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반도의 땅에서 여자의 몸으로 입신양명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관의 녹을 먹는 직업군에서는 더더욱.
여기 ‘벤츠 (여)검사’처럼 입신을 하여 명성 블레임을 떨친 여성이 있다. 일명 ‘국정원녀’ 29세, 국정원에 다니며 남자들의 로망 혼자사는 여자… 언제나 라면을 끓여줄 준비가 되어있겠지. 하앍….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정원녀에 대한 정보가 고작 이 정도라고 생각하기엔 아직 이르다. 얼굴을 감췄기에 더욱 눈이 가는 그녀의 옷차림. 조선이 멸망하고 반상제는 무너졌지만 패션은 여전히 그 사람의 성향과 배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몇 차례에 걸친 그녀의 위풍당당 검찰출두 패션을 통해 2013년 이십대 여성의 센스 있는 옷입기와 더불어 STYLE에 대한 얘기를 담담히 풀어보고자 한다.
네 번의 노출과 한 번의 스타일
뉴스를 뒤져본 바에 의하면 그녀의 패션이 언론에 노출된 것은 총 네 차례에 이른다.
국정원녀 스타일 대분석 : 발전하는 그녀의 스타일링
좁은 문틈 사이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국정원녀는 검정색 야구모자를 쓰고, 베이지색 와플 니트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흰색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폭스퍼가 후드에 트리밍된 패딩을 아우터로 선택했다.
하지만 이 룩에서 무엇보다 화제가 된 것은 옷이 아니라 그녀의 손! 남심을 부농부농하게 물들여 놓을 최강의 손 종결자로 하얗고 긴 손가락과 깔끔하게 손질된 네일의 매치에서 적어도 육체적으론 고단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예측할 수 있다.
그 이후 언론에 노출된 사진들을 살펴보면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마스크와 모자, 스누드, 목도리를 번갈아 활용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추기에 급급했던 룩을 벗어나 가릴 건 가리되 단점을 보완한 세련된 20대 여성의 룩을 안정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2차소환부터는 아우터의 지퍼를 오픈하여 점점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또 베이지와 블랙, 아이보리, 카키 등 튀지 않는 메인 컬러의 톤온톤 매치와 포인트 컬러로 사용하는 애시드와 파스텔 계열의 영민한 조화에서는 상당한 패션 내공까지 느껴진다.
특히 3차 소환에서는 처음의 불안과 초조함을 상당 부분 극복하였음을 보다 완벽해진 옷차림에서 느껴볼 수 있다.
일단 국정원녀의 외형부터 주목해야 한다. 몇 장의 사진에서 살펴본 결과로 그녀는 평균 이상의 체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에서도 옆의 남자 변호사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키와 벌어진 어깨가 눈에 띈다.
판단하건대 키는 최소 167cm 이상, 골격은 큰 편이지만 살이 많은 체형은 아니며 상체에 비해 하체가 튼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체형은 아무래도 패딩을 입으면 떡대가 있어 보이는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지금처럼 아우터를 코트로 바꿔주면 보다 슬림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국정원녀의 패션을 조금만 더 살펴보자. 전반적으로 아이보리 컬러가 목도리, 팬츠. 아우터 후드의 양털, 니트의 밑단 시보리 정도에 노출되었고, 상부부터 하부까지 균형감 있게 믹스되어 상체와 하체가 길게 이어지는 롱앤린(LONG&LEAN)한 효과를 주는데 일조하고 있다. 또한 레깅스 스타일의 핏되는 팬츠에 라이딩 부츠를 신어 1차 소환 때와 비교해보면 훨씬 다리가 가늘고 길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포인트 컬러 아이템은 MLB의 아틀란타 브레이브스 캡. 이로써 한번을 제외하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카고 화이트 삭스에 이어 전부 MLB의 모자를 착용한 셈. MLB의 모자는 캡이 커서 얼굴이 작아 보이는 효과 때문에 여자들보다 주로 남자들이 선호하고 있으며 요즘 유행하는 뉴에라 모자와 달리 캡이 양끝으로 갈수록 직선 형태이기 때문에 캡을 구부려서 착용하는 것이 예쁘다. 여기까지 충실히 지키는 국정원녀는 이 시대의 패션 리더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코트는 시스템!
