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봤습니다. 거기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더군요. 여자 주인공 아버지가 “코코아 마실래 ?” 하니까, 이렇게 대답을 한 겁니다.
““No dad I do not want cocoa, honestly, I’m seventeen years old!” (아뇨, 아빠, 실은 코코아 마시기 싫어요. 저 17살이라구요 !”)
일부에서는 당시 23살이던 여배우 그웬 스테이시가 이런 대사를 내뱉는 것이 코미디라고 조롱을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솔직히 저 ‘코코아는 애들이나 마시는 것’이라는 식의 대사가 무척이나 모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코코아라고 하면 정말 초콜렛 우유 정도로 취급되면서 ‘애들이나 마시는 음료’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하지만 또 의외로 ‘핫 초컬릿’이라고 하면서 위에 크림 같은 걸 얹고 (결정적으로) 비싼 가격표를 붙이면 뭔가 근사한 고급 음료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마시던 코코아는 과연 싸구려 애들 음료이고, 요즘 나오는 핫 초컬릿은 고급스러운 신사숙녀들의 음료일까요 ? 싸고 비싸고를 떠나서, 다큰 어른이 코코아 마시면 창피한 일인가요 ?
하지만 말입니다, 어른들도 초컬릿은 잘만 먹습니다. 제가 직장 생활 시작하면서 의아했던 점 중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기집에서 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다음에 ‘식사는 뭘로 할래요’ 하고 묻더라는 점이었고 (그럼 여태까지 먹은 건 뭐였지?), 해외 출장 다녀오는 사람들은 부서 사람들 선물로 공항에서 초컬릿을 사오더라는 점이었지요.
고기집의 배부르게 처먹고 나서 ‘식사는요’ 하는 점에 대한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만 (물론 대답은 ‘냉면이요’라고 냉큼 잘만 합니다) 해외 출장 선물로서의 초컬릿은 생각해보면 아주 쉽게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세상에 초컬릿 싫어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이렇게 세상 사람 다 좋아하며 잘만 먹는 초컬릿은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을까요 ? 그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먹는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마시는 것이었지요.
다들 아시다시시피 초컬릿은 남미의 아즈텍(Aztec) 및 마야(Maya) 사람들이 재배했습니다. 당시 이 양반들은 이것을 음료로 만들어 마셨는데, 맛은 요즘 코코아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카카오 99%라는 다크 초컬릿 드셔 본 분이 아니더라도, 원래의 코코아 가루는 상당히 씁쓸하쟎습니까 ?
불행히도 카카오 열매의 원산지는 남미인데, 초컬릿에 꼭 들어가야 하는 설탕의 원산지는 인도 쪽인지라, 아즈텍 사람들은 설탕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옥수수 가루와 (독특하게도) 칠리 고추를 넣어서 맛을 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즈텍의 정복자 코르테즈 (Hernan Cortes)도 이것을 맛보고는 뭐 그닥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복자는 스페인에 귀국할 때 왕실 진상품으로 이 카카오 콩 (사실 콩이 아니라 씨앗이지요)을 가져갔습니다. 이유는 아마도 아즈텍 사람들이 이 초컬릿 음료를 최음제로 애용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일단 아즈텍의 황제 몬테주마(Montezuma) 2세 자신이 하루에 무려 50잔의 코코아를 마셨으니, 스페인 사람들이 그 효능에 의심을 품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게다가 따로 화폐가 없던 아즈텍 제국에서는 카카오 콩을 돈으로 주고 받을 정도로 귀하게 여겼으니, 스페인 사람들이 비록 자기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카카오 콩이 뭔가 좋은 거라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아즈텍 제국에서 암탉 한마리와 짐꾼의 하루 품삯은 모두 카카오 콩 100개였다고 합니다. 보통 큼직한 카카오 열매 한 개에서 카카오 콩이 30~50개 정도 나옵니다.
스페인 왕궁에 들어온 이 초컬릿은 곧 유럽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이것저것 다른 양념들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설탕이 들어갔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쌀가루, 계피, 아니스(anise) 씨앗, 후추 등도 들어갔습니다. 이때까지 초컬릿은 당연히 마시는 것이었지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즘도 커피 하면 당연히 마시는 것이지 뭔가 덩어리로 되어 있어서 먹는 음식이 아니잖습니까 ? 그러다가 당시 스페인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등 여러 곳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들이 다른 유럽 왕가 여기저기로 시집을 갈 때 혼수감으로 이 카카오 콩을 들고가기 시작하면서 ‘뭔지는 몰라도 근사하고 폼나는 선진국 음료’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초컬릿의 3대 원료는 바로 카카오 콩, 설탕, 그리고 우유입니다. 초기에 초컬릿에 우유를 넣을 생각을 못했다는 점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지요. 특이하게도 초컬릿에 우유를 넣을 것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영국인 의사로서 왕립 학사회의 회원이기도 했던 슬로안(Hans Sloane) 박사였습니다.
