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불과 며칠 전, 국민일보 홈페이지에 올라온 김상기 기자의 ‘기사’를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상당한 규모를 가진 언론의 기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혐오의 언어가 그곳에는 있었다.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무한도전에서 하차하자 장동민이 식스맨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노홍철은 그런 장동민을 말립니다. ‘그랬다간 그들에게…’라며 무서운 누군가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괴기스러운 무언가로 변해버린 여성들은 장동민을 성차별주의자로 낙인찍고 장동민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이기지 못하고 장동민은 무한도전에서 하차합니다.
장동민은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여성들의 공격은 끝이 없습니다. ‘진심어린 사과를 해라’라면서 말이죠. 한 술 더 떠 ‘장동민 스폰서에 불매운동을 하자’는 선동까지 터져 나옵니다.
“이토준지 공포물 같은 그녀들” 심각해지는 여시 사태… 페북지기 초이스 (국민일보)
1.
김상기 기자는 표면상으로는 ‘여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으나, 그의 메시지는 결코 여시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사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이토 준지 단편의 패러디물을 그대로 올린 후 ‘친절한’ 해설과 “남성 네티즌들은 탄복하고 있”다는 설명을 곁들이는 것으로, 옹달샘과 레바툰에 대한 문제제기를 “성차별주의자로 낙인찍”는 “선동”으로 깎아내리고, 나아가 비슷한 혹은 같은 문제제기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너희들이 여시 유저들과 묶여서 함께 욕 먹기 싫으면 입을 다물라’는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어지는 기사 역시 우습다. 애초에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SLR클럽 운영진의 여시 특혜’라는 테마는 사라지고, ‘앞에서는 여성 혐오를 말하면서 뒤로는 음란물을 보는 위선자들‘이라는, 지극히 뜬금없는 메시지만이 남아버렸다. (남녀를 불문하고 포르노를 보며 자신만의 판타지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된단 말인가!)
심지어 기사는 “매일매일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서 여시와 관련된 글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부디 이번 전쟁이 빨리 마무리돼 무개념과 비상식이 사라지고 개념과 상식이 돋아나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깃들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로 끝난다.
사회에 실재하는 성 권력 불균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오로지 포르노를 본다는 이유로 싸그리 무개념과 비상식으로 매도되는 순간이다. 이런 기사들 안에서 대한민국 주요 언론으로서의 공적 문제제기와 최소한의 체면은 찾아볼 수가 없다.
2.
한 번은 데스크의 실수일 수 있다. 두 번도 데스크의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무지한 기사가 반복적으로 송고되어 올라온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애초에 국민일보가 이런 것들이 문제라는 것을 애초에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국민일보가 젠더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신은정 기자의 15일자 기사에서도 드러난다.
‘아, 모르겠다’라는 뜻 ‘아몰랑’은 한 여성커뮤니티에서 상대와 말싸움하다 불리하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각종 커뮤니티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인터넷 유행어쯤 됩니다. (…)
유체이탈화법을 자주 구사하는 박 대통령을 원조 아몰랑녀라고 불러도 좋을까요. 저도 아몰랑~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고, 이는 외려 언론에 권장되는 바임에 틀림 없으나, 문제가 되는 건 비판의 방법이다. 박근혜가 주변의 사안들에 큰 관심이 없고, 발언들도 횡설수설한다는 점을 비판하고자 사용한 ‘아몰랑’이란 단어는, ‘아몰랑녀‘라는 제목의 스크린샷으로 확산되어 남초 커뮤니티에서 ‘무개념’ 여성을 비하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다가, 특히 최근에 터진 옹달샘과 그 후의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여성 비하’의 색채를 더욱 짙게 띠게 되었다. (‘아몰랑’이 이런 의미로 쓰여왔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글에서 2014년 12월 이전으로 기간을 지정해서 검색해보면 된다)
기자는 이 단어의 성격을, ‘여성’으로서의 박근혜를 공격하기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누군가를 비판함에 있어, 해당 사안과는 전혀 무관한 속성들을 비난하는 행위는 언론으로서, 공적 발언자로서 당연히 지양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당연한 듯 이런 기초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사가 버젓이 데스크를 통과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수 있다는 사실은, 국민일보 내에 문제의식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3.
민감한 이슈에는 민감하게 접근해야 하며, 위험한 이슈에는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젠더 불평등에 관한 문제에 대한 ‘싸움’이 꼴랑 인터넷 짤방과 비웃음의 댓글로 정리될 수 없는, 지극히 복잡한 문제임은 자명하다.
언론의 역할은 이 대단히 복잡한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문제에 대한 이성적인 공론장과 공론의 도구들을 일반에게 제공하여, 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만 하며, 그렇기 위해선 당연히 보다 더 정밀하고 민감한 접근과 조심스러운 분석이 요구된다.
그런데 국민일보는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는 커녕, 공론장의 파괴와 무질서에 가담하여, 우리가 반드시 적어도 한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고 이야기해야 할 문제를 아무 가치가 없는 ‘칭얼거림’으로 깎아내리며, 심지어는 이런 불평등의 문제를 더욱 공고히 한다. 노골적인 혐오를 표출함으로써 진보는 커녕 퇴행을 조장하는, 가히 ‘공론장의 반달리즘’을 자행한다고 말할 수 있을 이런 언론에, 언론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가.
원문 : High and Lo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