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면 역시 많이 있다. 그 어두운 면이 아주 조금 있는 것이 아니라, 꽤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어쨌든 출범한 지 이미 6년이나 되어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들어 가고 있는 로스쿨, 우리나라 법학 교육의 정상화에도 나름 기여하고 있는 이 로스쿨에 대해, 몇몇 문제점만 가지고서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나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들한테 나는 사실 적극적으로 로스쿨에 진학하라고 말하고 있다. 법학 실력이 뛰어난데 가정형편이 어렵다면 돈을 꿔서라도 로스쿨에 진학하라고 말한다. 물론 사법시험도 한번 도전해보라고 얘기하지만, 사법시험이 잘 안 될 때에는 당연히 로스쿨에 진학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지도를 하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그러한 지도에 대해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
로스쿨에 진학한 제자들과 만나 가끔 얘기를 해볼 때도 있지만, 로스쿨 진학을 후회한 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로스쿨의 교육내용과 로스쿨 교수님들의 실력 수준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었고, 사법시험에 비해 로스쿨의 부담감과 압박감이 훨씬 덜하다며, 로스쿨에서 상당히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렇지만 로스쿨은 문제점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 로스쿨의 이러한 어두운 면은 역시 입학전형의 기준이 너무 불투명하고 학비가 너무 비싸다는 점에 있다.
비로스쿨 교수이다 보니 학생들 로스쿨 진학지도를 많이 하게 된다. 로스쿨 지망생들의 학점이나 토익 점수, 리트 점수 등에 맞춰서 대략 적합한 로스쿨을 추천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로스쿨에 갈 수 있을런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답답할 때가 매우 많은 게 사실이다. 많은 수의 똑똑한 학생들이 순전히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는 것도 자주 지켜보았다. 이 모든 게 내게는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법학 공부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LEET
로스쿨 입시의 경우 리트 성적이 아무래도 가장 크게 좌우를 한다고 한다. 리트 성적만 알면 어느 정도의 로스쿨을 갈 수 있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로스쿨 입시가 그렇게 불투명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 리트시험이란 것의 변별력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법대 3학년 때까지 매우 뛰어난 법학 실력과 법학적성을 보여줘서 그 누구보다도 로스쿨에서 공부를 잘할 것으로 생각했던 학생들이 막상 법학과 4학년 올라가서 리트시험을 보면, 점수가 100점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물상보증인과 후순위저당권자 간의 변제자대위나 공유지분의 환매 같은 까다로운 민법 사례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내고, 법학 전공학점 대부분을 A+로 깔아주는 학생이라면, 리트 점수가 적어도 120점은 나와줘야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리트시험이 얄궂다는 것은, 그 성적이 법학 실력과 전혀 비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게 무슨 IQ 테스트처럼 아무리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해도 점수가 잘 오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학생들 리트시험 성적이 하도 오르지 않아서, 나도 결국 오늘 그 리트시험 문제란 것을 조금 풀어봤다. 그런데 언어이해의 경우 그냥 수능 언어영역 시험에 가깝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추리논증의 경우 도무지 헷갈려서 문제를 푸는 것 자체가 매우 짜증 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 역시 리트시험을 보면 점수가 100점을 넘기 힘들 것 같았다는 얘기이다.
리트시험이 요구하는 언어이해능력이나 추리논증능력을 잘 갖출 경우, 법학 공부를 하는 데 물론 기본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법학 공부라는 것은 또 그 나름대로의 체계와 논리가 있다. 이미 법학 공부를 대학교에서 4년이나 계속해왔고, 전공학점도 좋은 편이라면, 법학에 관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을 일단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거기에 더해 법학적성시험을 또 봐야 한다면, 법학과 졸업생들의 기분이 어떠할지를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경찰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한테 경찰적성시험문제를 또 한 번 풀어보라고 해보라. 일단 그 시험에 의욕이 생길 리가 없지 않겠는가?
