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것이 2013년 2월. 어느새 2년이 넘어섰다. 이래저래 서론을 쓰기보다는 간단하게 본론으로 들어가자. 박근혜 정부, 2년간 보여준 모습에서 나타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1. 민주적 방식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모습이 보인다.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국민 여러분들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관련 수석들도 모두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직후 수석비서관회의에서의 발언, 2013. 5. 13.“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원인 규명 하겠습니다. 만약에 지금 오늘 여러분들과 얘기한 게 지켜지지 않으면 (주변 참모진을 가리키며) 여기 있는 사람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됩니다.”
─ 세월호 사건 직후 진도 체육관에서의 발언, 2014. 4. 17.“그동안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또 국민의 불안함 속에서 어떻게 확실하게 대처 방안을 마련할지 이런 것을 정부가 밝혀야 한다.“
─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 민관합동 긴급 점검 회의에서의 발언, 2015. 6. 3.
정부에서의 대표는 곧 대통령 자신이다. 정부 이름에 ‘이명박’, ‘박근혜’라는 이름을 수사로 붙이는 것 또한 그만한 의미가 있다. 책임이 있으니 물러나라는 말이 아니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발언, 책임지고 무엇을 하겠다는 발언이라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아니 정확히 말해서 박근혜 대통령 개인은 자신이 국민의 한 사람이자 대표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별개의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선 민주 사회의 대통령이 아니라 봉건 사회에서 나타나는 제왕의 모습에 가깝다. 심지어 세 번째 발언에서는 정부와 정부의 대표인 자신마저도 구별하고 있는데, 이는 왕실과 조정을 구분하던 조선 시대의 모습과도 흡사한 부분이 있다. 사실 보면 사극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아닌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조정 대신들은 여태껏 무엇을 했단 말이오!”하면서 국왕이 대신들을 책망하는 장면 말이다. 실제로 독일 등의 국가에서는 왕이나 황제를 선출했던 사례도 있었던 만큼,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을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무리 성군이라 하더라도, 왕과 대통령의 소통은 다르다. 프리드리히 2세가 “군주는 국가 최고의 심부름꾼”이라고 립서비스를 한 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군주는 국민과 별개의 존재로 신민 위에 군림한다.
이미 변질될 대로 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해도, 민주주의에서의 대표는 그 시작인 고대 아테네 시절부터 기본적으로 봉사자이며 국민의 한 사람이어야 한다. 당연히 자신이 책임을 통감한다는 발언, 책임지고 모든 문제를 수습하겠다는 발언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 개인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판단할 수 없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발언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말실수가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심리학적으로 말실수는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표현으로 억압된 충동이라고 분석한다. 그것도 이런 말실수가 한 번도 아니라 계속 반복된다면 어떨까. 그런 논리에서 보자면, 이것이 단순히 말실수로 넘어갈 문제라고만 볼 수 있을까.
만약 박근혜 정부가,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소통은 다른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개념을 다르게 가져가고 있으니 동등한 수준에서의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박근혜 대통령 마음속에서 국민이 신민으로 전락해버린 것이 정말이라면, 우리는 신문고를 두드리고 하해와 같은 성은을 바랄 수밖에 없다.
2. 전문화된 능력이 없음에도 권력을 놓지 않는다.
사실 한국에서는 군부 통치 시기까지 이어졌던 제왕적 대통령제가 꽤 오랜 기간 지속되기도 하였으며, 타국의 사례를 봐도 제왕적 대통령의 사례가 현대사에 없었던 것도 아니다. 생각 외로 성공적인 사례 또한 많다.
귀족적 성향을 보여주며 국민과의 거리 두기를 했던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강력한 카리스마로 프랑스의 자긍심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은 샤를 드골 등 사례는 다양하다. 물론 대부분 위기 상황에 출현한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핵심은 상황에 맞는 전문화된 인력의 배치와 권한의 부여, 즉 인사권이다.
제왕학에서 대중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분류 방식은 삼국지연의의 조조, 아니면 유비 방식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기가 다 할 능력이 돼서 다 하든가,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인지하고 전문가한테 맡기든가.
