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함대…우리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는 걸까?
제 목 : 침묵의 함대
작 가 : 카와구치 카이지(かわぐちかいじ)
출 판 사 : 코단샤(講談社)의 코믹모닝지에서 88년 말부터 연재 시작
국내상륙일자 : 91년 한국의 대본소 만화가 장훈이 [제국의 함대]란 이름으로 99.9999% 라 는 놀라운 카피율로 이 작품을 베껴서 만화방에 배포, 이후 1993년 겨울, 한때 우리나라에서 풍미한 500원짜리 만화책(일명 포켓북)으로 4권까지 해 적판 출시. 정식 라이센스 발매는 1996년 서울문화사에서 이루어짐.
평 점 : ★★★★☆
침묵의 함대, 이 작품을 더듬어 내려가다 보면, 당신은 작품 내적인 문제와 작품 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일단 작품 내적으로 들어가면, 2차대전 이후 이어내려져 오는 미국과 일본의 종속관계 및 냉전과 냉전해체로 이어지는 격동의 1990년대에 대한 고찰, 일본 자위대와 평화헌법에 대한 이해, 그리고 지난 반세기 인류를 멸망 바로 직전으로 몰아넣고 미소 양축으로 나뉘어져 러시안 룰렛처럼 각자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밀고, 노려보던 말 그대로 미친(MAD)전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상식을 요구받게 된다.
작품 외적으로도 따져봐도 제법 만만치 않는데, 87년 드래곤볼이 아이큐 점프에 실리며 물꼬가 트인 일본 만화의 개방 이전의 표절 만화와 그 이후의 해적판만화 등등 한국 만화의 격동의 90년대를 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피속까지 파랄거 같은” 작가 카와구치 카이지에 대한 이해 등등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접하게 될 것이다.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데…뭐 그렇게 어려울 거 없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봐도 카와구치 카이지의 공력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이 작품은 그 나름의 의미전달을 무리없이 전달 할 수 있다 할 수 있겠지만, 만화든 영화든 [아는 만큼 보이는 작품]이 있기 마련인데, 이 침묵의 함대가 바로 그 [아는 만큼 보이는 작품]이란 것이다.
1. 카와구치 카이지 맛보기…
카와구치 카이지 1948년 7월 27일 생. 히로시마현 출신…쌍둥이로 태어나 동생은 가업을 잇고 있는 상태이고, 형인 카이지는 즐겁게(?) 만화를 그리고 있다. 1970년에 [날이 밝으면] 이란 작품을 영코믹에 연재 하면서 데뷔하였다. 이 사람의 만화를 정의 하자면, 메두사나, 베터리, 이글, 지팡구 등등 국내에 출간된 작품만 보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데, 한마디로 “선 굵은 만화” “남자만화”라 정의 내릴 수 있겠다.
이 사람 만화의 특징 중의 하나라면, 언제나 주인공은 “비범함과 천재성”을 겸비한 독보적인 존재이고, 그를 쫓아가는 “화자”격인 서브 캐릭터는 “노력하는 수재”로 그려진다. 문제는 보통의 드라마처럼 “노력하는 수재”가 성공해 “비범한 천재”를 꺽어 버리는 도식적인 이야기 구조를 기대하는 독자들의 바램을 카와구치 카이지는 여지없이 꺽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무참하게 말이다.
카이지 만화에 등장하는 비범한 천재는 언제나 범인이 생각할 수 없는 광대한 이상을 향해 매진하고, 그를 쫓아가던 “노력하는 수재”는 언제나 그런 천재의 이상에 질려버리거나 거기에 매몰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배터리에서 천재 투수 카이후 후즈키와 성실한 포수 무토 요스케가 그랬으며, 지팡구에서 역사의 변혁을 꿈꾸던 쿠사카 타쿠미와 미라이의 부함장 카도마츠 요스케가 그런 케이스였다. 이런 인물 구도는 확실히 여타의 만화와는 다른 인물 구성이다. 그것이 바로 카와구치 카이지 만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만의 독특한 인물 구성은 침묵의 함대에도 여지 없이 드러나는데, 일본 최초의 공격원잠 야마토(やまと : 大和)를 타고 시험항해 중 이를 탈취해 [독립국가 야마토]란 황당무개한 선언을 한 후 ‘The silent security service from the sea’ 라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가이에다 시로와 그를 쫓아가 나포하겠다며, 야마토를 단순한 [탈주함]으로 규정해버리고 동료이자 친구였던 시로에게 배신감과 묘한 호승심을 가지고 추격하던 후카마치 히로시의 모습은 말 그대로 카와구치 카이지 만화의 전형적인 인물 구성도였다.
2. 한국에서의 [침묵의 함대]
[침묵의 함대]라는 만화는 그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만화 한편으로 [한국 만화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온몸으로 보여준 유일무이한 “살아있는 표본”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꽤 만화를 많이 봐왔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이 정도로 한국 만화계의 병폐 한가운데 떡하니 또아리를 틀고 있는 만화도 드물 것이다. 음 일본 만화가 한국 만화계 병폐와 무슨 상관이냐고? 일단 들어 보시라.
지금 세대, 그러니까 30대 초반 이상의 연령을 가진 독자세대라면 만화란 [만화방]에서 보는 것이고, 대본소란 말이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릴 것이다. 뭐 요즘은 그 만화방을 대여점이 대체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만화방이란 존재는 1980년대 후반까지 만화계에 있어선 거의 유일무이한 만화 판로였다. 왜 그랬을까? 그건 바로 60년대부터 맹위를 떨친 만화계의 독재자 “합동”의 등장 덕분이었다. 뭐 이 이야기를 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고, 거의 유일무이한 독점자로서의 합동의 등장으로 만화계의 병폐는 그 끝을 알수 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고, 독점자로서의 막강한 권력으로 만화가들에 대한 압력도 만만치 않게 작용 아무리 실력있는 작가라도 다작을 안하면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바로 “만화공장”의 등장이었다. 잘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이라면 요즘 만화판의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만화 대여점이란 존재가 만화가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그것과 똑같다 보면 맞겠다.
