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사라진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倂記)가 다시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교육당국이 한자학계를 중심으로 연구팀을 짜서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초등 교과서의 한자 병기 논란
애초 이는 교육부가 지난해 ‘2015 초·중등 교육과정 총론’ 시안을 발표하면서부터 논란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당시 교육부는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 학교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의 확대를 검토한다”고 밝혔던 것이다.
초등 교과서에서 병기하던 한자가 사라진 게 1970년이란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1969년이니 나는 당연히 괄호 속에 한자가 나란히 표기된 교과서로 공부했다. 내 기억으론 한자는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것 같은데 주로 ‘생활(生活)’, ‘학교(學校)’, ‘시장(市場)’과 같은 아주 일상적인 어휘가 중심이었다.
중학교 땐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아마 <국어> 교과서는 비슷했던 것 같다. 한자가 나란히 쓰인 교과서로 공부해서 한자에 익숙해졌느냐고? 글쎄,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한자를 낯설지 않게 받아들인 세대다. 그 시절엔 신문은 물론이거니와 잡지나 단행본에서도 국한문 혼용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작 <한문> 교과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세대다. 내가 받은 한문 교육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학기가 다였다. 대학에서 <교양한문>을 한 학기 이수했으니 나는 <한문>을 통틀어 꼭 1년만 배운 셈이다.
우리 세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엔간한 한문은 힘들이지 않고도 읽어낸다는 것이다. 역사적 기록과 같은 아주 전문적인 영역만 아니면 글자를 읽는 데는 ‘별 애로사항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쓰기’와 ‘한문의 해석’은 좀 다른 문제이긴 하다.
<한문>교과를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자가 별로 불편하지 않은 까닭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모르긴 해도 한자가 혹은 그것이 포함된 문자생활이 일상에 꽤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게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신문이 오늘날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한자를 혼용하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을 읽으면서 막히는 한자는 아버지나 형을 통해서 해결하곤 했다. 도와주는 이가 없어도 괜찮았던 것은 앞뒤 문맥을 살펴서 대충 때려잡아도 기사를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이 한글 전용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은 1988년에 <한겨레신문>이 창간되면서부터였다. 이 ‘새 신문’이 선택한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편집은 곧 대세가 되었고, 마침내는 <조선>, <동아>와 같은 보수지들도 그걸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나아갔다.
아직도 이들 보수 신문들은 한자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섞어 쓰는 글자라고 해 봐야 ‘미(美)’, ‘일(日)’ 같은 나라이름, ‘여야(與野)’, ‘남북(南北)’, ‘박(朴)’ 따위가 고작이다. 그것은 이미 한글전용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방증이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한자를 쓰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지만 그게 한글전용의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글전용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자, 혹은 그것으로 상징되는 국한문 혼용시대의 문화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논리는 단순 간명하다. 자신들이 한자를 통해 문자를 이해하고 문화를 이해했듯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거치길 희망한다. 즉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서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의 영역을 넓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한자 공부는 학습에 도움이 된다?
이 논리의 근거도 단순 명쾌하다. 한자는 뜻글자이고 우리말에 한자어가 70%쯤 되므로 한자를 익히게 되면 자연히 우리말 어휘력은 물론 조어(造語) 능력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국한문을 섞어 쓰던 자신들의 과거를 상수(常數)로만 바라보는 이 관점도 단순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 한자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는 세대들이 잊은 게 있다. 이 한글 전용 시대를 저 국한문 혼용의 시대로 되돌리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족이다. 이제 아이들은 한자를 영어나 일본어 같은 외국어나 외국문자로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한자학습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것은 불문가지다.
아이들에게 한자의 훈을 가르치면서 뜻글자로서의 한자를 통해 아이들의 어휘력과 조어능력을 제고하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고, 한자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하게 한다.
그러나 한자 학습이, 그리고 한자시험의 성과가 예전의 자신들의 그것과 같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한자능력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이르면 문제는 더 갑갑해지고 만다.
언어(문자)능력이란 일상에서 그것과 부딪히면서 향상된다. 그러나 전문적 영역을 빼면 한자를 사용할 기회도 그것을 해독할 기회도 많지 않다. 한중일 삼국이 한자문화권이라는 얘기도 이제 예전과 같지 않다. 일본은 그나마 낫지만 중국은 이미 간자로 재편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한자도 ‘외국문자’일 뿐이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한자깨나 읽는다는 사람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번체를 대신한 간자가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추세를 따라 일부 학원에서 간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모양이지만, 그럴 경우 간자는 중국에서만 통용될 뿐 국내에서는 소용에 닿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매불망 ‘한자사랑’을 부르짖는 이들은 학부모만은 아니다. 그만저만한 이 땅의 사회지도층 인사들, 정치인들도 거기서 빠지지 않는다. 이들은 끊임없이 한자를 되살리려 애쓴다. 2011년에 ‘국어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국어를 ‘한글과 한자로 표현되는 한국어’로 바꾸자)을 낸 22명의 국회의원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관련기사)
결국 이들은 드디어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한글과 혼용하는 보조문자가 아니라 영어나 일어처럼 외국문자로 돌아간 한자를 되살려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실제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방안에 대해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 연구진까지 반대 입장을 정리(관련 기사)한 사실도 밝혀진 마당이다. 초등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은 대부분 이 방안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초등국어교육학회에서 초등교사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자 병기 반대 비율을 65.9%에 이르렀다. 또 지난달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에 대해 만장일치로 반대 입장을 채택한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이를 교육부에 건의한 바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를 계속 추진할까. 모르긴 해도 교육부는 모르쇠 하고 자기 갈 길을 갈 것이다. 전국의 수천 개 고등학교가 외면한 교학사 <한국사>를 살리기 위해 교육부가 감행한 온갖 무리수를 돌이켜보면 답은 뻔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무리수로 여론과 시대정신을 역행하는 일은 쉬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은 2015년 현재의 시계를, 45년 전인 1970년으로 되돌리는 일인 까닭이다. 굳이 교육단체들의 반대투쟁이 아니더라도 상식과 순리가 그 역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 이 풍진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