 일본어로 된 책이나 보고서를 열심히 봤다는 증언도 여러 차례 들었다.
확실히 일본은 선진국이 맞다. 우리는 일본을 열심히 연구했고 따라했다. 자동차, 전자, 조선 등 산업구조도 비슷하게 만들었고 일본과 경쟁(이라기보다는 앵겨붙었다고 해야하나. 암튼)도 열심히했다. 일본을 지독히도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워하면서 닮아간다고도 해야하나.
이러니 일본 사례를 버릴 수가 없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고상한 말도 있지만 역사가 발목을 잡는다. 수출중심의 성장전략, 정부 중심의 산업전략 등은 한 때는 좋았지만 결국 덫에 빠졌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일본과 비슷하게 가는 것 같다. 형님의 발만 보고 따라 왔으니 귀결은 저성장이다.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할 시기다 온 것이다.
저성장은 불가피
그러나 까놓고 보면, 저성장은 피할 수 없다. 경제성장론에서 소득이 늘어날수록 성장률은 떨어진다. 솔로우(Solow)님의 말씀이고 학계와 재계 모두 대체로 받아들이는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회귀분석을 해도 거의 100% 그렇다. 그동안 여러 국가들에게서 관찰된 소득과 성장 데이터을 통해 분석을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 성장률 하락은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말이 된다. 조금은 기쁘지 않은가? 아니라고? 이해한다.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세대 간 갈등이 부각되고,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1인당 소득
따져볼 일이 하나 더 있다. 다들 성장률을 이야기한다. 기준은 GDP다. 1인당 소득이 아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중요한 건 1인당 소득이지 국내 전체의 생산이 아니다. 물론 GDP가 안 늘고 인구가 줄면 귀찮은 일이 생긴다. 집값도 떨어질 것이고 소아과, 산부인과 의사도 불황에 시달릴 것이다.
그렇지만 기준은 결국 1인당 소득이어야 한다. 우리가 뭐 집산주의 국가(주: 재산 자체가 공동체 전체의 소유로 여겨져 사적 소유의 개념이 매우 약한 체제)가 아닌 다음에야. 1인당 소득으로 따지면 그닥 나쁘지 않다. 아마 2030~40년에도 1% 이상은 될 것이다.
산업혁명기 영국이나 미국의 성장률은 1% 남짓이었다. 이걸 100년 하다보니 선진국이 되었다. 1%도 나쁘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도 여럿 있다. 효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저성장은 받아들어야 하지만 꼭 일본식일 이유는 없다.
일본화는 우리의 운명?
일본의 장기 불황은 부동산의 폭락, 엔화가치 상승의 의도된 장기적인 지연(인위적으로 엔화가치를 낮게 유지했다 갑작스럽게 미국한테 한 대 맞고 두 배나 뛰어 버렸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부동산가격이 올랐다가 내렸지만 일본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환율이 반토막 난 적은 있지만 위기 이후 급격하게 올랐다가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보고서들에서 언급한 엔화가치 상승의 부작용, 부동산의 폭락은 이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일본이 저성장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우리가 일본의 뒤를 따라왔으니 우리도 일본식의 저성장은 운명이고 숙명이라고만 한다. 운명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안 없는 체념 뿐이다. 그저 10년째 일본화만 반복하고 있고, 일본화는 한국의 피할 수 없는 운명론이 되었다.
할려면 제대로 연구하자. 아님 그만하고
이러다 보니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본의 재정파탄 사례를 보고 재정건전화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일본의 넘쳐나는 빈 집을 지적하면서, 당연히 우리도 여기저기 빈 집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당장 전세값이나 월세는 계속해서 뛰는데 20년 뒤 걱정을 하고 있다. 수도권의 꽉 막힌 도로나 과밀화된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20년 뒤에는 이용할 사람이 없으니 짓지 말자는 식의 결론으로 귀착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일본을 예로 들며 노동개혁 안하면 다 죽는다는 결론도 창의적으로 이끌어 낸다.
결론, 개인적으로 일본화는 공포마케팅이며, 정치적 음모로 본다. 이 수법의 근거는 삼단논리다.
우리는 일본을 닮았다.
일본은 저성장에 빠졌다.
그러니 우리도 빠진다.
우리가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일본과 다를 수 있다. 어쩌면 일본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근대화 과정이나 예술이나 과학이나 세련된 수준을 보면 일본은 큰 나라고 저력이 있는 나라다. 그 좋아하는 노벨상 수상자도 여럿이다. 진짜 결론, 이제 일본을 놓아주고 그만 좀 비교하자. 지겹지도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