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 여성의 “여성주의를 주의하라”, “여성주의는 한국에서 그 수명이 다 했다”는 주장─즉, 한국 여성들이 오직 여성이기 때문에 피해받는 일은 없다는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게 아닌 경우도 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자기편 보호를 위한 과한 행동이 전체 여성 차원에서는 마이너스로 적용되는 사례는 많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로 ‘xx맘’이라는 한 무개념 애 엄마가, 음식값 추가지불도 없이 “왜 낭낭하게 담아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며 호의를 권리로 아는 글을 온라인에 올린 적이 있다. 비난이 거세지자 그녀는 “맘들이라면 공감하실 거에요 “라는 착각 가득한 말로써, ‘육아의 고충을 모르는 사람들이 핍박하는 것’이라는 식의 피해의식 가득한 주장을 앞세웠다.
이에 다른 애 엄마들은 매우 분노하며 “아기 엄마들을 다 너 같은 무개념이랑 동급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라며 그녀의 주장에 반박했다. xx맘은 오로지 애엄마라서 욕을 먹은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일부’의 사례 또한 그렇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응당한 불이익을 ‘내가 여자라서 차별받는 거야!’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속성을 전체 여성의 속성인 양 포장하고, 동시에 거대한 프레임의 희생자를 자처하는 것은 비겁하고도 역겨운 것이 사실이다. 오로지 여성이라서가 아닌, 오로지 너의 무개념 탓인 것을.
그런 이유에서, ‘여성주의를 주의하라’는 주장의 세부적인 예시는 틀릴지언정 전체적인 논지에 동의하는 바였고, 평소 글쓴이의 다른 글들도 오랜 기간 잘 보아왔다.
여성이 겪는 문제는 단순한 노력이나 자존감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여기부터가 본론이다.
“억압과 차별을 1도 안 받아본 인생이란 게 어디 있을까. 오로지 여성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로 억압받는 일은 없었다는 의미고, 그건 대다수 여성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미에 대한 기준들, 그리고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게 하는 건 ‘여성주의’가 아니라 개개인의 ‘자존감’이다. 내가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아 시무룩한 마음이 드는 건 여성 억압 때문이 아니라 자존감 부재 때문인 것이다.”
나는 해당 글의 2편에 있는 이 대목을 읽고 엄청난 기시감을 느꼈는데, 이것이었다. 바로 수 주 전의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궜던 ‘금수저 논란’이다.
이건 마치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머리, 좋은 외모 물려받은 재벌 2세가 이렇게 외치는 것과 전적으로 유사하다.
“내 인생 30년 동안, 내가 노력해서 안 되었던 일 하나도 없더라. 그리고 대다수가 그렇다. 내가 사회 구조에 문제를 느낀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직이 힘들다고? 그건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너 개인의 자존감의 문제다. 자신감을 가져라.”
노력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러나 노오오오력만을 강조하는 이른바 ‘노력충’들이 비난받는 것은,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극소수로 치부하고, (혹은 없다고 당당히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주의자들이 제시하는 많은 문제들이 다른 사회문제와 덩쿨마냥 얽혀있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를 당당히 ‘없다’라고 단정짓고 소거하기에는 그러한 일이 적지 않다.
총론이 아닌 각론임에도 이 두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이 부분에서 글쓴이의 가치관과 약간의 선민의식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여전히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피해를 받고 있다
“여자라는 이유로 학창시절 또래 남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사례가 흔한가? 아니다.”
이 당당한 문장도 틀렸다. 서울 시내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자. (참조: 여성과 사회 복지)
남학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해 불쾌함이나 고통스러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조사대상 여학생의 47.3%에 달한다. 여학생들이 가장 많이 호소한 성희롱 유형은 신체 특정부위를 응시하는 것, 성적인 농담이나 음담패설 그리고 외모, 신체에 대한 모욕적인 언급의 순이었다.
또한 전국 4대 도시 남녀공학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보고되었다. 지난 1년간 성희롱으로 인하여 심리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은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중학교 여학생의 40.4%, 고등학교 여학생 58.5% 가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이들이 누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는가를 조사해 보면 남학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경우가 가장 많다.
15년 정도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학창시절 또래에게 성희롱으로 피해를 입은 무려 50%의 여성들을 공기취급하는 이 당당한 ‘아니다’ 세 글자에,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 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실을 이야기해 보자. 여자라는 이유로 학창시절 또래 남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사례가 흔한가? 매우 흔하다.
동시에 이것 하나로 ‘성희롱은 오직 여성이라서 얻는 디메리트가 아니라 갑을관계 혹은 사적인 무엇이다’ 라는 글쓴이의 자의적인 경험에 의한 주장은 폐기된다.
여성주의를 반박하기 전에 남자들이 생각해 봐야 할 것
많은 남성분들이 ‘여성주의를 주의하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로지 여성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로 억압 받는 일은 없었다'”는 말은, 동시에 “오로지 남성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로 억압받는 남성들”의 존재마저 부정해 버리는 발언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2015년 현재, 오로지 남성이기 때문에 억압받는 경우가 없는가? 오로지 남성이기 때문에 억압받는 경우가 우후죽순 생겨났기 때문에, 故 성재기 대표 같은 사람들이 무거운 총대를 매고 ‘남성연대’ 라는 돌파구를 찾은것이지 않나.
여성이기에 떠안아야 하는 가사노동의 책임은 확실히 잘못됐다.
그리고 ‘남자가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인식 역시 잘못됐다.
그러나 ‘그 쌍방향의 잘못됨이 있기 때문에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로 치자’라는 주장은 아무리 봐도 무리가 있다.
동시에 글쓴이의 개인 경험에 따른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 경우는 없어’ 라는 당당한 (게다가 틀린) 전제는, 많은 ‘실체가 있는’ 차별의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다.
때로는 “살아보니 ‘오로지 내가 여자라서’ 겪는 억압이니 억울함 같은 건 정말 하나도 없더라”고 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 사회가 더 이상 그런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이 그런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