문제는, 현대 사회는 그 분야가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조조의 케이스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인사와 적절한 권한 배분이 핵심이 되는데, 여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세월호 침몰 사건과 메르스 사태는 분명 전혀 다른 사건임에도, 그 유사함에 대한 기사들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어떤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실패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초동 대처의 실패, 그리고 컨트롤 타워의 부재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 때는 사건 이후 7시간 동안 대통령의 소재가 여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고, 해경 스스로의 대처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메르스 사태 또한 최초 발병자 이모 씨가 5월 11일 발열 증세를 보였고, 9일 뒤인 20일 확정 판정을 받았다. 21일 질병관리본부에서 ‘중앙 메르스 관리 대책 본부’를 마련하며 컨트롤 타워가 마련되었으나 2차 감염자 속출로 일주일만인 28일 보건복지부로 컨트롤 타워가 이관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사건 발생 12일만인 6월 1일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였다.
심지어 그전까지 각 부서는 “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격상할 필요가 없다.”, “신종플루 같은 경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300만 명 정도 감염됐을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했다. 지금은 가동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발언들로 정부의 인식이 얼마나 한가한지만 드러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상당수의 문제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정부가 사건 예방 등에 스스로 나서지도 않고, 사건이 일어나도 그 대처에 굉장히 한가한 태도를 보인다. 그 과정에서 국민이 먼저 움직이면서 논란이 커지면, 그 논란을 루머라 하며 공격하기에 바쁘다. 실제로 루머이든 루머가 아니든, 먼저 움직이는 것은 정부여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상 사고인 세월호 침몰 사건, 전염병 사태인 이번 메르스 사태. 박근혜 대통령 개인이 의사도 아니고 해상 전문가도 아닌데 이런 분야를 모두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전문화된 부서들이 있음에도 그 부서들이 이런 사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질 못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응하지 못한 것인가,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인가. 세월호 침몰 사건 때는 사건이 더 긴박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컨트롤 타워 수립 자체가 늦었고, 메르스 사태 때는 사건 파악 하루 만에 만들어졌다지만 컨트롤 타워가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태도 또한 여유로웠다. 어느 쪽이든 대응해야 할 타이밍에 대응하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다.
만약 사건이 일어났다면 신속히 컨트롤 타워가 수립되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확히는 컨트롤 타워 이전에도 하위 부서들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그다음에 컨트롤 타워가 추후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
그러나 하위 부서들은 역할 수행에 실패했고, 컨트롤 타워는 늦었으며, 추후 일어나는 문제 또한 수습할 수 없었다. 해당 부서가 자체적으로 컨트롤 타워를 운영할 수도 있는 건데 그것은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상부의 컨트롤 타워가 역할을 제대로 빠르게 수행하지도 못했다는 것. 이처럼 박근혜 정부는 전형적인 ‘관료제의 병폐’를 지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관료제가 이런 문제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권력 결정자가 결정권을 모두 장악하고 오직 질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하위 부서에서는 결정권이 없고 책임을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필요한 활동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컨트롤 타워가 마련된 이후에도 제대로 된 대응이 불가능했던 것은, 그만큼의 수행 능력을 갖추지도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현 정부는 해당 부서의 전문화된 능력을 믿고 권력을 배분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그렇다고 그것에 맞게 대처할 전문화된 능력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정보의 공유와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 메르스 사태와 세계적으로 칭찬을 들었던 사스 사태에서 가장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부분은 다른 부분이 아니라 바로 이것, 정보에 대한 통제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건복지부는 정보 상당수에 대한 발표를 늦췄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 정보를 통제해야 하는 상황은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극소수 몇몇만이 알고 있는 최고급 정보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번처럼 격리 병원 등의 자료는 관계된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한 정보였다. 특히 한국 사회는 인터넷 사용 인구가 굉장히 많다. 즉, 이런 정보는 무조건 퍼지게 되어 있고, 통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보를 통제하는 경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분적인 정보만 계속 흘러나가는 경우 상황은 오히려 더욱 심각해진다. 일종의 황색 언론 내지 루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과 어느 정도 조작된 진실을 유포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성공적으로 조작된 진실을 유포한다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몰아갈 수 있는 건덕지가 있다. 그러나 정보를 무작정 통제하는 것은, 더 안 좋은 정보가 진실이고 그것을 밝히기 힘든 정부가 억지로 막으려고 한다는 식으로 해석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실제로 대처를 잘하느냐 잘못하느냐의 문제는 차후 문제가 된다. 비밀은 좋은 방향이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의 해석만 돕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도 자체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정보 획득 능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즉 인터넷 활용 능력 등이 떨어지는 편인 노년층에서의 지지는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보다 메르스 사태가 정치적으로 현 정권에게 더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세월호 사건은 어차피 일단은 남의 일이지만 메르스 사태는 자기 일이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 상황에서 희생당할 것은 신체적으로 허약하고 사망 가능성이 높은 노년층 스스로라는 것이다. 과거 루머의 성격이 강했던 광우병 사태도 그 꼴이 났다. 실제로 사망자가 나온 메르스에 대한 반응이 그보다 작을까? 무엇보다 건강 문제에 대한 거라면 노년층이라도 정보 획득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는 결국 현 정권 지지층의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민족주의적 블루칼라 층의 이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제 사태는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혹여 더 이어진다면 문제는 굉장히 심각해진다. 또 이런 문제가 계속됨에도 문제를 고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더욱 문제가 아닐까.
