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공백을 깨고 아이돌 걸그룹이 컴백 선언을 하면 삼촌 팬들의 마음은 콩닥콩닥 설레기 마련이다.
보통 컴백 시기가 다가오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1차 티저, 2차 티저가 공개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유튜브와 TV 프로그램을 통해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 온라인 커뮤니티는 해당 걸그룹에 대한 얘기로 들끓는다.
이런 가운데, 7월 20일 걸그룹 스텔라가 신곡 <떨려요>를 들고 컴백했다.
스텔라는 앞서 공개한 티저에서 재킷 속 끈팬티 의상으로 세간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몸에 밀착되는 강렬한 레드 컬러의 치파오를 입고, 엉덩이와 다리 사이 부분을 과감히 노출했으며, 블랙 티팬티의 허리끈이 보이는 노출을 선보였다.[1]
스텔라가 누군지 잘 모른다고? 2014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마리오네트> 뮤직비디오 논란이라면 어렴풋이나마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스텔라는 지난 2011년 데뷔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14년 <마리오네트> 때 강도 높은 하이레그 레오타드와 팬티스타킹 의상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면서 선정성 논란을 크게 불러일으킨 바 있다.
알다시피 걸그룹 중 스텔라만 섹시컨셉을 표방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씨스타·AOA·소녀시대·걸스데이 등 쟁쟁한 그룹도 이번에 컴백하면서 여름 분위기에 맞춰 짧고 트인 옷으로 맵시를 꾸몄다.
걸그룹 노출의 속사정
생각해보면 10년 전만 해도 걸그룹의 노출이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채연·아이비·이효리 등 섹시컨셉의 여가수들이 크게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처럼 선정성 논란이 세진 않았다. 굳이 군사정권 시대인 1980년대까지 가지 않아도 말이다.
왜 해가 지날수록 걸그룹들의 노출과 선정성 경쟁은 격화될까? 브랜드 이론에서 해답을 살펴볼 수 있다. 경영학 마케팅의 꽃이라 불리는 ‘브랜드 이론’을 맛보면서 이를 살펴보자.
브랜드 자산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브랜드’는 정확히 말하면 ‘브랜드 자산(brand equity)’을 의미한다. 브랜드 자산은 가격, 시장점유율, 수익성뿐 아니라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가를 통칭하는 용어다. 그리고 기업에게 심리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주는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기도 하다.
학문적으로 브랜드 자산은 ‘브랜드 인지도(brand awareness)‘와 ‘브랜드 연상(brand association)‘이라는 두 요소로 이뤄져 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우리도 어떤 걸그룹을 논할 때 ‘얼마나 유명한가’, ‘어떤 느낌이 드는가’를 동시에 말하지 않나. 그걸 분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떠올라야” 브랜드 인지도
먼저 브랜드 인지도는 브랜드를 식별할 수 있는 소비자 능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상표가 알려진 정도’이다.
브랜드 인지도는 상품구매결정과정(인지-태도-구매)의 첫 단계로 보는데, 높은 브랜드 인지도는 소비자의 친밀감을 불러일으키고 정보 탐색관계에서 ‘고려상표군(consideration set)’에 들어가는 역할을 한다.
만약 코카콜라처럼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제품이 있다면? 바로 구매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브랜드 인지도 피라미드’다. 이거 시험에 잘 나옴.
브랜드 인지도 피라미드는
‘최초 상기(Top of Mind)
→비보조 상기(Brand Recall)
→보조인지(Brand Recongnition)
→무인지(Unaware of Brand)’ 단계를 따른다.
최초상기로부터 쭉 나갈수록 브랜드 인지도가 약해지는 단계다.
걸그룹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걸그룹’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걸그룹이 있다면 그것이 ‘최초 상기’ 상태다.
그리고 생각을 가다듬어 현재 생각나는 걸그룹 이름들을 얘기할 수 있다면 바로 ‘비보조 상기’ 상태다. 하지만 모든 걸그룹을 말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걸그룹 이름을 나열할 때 스텔라 이름을 대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태에서 만약 누군가 “스텔라 알아요?”라고 물었는데 “아 네, 알죠”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이 ‘보조 상기’ 상태다.
‘무인지’는 아예 모르는 상태다.
