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PC방에 발을 들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으슥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성인 PC방을 발견할 수 있다.
성인 PC방의 전성기는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과장 좀 보태서 한 동네에 예닐곱 곳 정도는 꼭 있었고, 대체 뭐 하는 곳인지 꿈 많은 고등학생이던 당시의 나는 그냥 막연히 추측 정도만 할 뿐이었다. 방마다 칸막이가 되어 있고, 헤드폰과 함께 모니터 옆에는 휴지가 있겠지…하는.
그리고 시간은 흘러 나는 수능을 봤고, 인생에서 가장 걱정없는 시기가 찾아왔다.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도저히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가장 만만한 아르바이트인 PC방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게 된다.
공고를 보고 찾아간 PC방은 동네 구석진 곳에 있는, 컴퓨터가 40대 정도 있는 중간 규모의 PC방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손님은 없었고, 칼질 좀 했을 것 같은 풍채의 남자와 형형한 눈빛의 여자가 앉아서 나를 맞이했다. 좀 쫄았다.
“내일부터 일할 수 있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아, 네. 그럼 내일부터 출근할게요. 그런데 시급은…”
“그래. 시급… 한 달에 150만 원, 어때?”
“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런데, 여기 성인 PC방인건 알고 왔지?”
“아… 몰랐는데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네요.”
당시 최저 시급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동네 평균 시급은 2천 원대였다.
낮 시간대에 여덟 시간 편하게 일하고 150만 원이면 수능 끝난 고3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봉 잡았다고 생각하고 다음날부터 출근해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난 이곳에서 생각도 못하던 풍경을 참 많이 볼 수 있었다.
우선 성인 PC방은 두 가지로 나뉜다. 컴퓨터 옆에 티슈가 있는 PC방과 도박 PC방.
보통 전자의 경우에는 가게의 외장이 핑크빛이거나 간판에 하트가 붙어있는 등, 목적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이라면 대충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반면 후자는 겉보기에는 일반 PC방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내가 일하는 시간에 잘못 들어온(…) 학생들도 있었고, 그 경우 ‘지금 전체 점검 중이라 손님을 받을 수가 없다’ 며 돌려보내곤 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겪고 본 도박 PC방에 관한 사실들이다.
우선, 장사가 잘 안 되는 목에 위치한 일반 PC방을 사장이 인수해서 (좀 일하다 알게 된 거지만, 조직폭력배), 컴퓨터에 달랑 도박 사이트 접속 클라이언트 하나만을 설치해 둔다. 나중에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게임들을 더 깔아서 일반 PC방인 양 눈가림을 했지만, 그래봤자 그 게임들은 제대로 접속이 안 되고 오직 도박 사이트만 접속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박 사이트들은 어디에 있을지 모를 메인 서버에서 허가한 ip의 컴퓨터만 접속할 수 있다. 그래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PC방으로 모이는 것이고, 매장은 장소만 제공하면서도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해당 접속 주소를 신고하더라도 피씨방이 아니면 접근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잡아내기가 힘들다. 이런 사이트들은 서버를 해외에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 PC방의 수익구조
당시 환전소 카운터를 보던 사람 좋아 보이는 누님 왈, ‘이곳은 하루에 열 명만 와도 손해는 안 본다’고 했다. 음료수, 김밥, 샌드위치, 심지어는 담배까지 손님을 위해 무료로 지급되는 PC방에서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익구조가 가능하냐면, 소위 ‘딜러비’ 때문이다.
도박을 하러 온 손님들은, 환전소로 가서 돈을 게임머니로 바꾼다. 예를 들어 10만 원을 기초로 해서 포커를 하고 싶다면, 돈을 들고 환전소로 가서(내가 있던 곳에서는 알바, 즉 내가 대신했다) 10만 원을 아이디에 넣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도박 사이트 관리자 모드에 업소 아이디로 접속해 있는 환전소 사람이 10만 원을 받아서, 10만 포인트(현금과 1:1 환율)가 들어있는 접속 아이디를 즉석에서 발급해 준다. 손님은 이 아이디를 받아가서 접속하고, 게임을 한다. 상대는 또 다른 성인 PC방에서 같은 방법으로 접속한 손님이다.
당시 일하던 PC방에서 선택한 도박사이트의 경우, 손님이 돈을 따든, 잃든 간에 서로 간에 오가는 돈 중 10%가 자동으로 매장 몫으로 적립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었다. 때문에 10만 원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 손님은, 본인이 직접 딜러비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일정 비율의 딜러비를 매장 측에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장사가 그럭저럭 되는 날일 경우, 손님이 총 열 명이나 올까 말까 싶은 낮 시간대에만도 환전을 위해 오고 가는 돈의 액수가 거의 천만 원에 육박한다. 그러면 매장이 먹는 돈이 백만 원이냐면… 또 그게 아니다.
