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커다란 별이 새겨진 비브라늄 방패를 든 채 종횡무진 활약하는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 분).
어벤저스의 팀 리더이자 지휘관의 역할로, 작품 전반에 걸쳐 영웅으로서 강한 존재감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그가 가끔 나침반을 열어 안에 부착된 빛 바랜 한 여인의 사진을 쓸쓸한 표정으로 회상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여인의 이름은 페기 카터(헤일리 앳웰 분)로 캡틴 아메리카의 첫사랑이다.
캡틴 아메리카는 왜 페기 카터를 잊지 못할까. 경제학 개념인 ‘탄력성(Elasticity)’을 통해 이 남자의 사랑을 풀 수 있다.
순애보 전사의 애틋한 첫사랑
캡틴 아메리카의 첫사랑 얘기는 2011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퍼스트 어벤저>에 잘 나와 있다.영국 런던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전략과학부(S.S.R)에 들어간 카터는 캠프 라이히에서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참가한 병사를 훈련시키는 교관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허약한 훈련병 스티브 로저스(나중의 캡틴 아메리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훈련에 임하는 스티브를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저런 시험 끝에 ‘슈퍼 솔저’ 실험 대상자로 낙점된 뒤 실험이 성공하고 ‘캡틴 아메리카’가 된 스티브 로저스 카터는 충직하고 리더십 있는 그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고 둘은 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로저스는 거대 전함 발키리에 홀로 진입하는 최종 작전을 수행한다. 하지만 발키리를 격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카터는 “다음 주 토요일 같이 댄스파티에 가자”고 데이트 약속을 하지만 결국 그와의 교신이 끊어지자 울음을 터트린다.
결국 악당을 무찌르지만 로저스는 얼음 속에 갇히고, 이후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 깨어난다. 너무 변해버린 세상에 벙벙하게 있자 닉 퓨리(새뮤얼 잭슨 분)가 다가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묻는데, 로저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데이트 약속이 있었는데…(I had a date…)”라고 대답한다.
그 후 2014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저>에서는 로저스가 투병 중인 카터를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70년간 얼음에 묻혀 있었던 로저스와 달리 그녀는 이미 90대 중반이 된 처지.
병상에서 얘기하던 중 고령으로 인한 치매 증상을 보이는 카터가”로저스 살아있었군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라고 말하자 로저스는 “내 여자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거든요. 우리 춤추기로 했잖아요” 라고 말한다.
결국 두 사람의 데이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게 된다.이 때 로저스의 슬픈 미소가 아주 압권이다.
내 사랑의 탄력성은 어느 정도인가
2015년 개봉한 <어벤저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블랙 위도(스칼렛 요한슨 분)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여자를 한 번 만나보라”고 성화한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고 묵묵히 싸움에만 몰두한다. 가끔 나침반 속 그녀를 확인하면서. 그것은 그가 70년 전 카터와의 추억과 사랑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용어로 말하자면 그의 카터를 향한 ‘사랑의 탄력성’이 거의 0에 가깝게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탄력성이란 어떠한 변수가 1% 변했을 때 결과가 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를 뜻한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독립변수에 대해 종속변수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러한 탄력성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조합에 따라 ‘수요의 가격탄력성’ ‘수요의 소득탄력성’ ‘공급의 가격탄력성’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예컨대 수요의 가격 탄력성(Price Elasticity of demand)은 가격에 어떤 충격이 가해졌을 때 반응하는 정도를 나타낸 척도다.
가격의 증감에 따라 수요가 크게 변하면 ‘탄력적’이라고 하고 적게 변하면 ‘비탄력적’이라고 한다. 가격 탄력성이 높은 재화에는 영화, 연극, 옷 등의 사치품이나 소비를 쉽게 줄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반면 탄력성이 낮은 재화는 쌀 같은 생필품이나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담배는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낮은 편에 속하는데, 가격이 높아진다고 해서 담배 수요자가 크게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물건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재의 유무’ ‘시간의 흐름’ 등도 탄력성에 영향을 끼친다. 만약 대체재가 존재할 경우 사람들이 해당 재화 대신 대체재를 구입하면 되니까 탄력성이 높고, 시간은 흐르면 흐를수록 대체재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장기는 단기에 비해 탄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만약 쌀 가격이 오르면 대체재인 밀 수요가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어떠한 대상에 대한 민감도’라는 탄력성 개념만 이해하면 여러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다.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는 공연이나 콘서트에는 티켓값이 아무리 비싸도 기꺼이 구입하려 한다.
애플에서 출시되는 아이폰은 가격이 보통 100만원 가량(공기기 기준)으로 비싼 편에 속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웃돈을 줘서라도 구입하려 한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가격의 수요 탄력성이 낮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습들이다. 사랑이란 감정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점점 안정되겠지만 처음 만날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설레고 손만 잡아도 찌릿찌릿하다. 그 옛날 ‘캡틴 아메리카’라는 슈퍼 솔저가 되기 전까지 병약하고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동정남’ 로저스에게 카터는 무덤 속에서 자신을 처음 꺼내준 여신과도 같았을 것이다.
카터를 향한 그의 여자의 대한 ‘사랑 탄력성’이 비탄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니 블랙 위도가 다른 여자를 만나보라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또 현재로썬 그에게 있어 카터를 대신 할 수 있는 대체재도 없어 보인다. 어떤 매혹적인 여성을 데려와도 그녀와의 추억만 간절해질 뿐이다.
시간의 흐름은 또 어떤가.
지금 마블 히어로들이 날뛰는 세상에서야 70년이 넘게 흘렀지,세계 2차대전 당시 얼음 속에 파묻혀 있다가 70년 뒤에야 깨어난 로저스에게 카터와의 뜨거운 사랑은 아직 몇 년도 안 된 일이지 않나.
시간의 흐름도 그의 카터를 향한 사랑 탄력성이 왜 낮은가를 보여줄 뿐이다.
아아
캡틴, 이런 카터밖에 모르는 바보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