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이자리에 섰습니다. 워낙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해서 서울시는 금일 저녁 긴급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중략)
35번 환자는 14번 환자와 접촉한 의사로서 5월29일부터 증상이 시작됐고 5월30일 증상이 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30일 1565명이 참석한 개포동 재건축 조합행사에 참석했고, 대규모 인원이 메르스 감염위험에 노출되게 됐습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 6월 4일 기자회견 중
6월 4일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의사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감염 이후 천 명 이상 단위 모임에 참석하기까지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메르스 감염 사태가 한결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발전했다. 언론이 앞다퉈 사태를 보도하고 서울시장이 야심한 시각에 기자회견을 여는 등 상황이 심상찮다. 우선 6월 4일부터 5일 새벽까지 있었던 일을 시계열적으로 짚어보자.
박원순의 사실 오도: 의사는 증상이 나타난 후 외부활동을 멈췄다
1. 6월 4일 오후 4시경, 프레시안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삼성서울병원 의사 A씨가 질병관리본부의 일일 환자 집계 현황에서 빠졌다는 의혹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2. 6월 4일 밤 10시경,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의 종합병원 의사(프레시안이 보도한 의사 A씨)가 메르스 증상에도 불구하고 천여 명 규모의 행사에 잇따라 참석했는데, 서울시는 이런 중차대한 사실을 중앙정부로부터 공유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스스로 대책본부장으로 나서고 서울시 자체적으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겠다 밝혔다.
3. 6월 5일 오전 2시경, 프레시안은 의사 A씨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한다. 메르스를 의심할 만한 증상 및 정황은 31일 아침부터 나타났고, 이후 심포지엄은 신청만 하고 참석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을 다루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묘사한 의사 자신의 행보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프레시안 기사가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바, 이미 확진 판정된 서울 대형 병원 의사가 정작 환자 집계에서 빠진 것은 의아한 일이다. 일부러 은폐했다는 의혹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왜 그러했든 중앙정부가 이번 사태에서 완전히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앙정부가 엉망이니 서울시에서 나선 것도 이상하진 않은데, 이런 중요한 내용을 다루면서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또한 잘못이다.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은 의사 본인이 밝힌 행보와 상당부분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불안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
의사의 증언이 거짓말일 수도 있겠으나 가능성은 낮다. 의사 A씨가 얘기한 것처럼, 서울시가 발표한 의사 A씨의 행적이라는 게 사실 의사 A씨가 질병관리본부와 인터뷰하며 스스로 말했던 것을 한 단계 거쳐 전달한 것이기 때문. 의사 A씨가 거짓말을 하고자 했다면 이미 질병관리본부에서부터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무조건적 자택 격리는 사회 마비를 낳을 뿐이다
아주 조금의 의심만으로도 무조건 자택 격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르스 확진을 받은 의사 A씨는 초기 증상이 자신이 앓았던 알레르기성 비염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초기 증상으로는 아무리 숙련된 의사라도 이것이 메르스인지 구분할 수 없다. 가벼운 감기, 혹 단순한 컨디션 저하, 늘 달고 살던 비염, 그 모두가 메르스를 의심케 하는 증상을 일으킨다. 단순한 감기 환자가 혹 메르스가 아니냐고 묻는 문의전화가 폭주하는 것도 같은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조금의 의심만으로도 격리시키는 게 메르스 전염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겠지만, 이건 사실 그냥 나라를 마비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의사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으나, 메르스 환자와 직접 접촉한 의료진들은 이미 자가격리 절차에 들어가고 있다.
직접 접촉하지 않은 의료진도 모두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면 여기저기에서 의사 없는 병원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의사 개인을 탓하기 전에, 과연 누가 가벼운 컨디션 저하나 늘 갖고 있던 가벼운 감기 증상만으로 스스로를 격리시킬 것인지 자문해 볼 필요도 있다.
여전히 무책임하게 유체이탈 중인 정부
일어난 결과만을 두고 남을 탓하는 건 쉽다. 그러나 개인을 무개념이라 공격하는 것보다는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지 역지사지를 해 보고,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감염을 막기 위한 최적화된 대안은 어떤 것일지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메르스의 주요 감염 경로가 비말 감염, 즉 기침 등으로 인해 환자의 침 등이 퍼져 일어나는 감염인 만큼 실제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감염력이 사실상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실 개개인이 손 잘 씻는 것이야말로 최적의 대안일 것이다.
한편 그리고 이 와중에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이리 말씀하시고 있으니…
靑 “서울시·복지부 발표 달라 혼란 커지는 상황 우려”
문형표 “일방적 발표로 국민 오해 불러일으킨 서울시에 유감” (링크)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에 문제가 있었다면 중앙 정부는 더 정확한 정보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그 전에 왜 환자가 누락되었는지에 대해 해명하는 게 우선일 것이고. 이 와중에 그냥 ‘일방적 발표에 유감’이라는 입장만 발표하고 해명이나 설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중앙정부가 사태를 투명하게 컨트롤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