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이 다시 논란이다. 그의 연설은 제국주의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과 주변국의 식민지배 등에 대한 그의 과거사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무대였는데도 그는 어정쩡하게 이를 피해갔다는 것이다.
아베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한 과거 도발적 발언은 자제하고 ‘침략전쟁의 사죄와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인식’은 ‘계승한다’고 했지만, 맥락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또 ‘식민지배와 침략’이나 ‘사죄’ 등 명확한 용어도 피해 한계를 드러냈다.[이상 연합뉴스 참조]
이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데 그 중 눈길이 가는 것은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쓴 소리다. 아베의 역사 인식에 대해 비판적인 일본인이 어찌 그만일까마는 그는 그 명망에 걸맞은 분명하고 엄중한 태도를 취했다.
오에는 아베의 연설을 ‘너무 노골적인 거짓말’이라고 비난했고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지난 3월 서울을 찾았던 그는 “일본군 위안부는 천황제까지 그 뿌리가 이어진 일본 사회의 남성 중심주의가 부른 여성 차별의 결과”라며 “일본 정부가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질타한 바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 총리 메르켈의 동정도 눈과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메르켈은 지난 3일 최초의 나치 강제 집단수용소인 바이에른 주 다하우(Dachau) 수용소를 찾아 ‘나치 과거사’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수용소 해방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독일 현직 총리로는 처음이다.
기념식 연설과 2차대전 종전 70돌(8일)을 앞두고 내놓은 영상에서 메르켈은 자신과 독일의 역사 인식을 분명히 했다.
“나치와 생각, 신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위해, 또한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이를 기억하겠다.”
“역사에는 결말(Schlussstrich·종지선)이 없다.”
“독일은 수백만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잊어선 안 된다. 아우슈비츠는 항상 인간성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깨운다.”
“아우슈비츠는 또한 독일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이민자들)을 적대시하는 구호를 따르지 말 것을 경고한다. 자유, 민주주의, 법치는 항상 각성과 헌신을 요구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출신이라는 까닭으로 모욕당하고 공격받거나 위협받는 것은 독일로서는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종교와 인종에 관계 없이 모두가 자유로워야 하고 안전해야만 한다.”
유대인 20만 명이 거쳐 갔고 1945년 미군에 의해 해방되기까지 공식적으로 3만 2천 명이 숨진 수용소여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국가수반으로서 의례적으로 행하는 수사도 아니다. 그것은 나치 패망 후 독일이 지금껏 일관되게 견지해 온 태도요 역사인식이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경비원으로 일한 89세 노인이 미국에서 체포됐다거나 독일 검찰이 93세의 아우슈비츠 경비원을 기소했다는 뉴스가 그 방증이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반성은 지난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에 무릎을 꿇으며 시작되었다.
지난 4월 13일 세상을 떠난 독일의 노벨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도 “오늘의 독일이 나치즘이 남긴 정신적 물질적 폐허 속에서 성숙한 민주공화국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김누리 교수). 그는 1989년의 통일 공간에서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아우슈비츠가 있는 한
독일통일의 도덕적 정당성은 없다.”
이러한, 독일과 독일인들의 역사인식과 태도는 일본군 위안부 등과 같은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 지도자와 우익들의 반성 없는 행태와 명백히 대조된다. 그것은 나치즘으로 떨어진 독일의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고 유럽연합의 중심국으로 떠오르게 한 기본적 힘이었다.
일본은 패전(저들의 표현으로는 종전) 70주년에 그들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잔혹한 범죄행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 야스쿠니 신사에 아베와 그의 각료들 몇이나 참배할 것인가 하는 게 뉴스가 되고 있는 아시아에서 다시 지도적 위치로 오르고자 하는 일본의 야심이 야심으로 끝나는 이유다.
귄터 그라스는 독일이 도덕적 권위를 되찾는데 이바지했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성찰과 분노가 일본의 그것을 회복하게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2차대전 종전 70돌을 맞는 2015년 현재, 독일과 일본의 차이다. 결코 좁힐 수 없는, 기억의 간극이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