아무리 실력있는 만화가든, 그렇지 않은 만화가든 대여점이란 존재가 독자와 작가 사이에 끼게 된 작금의 현실에서 질좋은 만화든, 질낮은 만화든 판매되는 만화의 수는 엇비슷 하단 것이다. 아무리 잘 그려도 대여점이 만화책을 빌려주는 현실 앞에서 만화를 공들여 그리겠는가? 결국 1년에 100여권을 넘게 그려내는 [김성모]같은 작가가 등장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어차피 손으로 그리든 발로 그리든 나가는 만화부수가 똑같다면 한권이라도 더많이 그리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당시, 그러니까 80년대 후반 일본 만화가 개방되고, 아이큐 점프의 등장으로 한국 만화계에도 “잡지연재, 연재후 단행본 출간”이라는 일본만화계의 기본공식이 정착되기 이전의 문제이다. 일본문화가 철저히 차단되어졌던 그 당시 만화계는 만화가들이나 신인들에게 일본만화 베끼기를 강요했었고, 그걸 자진해서 그린 작가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한국 만화계의 현실 앞에서 침묵의 함대는 한국 만화계의 “부끄러운 현실”의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 되었다.
1988년 아이큐 점프란 주간지가 등장하게 된다. 서울문화사가 일본 소년 만화지 시장이 “돈이 된다”란걸 확인하고 만든 주간 만화지인데, 선데이 서울 이후로 깨지지 않았던 “주간지 23만부 신화고지”를 점령하는 기염을 토해냈고, 서울 문화사를 돈방석에 앉혀 버린 기념비적인 만화잡지가 되겠다.(23만부란 개념이 잘 안서는 독자들께 첨언하자면, 현재 한국 주간지 시장의 탑 랭커인 씨네 21이 10만부 이쪽저쪽의 판매부수를 보인다는 걸 알려드린다)
이 아이큐 점프의 기념비적인 성공에 기여한 두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이현세 선생님의 “아마게돈”과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 볼”이다. 이 두 작품을 보면 당시 혼란기의 한국 만화를 잘 대변해 주는데, 아이큐 점프의 초석을 다진 아마게돈의 경우 연재 종료와 동시에 대본소로 직행해 대본소 만화로 나오는 80년대 후반의 혼란한 한국 만화의 현실을 반영해 주었고,(이현세 선생의 역작이었던 야수의 전설 역시 보물섬 연재 이후 대본소로 직행했지만, 야수의 전설과 아마게돈은 상황이 달랐다. 아이큐 점프에서의 연재 이후 점프 단행본으로 출간이란 다른 루트가 있었음에도 대본소로 방향을 잡은 것에 대해선 지금도 안타까운 심정이다. 물론 그 이후 다시 단행본으로 출간 되었지만, 이미 아마게돈의 열기는 지나간 후였다) 드래곤볼의 경우는 한국 만화계에 본격적으로 일본만화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주었다.
잡설이 길었는데, 드래곤볼의 등장으로 이제 더 이상 “일본만화 통째로 베끼기”가 허용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된 가운데에서 담대한 용기와 베짱으로 문제의 “침묵의 함대”를 베낀 이가 등장하였으니, 대본소 만화계의 중견으로 그 대명을 널리 떨치시던 장훈 화백의 등장이었다. 이분이 1991년 [제국의 함대]라는 작품을 들고 나오셨는데, 사람얼굴만 장훈 그림체로 바꾼 것 빼고는 99.999%…그러니까 인물구도와 구성, 대사등 거의 복사하다시피 베껴내셨다.
워낙 경황없이 베끼셨는지, 구 일본의 욱일기와 오로라 제국이라는 고색창연한 국가명을 쓰는 나라가 20세기 자위대에서 쓰이던 [전수방위]라는 대사를 아무 생각없이 뇌까리는 모습은 “베끼려면 제대로 좀 베끼지…”하는 푸념이 나오게 만들었다. 후에 장훈 화백께서는 이름을 도용당하셨다고 주장하셨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두고두고 한국 만화계의 병폐를 말할 때 마다 회자되는 단골메뉴가 되었다.
그리고 2년 뒤에 등장한 것이 소위 포켓북이라 불리던 [500원 만화]였다. 지금 나이로 20대 중후반 독자들께서는 기억 하시리라 생각되는데, 학교앞 문방구에서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만화책을 500원에 팔던 걸 기억하실 것이다. 당시 인기 있었던 드래곤볼이나, 북두신권 등등의 만화를 스케일 다운 해 찍어낸 다음 (물론 불법복제 였다) 좌판에 쫙 깔아서 팔던, 추억의 만화책…침묵의 함대도 여지없이 이 500원짜리 만화책으로 4권까지 선보였지만, 당시 500원 만화책의 주소비층이 초,중생 위주였기에 [전세계 세력구도의 재편]과 [일본의 정치군사적 독립]을 주요 테마로 삼은 침묵의 함대가 “먹히지” 않았는지 4권 출간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그 이후 카와구치 카이지의 다른 작품들은 봇물 터지듯 출간되게 된다.(물론 불법 복제였다… 최근 완간된 메두사란 작품은 얼마전 이혼한 고현정씨를 생각나게 하는 “모래시계”란 이름으로 해적판으로 출간되어 성인 만화에 목말라 했던 대학생, 백수, 아저씨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외에도 은근히 카이지의 작품들이 불법으로 복제되어 만화방에 많이 깔렸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국의 성인만화라는 것이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용주골이니 싸릿골이니 하며 질펀하게 싸고, 빨고, 쑤시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것이어서 그런지 카와구치 카이지의 선 굵은 만화는 몇몇 “깨어있는 독자”들에 의해 회자되며, 마니아층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던 1996년 [침묵의 함대]는 서울문화사에 의해 한국 땅에 정식으로 라이센스 출간되게 되었고, 대망의 1999년 4월 이 말많고 탈많은 침묵의 함대는 32권이라는 그 장대한 스케일의 분량을 한국에서 다 출간하게 된다.
