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국 여자든 만난 지 1분내에 허그할 수 있는 남자, 쫄딱 망해 캐나다로 건너가서 풍찬노숙했고, 석 달 동안 매일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영어를 배웠던 사람, 거기서 부동산 사업으로 제법 돈을 벌었다는 사람, 벤처투자자들이 사업계획서도 보지 않고 투자한 스타트업 창업자… 디캠프에 1년쯤 입주했다가 나간 500비디오스의 양성호 대표 얘기다.
양 대표가 지난 5일 한양대학교에서 대학생 170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디캠프 교육 담당 김윤진 매니저가 하루 전에야 강연을 부탁했는데도 양 대표는 기꺼이 수락했다. 당초 이날 강연해 주기로 했던 분이 갑작스레 “메르스 때문에 강연할 수 없다”고 알려오는 바람에 디캠프로서는 ‘히든카드’를 꺼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양 대표 강연은 한 편의 ‘슬픈 코메디’였다. 양 대표는 인생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슬픈 과거를 웃겨 가면서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양 대표의 ‘슬픈 얘기’를 깔깔깔 웃으면서 들었다. 양 대표는 강연 중간중간 심플로우(실시간 청중응답시스템)로 들어온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했고 좋은 질문을 한 학생들에겐 선물을 주기도 했다. 양 대표 강연 중 일부만 소개한다.
2005년 캐나다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꽤 잘나가고 있을 때 월트디즈니에서 전화가 왔다. 임원이 놀러 가는데 펜션이 필요하다, 사진으론 좋은데 사진만으론 못 믿겠다, 비디오를 찍어서 보내주라. 이런 얘기였다. 비디오를 찍어 보내줬다. 그때 ‘비디오가 신뢰를 준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미래는 비디오가 주가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요즘 배달의민족 등록 업소용 비디오 찍는 사업을 하고 있다. 텍스트+사진으로 된 정보를 누군가 비디오로 옮겨줘야 하는데 일단 저렴해야 한다. GS샵과도 계약을 맺고 사진을 비디오로 바꿔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이리얼트립도 우리 고객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가이드가 상품 아닌가. 소개 영상이 있으면 훨씬 신뢰가 간다.
다음달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와도 함께 일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망설이느냐 실행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하는 사업은 특별한 게 아니다. 특별한 아이디어 가지고 했을 땐 항상 망했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디어 없이 했을 때 성공 가능성이 컸다.
사업을 해서 성공도 했고 실패도 했다. 사업 망한 뒤 캐나다로 가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캐나다 생활은 배고픔, 서러움, 오기. 이 세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캐나다 가기 전 한국에서 사업 잘 됐다. 아주 잘 됐다. 기세등등했다. 외제차 타고 다니고… 마지막 순간 어떤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다. 믿었던 회사 간부였다. 충격이 컸다.
캐나다로 떠났다. 그동안 쓰레기 같은 생활을 했구나 반성도 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인생을 포맷해 버리고 싶었다. 내 자신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보기로 작심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에 영어도 안되고… 해안가 어느 집, 2층침대 4개가 빼곡히 들어찬 작은 방. 월세 12만원. 여기서 기거했다. 먹는 문제. 같은 방에 세븐일레븐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이 끝나면 먹을 것을 가져오곤 했다. 그걸 얻어먹고 살았다.
일단 영어를 배워야 했다. 통신회사 고객센터를 이용했다. 가입할 것처럼 전화를 걸면 친절하게 대해준다. 5분만에 끊은 날도 있고 45분 동안 얘기한 날도 있었다. 매일 고객센터에 전화 거는 게 일이었다. 수신자부담이라 공짜다. 상담원이 각국 사람이라 인도 발음, 호주 발음… 다 배울 수 있었다. 전화를 걸고 주유장천 얘기를 했다.
전화번호부를 뒤지면서 돈 버는 방법을 고민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 명단을 뽑았다. 깨알같이 프린트 해서 벽에 붙여놨다. 700명쯤 됐다. 위에서부터 한 명씩 전화를 걸었다. 이런 걸 “콜드콜”이라고 한다. 마구잡이로 들이댔다. 보수를 받지 않을 테니 일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안됐다. 불법체류자 아닌가. 3개월 이상 이 짓을 했다.