4. 결론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문제점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는 현재의 태도 대부분이 과거 박정희-전두환 등 군부 시절의 제왕적 대통령 체제에서 보여줬던 태도와 거의 같다는 것이다. 자신을 왕처럼 여기는 태도, 중앙의 과도한 권력 집중, 마지막으로 정보에 대한 철저한 통제. 이것은 독재 정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태도다.
일반적인 독재 체제에서 대통령, 총통 등 국가수반은 사실상 제왕과 다르지 않다. ‘각하(閣下)’라는 호칭 또한 이 시기의 호칭이며, 13대 대통령인 노태우 대통령 때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금지된 호칭이다. 예전 이완구 총리의 발언에 대해 이해찬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 ‘각하’ 호칭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만 봐도 현 정부가 과거의 정부로 돌아가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현재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오랜 기간 걸친 민주화 운동으로 한국은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를 달성하였으며, 박근혜 정부는 그러한 시대에 등장한 정부이다.
문제는 시기적으로는 민주화가 맞는데, 정부의 태도가 독재 정권 시기와 유사하다는 것에 있다. 보통 독재 정권은 강력한 통제력을 보유하여 정권을 수립하고, 그를 통해 독재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권을 수립하였음에도, 그 사고 측면에서는 박정희 정부 시절의 독재 정권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뭔가 현재의 사회와 정부가 서로 괴리를 느끼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말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박근혜 정부가 혹여 그런 마인드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하더라도 역행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옛날 프랑스 제2공화국은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무너져내렸다. 그것이 루이 나폴레옹, 나폴레옹 3세였다. 현재의 한국 사회 또한 굉장히 비슷한 모습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라는 후광으로 대통령에 즉위한 루이 나폴레옹,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으로 대통령에 즉위한 박근혜 현 대통령.
설마 왕으로 즉위하지는 않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순전히 ‘박정희의 딸’로 남지 않으려면 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독재 정권 시절의 마인드를 그대로 이어가서 왕이 될 것이 아니라면, 민주화 시기의 대통령에 맞는 자리와 마음으로 돌아가 소통하고 활동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민주주의 시대 선거를 통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이다. 아직 임기도 한참 남은 지금, 그러한 문제가 개선되기만을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시작을 연 ‘미국 독립 혁명’,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 이 사건들의 논리적 근간이 되는 사회계약론에서는 “모든 사람은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인 자연상태에서 이미 생명·자유 및 재산에 대한 자연법상의 권리를 갖고 있었으며, 이 권리(자연권)를 확실히 보장하기 위해 그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른 계약에 따라 국가라는 조직을 성립시켰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첫째 일은 경제 발전도 민생 안정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명제를 위해서 해야 하는 수단의 의미이고, 가장 핵심은 국민의 안전과 자연법상의 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 안전에 대한 문제에서 두 번이나 국민을 실망시켰다.
부디 다음번에는 그런 문제가 없기를 바라지만, 그 다음 문제에서도 이런 문제를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문제지만, 소를 잃었다하더라도 아직 소가 여러 마리 남았는데, 외양간을 여전히 고치지 않는 것은 더욱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2004년 7월, 노무현 정부 시절 당시 한나라당 당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했던 발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