그럼 한국에서의 침묵의 함대는 여기에서 끝이 났을까? 아니다. 침묵의 함대는 한국 땅에서 만화를 넘어서 영화계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바로 1999년 개봉된 민병천 감독의 [유령]에도 그 영향력을 끼쳤다. 한국의 리들리 스콧, 비쥬얼 아티스트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입봉한 민병천 감독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며 대표작인 유령에서 부함장 202가 일본 해상 자위대의 잠수함을 플로팅 안테나(Floating Antenna : 잠수함의 통신장비)로 잡아당겨 압궤시키는 장면이 있는데, 침묵의 함대를 보신 분이라면 3권에서 소련해군의 알파급 공격원잠 레드 스콜피온과의 전투 장면을 떠올리셨을 것이다.
3. 작품 내적인 문제로…
본 필자는 집에 꽂혀 있는 침묵의 함대 32권 전권을 바라볼 때마다 늘 아쉬워 하는 한가지가 있다.
[quote style=”1″]12권 정도에서 적당히 끊었으면 좋았을텐데… [/quote]
초기 카와구치 카이지의 작품의도는 32권짜리의 대하소설 분량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상은 해상 자위대의 나다시호 사건(1988년 해상 자위대 유우시오급 공격잠수함 나다시오가 도쿄만에서 낚시배와 충돌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킨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해상자위대의 잠수함이 범죄를 저지르고 탈주한다는 작은 스케일의 이야기 였으나, 3개월 정도의 사전 조사작업이 끝날 때 쯤, 좀 더 큰 이야기 그러니까 세계 정세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세계를 “변혁”해 보자는 데로 이야기가 커져 버렸다.
침묵의 함대를 자세히 뜯어보면, 크게 3기로 나뉘어지는데, 1기가 1권에서 12권 정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로서 이때까지 카와구치 카이지가 말하려 했던 건 [전후 일본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된다. 이때까지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선굵은 카와구치 카이지의 모습 그대로의 탄탄함이 드러난다.
문제는, 13권부터 28권까지이어지는 2기에서 이야기가 묘하게 꼬인다는 것이다. 2기 총 15권 분량의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는 [Pax Submarina]라고 정의 내릴수 있는데, 잠수함에 의한 인류의 평화 유지 체제 즉, ‘The silent security service from the sea’ 가 본격적으로 이야기 되기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이야기는 걷잡을수 없이 확장되며, 어딘지 어색해 지기 시작한다. 만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갑자기 소련이란 나라가 사라지고, 러시아란 나라가 등장하고, 서기장이 사라진 상황에서 러시아 대통령이 참가하는 서미트가 등장하게 된다. (이 침묵의 함대란 이야기는 [3개월에 걸친 탈주 잠수함의 뉴욕 입성기] 라 할 수 있는데, 1988년 연재 당시에 지구는 [20세기의 대실험] 이었던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로 끝났음을 확인하고 냉전이 무너져 내리려고 꿈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소련의 붕괴였던 것이다. 카와구치 카이지 자신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혹감”을 느꼈다고 솔직히 시인한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3기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28권을 넘어선 이야기는 [수습] 국면이라는 것이 필자 개인의 독단적인 판단이다. 가이에다가 뉴욕항에 부상한 다음에 열심히 깃발을 펄럭이며 아양을 떨고, UN에 가서 연설을 하고, 저격을 받고 하는 그 모든 이야기는 방대해진 이야기를 수습하려고 애쓰는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뭐 나름의 의미를 찾자면, 영국, 프랑스, 인도, 중국 등등의 원잠 부대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침묵의 함대]를 구성하기 직전까지 가며 카와구치 카이지의 그 장대한 이야기를 겨우겨우 수습하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너무 평가절하 한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침묵의 함대는 길어봐야 20권에서 24권 사이 정도에서 끊었어야 했다고 믿고 있고, 아쉬워 하고 있다. 뭐 아쉬움은 이정도에서 끝내고, 이 32권에 달하는 침묵의 함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4. 전후 일본의 모순…카와구치 카이지가 일본인들에게 던진 화두
일단 침묵의 함대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한번쯤 의문을 품는 장면이 초반부 4,5권에서 야모토를 호위 하기 위해 투입된 일본 해상 자위대의 제2호위함대가 미국측의 공격에도 묵묵부답으로 발포를 억제하고, 2000년 연평해전 당시 대한민국 해군이 북한 경비정을 몰아내듯 온몸으로 미해군의 이지스함을 받아내는 걸 보면서 그들이 그렇게도 뇌까리는 [전수방위]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자위대는 말 그대로 자위(自慰)만 하다가 마는 녀석들이라는 말인가? 장훈화백의 역작 [제국의 함대]에서도 오로라 제국이 걱정하던 것도 바로 [전수방위]인데, 도대체 전수방위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고민하는 것일까? 그리고 자위대는 왜 군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2차대전 직후인 1945년 8월까지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의 “보통국가가 아닌 일본”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더듬어 봐야 하는 [노력]를 강요받게 된다. 간단 명료하게 맥만 짚을테니 천천히 따라와 주기 바란다.