어느날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남은 돈이 300만원쯤 됐다. 이 돈으로 부동산 임대할 테니 임대 요령을 알려달라고 했다. 콜드콜 시작한 지 5개월쯤 됐을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 사람이 “한 번 오라”고 했다. 갔다. 가서 말했다. 300만원 렌탈은 하되 렌탈은 필요 없으니 부동산은 가져가고 일 좀 시켜달라고 했다.
키가 크고 까무잡잡한 사람인데 그때 나이가 56세였다. 그 양반이 “껄껄껄” 웃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갔다. 변기 고치는 일을 시켰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굉장히 유명한 회장이었다. 수백억대 자산가였는데 나를 기특하게 여겨 그때부터 데리고 다녔다. 아들이 내 또래인데 해외로 나가고 없어서 나를 아들처럼 여겼다. 변기 뚫는 일부터 시작해 시멘트 바르는 일도 했고… 이것저것 수리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이 양반 투자회사는 낡은 고급 부동산을 사서 수리하고 인테리어를 새로 한 다음 비싸게 파는 일을 주로 했다.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고급스런 가구로 멋지게 꾸며서 해외에서 온 사람들한테 임대도 하고 재판매도 했다. 나는 아저씨가 만원, 이만원 준 것을 모아서 차를 샀다. 60만원짜리였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문짝도 열리지 않고 안쪽에 테이프 붙이고… 그 차를 타고 열심히 일 다니면서 노하우를 배웠다.
다행히 이 분의 도움으로 취업비자를 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 당시 밤마다 잠을 세 시간씩 자면서 부동산 매물을 분석했다. 누가 언제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파는지… 이런 걸 분석하면 예상할 수 있고 예상이 비교적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사서 되팔고 사서 되팔고… 3년도 안 돼 100억원 이상 벌었다. 물론 다 내 돈은 아니지만.
그때 갖고 싶은 차는 DBS였다. 제임스 본드가 007 영화에서 타고 나온 영국 수제차. 밤마다 이 차가 달리는 비디오를 봤다. 이걸 보면서 힘을 냈다. 정확히 3년만에 이 차를 샀다. 회장님과 같은 날 하나씩 샀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6억이란 돈을 주고. 그 뒤에 포르쉐도 샀고… 내 차가 세 대였다. 화려한 싱글 라이프. 정말 열심히 일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다가 어떻게 창업 하게 됐느냐? 부동산 임대업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임대 사이트를 다 사용해 봤다. 그때 가장 잘나가는 홈어웨이닷컴 사이트도 사용해 봤는데 불편했다. 어느날 다른 사이트를 발견했다. 불편을 모두 없앤 사이트였다. 주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에어비앤비라는 회사였다. 공동창업자들이 사업을 시작한 아파트로 갔다. 제안을 했다. 니네 사진을 내가 다 찍어주겠다. 당시 나는 부동산 전문 사진 촬영 회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면서 제안했다.
캐나다로 돌아왔더니 답신이 왔다. 캐나다 파트너가 돼 달라는. 그래서 에어비앤비 사진 촬영 파트너로 일했다. 에어비앤비는 온라인으로 창업을 했지만 창업 초기엔 오프라인 일도 많이 했다. 벼룩시장도 운영했다. 온라인 회사가 왜 이런 것을 할까? 나중에 깨달았다. 온라인 사업은 오프라인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에어비앤비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확장성 있는 사업’이라야 신바람이 나는구나, 확장성 있는 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계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업을 했다.
양 대표가 강의하는 동안 질문이 쇄도했다. ‘해외로 나가지 않고 인생을 포맷할 수는 없나요?’ ‘외국 여자랑 1분만에 허그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등등. 양 대표는 일일이 답해줬고 맘에 드는 질문을 한 학생들에겐 선물을 줬다.
“내가 유쾌한 에너지를 주면 남도 나한테 유쾌한 에너지를 준다. 남한테 뭔가를 얻으려고만 하면 안된다. 유쾌한 에너지를 남한테 주면 유쾌한 에너지를 받게 된다.” 이런 이야기도 했다.
양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올해 초 핀란드 대사관저 만찬에서였다. 누군가 “센터장님, 사진 찍어 드릴게요” 하면서 들이댔다. 느낌이 좋았다.
알고 보니 디캠프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대표 양성호씨였다. 그 후 지난 3월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SXSW 2015’에 함께 다녀왔다. 양 대표는 외국인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포옹하며 요란을 떨기도 했다. 나중에 “친구인가요?”라고 물으면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했다. 아픈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일어서는 양성호 대표. 늘 옆에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사진=김윤진)
원문: 광파리의 IT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