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드니에 산 지 1년이 넘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보기도 했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시드니라는 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느낌이 난다. 아는 친구는 ‘시드니에서 3일만 있으면 누구나 이 곳 사람’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할 정도로 시드니를 거쳐가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이 시드니 사람(Sydneysider)들이 시드니에 가지고 있는 불평은 다들 한결 같다. 바로 거지 같은 대중교통. 시드니의 대중교통은 기차, 버스, 경전철(Light Rail), 페리 그리고 모노레일이 있다. 사실상 정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기차와 버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중 기차는 뉴사우스웨일즈 주 정부가 소유한 레일콥(RailCorp)이라는 회사의 시티레일(Cityrail)이라는 이름 하에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티레일의 악명은 호환/마마와 쌍벽을 이룰 정도이다. 오죽하면 페이스북에 시티레일의 말도 안되는 서비스에 앙심을 품은 시드니 사람들이 쉬티레일(Shittyrail)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페이스북 그룹만 5개가 넘는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시드니 어린이들은 트랙워크가 무서워요!”
시티 레일이 시드니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낙후된 시설과 2. 잊을 만 하면 나타나는 선로 보수(트랙워크;Trackwork)와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높은 이용료… 그건 아마도 거지 같은 교통. 그 완벽한 삼위일체가 바로 호주 시드니 지역에 존재하는 시티레일이다.
낙후된 시설은 그냥 타면 알 수 있다. 시티레일의 선로를 돌아다니는 차종은 다음 링크와 같은데, 출근길에 ½ 확률로 걸리는 T세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80년대에 개발된 K세트나 C세트를 타게 된다. 솔직히 의자 자체는 생각보다 승차감이 좋다. 푹신 푹신하긴 한데, 에어컨이 있는 차도 있고 없는 차도 있다는 게 함정. K세트 같은 경우 심지어는 호주에서 최초로 에어컨이 달린 기차이기도 하다. 가끔 어디에서 인가 오줌 냄새가 나는 거 같은 느낌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21세기에 아직도 종이 티켓을 사용하고 있는 시드니 시티레일의 많은 역에서는 밤 9시가 넘으면 자동으로 개찰구가 열리기도 한다. 이를 악용하여 티켓을 대충 끊고 타는 사람도 많은데, 딱히 대책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상적으로 돈 내는 사람만 호구… 어느 나라의 세금 시스템과 비슷한 거 같은 건 우연이겠지요. 아직 개찰구를 밤 9시 이후에 여는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종이 티켓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이를 처리할 인력이 주변에 없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
트랙워크. 선로의 개•보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시티레일은 이 트랙워크가 많아도 너무 많다. 2월 초를 예로 들자면, 첫 번째 주말은 Northern & North West선 중 Wynyard-Hornsby 구간 전체가 트랙워크여서 그 구간이 버스로 대치되었는데, 서울 지하철로 따지면 3호선 교대-종로3가 구간 전체를 유지•보수 하느라 버스로 그 구간을 대신한 것과 같다. 상상이나 되는가? 가장 붐비는 구간 중 하나를 주말 내내 통째로 틀어 막고 작업을 한다는 것은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 다음 주말에는 곧바로 시내(CBD) 구간 전 역에 걸쳐 트랙워크를 실시했다. 그나마 구간이 적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어쨌든 승객 입장에서는 지하 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당히 불편한 일이었다. 특히 플랫폼이 25개에 이르는 센트럴 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들 때문에 인근 교통은 아주 혼잡했었다.
이렇게 끔찍한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엄청나다. 10-20Km 거리를 이동한다고 가정해 보자.(실제 선로 상 이동 거리) 서울이면 광화문에서 서초까지의 거리이고 시드니에서는 타운홀(Town Hall)에서 채스우드(Chatswood)까지의 거리이다. 서울 지하철은 1250원(일회용 교통카드 이용시)이나 1100원(교통카드 이용시)이다. 그러나 시드니에서는 편도 4.4불(4950원)에 왕복 6.0불 (6700원)이다. 이마저도 만약 오전 9시 이전에 출근하느라 ‘피크 시간제’에 걸리면 왕복 8.8불(9890원)이다.
아무리 한국과 호주의 물가 차이가 나더라도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구식 기차에, 넓은 배차 간격 등 끔찍한 수준의 대중교통. 오죽하면 화가 난 시드니 사람들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각종 SNS를 망라해 Shittyrail이라는 시티레일 패러디 사이트들을 운영하며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http://www.shityrail.info/ 참조)
탑승객의 귀를 고려하지 않은 차내방송은 덤.
그 외에 시드니 사람들이 겪은 끔찍한 일들은 말로 다할 수가 없다. 1월 중반 40도가 넘는 폭염에 선로가 과다하게 팽창하여 열차가 다닐 수 없어 50분이나 열차 이용이 지연되어 지하에 위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에어컨 장치가 없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차를 기다렸던 이야기도 있고, 글쓴이가 글을 쓰는 시점에서 겪은 일 또한 황당하다.
오늘 퇴근이 좀 늦어 오후 5시 40분에 퇴근하여 밀슨즈 포인트(Milsons Point)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전광판의 ‘7분 후 도착’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역내 방송으로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시드니의 한인타운)에서 화재 경보가 울려 열차들이 다 밀렸다고 안내가 나왔다. 화재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화재 경보가 20Km 가까이 떨어진 역에서 울렸다고 기차가 밀리다니 아아 너란 기차 참으로 민감한 기차.. 그리고 계속 기다리다가 마침내 6시 20분에 기차에 올랐다. 그것도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들어선 기차를…
여러모로 따져볼 때 가카께서 서울시장으로 부임했을 때 한 일 중 가장 위대한 일은, 자타가 공인하듯 서울시를 하느님에게 봉헌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위대한 일을 꼽자면 아무래도 서울 버스 개혁에 있겠다. 가카께서는 2004년 7월 1일부터 재빠르게 새로운 버스 시스템을 시행하여 지하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서울 시민들이 환승 서비스로 쉽사리 접근할 수 있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버스를 운행 거리로 구분하여 이에 따라 색(GRYB.. 지랄옘병이 아니라 Green, Red, Yellow and Blue다)을 입혀 쉽게 이해가 가도록 만든 것도 여러 특징 중 하나.
가카께서 이제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이 때에, 지구 반대편에서 그의 업적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