처칠과 스탈린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트루먼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떨군지 며칠이 지난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그리곤,
육, 해, 공군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겠다!!
라는 선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각오를 다지듯 1947년 제정 발표된 평화헌법의 제9조에,
일본은 전쟁을 부인하며, 국제 평화를 성실히 추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 한 위협과 국제 분쟁의 해결수단으로써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
이때까지의 일본은 말 그대로 [보통이 아닌 국가]였다. 문제는 일본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북한의 등장으로 일본은 [보통이 아닌 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 6.25의 발발이었다. 당시 수상이었던 요시다 시게루의 한마디가 6.25를 바라보던 일본의 입장을 잘 대변해 주었다.
일본은 이제 살았다!!
맞는 말이었다. 당장 미국의 병참기지로 변신한 일본은 전쟁특수로 경제적 도약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고, 북한의 침공으로 다급해진 맥아더가 1950년 7월 8일 일본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50일 안에 7만 5천의 경찰 예비대 창설 요구]는 바로 [자위대] 구성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일본이 눈치 봐가며 청해야 할 일을 미국측이 먼저 요구하게 되자 일본은 부랴부랴 1950년 8월 10일 보병4개 사단으로 구성된 경찰 예비대를 조직하게 되고, 1952년 해안 보안대와 통합되면서 보안청이 설립 되게 된다. 그리고 2년 뒤 방위청의 설립과 함께 “자위대 설치법”이 만들어 졌고, 이윽고 1956년 그 말 많고 탈 많은 자위대란 게 만들어 진다.
일단 여기서 보통국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일본의 좀 특이한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면, 몇 가지 알고 있어야 하는 단어들이기에 지루하시겠지만, 읽어주시기 바란다.
일본이나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라면…아니 침묵의 함대나, 정치 9단 같은 일본 만화를 보신 분이라면, 일본 자위대와 방위청…나아가서 일본이란 나라의 발목을 잡아채는 몇 가지 족쇄에 대해 익히 들어 보셨을 것이다. 대충 꼽아 보면, 3가지 정도가 되는데, 전수방위, 비핵화 3원칙 그리고 무기금수 3원칙 정도로 요약 될 수 있겠는데, PKO법안 통과 이전까진 자위대 해외 파병 금지원칙 이란 것도 있었지만, 92년 6월 15일날 통과된 PKO법안으로 자위대도 이제 해외 파병이 가능해 졌다. 일단 위에 있는 세 가지 단어의 뜻부터 살펴봐야 겠다.
첫째, 전수방위란 것이 있는데, 앞으로 많이 등장할 단어이다. 이 단어가 생겨 난 건 1970년 나카소네 방위청 장관이 재직할 당시 일본 방위백서에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 단어의 등장은 이후 일본 자위대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단어로 부상하게 되었고, 자위대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다. 그럼 이 전수방위의 뜻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일본은 상대로부터 한방 맞은 다음에야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공격의 수준도 자위를 위한 최소한으로 제한한다는 것인데, 현대전의 경우 핵무기의 선제공격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재래식 무기를 들었더라도 기습은 공격자에게 최소 1.3배에서 최대 6배의 승수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연구 통계에서 보여주듯이 최초의 일격에 전쟁이 끝날 수도 있음을 생각 한다면, 과연 실효성이 있는 방위전략인지 의구심이 간다는 것이다.
둘째, 비핵화 3원칙의 경우는 1968년 11월 당시 총리였던 사또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한 내용을 정부방침으로 정한 것인데,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생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이다.
셋째, 무기금수 3원칙 이란 게 있는데, 1967년 4월 21일 일본 중의원 예결위원회에서 사또총리가 언급하면서 세상에 얼굴을 내민 단어다. 그 내용을 보면, 공산권국가, UN 결의 금수국가, 분쟁 당사국에는 무기 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인데, 이건 일본의 안보에 있어서 상당한 파장을 안겨준 것 중에 하나이다. 일본의 경우는 자위대가 사용하는 모든 무기에 대해선 자국생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직수입하는 비용의 2.5배를 더 주고서라도 부득불 라이센스를 고집하는 일본의 저의에 대해선 다들 짐작하고 있으시겠지만, 여기에 이 무기금수 3원칙은 바로 [최악의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해외의 수출 판로가 완벽하게 막힌 상황에선 자국 생산을 계속 고집한다는 건 자연적으로 생산비의 폭발적인 상승을 각오하겠다는 의미가 되는데, 실제로 일본 자위대의 경우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무기를 구입하는 “군대 아닌 군대”로 유명해 지게 된다.
덕분에 일본은 예산의 압박을 받는 와중에도 끝까지 자위대에서 사용하는 무기에 대해서는 자국 생산이란 원칙을 고수하였고, 덕분에 일본의 방위산업체의 기술력은 거꾸로 미국에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자위를 위한 무장을 한다는 이들이 자위 수준에서 멈추면 될 것을 부득불 순 국내생산을 고집하면서 군사기술을 축적하는 이유는 무엇이던가?
