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 그리고 우주전함 야마토
우주전함 야마토(大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우선 실제 모델이 된 전함 야마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리고 이 야마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해군휴일 Naval Holiday : 군축조약이 발휘된 1922년 8월 17일부터 15년간의 기간을 말함>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좀 복잡하다. 그럼에도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히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경우에는 국제정치학을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고, 조금만 찾아보면 이와 관련된 논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바닥에서는 ‘꽤’ 유명한 이름이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뭘까?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가 각자 5 : 5 : 3 : 1.75 : 1.75의 비율로 전력을 유지하게 만든 조약이다. 이 조약의 필요성이 대두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우선은 당시 상황을 살펴봐야겠는데,
첫째, 당시 미국과 영국과 같은 패권 국가들은 ‘해군’의 전함 군비경쟁에 뛰어든 상태였다. 이들은 해군력이 곧 그 나라의 패권을 장악한다고 믿고 있었다(문제는 전함 한척을 건조하는 것이 엄청나게 돈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여론은 ‘군축’으로 돌아섰다.
셋째, 1차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건함경쟁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의 확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해군 군축조약을 제안했고, 영국은 희희낙락 웃으며 달려왔으며, 일본도 끄덕거리며 조약테이블에 앉았다. 당시 미국과 영국, 일본은 모두다 이 엄청난 ‘건함’ 비용 때문에 골치를 썪던 상황이었다. 영국의 경우는 1차 세계대전 직후 피폐해진 재정상태에서 자칫 이제까지 유지해 오던 세계 1위의 해군력 확보란 대원칙이 무너질 상황이었다(영국의 기본적인 전략은 세계 2위와 3위 해군력을 가진 국가가 동시에 공격해 와도 이에 맞서 싸울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바로 미국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빈슨플랜’을 시작으로 16인치급(함포) 전함 6척, 순양전함 6척 등을 건조해 1925년까지 전함 32척, 순양전함 16척, 중순양함 48척으로 구성한 대 함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2위의 해군력을 자랑하던 미국이 이제 영국을 추월할 상황인 것이다. 예전의 영국이라면, 이에 맞서 건함 경쟁에 뛰어들 상황이었겠지만, 1차 대전 직후 영국의 상황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영국은 워싱턴 군축조약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전함 ‘무츠’다. 해군 군축조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녀석이다. 군축조약에 의하면, 군축조약회의가 개최되던 시점에서 미완성인 전함은 폐기대상이었다. 때마침 무츠는 한참 건조중이었는데, 이걸 그대로 완성시키고픈 일본해군은 의장 공사를 뒤로 미룬 상태에서 바로 공사를 서둘러 1921년 10월에 준공, 인도를 했다. 영국 시찰단을 속이기 위해 해군병원에 있던 입원환자를 함내 의무실에 이송하는 ‘쇼’까지 하면서 완성시켰다. 이 덕분에 40센치급 전함을 2척 보유하게 된 일본(나가토와 나가토급 2번함 무츠)덕분에 군축조약은 다시 조정 돼 미국은 건조 중에 있던 콜로라도급 2척을 추가 건조할 수 있었고, 영국은 전함 2척을 더 건조할 수 있게 됐다(후에 ‘넬슨’급이라는 이상하게 생겨먹은 전함이 탄생하게 된다). 일본으로서는 어쩌면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907년 일본이 내놓은 국방방침에 따르면, 동양에 존재하는 가상적국의 세력에 대한 공세 확보를 위해 항상 최신예 1개 함대를 유지해야 한다고 선언하게 된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20,000톤급 전함 8척과 18,000톤급 순양전함 8척으로 구성된 88함대의 구성이었다. 그러나 뇌물 스캔들과 예산상의 문제로 88함대는 단계적인 추진으로 전환 됐고, 84함대, 86함대를 거쳐 1920년이 돼서야 겨우 88함대의 예산이 책정되게 된다.
배가 비싸봐야 얼마나 하겠어?
