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버라이어티의 운명
브라운관 뒤에 ‘리얼’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었나보다. ‘무한도전’부터 ‘패밀리가 떴다’ 까지, ‘리얼’이란 이름을 단 버라이어티는 늘 대본과 조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2013년 설 연휴를 앞두고 또 한 번 큰 사고가 터졌다. 세계 각지를 탐험하며 ‘리얼’한 오지 생활을 보여주어 사랑받았던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이 조작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시작은 연예인 박보영 씨의 소속사 관계자가 올린 글 한 토막이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 글은 ‘정글의 법칙’을 “개뻥 프로그램” “리얼 버라이어티 플러스 다큐? XX하네” 등으로 묘사했다. 이 글은 (당연하게도) 순식간에 인터넷 곳곳에 퍼졌고 기사화까지 되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해당 글을 쓴 소속자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해명 및 사과글을 올려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딱히 그가 제기한 ‘조작설’을 믿지 않았고, 그저 소속사의 경거망동을 탓하고 젊은 여배우의 앞날을 걱정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내 사태는 반전된다. ‘정글의 법칙’에 등장한 부족이 사실 관광상품 패키지를 운영 중이라는 자료가 인터넷 커뮤니티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최후의 전사 부족이며 절대 자극해선 안 된다던 한 주민은 풍채 좋은 백인 남성과 기념사진을 찍었고, 외부인과 접촉한 적이 없다던 원시 부족은 아예 총출동하여 한 백인 여성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아주 위험하다며 몇 시간이나 걸려 등반한 활화산 야수르는 구글을 몇 초만 뒤져봐도 ‘가장 접근성 높은 활화산’으로 불리며 어린이도 오를 수 있는 관광지라는 정보가 나온다. 제작진의 해명이 나오긴 했지만, 모든 의혹을 깨끗이 해결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논란이 터진 후에도 시청률은 굳건하지만, 조작 논란이 방송 당일에서야 불거지기 시작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속단하긴 힘들 것이다. ‘정글의 법칙’이 그 어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보다 ‘리얼’을 강조해왔음을 생각해 볼 때 이 사태는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에 큰 악영향을 줄 것은 물론, 심하면 폐지까지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리얼
더욱 극한 상황에서의 오지 탐험을 내세운 영국의 프로그램 맨 버수스 와일드(Man vs. Wild). 코끼리 똥을 짜 수분을 섭취하고 벌레를 먹어 단백질을 보충하는 –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죠”는 우리나라에서 이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대사 중 하나다 – 등 실로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 부르기 아깝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 베어 그릴스는 ‘생존왕’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인터넷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프로그램조차 상당 부분 연출이 섞여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이 정도로 위험한 프로그램을 ‘리얼’로 만든다면 아무리 ‘생존왕’으로 불리는 주인공이라도 무리일 것이다. 급류를 지나가고 맹수와 마주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면, 정말 이걸 계속 리얼로 찍으려면 아마 그의 클론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하물며 특별한 서바이벌 기술을 익힌 것도 아닌 보통 연예인이 찍는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법의학에서 사람의 사인을 공부하다 보면 사람은 생각보다 약한 존재이며, 또한 생각보다 쉽게 죽을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사람에게 맞춰 만들어진 안전한 인공물 대신 자연 그대로의 위험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오지에서 사람은 더욱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급박한 지형과 급류, 맹수, 감염…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는 한이 없다. 2층 높이에서만 떨어져도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 있고, 야생동물은 그 자체로도 위험할 뿐 아니라 파상풍이나 광견병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시킨다 – 광견병의 치사율은 100%다 -. 사람은 물속에서는 숨조차 쉴 줄 모르는 존재다. 멀리서 바라보는 대자연은 낭만적인 정경을 선사하지만, 정작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심각한 상처와 죽음의 그림자가 늘 사람의 곁을 떠돌아다닌다. 인공물의 도움 없이는 말이다.
좋은 반면교사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바로 우리나라에 있었다. KBS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도전 지구탐험대’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탐험하는 포맷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아무래도 시청자에게 인기 있는 소재가 그런 쪽이기 때문인지 오지 탐험이 무척이나 자주 다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도전 지구탐험대’는 온갖 사고에 시달렸다.
1999년에는 탤런트 김성찬 씨가 적절한 예방접종 없이 출국했다가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 2005년에는 개그맨 정정아 씨가 아나콘다에 물리는 사고가 일어났고, 이로 인한 비난여론은 결국 프로그램을 폐지시키기에 이르렀다. 물론 방송사는 프로그램 폐지가 사고와는 무관한 결정이라고 말했으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도전 지구탐험대’와 ‘맨 버수스 와일드’, ‘정글의 법칙’을 병렬해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각 프로그램의 형식과 기획 의도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온갖 사고를 일으킨 ‘도전 지구탐험대’라 해서 연출이 완전히 배제된 ‘리얼’ 프로그램이리라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타산지석이 될 수는 있겠다. ‘진짜 리얼’이란 불가능하거나, 혹 터무니없이 위험한 것임을 증명하는.