(물론, 일본 내부적으로 보자면…일본 군수산업의 방만함과 담합, 정경유착 부분이 들어가 있다. 지금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 가격’과 ‘국제적 수준에서 뒤떨어진 무기체계’가 무기금수 3원칙과 평화헌법으로 포장 된 것이다. 일본 군수산업의 방만함은…알아줘야 한다. 소총 한자루 가격이 400만원대를 훌쩍 뛰어넘는 걸 보면, 정신 제대로 박혔다면…그렇게 못한다. ‘일본의 저의’라고 도끼눈을 쳐다보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내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이 있긴 있었다. 물론, 군수업체들의 로비로 어느새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말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군수업체들의 방만함은 알아줘야 한다. 하긴, 1950년대 미국의 B-52 폭격기 안에 설치 된 양변기 가격이 10만 달러였던 적도 있는 걸 보면…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한눈에 봐도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한 나라를 구성하는 두개의 커다란 줄기가 있는데, 하나가 교육이고, 나머지 하나가 국방이다. 교육은 국가의 가치관과 이념을 후세로 전달해줘 국가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것이며, 국방은 현체제의 국가를 유지해주는 가장 기본적이며 절대적인 [방어막]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볼때 일본은 분명 비정상적인 국가인 것이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틀거리인 국방이 빠진 국가가 존재할까? 그것도 세계 경제 2위라는 경제대국에서 말이다.
물론 전범 국가로서의 징벌적 의미로 국방의 제한이란건 이해가 가지만, 국방력을 제한받은 국가로 보기엔 너무 “강력하다”란 점이다. 일본은 어떻게 군대 아닌 군대인 자위대를 가지고서도 주변국을 위협 할 정도로 군사력이 성장한 것일까?
앞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결론은 6.25와 냉전의 시작이었다. 당장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막아내는 [뚜껑]이 필요했던 미국은 일본을 그 [뚜껑]으로 선택하였고, 그 뚜껑을 만들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선택하게 된다. 이게 또 재미있는데, 냉전시대 동북아의 대소련 봉쇄의 첨병을 달렸던 두나라 그러니까 한국과 일본. 이 두나라는 2차대전을 치루고 난 후 미국의 [전리품]정도의 위치에서 필요에 의해 미국의 관리하에서 국가를 일으켜 세우고, 군대를 창설하고(물론 군대가 아니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20세기의 거친 세파를 헤쳐나가는 동안 미국에 의해 [기형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을 가만히 뜯어보면 군 창설 자체부터가 미국의 영향력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미국에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군을 서포터 해주기 위해 커 나갔다. 한일 양국의 전술교리에서부터 무기체제를 바라보면 maid in u.s.a 아닌게 없을 정도이니, 따져보면 형제 군대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닮은 부분이 많다.(괜히 내선일치일까?)
이 형제군 중 한국의 경우는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육군만을 엄청나게 키워 국방부를 육방부라 부를 정도로 기형적인 군대가 되어 버렸다. 육군이 아무리 많아도 해공군력과 정보전에 있어선 미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군대는 그 존재 자체가 기형적이다 못해, 영원히 미국의 품안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냉전시대 태평양에서의 대소련 봉쇄망의 핵심으로써(일본 열도 자체가 소련을 포위한 형국이다) 키워졌기에 대잠수함 전이나, 소해작전, 그리고 그 유명한 나카소네의 일본 불침항모론 같은 것에서 보여주는 대소련 봉쇄정책의 모습으로 해, 공군력에 있어선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세계 1위의 조밀한 레이더 망 시설과 세계 1위를 달리는 소해능력(기뢰제거작전, 2차대전 당시 기뢰에 의한 피해를 극심하게 받은 일본은 전후 소해전 능력 배양에 힘을 쏟았고, 맥아더 장군은 이런 일본의 능력을 높이사 6.25 때 이들을 비공식적으로 파병시켰다) 대 잠수함전 능력은 수준급에 이르게 된다.
(일본과 한국이 서로 으르렁 거리는 걸 알기에 이 두 우방의 발톱 하나씩 뽑아버리는 형태로…그러니까 한국의 경우는 일본으로 쳐 들어갈 병력은 있지만, 운송할 수단이 없도록, 일본은 운송할 수단은 있지만 실어나를 병력이 없도록 기형적인 군대체제를 양성시켰다. 미국이란 나라…가끔 무섭다. 아니, 자주 무섭다)
이렇게 보면, 일본 역시 꽤 괜찮은(?) 군사력을 가진 듯이 보이지만, 이게 또 호락호락하지 않은 게 일본의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군대 아닌 군대 자위대는 [냉전]시대 미군의 서포터의 역할에 안주해 미국의 핵 우산 아래에 묻어가는 형세였지, 전쟁을 하고, 나라를 방위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몸만 산더미 같은 어린아이]였다는 것이다. 세계 2위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나라 정도면 적어도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 정도의 국방비를 지출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세계2위의 국방비를 지출하면서도 일본은 전수방위 조약에 얽메여 현실에 안주하였던 것이다.,,쉽게 말해 “일본은 미국이 지켜준다”라는 미국의 “안보우산론”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가 폭발한 것이 바로 1990년 1월 17일에 터진 걸프전에서 였다.
걸프전…사담 후세인의 불장난같은 전쟁 덕분에 사막의 모래폭풍과는 전혀 상관 없을 듯 한 한일 양국 군(?)은 엄청난 충격과 그에 따른 숙제를 떠안게 된다.
