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과 다른 수도권
나는 “지방은 식민지”라는 강준만 교수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초중고를 경상도에서 나온 내가 볼 때, 지방의 진짜 문제는 ‘문화 자산’에서 나온다. 그냥 돈벌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자산이 없으니 아이들이 성장하기 힘들고 장기적으로 희망이 없어진다.
되짚어 보면 내게 몇 차례 컬처 쇼크가 다가온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방학 때 꽤 잘사는 분당 고모 댁에 놀러 갔다. 놀러 갔지만 할 일이 없어서(…) 대형 학원에서 사교육을 받았다. 3일뿐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잘 가르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고모님은 고3 여름, 내게 메가스터디를 알려줬다. 나는 상당히 요령형으로 공부하는 편이었는데, 일정 정도 이상 성적을 올리기 힘들었다. 그런데 메가스터디를 통해 20점 정도 (100점 만점 기준 5점은 상위권에서 큰 점수 차이다.) 더 올릴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수도권 상위 대학 진학이 가능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메가스터디를 강력 추천했다. 하지만 그걸 하는 친구는 없었다. 그냥 분위기가 그런 것이었다. 수도권에는 대형 학원도 있고, 거기에 가는 게 당연한 것이고, e러닝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방은 그런 개념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논술을 잘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모의논술 한 번 본 것이 전부였고, 나는 글자 수 미달이라는 이유로 최하점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논술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이게 지방이다. 학부모가 모여서 공유하는 정보의 격차가 엄청나다.
문화가 있는 서울
더 큰 충격은 서울에 가서부터였다. 여기에는 ‘여가’와 ‘문화’라는 개념이 있었다. 지방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란, 만화책, 무협지를 보거나 좀 빠른 애들이 극소수의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를 즐기는 게 전부였다.
서울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시간과 관심만 있다면 악기, 만화, 영화 등을 실제로 배울 수 있었다. 지방은 아니다. 영화는 메이저 영화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공연은 말할 것도 없다. 지방 소도시에는 공연이란 것부터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 대도시라 해도 서울과는 스케일이 완전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이들이 계속해서 격차를 벌려 나간다는 것이다. ‘여가’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에 있기에, 그들끼리 모이고 계속해서 발전을 준다. 지방은 이럴 계기 자체가 없다고 봐도 된다. 인터넷이 발전했다고는 하나, e러닝이 도입됐다고 해서 교육 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것처럼, 그 격차를 줄이기는 힘들다.
물론 수도권 안이라고 이런 격차가 없는 건 아니다. 자녀에게 부모의 유동 자산, 비유동 자산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문화 자산’이다. 설사 부모가 비정규직 시간강사라 해도, 그 자녀들은 생각보다 많은 혜택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좋은 책과 영화를 접하고, 그에 관한 해설과 이야기를 접한다.
그렇지 않은 집은 쟈키쟈키를 빨며 런닝맨에 깔깔댄다. 웃어 봅시다. 깔깔깔.
It all just happens again
그 결과는 학력 격차다. 수능은 우리가 욕하는 것보다 ‘많이’ 좋은 시험이다. 학력고사에 비해 머리 없이 좋은 성적이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부모의 충분한 문화 자산을 얻은 이들은 좋은 대학을 가고, 그러지 않은 이들은 소위 지잡대를 간다. (올바르지 못한 표현임은 알고 있으나, 문맥상 정말 이렇게 강조해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서 또 골치. 좋은 문화 자산을 가진 아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들은 더욱더 성장한다. 지잡대? SKY도 힘든 사회라는 건 우스운 소리다. SKY가 힘들 정도면 어떻겠는가?
한 시간강사 선배는 지잡대 강의가 괴롭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니 강의를 듣는 열의가 떨어진다는 이유다. 학력 외에는 SKY 못지않은 아이들도 ‘취업’ 그 자체가 힘들다 하니, 당연히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기 쉽다.
누군가 지켜야 하는 사회적 예의
흔히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뭔가 멋진 것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실 이는 ‘있는 자들’의 배려인 동시에 넘을 수 없는 벽이기도 하다. 한국도 계급 고착화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유럽에 비하면 벌 것 아니다. 귀족이라는 계급이 없어졌을지언정, 계층은 여전히 계급 못지않은 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넘을 수 없는 문화 자산과 유형의 자산이라는 벽으로.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자신을 금수저로 바라보지 말라는 한 강남 좋은 집 소유자의 넋두리였다. 이런 말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질시를 받을 수밖에 없을 만큼 사회에는 소외된 이들이 많다. 그것을 열폭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것에 열폭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적어도 내 열폭에 따르자면, 세상에는 참아야 할 말들이 많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냥 그것을 세련되게 다듬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학력이라도 멀쩡한 내가 이딴 생각 가질 정도면, 다른 누군가의 삶은 어떨 것인가? 나는 알 수 없다. 그냥 내가 함부로 떠들지 않고 조금은 조심해야겠다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