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주 요리를 합니다. 요리 시작한 지는 벌써 3년이 됐는데, 심한 아토피로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는 큰딸아이가 계기였습니다.
최근에 요리를 주제로 하는 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져나오고, 관심을 갖는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아 오늘은 요리를 하면서 깨닫게 된 몇 가지 교훈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1. 처음 하는 요리는 레시피에 충실합니다.
요리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처음 접하는 요리를 레시피 없이 하는 건 천부적인 재능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레시피를 충실히 따라야 하는데 이게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해보고 싶고, 먹어 보고 싶은 요리를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면, 귀찮고 번거로운 레시피에 충실해야 기대했던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창작은 나중에.
2. 좋은 재료를 사용하세요.
맛좋은 요리를 만들고 싶다면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같은 요리라도 재료가 신선하지 않다면 기대했던 맛을 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요리가 가지고 있는 본연을 맛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좋은 식재료는 그 자체가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3. 꼭 필요한 재료가 없다면 비슷한 재료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스페인 요리인 파에야를 만들 때의 일입니다. 정식으로 만들려면 제대로 된 풍미를 내기 위해 ‘샤프란’이라는 향신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구매하기도 어렵고 찾기도 어렵습니다.
당연히 제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대체한 재료가 ‘강황’이었습니다. 완성된 파에야의 색감은 짙은 노랑에 가까운데, 강황을 넣었더니 색감은 물론 풍미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성공이었죠.
한 번은 카레라이스를 하는데 육류(돼지, 닭 등)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감자, 당근, 양파만을 넣고 조리했는데 고기가 들어간 것보다 더 맛있는 카레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혹은 비슷한 거로 요리를 해봅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말이죠.
4. 날로 먹으려면 깨끗이 씻어 먹고, 익혀 먹으려면 충분히 익혀야 합니다.
날로 먹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회 같은 음식 말고도 샐러드 역시 날로 먹는 게 좋은데 영양소 파괴가 최소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통 편하게 먹기 위해 채소를 칼로 잘라 넣는데, 이 방법보다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후 손으로 툭툭 잘라 넣는 게 훨씬 좋습니다.
반대로 익혀 먹는 음식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익혀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스테이크의 익힘 정도를 제외하면 불을 써서 익히는 음식은 덜 익혔을 경우 식감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처음 요리를 하는 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만큼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5. 요리의 끝은 설거지입니다.
많은 남자분들이 모처럼 호기롭게 요리를 해준다고 하면서 조리에 집중한 나머지 주방을 정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지럽혀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아내분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남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편할 수도 있습니다. 요리의 마무리는 설거지입니다.
모든 요리를 먹고 난 식기들을 깨끗이 닦아 정리하고, 가스레인지 주변에 묻은 조리물들을 깨끗한 행주로 닦아내고, 마지막으로 싱크대 주변에 튀어있는 물 한 방울까지 싹 닦아내야 요리가 끝납니다.
모든 일은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6. 센불, 중불, 약불을 사용하세요.
성격이 급한 분들은 빨리 익히기 위해 무조건 센불에 조리를 합니다. 요리는 식재료의 성격과 요리의 성격에 따라 불의 사용을 달리합니다.
예를 들면 그렇게 쉬워 보이는 김치볶음의 경우 센불에 조리하게 되면 대부분 타버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치볶음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중불에서 약불로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조리해야 어머니의 맛이 나옵니다.
중국 요리의 경우 ‘웍’이라는 한 가지 조리도구를 사용하고, 불의 세기도 한 가지입니다. 이때 요리사들은 웍의 높이로 불의 세기를 조절합니다. 센불이 필요할 때는 웍을 낮게, 중불은 중간에서, 약불은 불의 끝에서 조리합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초보자가 해도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당연히 숙련자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죠. 이 순서가 바뀌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7. 조리하기 쉬운 음식부터 도전하세요.
처음부터 듣도 보도 못한 어려운 음식에 도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결과적으로 흥미도 잃을 뿐 아니라 요리에 대한 자신감도 상실하게 됩니다. 손에 잡히는 열매를 먼저 따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8.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봐야 합니다.
코끼리 얘기를 듣고 코끼리를 그리는 것은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실물의 코끼리와 같을 수 없습니다.
먹어 본 요리는 맛을 알 수 있으니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요리를 잘하고 싶다면 맛난 음식을 많이 경험해 보세요.
9. 식재료의 투입은 순서대로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음식인데 순서가 뭐가 중요한가 하겠지만, 식재료 투입순서를 지키는 것은 만들고자 하는 요리 본연의 식감과 풍미를 풍부하게 해줍니다. 순서를 지키는 일은 완성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0. 적은 양부터 시작하세요.
많은 양의 요리는 들어가는 식재료의 양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고, 간을 맞추는 일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에 비해 2~4인분 정도의 요리는 식재료나 양념 등의 양을 조절하기 쉽고, 간을 맞추는 일도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습니다.
11. 플레이팅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조리된 음식을 담아내는 과정입니다.
지난해 일본에 갔을 때 대형 도자기 그릇을 사서 들고 온 적이 있습니다. 요리를 담아내려고 한 건데, 요리는 어떤 그릇에 담아내느냐에 따라서 그 맛이 달라지기도 하고 식욕을 자극하거나 저하시키기도 합니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습니다.
큰 그릇에 조금만 담아 보세요. 괜히 그럴싸합니다.
원문: 아빠는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