걸프전 당시 일본은 600억 달러에 육박하던 전비 중 107억 달러나 되는 전비를 부담하였는데, 문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돈은 돈대로 내고 “일본은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졸부국가!!”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은 3억 8,500만 달러와 함께 의료지원단과 C-130수송기 몇 대를 파견 하는데 그쳤지만, 당당히 참전국으로 인정받아 뉴욕에서 있었던 전승 퍼레이드에 참가 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은 돈은 돈대로 내고 욕은 욕대로 얻어 먹으며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남는 장사]했다는 말이 나올만 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일단 한국의 경우는 전세계가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군대를 슬림화 하고, 소수정예의 강군, 첨단전쟁을 위해 해공군 위주로 한 자본집약, 화력위주의 군대로 재편하는 걸 빤히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왜? 아직 한반도의 냉전이 끝나지 않은 상황속에서 어쨌든 냉전적 사고로 휴전선 155마일을 50년대의 선형방어 개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60만 대군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걸프전에서 보여준 변화하는 세계각국의 군사전략과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 앞에서 북한에 발목잡혀 아직까지 냉전적 군사체제와 냉전해체후의 군사체제를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일본 역시 걸프전에 의한 여파는 굉장했었다. 지금까지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서 살아가던 일본이 이제 본격적으로 [국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 여론은 일본의 경제력에 걸 맞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론이 점점 확산되는데, 이 논란의 핵심에 있었던 것이 바로 PKO법안과 카와구치 카이지의 [침묵의 함대]였다. 1992년 6월 15일 PKO 법안이 우여곡절 끝이 통과되어 일본 자위대 병력이 캄보디아에 파병되면서 이야기는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그 PKO법안이 통과하는 한가운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이 바로 [침묵의 함대]였던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젊은이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있어서 정치라는 건 먼 나라의 이야기이며, 더군다나 국제정치에 대해선 그닥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이 일반인들의 시각임에도 당시 분위기는 걸프전의 여파와 PKO법안의 상정…이시기에 연재된 카와구치 카이지의 [침묵의 함대] 이렇게 [침묵의 함대]는 일약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5. Pax Submarina
해상 자위대의 잠수함 야마나미가 소련 잠수함과 충돌 그 상태로 파괴되었지만, 그 상태에서 야마나미의 승무원들과 함장 가이에다는 일본과 미국이 개발한 공격원잠 Sea bat(바다박쥐)에 비밀리에 탑승하게 된다. 그리곤 선상반란 이후 바다박쥐는 야마토(やまと : 大和)가 되어 전세계를 한바탕 들쑤셔 놓게 된다. 이것이 바로 침묵의 함대의 대충의 줄거리 되겠다. 이 대목에서 본 필자에게 뭔가를 물어보려고 질문하는 지인들이 많았는데,
도대체 잠수함 한척과 핵탄두 한발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이 역시도 상당히 기술적인 이야기로 접근해야 하는데, 원론적으로 말해서 가이에다의 알파와 오메가는 딱 두가지이다. 알파는, 4권에서 소련의 세르게이비치 대령과의 수중통화에서 선언한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1945년 8월, 미국에 의해 핵 폭탄이 일본에 떨어진 순간! 인류의 핵무기에 의한 전쟁은 끝났다!
그렇다면 오메가는? 지금까지 몇차례 언급한,
The silent security service from the sea
바로 초국가적 핵잠함대 구성으로 지구의 평화를 지킨다는 구상이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이론적으론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럼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이 알파와 오메가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부연설명에 들어가야 겠다. 잘들 따라오시길 빌겠다.
인류는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냉전의 시작에서 미국은 막간의 호시절을 누리게 된다. 바로 채 5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려야 했던 미국의 핵무기 독점시기였다. 이때 미국이 했던 유명한 일화가 바로 소련에 대한 [핵협박]이었다.
1946년 봄, 미국은 소련에 대해 핵 위협을 하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이란땅에 뭉기적 거리며 엉덩이를 비비고 있던 소련, 원래 이란 남부 지역의 석유는 영국의 [몫]이었는데 여기에 군침을 흘리는 소련, 트루먼은 당시 주미 소련대사인 그로미코를 백악관으로 정중히 초대해 한마디 던졌다.
48시간 안에 이란으로부터 소련군이 완전히 철수하지 않으면, 난 소련에 대해 핵공격을 명령 하겠소.
소련군은 24시간만에 이란에서 완전 철수 하였다. 이후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서 소련에 대한 핵위협은 없었지만, 베트남 같은 곳에선 여전히 핵협박을 하며 미국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어드벤테이지를 확실히 누렸다.(북한이나 제3세게 국가들이 핵에 목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냉전 시절에 소련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서 인류는 냉전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전략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바로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 상호 확증 파괴)전략…일명 [미친전략]의 등장이다. 이 “미친 전략”은 전략이라고 말하기에도 좀 뭣한 건데, 아주 간단한 논리이다. 이쪽에서 쏘면 저쪽에서도 쏜다. 결국 같이 부둥켜안고 죽는 수 밖에 없다는 저차원 적이지만 확실한 공포의 균형이론이 바로 이 미친 전략의 알파요 오메가 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미친(mad) 전략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상호 확증 파괴의 시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생각해낸 것이 상대보다 한발이라도 더 많은 핵폭탄을 만들어 수량으로 압도하자는 것이지만, 이건 말 그대로 누가누가 딱지를 많이 접냐는 식의 답없는 시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소 양국은 혹시 모를 핵전쟁에서 자신들의 핵전력을 보존하는 것이 살아남는 지름길이란 것에 동의하게 되고, 핵전쟁에서도 살아남을수 있게 다양한 채널의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누군가 알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했던가?
미소 양국은 대륙간 탄도탄, 잠수함 발사 탄도탄, 대륙간폭격기 이 세가지의 핵무기 체제를 개발 유지하게 되는데, 이걸 TRIAD…3각체제라 불렀다. 이 삼각체제의 등장으로 인류는 본격적으로 냉전에 돌입하게 되었고, 핵무기의 공포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었다.