이상적인 리얼을 원하는 사람들
‘진짜 리얼’이란 이처럼 위험한 것이니, ‘정글의 법칙’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정글의 법칙’은 선을 너무 많이 넘었다. 해발 400m가 채 안 되는 화산을 죽음을 불사하기라도 하는 양 비장하게 넘고, 관광상품으로까지 개발된 부족을 두고 극도의 위험성을 강조했으며, 지역 부족민의 원시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기도 했다. 사실과 거짓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아예 거짓 쪽으로 넘어져 버렸다. 브라운관 너머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연출의 묘를 발휘한 게 아니라, 아예 시청자가 보는 그 장면을 왜곡하고 기만했다.
혹자는 방송이 연출인 건 다들 알고 넘어가는 사실 아니냐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방송가의 관례일 수는 있어도, 시청자 사이의 상식은 아니다. 야수르 화산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글의 법칙’에 등장한 부족들이 사실 프로그램이 묘사한 것처럼 위험한 부족이 아닐 수 있음을 감안하고 보는 사람들은? 사실 그게 그냥 관광 상품 패키지일 뿐일 수 있다고 미리 고려하고 보는 사람은? 종종 업계의 관행을 대중의 상식으로 치환해 면죄부 삼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그리 합당한 변명은 아니다.
사실, ‘리얼(Real)’이란 단어가 곧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이야말로 대중의 상식이다. ‘리얼’이 거짓을 뜻하고, 그 ‘리얼’에 다시 ‘진짜’란 형용을 붙여야만 리얼이란 단어의 뜻이 온전히 전달되는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대중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글의 법칙’을 전혀 변명해줄 수 없는 것 또한 아니다. ‘리얼’은 위험하다. 비단 완벽한 ‘리얼’이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의 불찰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도전 지구탐험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정글의 법칙’이 브라운관 너머 전달되는 것과 똑같은 상황, 똑같은 위험성 아래에서 촬영되었다면, 지금쯤 연예인 한두 명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오히려 시청자들이 안전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제작진을 탓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부족민들과 스태프들이 협의를 거치고 안전한 길을 묻는 장면을 브라운관 너머까지 보여줄 수는 없다. 그건 재미가 없다. 이미 안전하다는 걸 알고 보는 ‘정글의 법칙’은 못 만든 다큐멘터리로 그 성격이 변해버린다. 기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미 수십 번은 다룬 부족의 생활상과 오지의 모습을, 그것도 지극히 단편적으로 다루는 그런 프로그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리얼’을 감내하는 순간 ‘버라이어티’는 사라진다.
그뿐 아니다. ‘리얼’은 종종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실상 ‘정글의 법칙’이 방송되는 동안,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어떤 출연자는 말만 많다며 비난받았고, 또 누군가의 하차 논란이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반면 모든 일에 위험을 무릅쓰고 발벗고 나서는 김병만 씨는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출연자들의 짜증, 지친 모습, 하차 요구, 이기적인 모습, 이런 것들도 모두 연출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연출된 상황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는 있다. 오지에 던져져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이 모두 김병만처럼 이상적인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때로는 짜증을 내고, 녹초가 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리얼’한 상황이라면 말이다. 이런 모습이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정글의 법칙’은 이렇게 강변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Unreal) 리얼(Real) 말이다. 설령 그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기만하게 될 뿐이라 해도, 기실 세상 그 무엇이 그러지 아니하던가.
환상과 거짓
그래서 모든 프로그램은 결국 위태로운 외줄타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청자들이 보고자 하는 환상을 보여줘야 할 책무와, 또한 그러면서도 그들을 기만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양 손에 쥐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리얼한 세상을 잘라내고 다시 이를 접붙여, 시청자들이 원하는 환상으로 만들어내 브라운관 너머로 보여주는 마술이 필요하다. 때로는 리얼한 세상에 무게가 쏠릴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환상에 무게가 쏠릴 수도 있지만, 양자 중 어느 한 쪽을 완전히 놓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노골적인 기만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연출로 만들어진 환상이 아예 진짜 세계를 전부 뒤덮어버릴 정도라면, 그것은 그냥 거짓이다. 시청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이뤄지는 교묘한 연출만으로도 이런 일이 이뤄질 수 있다. 심지어 뉴스조차도. ‘정글의 법칙’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이미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그 화면, 그 장면에조차 거짓을 섞어버렸으니까.
그래도 화두는 남는다. 어디까지를 연출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있는 ‘환상’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정도를 넘어섰을 때 이를 시청자에 대한 ‘기만’과 ‘거짓’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도를 아예 넘어서 버린 ‘정글의 법칙’이야 쉽게 탓할 수 있겠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역치를 넘어섰을 때 이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쉬이 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질답의 선후를 뒤바꾸어버린 토론 프로그램, 취재원에 밝힌 목적과 실제 기사 방향이 따로 노는 뉴스 프로그램, 섭외된 출연자가 두 엄지를 치켜드는 맛집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이미 TV 속 세상은 환상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뒤섞여버렸기 때문이다.
리얼과 버라이어티, 다큐와 드라마를 섞어냈다는 ‘정글의 법칙’은 결국 필연적으로 모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공존하는 대신 충돌하며, 결국 허구를 연출하며 막을 내린다. 아마 이런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교훈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