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나온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Draft Day’라는 스포츠 영화가 있습니다. 대학에서 프로로 들어오는 NFL 미식 축구 선수들을 각 구단에서 정해진 순번에 따라 지명하여 뽑아가는 드래프트 행사를 둘러싼 각 구단들의 치열한 머리 싸움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긴장을 그린 영화입니다. 흥행은 그저 그런 정도라서 제작비 정도만 건진 모양입니다만, 저는 매우 재미있게 봤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프로 농구에서도 채택한 드래프트 제도라는 것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 이 영화를 보려면 그래도 그 제도에 대해 약간 설명을 듣고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드래프트 제도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새로 프로 구단에 들어오려는 신인 선수들을 선발할 때 미리 정한 규칙에 따라 구단들이 순서대로 뽑는 제도로서, 2가지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첫째는 각 구단 간의 실력차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제도로서, 지난 시즌에 최하위 성적을 기록한 팀이 가장 먼저, 즉 가장 우수한 선수를 뽑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야 하위권 팀도 다음 시즌에는 우수한 젊은 피를 수혈받아 상위권 도약을 꿈꿀 수 있으니까요. 두번째는 신인 선수의 몸값이 과도하게 뛰지 않도록 하여 전체 구단의 재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소위 수정 자본주의를 생각했습니다. 프로 스포츠라는 것이 결국은 경쟁과 돈놀음이쟎아요. 더군다나 승자 독식이라는 냉엄한 무한 경쟁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의 프로 스포츠라면 더욱 자본의 논리가 스포츠에도 적용될 것 같습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온갖 회사들의 돈잔치가 벌어지는 수퍼 보울이라는 미식 축구 NFL 결승전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930년대부터 NFL에는 드래프트 제도라는,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본의 힘을 내세워 무한 경쟁을 할 경우, 결국 1~2개 팀으로 모든 재능있는 선수들이 모이게 되고, 결국 하위권 팀들은 계속 별 볼일 없는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게 되어, 리그 전체가 재미없어진다는 것을 NFL 관계자들이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NFL 전체의 흥행과 시장 확대에 큰 지장이 있게 되니까 결국은 공멸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일부 보수주의자, 혹은 자칭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규제, 특히 중소기업에게 특혜를 주고 대기업의 무한 확장을 견제하는 규제들을 무조건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강자가 경쟁에 의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래야 경제도 발전하는데, 정부가 인위적인 규제를 하여 경쟁력 떨어지는 약자들을 보호할 경우 시장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체이지요.
그에 대한 가장 좋은 답변이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의 돈잔치 스포츠인 NFL에서 드래프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내세운 경쟁은 당연히 빈익빈 부익부라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럴 경우 그것이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스포츠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여러번 반복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미국이 괜히 석유왕 록펠러의 회사나 강철왕 카네기의 회사를 산산조각 낸 것이 아니지요. 한두개의 기업에 의해 지배되는 시장 경제는 그야말로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흔히 보수주의자들이 보편적 복지를 공격하면서 ‘과도한(?) 복지는 국민들의 일하려는 의지를 꺾는다, 일하지 않아 소득이 없으면 돈을 주는데 누가 일을 하겠느냐 ?’ 라고 말을 합니다.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NFL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리그 말기에 하위권 팀들 중에는 ‘이렇게 망한 바에야 차라리 꼴찌를 해서 드래프트 1순위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라고 판단하고 일부러 경기를 느슨하게 하는 구단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폐단에 대해서도 NFL은 일부 복권식 추첨 제도를 도입하는 등 보완책을 만들지, 드래프트 제도 자체를 폐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경쟁을 독려하되 지나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수정 자본주의’ 정신을 살린 드래프트 제도에도 수정할 수 없는 맹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실제 경제 체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바로 해외 구단과의 경쟁, 그리고 해외 신인 선수들의 유입이지요.
세계에서 미식 축구 리그를 운영하는 나라는 (제가 알기로는) 미국 뿐이라서, NFL 소속 구단들이 드래프트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다른 나라 리그 소속 구단들과 경쟁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리그에서는 드래프트 같은 건 개나 줘버리고, 돈의 힘으로 집중적으로 키워진 엘리트 구단을 내세워 NFL 구단들과 경쟁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아마 NFL 구단이 우승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보수층에서는 ‘더 이상 우물 속 개구리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세계 시장에서 해외의 강자들과 경쟁할 수 있다’ 라고 주장을 하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 아니지요. 그리고 실제로 드래프트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해외 리그 소속 구단과 직접 경쟁하는 스포츠도 있습니다. 바로 유럽의 프로 축구 리그들과, 그 리그들 간에 시합을 벌이는 챔피언스 리그지요.
저도 즐겨보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EPL이나 스페인 프로 축구 프리메라 리가 등에서는 드래프트 제도 같은 것은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드래프트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해외 구단과 경쟁해야 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긴 역사적 이유가 더 강하지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의 수급 문제입니다.
미국 NFL은 (꼭 대학 출신만 NFL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대학 미식 축구 선수 졸업생들 중에서만 선수를 뽑습니다. 그러니 드래프트 제도의 적용이 쉬운데, 유럽 축구 구단들은 이런 제한이 전혀 없고 보통 각 구단이 자체 운영하는 유소년 팀에서 자체적으로 선수를 양성하거나 돈으로 해외 선수 중에서 유망주들을 데려 옵니다. 루니 같은 경우는 10살 때 에버튼과 계약했고 16살 때 최초로 프로 리그 경기를 뛰었지요.
그 결과 실제로 유럽 리그들은 명문 팀과 비명문 팀의 레벨 차이가 뚜렷합니다. 그런 빈익빈 부익부가 가장 뚜렷한 곳이 바로 호날두와 메시로 대표되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입니다. 최근에 첼시 감독인 무리뉴가 이런 말을 해서 프리메라 리가 팬들을 열받게 만든 적이 있지요.
“프리메라리가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밖에 없는 리그다. EPL 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이 없다. 특히 홈경기는 그냥 벤치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가끔 선제골을 내줄 때도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큰 점수차로 이기게 되어있다”
무리뉴의 발언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팀이지만, 그들이 활약하는 프리메라 리가는 사실 B급 리그로 전락한지 꽤 되었습니다. EPL이 드래프트 제도 없이도 하위권 팀들이 어떻게 실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또한 해외 자본 유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구의 발상지인 EPL 자체가 가지는 경쟁력 덕분에 말레이지아 갑부건 러시아 갑부건 미국 갑부건 다들 꿈꾸는 것이 EPL 팀 하나 소유하는 것이지요. 그런 식으로 해외 자본이 유입되지 않으면 EPL 구단들도 사정이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많은 팀들이 빚더미에 올라 있고, 이미 많은 명문 구단들의 대주주는 외국인들입니다.
최근에 OECD 사무국에서 발표한 보고서도 지난 30년간 OCED 국가들 내의 빈부격차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으며, 이런 빈부격차로 인해 경제 전체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 발표했습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이라는 제도를 통해 대기업이 두부를 못 만들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더 나은 제도가 없는지는 똑똑하신 분들이 항상 고민해야 하는 점입니다만, 확실한 것은 지나친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는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원문 : Nasica의 뜻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