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우리나라를 두고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살률 2위 국가는 어디인가?
퀴즈 둘.
우리나라 국보 1호는 숭례문이다.
그렇다면 국보 제2호는?
퀴즈 셋.
현재 미국의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이다.
그렇다면 2인자인 부통령의 이름은?
평소 이것저것 꼼꼼하게 챙겨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다.
정답이 뭐냐고?
2번은 원각사지 십층석탑이고
1번은 기자도 모르겠다.
사실 정답을 몰라도 괜찮다.
대부분 사람들이 2등에게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우리가 즐겨 소비하는 TV와 문화매체를 보자. 하루가 멀다 하고 지상파, 케이블 방송사 프로그램의 시청률 관련 기사가 쏟아진다.
각종 사이트의 음반, 음원 차트 순위가 시시각각 공개된다.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과 최고 득점자,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는 전파를 타고 기억되지만
간발의 차이로 2등이 된 프로그램과 콘텐츠는 잊혀지기 십상이다.
이렇듯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우리의 생물학적 특징에 기인한다고 한다.
여기엔 사회심리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각인학습’이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오리와 거위 새끼를 관찰한 결과 부화한 직후 처음 목격한 동물을 친부모로 인식했다.
곧 1등만 기억하는 건 생존하기 위한 동물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사실 살면서 기억할 것도 많고 익혀야 할 것도 많은 인간에게 있어 2등까지 기억하라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을 터.
그렇다면 1등이 되지 못한 2등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다 사라져야 하나?
그렇지 않다. 최근 프로게이머에서 방송인으로 변신해 케이블과 지상파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2의 수호신’ 홍진호를 통해 ‘1등보다 위대한 2등’ 되는 법을 배워보자.
1등보다 위대한 2등
숫자 2와 홍진호의 인연은 그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그의 약력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홍진호는 1982년생으로 2남 중 2번째로 태어나 2000년 12월에 프로게이머로 데뷔했다.
눈부신 업적과 활약을 펼쳐 개인리그 2등인 준우승만 5회를 했고(우승 경력은 없다[1]), 양대리그 본선을 22회 진출했다.
프로게이머 2번째 억대 연봉자였으며, 역대 올스타전에서 최다 득표 2위를 차지했다.(왠지 여기에도 2가 많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런 그의 인지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 같은 프로게이머이자 절대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임요환이었다.
당시 팬들은 임요환과 홍진호의 경기에 ‘임진록’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둘을 숙적이자 라이벌 관계로 지정해줬다.
그는 임요환과 여러 가지 명승부를 펼치지만, 그때마다 ‘뭔가 2% 부족한 2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었다.
2004년 ‘삼연벙 사건(3:0으로 홍진호가 임요환에게 진 경기)’을 당하는 등 그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경기들로 인해 한때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친근한 2등 이미지에는 더 도움이 돼 홍진호는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연예계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다. 박명수와 유재석 간의 관계다.
MBC ‘무한도전’ 프로그램에서 박명수는 ‘1인자 유재석을 이은 2인자’를 자처한다.
최근에는 덜하지만, 박명수는 “쩜오”라고 지칭하는 등 적극적으로 본인이 2등임을 알리고 이를 굳히려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1인자를 노리기도 하지만, 현재 그의 인기를 있게 한 무한도전에서만은 그는 ‘영원한 2인자’의 모습을 보인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홍진호와 박명수는 ‘대항마 전략(A Rival Horse Strategy)‘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경영학에서 대항마 전략은 1등을 인정한 채 2등만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서 이를 포지셔닝하는 것을 뜻한다. 성공할 경우 2등은 후발주자의 진입을 쉽게 차단할 수 있고,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이어나갈 수 있다.
1등은 아니지만… 대항마 전략
홍진호를 예로 돌아가 보자. 그는 처음에는 ‘2등’이란 꼬리표를 떨떠름해 해왔다. (프로게이머 승부의 세계에서 만년 2등이라고 하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하지만 점점 갈수록 본인 스스로가 2와 관련된 포스팅을 SNS에다가 당당히 남기고
“준우승은 의미가 없어.” 같은 자학개그도 즐겨 하는 등 대항마 전략에 어울리는 포지셔닝을 훌륭히 해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2등이 잊혀진 가운데 그는 오히려 ‘실력도 있고 외모도 훈훈하고 머리도 좋지만, 영원한 2등’ 이미지를 가지고 방송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말이다.
이런 ‘대항마 전략’은 2등 기업의 성장 전략으로도 흔히 애용된다.
산업계에서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경쟁에서 사이다인 세븐업(7UP)의 등장을 예로 든다.
1950년대 탄산 음료시장은 당시만 해도 콜라가 꽉 잡고 있었고,
이 시장에 도저히 낄 수가 없었던 사이다 음료 세븐업은 어느 날 기발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낸다. 캐치프레이즈를 “콜라가 아닌 음료”라고 한 것.
곧 소비자에게 ‘콜라 다음에는 세븐업’이라는 인식을 주게 해서 결국 세븐업은 콜라에 이은 2등 청량음료로 성공적으로 등극하게 된다.
중국 저가 스마트폰 제조기업인 샤오미의 레이쥔 CEO가 故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여러 측면에서 따라 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등은 아니지만 1등에 크게 뒤지지 않는 2등이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커피전문점 이디야도 스타벅스 점포 옆에 일부러 자사 점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말로 서브스트리트 전략이라고도 한다.[2]
굳이 1등하지 않아도 충분히 경쟁력 있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1등보다 위대한 2등이 많이 보인다.
주로 이 경우는 1등이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어서 안주했던 반면, 2등은 부단한 노력과 자기 성찰로 후세에 더 이름을 떨친 경우다.
때로는 2등이 1등을 뒤집기도 한다. 초한지에서 전투에서 계속 압도한 것은 항우였지만 결국 전쟁에서 이긴 것은 유방이었듯 말이다.
하지만 대항마 전략을 써서 성공하는 2등 기업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자신이 성공한 원인을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세븐업은 “미국은 세븐업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기울었다.
한때 박명수는 2인자 컨셉을 버리고 다른 프로그램에서 메인 MC로 나서기도 했지만 모두 조기종영되고 “무능하다”는 말까지 듣는 굴욕을 겪은 바 있다.
그렇듯 대항마전략을 쓰는 주체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솔직히 사람이든 기업이든 만년 2등만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결국 유명해질수록 언젠가는 1등을 해야겠고 1등이 욕심나기 마련인데 지금까지 해왔던 ‘2등 이미지’를 소비자에게서 떨쳐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괜히 섣불리 행동했다가 본전도 못찾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홍진호의 경우는 그런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겠다.
본인이 2등이라고 강조한 게 아닌, 팬들이 ‘만년 2등’이라고 한 대항마 포지셔닝에 본인이 부응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2인자‘란 포지셔닝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능동적인 이미지인 ‘원조 뇌섹남’ 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해 가는 홍진호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