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당시 전함의 건함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20세기 초 일본 문학이나 글을 보면, 이 건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백성들은 굶어죽는데도 쓰잘데기 없는 전함이나 만들어낸다며 한탄하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도 그럴것이 1921년 일본 해군예산이 국가세출의 32%를 차지하고 있었다. 육군과 해군을 합친 예산이 아니고, 해군 단독의 예산이 말이다. 이 상태로 조금만 더 지났다간 일본이란 나라의 재정은 파탄이 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일본도 이 군축조약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일본 국민과 일본 해군(그 중에서 ‘함대파’…일본 해군은 다시 함대파와 지휘파로 나눈다. 일본군의 파벌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리겠다)은,
대미 7할론
을 내세우게 된다. 즉, 미국 전력의 70% 전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그러나 협상 결과는 5 : 3으로 70%가 안 되게 된다. 이후 일본은 가상적국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돌렸다. 이건 좀 미묘한데, 당시 회의과정에서 미국과 영국의 고압적인 자세와 협상태도는 일본국민과 함대파 내부의 반감을 불러일으켰고(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이후 일본 국방방침의 2차 개정 때 당시 해군대신이었던 가토의 생각과는 달리 러시아 대신 미국이 제1의 가상적국이 된다. 어쩌면, 제2차 대전 태평양 전선은 이때부터 형성됐는지 모르겠다.
이 군축조약의 과정은 생략하기로 하자, 그 결과만 보자면
<1장>
1조 주력함의 건함 중지를 5년 연기한다(1936년까지)
2조 주력함 보유는 미영 각 15척, 일본 9척을 원칙으로 하여 그 외의 주력함은 폐기한다.
3조 워싱턴 조약에서 제외 된 1만 톤 이하의 항공모함을 군비제한의 범위에 넣는다.
(※ 이 다음 조항은 생략)
문제는 이 다음인데, 이 조약의 진정한 승리자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미국 해군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로 멈춰 세우는데 성공하게 된다(2위로 밀려날 뻔 했다가, 공동 1위로 1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미국 역시 재정적인 안정을 확보하고, 형제국(?!)인 영국과 함께 패권을 말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일본이었는데, 당시 군축조약 과정상의 문제(정서적인 반감) 때문에 영국과 미국에 대한 상당한 반감을 가지게 된다. 대미 전력의 최저선이라고 상정했던 ‘대미 7할론’이 무너지면서 이후 일본의 전쟁방향이 결정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재정적인 안정을 찾게 된다.
(이후 각국은 신형함을 건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 전함을 개장하는 것으로 전력 확보에 들어간다. 일본의 경우 워싱턴 군축조약 이후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한 기동함대 건설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이 기동함대로…진주만을 박살낸다)
야마토의 등장과 퇴장
1937년 해군 군축조약이 파기되면서 일본은 신예함 건조에 들어가게 된다. 구레 해군 공창에서 20년 만에 신형 전함이 건조에 들어선 것이다. 이때 일본의 건조사상은 간단했다.
우리가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양적인 승부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1척의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질로써 승부를 보자!!
라고 생각하게 된다(일본은 다른 나라의 동급 전함보다 전통적으로 함포의 사이즈를 한 단계 더 크게 만드는 걸 전통으로 하고 있었다). 기준 배수량 64,000톤(2차대전 이후 미국의 슈퍼캐리어가 나오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다)과 46센치미터 함포는 이렇게 나온 것이다. 일각에서는 거함거포주의(전함의 포격으로 해전을 끝낸다는) 신화가 무너졌는데도 야마토와 같은 ‘괴물’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 일본 해군을 비난하는데, 아니다. 야마토와 무사시는 대전 전에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3번함은 항공모함으로 개조됐지만, 시험항해도중 미국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격침됐다).