사실 이 포스팅의 시작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었다.
저 글을 올린 사람은 시스템 담당 직원이다. 회사에 헌신하는 직원을 기리는 뜻에서 시스템의 코트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야상 느낌의 이 카키색 코트는 시스템의 2011년 F/W 제품. 당시 여러 스타들이 착용하여 무수한 시스템st(시스템 스타일=시스템 짝퉁)를 양산하기도 했다. 섬유의 보석으로 불리는 캐시미어가 소량 혼용되어있는 양모소재에 지퍼 디테일, 튀지않는 톤온톤 배색처리로 상당히 세련된 컬러감을 보여준다. 출고가 899,000원.
언제나 스타일에는 비교 대상이 필요한 법. 국정원녀의 같은 옷 다른 느낌, 셀럽들의 시스템 코트 착용컷을 보시겠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 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얼굴로도 극복 되지 않는 패션이 존재한다.
번외편 : 7급공무원 최강희
그렇다면 요새 패션으로 가장 흥하고 있는 드라마 7급공무원의 최강희 패션을 보자. 공교롭게도 그녀 역시 국정원녀(…)
보시다시피 야상, 코트, 후드티, 벌키한 목도리와 같은 일상적인 아이템과 튀지 않는 컬러톤의 매치는 실제의 국정원녀와 크게 다르지 않는 옷차림이다. 브랜드 역시 로컬부터 수입까지 골고루 착용하고 있지만 이브생로랑의 가방을 제외하고는 명품이라고까지 할만한 브랜드도 없다.
특히 후드가 달려있는 목도리는 국정원녀에게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다. 예쁘고 잘 가려지고 더 이상 MLB 모자가 필요 없을 것이다.
일상의 스타일로 패션을 표현한 패션의 고수 국정원녀
결과적으로, 국정원녀는 아이템보다는 기본 아이템들을 여러 개 갖추어 본인 체형과 취향에 맞게 잘 스타일링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블레임룩으로 이슈가 되었던 린다김의 에스까다 E1005 선글라스라던지 신정아의 알렉산더 맥퀸 삐에로 티셔츠처럼 딱히 눈에 들어오는 명품 브랜드가 없다. 완판 아이템도 없고 카피가 되지도 않았다.
국정원녀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하게 보아온 무조건 뒤집어쓰고 보는 피의자들과는 분명 다른, 정돈되고 세련된 룩을 보여준다. 옷을 잘 입기 위한 기초적인 조언 중 “베이직한 아이템을 질 좋은 것으로 구매하라.”는 것이 있다. 세련된 사람일수록 고가의 명품을 고집하지 않고 기본 아이템을 적절하게 활용한다는 것 역시 패션의 정석이다.
옷을 잘 못 입겠다는 사람들의 쇼핑 행태를 보면 마네킹 착장 그대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옷을 믹스앤매치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에서 발생한다. 스스로 그러하다면 사도사도 입을 옷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우리들의 연애가 너만을 사랑하겠다고 하룻밤 영원을 속삭이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같은 마음으로 아껴주는 일관성으로 견고해지듯이 데님팬츠는 여러 번 입어야 내 몸에 맞는 핏으로 완성되고 캐시미어 니트는 세탁기에 돌릴 수 없기에 더 가치가 있다. 화이트 셔츠는 표백제를 쓰거나 삶아 빨아야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스타일이란 이렇게 꾸준한 관심과 정성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패션관련 직업군에 종사하면서 스타일과 패션에 관한 수많은 기사를 접하고 많은 관련 서적을 읽었지만 우연히 읽게 된 김애란 소설의 한 구절만큼 명료한 정의는 보질 못했다. 이것은 스타일에 대한 시작점이자 에필로그가 될 것이며 이것으로써 오늘 얘기하고자 했던 것을 마무리하련다.
세련됨이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소비 경험과 안목, 소품의 자연스러운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 by 김애란 <성탄특선>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