그는 1687년에 자메이카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핫 초컬릿’이라는 것을 마셔보고는 ‘뭐 이런 구역질나는 음료가 다 있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유를 섞으니 좀 낫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영국에 돌아와서 ‘우유를 넣은 초컬릿’을 퍼뜨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뭐든지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영국인들의 허풍에 불과합니다. (어떤 영국인은 그리니치 천문대도 영국 거니까 시간도 영국이 발명한 거라고 주장하더군요.) 슬로안 박사가 태어나기도 전인 1645년, 초컬릿을 마시는 것이 카톨릭 교리상 지켜야 하는 금식을 위배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스페인 세비야(Seville) 대학에서 신학과 교수였던 후르타도 (Tomas Hurtado)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바로 우유의 첨가 여부였거든요. 후르타도 교수의 판단에 따르면 우유를 섞은 초컬릿은 음식이므로 금식 기간 중에는 마시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아즈텍 제국 시절부터도, 초컬릿은 일반 서민들이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기분 좋게 마시기에는 꽤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하물며 대서양을 건너야 했던 유럽에서는 정말 왕족 귀족들이나 마실 수 있는 고가품이었지요. 워낙 귀한 음식이었으므로, 이 귀한 음식을 담는 주전자나 컵도 금이나 은, 나중에는 화려한 장식이 된 값비싼 도자기로 만들었지요. 하지만 부르조아 계급이 성장하면서, 꼭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더라도 이 귀한 음료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사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닐 수록, 그런 귀족용 음식을 먹고야 말리라는 욕망이 더 강해지는 법이지요.
17세기부터 베네치아나 피렌체 같이 번성하는 이탈리아 도시에서는 초컬릿 하우스가 대유행이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는 1657년에 프랑스 사람이 최초의 초컬릿 하우스를 열었고 신문에 초컬릿 광고도 실렸습니다.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런던의 초컬릿 하우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White’s 라는 곳이었는데, 이런 초컬릿 하우스에서는 사실 초콜릿 뿐만 아니라 커피도 함께 팔았습니다. 다만 홍차는 아직 취급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홍차는 아직 일반 신사 계급에서 마시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커피가 나는 아프리카나 카카오가 나는 남미에 비해, 홍차가 나오는 중국은 훨씬 멀었거든요.
이런 초컬릿-커피 하우스에는 돈많은 상인들이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 들이 드나들었는데, 귀족은 아니지만 돈도 있고 머리 속에 든 것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뭘 했겠습니까 ? 당연히 왕과 정부, 귀족들의 뒷다마를 열심히 까댔습니다. 결국 1675년 영국왕 찰스 2세는 ‘방종과 선동으로 가득찬’ 이 악의 소굴을 모두 폐쇄하려고 했으나, 이미 당시 영국의 시민 세력은 상당히 강력해진 상태여서, 이 시도는 본전도 못 건지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가장 유명했다는 White’s 라는 초컬릿 하우스는 그런 박해를 견디고 살아남아, 나중에 신사들의 클럽으로 바뀌어 지금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클럽 이야기 참조) 아무튼, 이때 당시 핫 초컬릿 (= 코코아)은 신사들이 즐겨마시는 이국적인 고급 음료였습니다.
Post Captain by Patrick O’Brian (배경: 1804년 영국 군함 HMS Lively 함상) ——————-
(막 정식 함장으로 승진한 직후, 아직 자기 배를 받지 못한 잭 오브리 함장은 해군 장교이자 하원 의원인 해먼드 함장이 의회 일로 휴가를 내자, 해먼드 함장의 프리깃함인 HMS Lively를 잠시 몇개월만 맡게 됩니다. 물론 그의 친구이자 군의관인 스티븐 머투어린도 여기에 동행하여 라이블리 호에 탑승합니다.)
아침 식사는 다소 실망스러운 편이었다. 해먼드 함장은 언제나 코코아를 마셔왔는데, 원래는 부하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장려하기 위해서였다가 나중에는 정말 그 맛을 좋아하게 되어서였다. 하지만 잭이나 스티븐은 모두 아침에 뜨겁고 진한 커피를 한 주전자 들이키기 전에는 제대로 사람 몰골을 갖추지 못하는 편이었다.
(중략… 박물학자이기도 한 스티븐은 꿀벌의 행동에 대한 연구를 위해 꿀벌통 하나를 라이블리 호에 들고 탑승했었는데, 아침에 꿀벌들이 장교 식당의 코코아 냄새에 끌려 날아드는 바람에 장교들의 아침식사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뻔뻔스럽게도 꿀벌의 행동 연구에 좋은 소재가 생겼다며 좋아합니다.)
내일은 장교 식당 사람들이 꿀벌의 최초 등장 시간을 좀 적어줬으면 하는구만. 아마 제7타종 시간 10분 전후일 거라고 거액을 걸고 내기를 해도 좋네. 그 시간이 꿀벌들이 처음으로 코코아를 맛본 시간이거든.
자네 말은 내일 또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는 건가 ?