이미 만들어진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리고 야마토의 경우는 연합함대의 기함으로 야마모토 사령관의 기함으로 사용됐다. 뭐 이 정도면 나름 이해할 만하지 않은가? (반대로 미국은 기동함대에 당한 뒤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한 기동함대를 꾸리면서도 아이오와급 같은 전함들을 계속 찍어냈다. 거함거포주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건 어쩌면 미국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워낙 자원이 풍부해서 항공모함 뽑는 김에 전함도 같이 뽑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값이면, 항공모함이 좋지만 이미 100여척 넘게 항공모함을 찍어내고, 개조했는데…남는 자원으로 전함 몇 척 더 뽑는다고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역시 물량에서는 미국을 따라갈 수는 없다)
문제는 당시 해전의 양상은 전함의 거포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항공기에 탑재된 어뢰와 폭탄으로 공격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진주만 공습과 영국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격침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항공모함의 호위 혹은, 제공권의 확보 없이 단독으로 항행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야마토는 1944년 10월 레이테 상륙부대를 격퇴하기 위해 출항했다가 항모 함재기의 공격에 폭탄 2발을 맞고 돌아오게 된다. <남자들의 야마토>를 보면 이 장면이 잘 묘사돼 있다. 이때 눈여겨봐야 할 것이 주인공들이 전부 다 대공포에 메달려 있는 모습이다. 왜? 야마토가 자랑하던 46센치 주포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기껏해야 삼식탄(森植彈 : 1941년 일본에서 개발한 대공용 소이 유산탄으로 보면 된다. 대공용으로 사용하는 것 보다 지상포격, 특히나 비행장 포격등에 더 유용하게 사용됐다)을 발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삼식탄은 <우주전함 야마토 2199>에서 실체탄 형태로 등장한다.
이후 1945년 4월 7일 제2함대의 기함으로 오키나와로 수상특공 작전에 출격했다가(특공이다 특공! 오키나와로 갈 수 있는 편도 연료밖에 지급받지 못했고, 상륙하면 수병들이 돌격을 하는 것이다) 300여대의 미국 함재기에 걸려 그대로 격침되게 된다. 당시 야마토는 미군의 정기적인 감시를 받았고(항공정찰), 4월 7일 출격 후 바로 미 잠수함에게 포착됐다. 그 다음은…끝이었다. 항공기의 엄호 없이 맨몸으로 달려가던 야마토는 총 3차례의 미 함재기의 공습으로 10발 이상의 어뢰를 맞게 된다. 당시의 공격 상황은,
제1파 1945년 4월 7일 12시 10분 1파 공격대. 폭탄 2발, 어뢰 1발 피격
제2파 1945년 4월 7일 13시 22분 2파 공격대. 폭탄 3발, 어뢰 5발 명중
제3파 1945년 4월 7일 14시 00분 3파 공격대. 폭탄 3발, 어뢰 4발 피격
일본이 자랑하던 불침항모 야마토는 그렇게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격침되게 된다. 야마토의 격침은 일본 연합함대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태평양전쟁의 패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일본인으로서는 총격 그 자체였다.
1970년대 일본 경제와 <우주전함 야마토>
전후 일본을 상징하는 만화는 아톰(‘우주소년 아톰’)이었다.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가 실의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그린 이 작품은 ‘일본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준 작품이다. 작은 몸에 10만마력의 힘을 지니고(나중에 100만 마력으로 올라간다!), 기관총과 레이저 광선, 1천배의 청력과 제트 분사 노즐을 지닌 이 소년은 일본을 상징했다. 나중에 거대 로봇과의 혈전에서는 작은 로봇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커다란 몸체가 돼 이 거대로봇과 싸우게 된다(일본인 개개인은 약하지만, 일본으로 뭉치면 못할 게 없다는…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비약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일본스러운 만화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일본은 그렇게 똘똘 뭉쳐 50년대를 넘겼고(한국전쟁의 덕분으로), 이후 고도성장기에 들어가게 된다(이 당시 연평균 10%를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보인다). 1960년대는 안보투쟁과 전공투 등등으로 불안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도쿄올림픽을 개최했고, OECD에 가입하게 된다. 이제 일본은 전후 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1970년대가 열리게 된다. 물론, 두 차례의 오일쇼크가 있었지만, 이는 일본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일본차의 연비가 알려지면서 일본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일본의 수출이 다시 늘어났다). 이때 일본은 대세를 탔고, 그 반대로 미국은 심각한 경제불황에 빠져들게 된다(이것이 이후 플라자합의로 이어지게 된다. 이 합의로 일본은 이후…X돼 버린다).
이 당시 일본인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바로 <우주전함 야마토>이다. 1974년 일본 요미우리 TV방송에서 방영한 이 작품은 이후 <우주전함 야마토 2>, <우주전함 야마토 3>로 이어지고, 각종 만화, 극장판, 실사 영화, 소설로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당시 일본상황을 살펴보면, <우주전함 야마토>가 보여준 메타포는…일본인의 자신감을 보여줬다(오리지널 버전에서 보면, 2차 대전 당시 야마토가 격침된 장면을 보여준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한눈에 봐도 ‘서양인’으로 보이는 가밀라스 성인(그 중에 데스라총통)과 맞서 싸운다.