최초 핵무기 시대의 시작을 알렸던 대륙간폭격기(Intercontinental Bomber)의 경우 일단 날아가서 목표 상공까지 도달하는 도중에 요격하기 위해 날아드는 적기의 요격을 어찌 피해야 하는지 그게 관건이었다. 그러다 스푸트닉의 출현으로 대륙간 탄도탄…즉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이 등장하게 된다. 진정한 핵공포의 시작이었다. 폭격기야 어쨌든 막아보겠다고 전 공군력을 동원해서 덤벼들면, 죽든살든 막는 시늉이라도 좀 해보겠지만, 대륙간 탄도탄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단 발사단추를 누르면,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봐야 5분 정도, 거기에서 다시 버싱단계(busing phase)에 들어가 재돌입을 하게 되면, 초속 8킬로미터로 내려 꽂히니 막으려고 아무리 용을 써도 현대 과학으론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레이건 시절 속칭 MX미사일이라 불리던 LGM-118 피스키퍼(미사일 이름이 평화를 지키는 문지기라니)란 녀석은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불과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ICBM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자, 문제는 이렇게 되니 미소 양국은 긴장감 사이에서 한발이라도 더 많이 생산해서 한꺼번에 쏟아 붓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중복사살(overkill)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런게 아니었다. 길어야 20분 안에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꺼번에 확 밀어버리자는 생각…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언제까지 서로 노려만 보고 있을 것인가?? ICBM이나 대륙간폭격기 같은 건 기지만 발견하면 기습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렇다 기지를 알면 기습이야 마음먹기 나름이다. 자…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 : 잠수함 발사 탄도탄)의 등장이다. 왜 잠수함일까? 간단하다. 발견이 안된다는 것이다. 인류가 전쟁터로 하고 있는 땅, 하늘, 우주, 바다…그리고 바다 속 중에서 가장 완벽한 스텔스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다이다. 레이더 같은 전파는 물론이거니와 광학탐지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기껏해야 소너를 가지고 음파로 탐지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 한계가 있다.
이쪽에서 소리를 안내면 고만이고, 설령 소리를 낸다하여도 미친 듯이 소음을 감소하기 위해 별별기술을 다 개발하는 요즘이 아닌가? 더군다나 심해 3,4백미터를 기본으로 내려가는 그들 3백미터 4백미터 바닷속을 무슨 수로 다 헤집을 것인가? 그리고 바다가 좀 넓은가? 지표 면적의 70%가 바다인데, 그것도 모잘라 바다속으로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안한다면, 그쪽에서 나오지 않는 이상 이쪽은 잠수함을 발견하기가 힘들다라는 것이다.
SLBM은 지난세기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인류라는 종족의 생존을 유지시켜 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원해 낸 발명품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이 녀석을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잠수함에서 날아오르는 탄도탄이라고 보면 되겠다. ICBM이 지상기지나, 지하 사일로 등에서 날아오르는 것과 달리 잠수함이란 플랫폼에서 날아오른다는 것만 다를 뿐 대륙간 탄도탄과 비슷하다.(대륙간 탄도탄이 12,000킬로미터 정도 날아가는데, 요즘 SLBM은 기본 8,000~12,000킬로를 날아간다) 그러나 그 존재가치는 대륙간 탄도탄과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이 녀석은 미국이 1960년 폴라리스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태어났다…ICBM은 늦게 만들었지만, SLBM은 미국이 먼저 개발했다. 미국에 이어 소련도 1962년 SS-N-4 샤크의 개발로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고, 냉전시대 핵무기 3대 전력을 확보하면서 본격적인 [냉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럼 침묵의 함대의 주인공인 야마토는 SLBM인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야마토는 원자력 공격 잠수함인 SSN이다. 통상적으로 잠수함을 표기할 때 SS라고 쓰는데, 보통의 공격 잠수함(Attack Submarine)을 SS라고 표기한다. 원자력 공격 잠수함일 경우엔 이 SS에 Nuclear의 앞철자인 N을 붙혀 SSN(Nuclear Powered Submarine)이라고 표기한다. 만화속에서 열심히 야마토를 쫓던 미국의 대표적인 핵추진 공격 잠수함인 LA급을 SSN이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뭐 이외에도 핵추진 순항미사일 잠수함은 SSGN으로 표현하는 등등의 여러 표기법이 있는데, 우리가 기억해 둘만한건 앞전에 설명한 SLBM을 탑재한 [전략원잠] 즉, SSBN과 야마토로 대표되는 SSN이다. SSN은 설명했고, SSBN을 설명하자면, 핵추진 탄도탄 잠수함(Nuclear Powered Ballistic Missile Submarine)을 말하는 표기법인데, 만화상에서 등부분(?)에서 수십개의 발사관이 열리는 잠수함이 바로 이 핵추진 탄도탄 잠수함…즉 전략 원잠이란 것이다.
공격원잠과 전략원잠은 말 그대로 임무가 제목에서부터 풍겨나오는데, 야마토로 대변되는 공격원잠은 작전해역에서 [전략원잠]을 찾아내 격침하거나 해상교통로를 확보해 바다를 장악하는게 주임무이고, 전략원잠은 그야말로 소리소문 없이 바다속에 숨어 있다가 여차하면 지구상의 모든걸 초토화 시켜버릴 핵탄두 수백발을 발사하는 것이 그 임무인 것이다. 지금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여유로움 뒤에는 이런 전략원잠 십여척이 태평양에서 대서양, 북극해 근처에서 용트림을 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미국의 경우 항시 4척의 오하이오급 원잠을 배치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타이푼급 수척을 배치하고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 등등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 이사국 중 중국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전략원잠을 항시 배치하고 있다. 냉전기간 동안 핵전쟁이 터지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발견되지 않는 이동 핵미사일 기지의 존재 때문이었다. 중국의 경우 전략원잠을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기술력이 떨어져 전략원잠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아급 한척이 있긴 있으나 기술적으로 신뢰받지 못한 녀석이다)
침묵의 함대가 말하는, 아니 카와구치 카이지가 말하는 Pax Submarina의 의미는 이것이었던 것이다.