기자의 경우, 최초 상기는 요즘 다시 꽂힌 ‘씨스타’요, 비보조 상기는 EXID, 걸스데이, AOA, 에이핑크, 소녀시대, 스텔라 등이다.
“우리가 섹시의 정점이어야” 브랜드 연상
브랜드 연상은 어떤 상표를 듣거나 보았을 때, 떠오른 모든 생각과 느낌을 통칭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그 연상이 ▲ 강력하고 ▲ 호의적이며 ▲ 독특할수록 ‘좋은 연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선 강력한 브랜드 연상이란 그 브랜드를 들었을 때 얼마나 즉각적으로 브랜드 연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는가를 의미한다.
산업에서 ‘F킬라’가 살충제의 대명사로, 볼보가 ‘안전함’의 대명사로,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것과 같다.
호의적인 브랜드 연상이란 우리가 해당 상표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연상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하는 것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아이폰·맥 등을 제조하는 애플은 ‘디자인이 예쁜 프리미엄 제품”이란 긍정적인 연상을 일으키지만, ‘존나 비싸고 A/S가 불편하다’는 부정적 연상 역시 떠올리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독특한 브랜드 연상은 경쟁사와의 차별적으로 인식이 될 수 있는 요소다. 아무리 호의적이고 강력한 연상이라 할지라도 만약 모든 경쟁제품들이 같이 공유하는 연상이라면 자사 제품에 경쟁우위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사 제품에서 독특한 브랜드 연상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메이저 영화관 중 하나인 CGV를 떠올려 보자. 경쟁사인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와 차별되는 독특한 브랜드가 연상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CJ는 성공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영화관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섹시 걸그룹의 ‘섹시 속앓이’
섹시 컨셉을 들고 나온 걸그룹의 고민도 비슷하다. 다른 경쟁 걸그룹들 역시 섹시함을 강조하는 가운데 ‘브랜드 인지도’와 ‘브랜드 연상’을 높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항간에 ‘벗을 듯 안 벗을 듯’ 하는 것이 가장 큰 섹시함이라고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겠나.
결국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획사일수록 쉽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출을 강하게 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섹시컨셉은 모든 부정적인 여론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효과가 크긴 하다. 당장 섹시컨셉을 들고 나온 뮤직비디오 영상의 조회수가 무섭게 늘어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주위 ‘청순함’보다는 ‘섹시함’을 강조하는 걸그룹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스텔라도 <마리오네트>로 활동한 이후 광고 및 행사 섭외가 3배가량 급증했다고 밝힌 바 있다.[2]
하지만 지나친 섹시컨셉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평가다. 윤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대중에게 같은 섹시함으로 ‘자극’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3]
게다가 무리한 노출을 일삼다가 방통위 제재로 인해 연예계 활동에 제한이 가해져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퇴출될 수도 있다. 경영학적으로 브랜드 연상에서 ▲ 부정적이고 ▲ 독특하지도 않게 돼 결국 걸그룹 수명만 단축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또 한 번 각인된 브랜드는 사람들 뇌리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스텔라가 2014년 <마리오네트> 이후 기세가 충분히 오르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섹시컨셉을 부정한 채 (상대적으로 노출수위가 낮은) <마스크>와 <멍청이> 노래 흥행에 모두 참패한 것이 그 예다.
결국 <떨려요>에서 다시 섹시컨셉을 들고 나왔는데, 일관성 없는 브랜드 전략으로 인한 1년간의 시간 낭비를 인정한 셈이 됐다.
스텔라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현실이 대형기획사가 아니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리도 노래로 더 집중 받고 싶다.”라고 항변했지만, 어찌하겠나. 이런 상황을 만든 원인 중 하나는 스텔라 자신에게 있는 것인데.
그들의 바람대로 섹시컨셉을 무기로 건강미 넘치는 걸그룹으로 탈바꿈할지, 섹시 이미지만 소모하다 결국 사라지게 될지는 앞으로 더 지켜볼 일이다.
▲ 못 본 사람을 위한 친절한 링크 스텔라의 <떨려요> MV
- 안에 수영복을 입었다고 밝혔지만, 이걸 누가 수영복으로 볼지… ↩
- http://starin.edaily.co.kr/news/newspath.asp?newsid=01207046606023320 ↩
-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은 레드오션화되기 마련이고 ‘섹시한’ 브랜드 자신은 유지조차 버거워지기 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