장교 식당에서 설탕을 잔뜩 넣은 코코아를 마시는 한 계속 그러겠지. 걔들이 왜 그만 두겠나 ? 이 지식이 다음 세대의 꿀벌에게도 전해질지 여부를 살펴 보는 것도 재미있겠는데.
당시 영국 해군 장교들은 대개 중산층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이들이 매일 아침 코코아를 마셨다는 것은 어느 정도 코코아 가격이 내려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나폴레옹 시대 즈음해서는 남미의 카카오 농장이 상당히 번성하고 있었으므로 일반 중산층도 코코아를 즐겨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네주엘라 같은 곳은 카카오 수출에 지역 경제가 좌지우지되었다고 하고, 프랑스도 카리브 해의 생 루시아(St. Lucia) 같은 곳에서 카카오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영국 해군 때문에 남미나 카리브해의 카카오 산업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크게 몰락하게 됩니다. 원래 카카오 콩은 몇년간 보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는데, 나폴레옹 전쟁에서 스페인과 영국이 적국이 되면서 영국 해군이 스페인 선박들을 요격하는 바람에 남미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카카오의 선적이 크게 어려워진 것입니다. 이 몇년 간 남미의 많은 카카오 농장이 커피나 목화같은 작물로 업종을 변경해버리는 바람에, 이후 남미의 카카오 산업이 점차 사양길을 걷게 되고, 대신 나중에 아프리카 서해안과 인도네시아가 새로운 카카오 농장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저 영국 군함 함상에서는 코코아를 어떻게 만들어 마셨을까요 ? 깡통 속에 포장된 코코아 가루가 있었을까요 ? 이때 당시에는 아직 코코아 가루라는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도 코코아와 핫 초컬릿은 따로 구분되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현대적으로 보면, 코코아 버터(cocoa butter)라고 불리는, 카카오 콩 속에 들어있는 지방 성분을 많이 포함된 음료를 핫 초컬릿이라고 부르고, 지방 성분을 제거한 코코아 가루로 만든 것을 코코아라고 구분합니다. (사실은 지금도 이 두 단어는 굳이 구분하지 않고 섞어 씁니다.)
그런데 카카오 콩에서 이 코코아 버터를 압착하여 빼내는 기술은 1828년 네덜란드의 판 후스텐(Coenraad Johannes van Houten)이라는 사람이 코코아 압착기 (Cocoa press)를 만들어내면서 최초로 개발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가루로 만든 코코아가 만들어졌지요. 따라서 그 이전에는 카카오 콩을 직접 볶고 갈아서 커피처럼 우려내어 마셔야 했습니다.
18세기 중엽 미국 식민지 시절의 코코아 조리법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1. 4온스(약 113그램)의 카카오 콩에 약 0.58 리터의 끓는 물을 붓고, 잘 갈아서 설탕을 넣은 뒤 끓인다.
2. 밤새 식도록 내버려 둔 뒤, 아침에 다시 잘 간다.
3. 이것을 2분 간 끓인 뒤, 거품이 날 때까지 다시 간다.
좀 괴상하지요 ?
먹는 초컬릿 바(bar)는 1847년이 되어서야 영국의 Fry 형제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렇게 애써 고체 형태로 만들어 놓은 초컬릿 바를 다시 녹인 것이 현대적인 핫 초컬릿입니다. 코코아와 핫 초컬릿 중에서 어떤 것이 건강에 더 유리할 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맛있을지는 훨씬 더 뻔하네요.
건강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코코아는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에 비해서 커피나 차는 (논란은 있지만) 노화 방지 효과도 있고 뭐 최소한 건강에 해롭지는 않다고 생각하지요. 사실 코코아 자체는 건강에 해롭지 않습니다. 문제는 거기에 들어가는 우유와 설탕인데, 커피나 홍차에도 우유와 설탕을 넣으면 건강상의 효과는 마이너스로 가는 것은 비슷합니다. 뿐만 아니라, 코코아 한잔에 든 (노화 방지에 좋다는) 항산화 물질의 함량은 녹차의 무려 6배에 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걸리는 점은 바로 설탕입니다. 어느 고전적인 코코아 레시피를 보니 이렇게 나오더군요.
1/3 cup unsweetened cocoa powder (Hershey’s works fine)
3/4 cup white sugar
1 pinch salt
1/3 cup boiling water
3 1/2 cups milk
3/4 teaspoon vanilla extract
1/2 cup half-and-half cream (use a flavored one, if you want to try something new!)
소금을 약간 집어넣는 것이 특이하긴 한데, 코코아 가루 1/3컵에 비해 설탕은 무려 3/4컵이라니요 !
결과적으로 보면, 우유와 설탕을 넣지 않은 다크 코코아를 마시면 건강에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쓸 것 같다고요 ? 어차피 홍차건 커피건 모든 우아한 음료의 기본 맛은 쓴 맛입니다. 문제는 순수 코코아 가루만 파는 곳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 나왔던 카카오 99% 초컬릿도 이젠 안 나오는 것 같더라구요. 제과용품점에 가면 팔까요 ?
원문 : Nasica의 뜻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