인류가 개발해낸 [절대병기]란 타이틀을 차지한 핵병기에 의해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어떤 생물체도 얻지 못했던 한가지를 얻게 된다. 바로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멸망시킬 금단의 힘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금단의 힘을 얻은 후 50여년 가까이 인류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멸망직전까지 서로를 노려보다가 겨우겨우 해답을 찾은 것이 [누구도 범접 못하는 공정한 공포의 존재]를 만들자는 것이라니…어쨌든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의 머리로선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 밖에… [절대병기]라 불리는 핵무기 이후의 새로운 [절대병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인간은 핵무기의 공포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수 밖에…그래도 냉전시대보다는 인류멸망 시계가 많이 후퇴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말이다…(인류 생명체 최악의 위협인 부시는 논외로 하자)
6. 뒷 이야기들…
카와구치 카이지는 우리나라에선 [일본 보수 우익 만화가] 혹은 [군사 전문 만화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실제로 서울문화사에서 침묵의 함대 1권을 발행할 때 책 홍보를 위한 소개 문구에 등장하는 글귀가 있는데, [20세기 일본 신군국주의의 만화적 반응]과 [데뷔 당시부터 줄곧 군사물만을 고집하고 있는 작가로써…치밀한 자료수집과 방대한 스케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라는 내용이다. 일단은 그가 데뷔작부터 군사물만 고집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임을 서울 문화사 스스로가 인정했는데, 바로 2003년에 완간된 카와구치 카이지의 “메두사”란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정통 정치극화였던 것이다. (뻔한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치밀한 자료수집에 대해선…글쎄… 침묵의 함대를 읽은 많은 군사 매니아들이 시속 20노트의 속도에선 자함의 소너가 운용상의 제약을 받게 되어탐지능력이 떨어진다는 등등의 지적도 많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해군 자위대 병사들이 M-16소총을 들고 있는 장면에서 뭔가 잘못 되도 단단히 잘못 됐다는 생각을 했었다.(일본 해자대가 언제부터 M-16을 썼었지?)
작가 자신도 3개월간 군사전문가로부터 대략적인 수업을 듣고 작업에 들어갔다고 겸양을 보였지만,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했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작품이 연재될 당시 카와구치 카이지가 수많은 [표절]의혹과 [사진 무단도용]에 의한 배상등으로 좀 시끄러웠다는 것이다. 하긴 국내에선 이런 뒷 이야기 보다는 앞전에 먼저 밝힌 [20세기 일본 신군국주의의 만화적 반응]이란 말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말이다. 실제로 침묵의 함대는 많은 매체에서 [21세기 새로운 세기의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의혹과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일본에서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다른 시각이 아니라 좀 “깨는” 시각이란 표현이 적절할 거 같은데, 개중에 재미있는 내용들을 잠깐 정리하면,
카와구치 카이지는 세계의 신질서를 말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가 원한 것은…[미국인]이 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The silent security service from the sea 라는 건 간단히 말해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세계경찰 자리를 뺏어오겠단 소리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더 웃긴건 이글이란 작품(국내에선 세주 문화사에서 출간, 일본계 미국인 3세인 야마오카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을 보면 케네디가를 오마쥬한 베이츠가에 들어가 미국인 행세를 하며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야마오카만 있을 뿐이다. 카와구치는 미국인이 되고 싶어하고, 미국인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단순한 미국 추종자일 뿐이다.
본 필자가 이 일본인이 바라본 카와구치론(論)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란 어떠했을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바다건너 한국에서의 카와구치의 작품에 대해,
청교도의 나라에서 흑선(黑船)을 가지고 개항을 했으니 이번엔 야마토란 흑선을 가지고 청교도의 나라를 개항하려 하고 있다!! 야마토란 이름 자체가 군국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야마토는 일본 최초의 독립국가의 국명이기도 하지만, 2차대전 당시 세계 최대의 거함인 야마토급 전함의 네임쉽이기도 하다. 나중에 마쓰모토 레이지의 우주전함 야마토로 부활하긴 했지만 말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21세기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는 극우세력의 만화이다!!
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보면, 같은 만화를 봐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이렇게 다를수가 있다고 봐야 할까? 서로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 하는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어쨌든, 출간 당시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한국에 건너와서도 만화 내외적으로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작품은 걸작으로 평하기엔 조금 문제가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색채가 강하게 표현된건 좋지만, 그 색채를 강조하다 못해 독자들에게 강요하는 형국이 된 만화란 점과 스케일의 장대함은 어느순간 황당함을 느끼게 만들고, 종국에 가선 이 장대한 이야기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 뺀 흔적이 역력한 이 작품은 한국인이라는 필터로 바라본다면 일본이라는 나라와의 과거사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여운까지 합쳐져 마음 편하게만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졸작이나 범작으로 보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화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7. 기억에 남는 대사
The silent security service from the sea…아마도 침묵의 함대란 작품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바다로부터의 침묵의 안전보장…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지난 세기 40여년 가까이 이 침묵의 안전보장을 받아왔던 우리들로서는 모르는게 약이 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