졸업 때까지 1억 원이 필요한 로스쿨
로스쿨의 학비 문제도 심각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법학전공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이어서 당연히 법조인이 꿈이겠지 하고 대화를 나눠보면, 의외로 공무원시험이나 법무사, 노무사, 감평사, 관세사 등에 뜻을 두고 있다는 점에 놀라곤 한다. 집안 형편을 물어보면 아버지가 대기업이나 은행에서 차장이나 과장까지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로스쿨 학비를 지원해주기는 어렵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법시험이라면 짧고 굵게 한번 밀어줘 보겠는데, 로스쿨은 좀 어렵겠다고 하셨단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서울 사립 로스쿨의 경우 졸업할 때까지 들어가는 돈이 1억 원을 넘어가는 게 현실이다. 지방 국립 로스쿨의 경우 학비가 매우 싸기는 하지만, 그 대신 하숙이나 자취를 시켜야 하므로, 주거비나 교통비 등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수업료만 내야 하는 게 아니고, 교재비나 학원비 등도 별도로 들어간다. 부모 입장에서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인데, 거기에 추가해서 그 정도의 비용을 선뜻 내놓을 만큼 부유한 가정은 우리나라에서 상위 20% 가정이 아니고서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문재인 대표님 같은 경우 로스쿨에 장학금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국가유공자, 농어촌지역 고교 출신자, 장애인 등은 별도의 전형을 통해 로스쿨에 입학하고, 이들은 모두 전액장학금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하위 5~10%의 빈곤층 자녀들이나 장애인들 얘기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로스쿨에서 빈곤층,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입학의 편의를 제공하고 장학금을 지급한다고는 하지만, 중산층이나 서민층 자녀들의 경우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인구는 상위 20%와 하위 80%로 소득과 자산이 점점 양극화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하위 80% 가운데 겨우 5~10% 정도만 구제해주면서, 로스쿨의 돈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정말 곤란한 발상이다.
아무리 아버지가 지금 좋은 직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딸이 로스쿨에 갈 정도의 나이가 되면 그 아버지의 나이가 50대가 된다. 요즘은 퇴직이 점점 빨라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더 이상 벌이가 없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자기 노후대비자금으로 저축한 돈을 헐어서 딸의 로스쿨 학비에 보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중산층이라고 해도 평생 모아놓은 돈이 5억 원도 안 되는 경우가 꽤 많다. 그 돈의 상당 부분을 딸의 로스쿨 진학에 선뜻 투자할 만큼 배포가 큰 부모의 숫자가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
로스쿨과 학벌카르텔
로스쿨로 인해 학벌카르텔이 공고해진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출신 대학만으로 법학 실력을 가늠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실제로 사법시험에서 많은 이들이 학력을 초월한 통쾌한 합격을 보여주지 않았었던가. 그런데 로스쿨은 이러한 역전의 가능성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이른바 하위권 대학 출신으로 소위 상위권 대학 로스쿨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만약 순수하게 법학 실력만 놓고 경쟁해서 줄을 세운다면 로스쿨 합격생들의 출신 대학 비율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나라 로스쿨 진학은 결코 법학 실력으로 결판을 보는 것이 아니다. 변별력 없는 리트시험성적이나 토익성적, 그리고 학벌과 스펙(?) 같은 이상한 것을 기준으로 불투명하게 로스쿨생을 뽑는다.
로스쿨 입시가 불투명하더라도 변호사시험성적이 투명하게 공개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써 학벌카르텔의 한계를 만회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변호사시험 성적에 자신만 있다면 지방의 이름 없는 로스쿨을 가더라도 큰 상관이 없다. 이렇게 되면 취업에 있어서의 공정성도 어느 정도 담보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변호사시험제도는 변호사시험성적 역시 공개를 못 하게 하고 있다. 변호사시험 합격 여부만 알게 할 뿐, 그 성적은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비밀로 숨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대형 로펌에서는 학벌이나 출신만 가지고서 변호사를 채용한다. 학벌이나 출신을 불문하고 변호사시험 성적순으로 변호사를 뽑는다면 공정성에 대해서 말이 안 나올 텐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로스쿨 가운데서도 SKY 로스쿨 출신, 그중에서도 좋은 집안 출신 학생들을 우선해서 선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로스쿨에 대해 ‘음서제’라는 원색적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는 비인간적이라느니,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라느니 뭐니 그런 말은 부디 나에게 하지 말기를 바라겠다. “사람이 먼저다.” 이런 말도 물론 좋긴 하지만, 공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무조건 “사람이 먼저다.”하고 사람만 믿게 하다 보면, 모든 게 결국 정실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합격자들의 성적에 대해 객관적 차별이 없으면 합격자들에 대한 외부의 대접이 상향평준화되는 게 아니라 하향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로스쿨 변호사들의 연봉이 사시 출신 변호사들의 연봉보다 훨씬 더 낮아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나라 사법계 고위공직자들과 로펌 변호사들의 선발이 법학 실력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있다고 치자. 법학 실력이 아니라 10대 시절의 대입성적과 부모의 권력 및 경제력, 그리고 리트시험성적 등을 기준으로 법조인 선발을 하고 있다. 이걸 과연 합리적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선발된 변호사들을 국민들이 제대로 대접을 해주려 할 리가 있겠는가?