둘째, 태평양 전쟁 말기의 일본처럼 유성폭탄으로 황폐화 된 지구
셋째, 이 지구의 마지막 희망이 된 ‘야마토’가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우주로 치고 올라간다!
넷째, 야마토 정신이 서구의 물질문명과 맞서 싸워 이긴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졌지만, 우주세기에서는 야마토 정신이 이긴다!!
다섯째, ‘파동포’의 경우는 유달리 ‘필살기’를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특성이 녹아들어가 있다(주목해야 할 건, 우주전함 야마토에는 유달리 ‘특공’이 많이 등장한다).
70년대 고도성장기를 배경으로 일본의 자신감을 보여준 작품이 바로 <우주전함 야마토>이다. 이걸 한국에서는 <우주전함 V>란 이름으로 1981년 수입을 했고, 미국도 <Star Blazer>란 이름으로 수입하여 방영했던 것이다(뭐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하진 않는다. 그냥 재미있으면 좋은 거지…어린시절 AFKN에서 방영했던 마크로스와 야마토를 보던 기억이 난다).
2000년대 새로운 야마토의 등장
이 녀석이다. <우주전함 야마토 2199> 코스모 제로 52형, 블랙 타이거, 삼식탄, 파동포, 쇼크캐논…정신없이 날아오는데, 나름 재밌다!! 현재 10화까지 정주행으로 달렸다. 정말…최근에 나온 작품 중에 퀄리티 하나는 최고다!!
실사판 야마토의 등장과 새로이 시작된 TV시리즈 <우주전함 야마토 2199>를 보면서 묘한 감흥을 느끼게 됐다. 일본 경제의 불황, 이어진 쓰나미 등등으로 우중충한 상황에서 또다시 등장한 야마토 시리즈!! 물론, 원작인 야마토가 워낙 ‘튼실한’ 팬층과 확실한 스토리 라인을 가졌기에 원작을 리메이크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 야마토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그 놈의 야마토 정신이 뭘까?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라고? 아니면 말도 안되는 임나일본부설을 말하던 그 야마토를?).
장기적인 경제불황과 우경화 앞에서 또다시 야마토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70년대의 야마토는 자신감의 산물이었다면, 2000년대 야마토의 경우는 과거로의 회귀를 위한 ‘우회적인 우경화’의 첨병이 아닐까란…정말 삐딱한 시선을 말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2차 세계대전 당시 구 일본군의 전함명들이 나오고,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생긴 가밀라스 성인들(양놈들)을 향해 파동포를 쏘아 제끼며, 지구의(일본의) 희망을 위해 달려가는 야마토를 보면…뭔가 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내 개인적인 판단이고,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야마토>란 전함이 의미하는 ‘가치’는 이제껏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이미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던가? <남자들의 야마토>에서 보여준 그 우경화의 극단을 보면, 기무라 타쿠야가 나온 실사판 야마토와 이후 등장한 <우주전함 야마토 2199>의 방영시점은 미묘하다 하겠다. 그럼에도 재밌다는 게 문제다. 상업적으로 TV판 26화만 내보내고, 이후에 극장판으로만 상영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는데(주 시청 층의 구매패턴을 고려한 선택이란다), 모르겠다.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그냥 생각없이 보면, 정말 ‘고 퀄리티’의 꽤 재미있는 만화지만,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으니 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스로 ‘동양의 신비’라 말했던 제로 전투기가 <코스모 제로 52형 : 미쯔비시 제로 전투기 52형이 실제로 존재했었다>이란 이름으로 등장했고, 그 엔진부는 영락없는 제로전투기의 카울링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들이 자랑하던 삼식탄이 애니메이션 여기저기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고, 2차 대전 당시 구 일본군 전함의 이름이 당당하게 나오는 애니메이션…정말 의미부여를 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우주전함 야마토 2199>이다. 이럴 땐…정말 아는 게 죄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우주전함’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일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