물론 우리나라 로스쿨 제도에 이러한 어두운 면이 있다고 하여 로스쿨을 아예 완전히 폐지하자는 주장으로 곧장 달려가려는 것은 아니다. 요즘 사시존치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거기에 동참해서 사법시험을 무조건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로스쿨, 이렇게 개혁해야 한다
로스쿨의 어두운 면은 다음과 같은 개선책으로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로스쿨을 대학원이 아니라 학부로 전환해서 전체 수업료 부담을 현재의 7분의 4 수준으로 줄인다.
- 로스쿨을 대학원으로 유지한다면, 법학과 졸업생은 로스쿨을 1~2년만 다니도록 해서 학비를 줄인다.
- 법학과 졸업생들은 리트시험 대신에 예비시험을 치르고 로스쿨에 입학하게 해서 그놈의 법학적성(?) 대신에 법학 실력(!)으로 평가받게 한다.
- 변호사시험성적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물론 사법시험 존치도 분명히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스쿨 학비에 부담을 느끼는 중하류층 가정의 학생들이 학부 시절에 열심히 공부해서 적은 비용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주고, 대학입시에 실패하더라도 그 후에 더 높은 수준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생역전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사법시험이 로스쿨보다 훨씬 더 우월하기 때문에, 사법시험을 존치시켜서 사법시험제도와 로스쿨제도가 서로 경쟁하게끔 법조인양성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법시험 존치를 흔쾌히 주장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사법시험 자체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법시험에 응시해보았고, 나름 열심히 준비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출제와 채점에도 참여해보며 사법시험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사법시험의 문제점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사법시험 존치가 로스쿨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 사법시험은 법학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라기보다, 대부분의 응시생을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라고 비난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불합리한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일단 무비판적으로 암기해야 할 분량이 지나치게 많고, 시험시간이 너무 짧다. 케이스시험으로 완전 전환된 것은 물론 환영할 만하지만, 단 한 과목이라도 과락을 받아버리면 다른 과목 성적이 아무리 우수해도 불합격이라는 점 등은 여전히 큰 문제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이러한 사법시험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로스쿨 변호사시험도 사법시험과 거의 같은 구조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법시험을 존치하더라도, 그 시험방식은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사법시험을 보면 필기시험의 경우 오픈북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법시험 역시 그렇게 바꾸는 것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어차피 법조인이 되더라도 모든 법 지식을 다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법전과 교과서를 뒤져보며 문서를 작성하고 고객상담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법시험도 오픈북을 전면 허용하고, 그 대신에 문제의 난이도를 대폭 높이며, 시험시간 역시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무식한 암기능력보다는 고도의 응용력과 창의력을 측정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법시험을 굳이 존치하지 않더라도, 로스쿨 입시에 예비시험(법학전공기본지식측정시험)을 도입하고, 현재의 변호사시험방식을 오픈북 방식으로 변경하며, 변호사시험성적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만 하여도, 지금 로스쿨이 가진 문제점들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옛말에도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하였거늘… 이러한 로스쿨 개혁 역시 로스쿨의 졸속도입주체였던 현재의 제1야당이 추진해야 마땅하다 할 것인데, 지난 관악을 재보선에서도 보았듯이 제1야당은 이러한 현실에 눈과 귀를 닫고서 무조건적으로 로스쿨 옹호에만 전념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원문: 백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