게임을 해서 상대방에게 포인트를 따고 그만둘 경우, 게임 포인트를 돈으로 환전해야 한다. 여기서, 환전 수수료가 또 붙는다. PC방마다 수수료가 각각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5%에서 7%를 매장 측에서 가져간다. 업소의 특성상 늦은 저녁 시간대에 손님이 모이는 것을 감안한다면, 하루 순수익만 천만 원 이상이라는 말도 안되는 고소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단속의 입김을 피하기 위해 바지사장(이름만 사장으로 걸어 놓는)을 월 200~300씩 주고 세워놓는다고 하더라도, 한 달 동안 실제 사장이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게임 내의 승패와 관계없이 사이트 내에서 일정 확률로 랜덤하게 터지는 잭팟이 있다. 더 많은 유저를 확보하기 위한 본사 측의 이벤트 같은 건데, 하루에 한두 명 정도는 매장에서 반드시 잭팟이 터진다. 금액은 베팅 액수에 따라 다르지만, 200~300원을 베팅했을 경우 100만원에 육박하는 축하금이 지급된다. 물론 이 잭팟 금액 역시 딜러비와 수수료가 제해진다.
이런 촘촘한 거미집 같은 구조의 덫을 쳐놓고 먹잇감을 노리고 있으니, 하루에 열 명만 오더라도 손해를 안 볼 수 밖에.
거미줄 같은 도박의 늪,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한편, 물증은 없지만 여러 정황상 돈을 받고 단속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경찰(이 아니라 중간 관계자 정도 된다고 하더라도)들은 소수였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내가 일하던 곳에서도 심심찮게 전화가 오고 가는 경우를 목격했었고, 내가 그만두고 이틀 만에 경찰이 덮쳐서 가게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봐도 냄새가 났다. 그날 있었던 컴퓨터는 당연히 모두 깡통이었다.
(우습게도 나를 제외한 다른 종업원과 사장 모두 도박 및 도박방조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며칠 안에 경찰이 뜰 거라면서, 월급을 계산해 줄 테니 그만두라던 사장에게는 조금 고맙다. 날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어차피 전과가 있으니 또 걸려들어 간다고 해도 별로 상관없지만, 너는 아직 깨끗;;하니 그만두는 편이 미래를 위해 좋지 않겠냐는 말까지…)
그만둔 뒤로 연락은 한 적 없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본인이 직접 도박 사이트를 열었다고 했다. 돌아가는 시스템을 인지했으면, 직접 하는 게 돈이 더 된다고 생각했겠지.
한때는 이런 도박 사이트에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들이 대거 흡수되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곳에서 돈을 따서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석에서 사장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본사에는 대형 ‘작업장’이 존재한다. 베팅액이 낮은 방에는 딱히 손을 쓰진 않지만, 일정액 이상의 베팅 룸에는 방 내의 모든 패를 볼 수 있는 개조 클라이언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섞여 들어가서 패의 흐름을 조절한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엔 조금 따다가 결국엔 모두 잃은 채로 자리를 뜬다. 그리고는 다음날, 카드빚까지 다시 내서 본전 찾기에 도전한다. 어제 많이 이겼으니까.
그들은 몇 번의 큰 패배로 돈을 전부 깨끗하게 잃고 나서도, 그냥 단지 운이 조금 나빴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수백만 원을 모두 쓰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내게 신용카드를 주면서 현금서비스를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사람만도 여러 명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만 대박을 터트리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바라는 대박은 결코 오지 않는다.
오직 잃는 자만이 존재한다. 얼마를 들고 오든 결국엔 모두 날리고 돌아가면서도, 바닥에 내팽개쳐질 때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바닥 없는 늪. 그게 도박이다. 스스로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나는 하루에도 몇이나 봤다. 벼랑 아래에 거대한 괴물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실낱같은 기대에 매달리다 결국 절망하는 사람들을.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서도 깨닫기 쉽지 않은 여러 교훈을, 당시의 나는 매일같이 피부로 느끼면서 톡톡히 배우고 나왔다. 관심이 없어서 그때까지 고스톱이나 포커는 룰도 몰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그만둔 뒤에는 배우려는 마음마저도 완전히 접었다.
도박 중독자들의 눈빛은 공허하다.
나는 공허한 눈빛의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좀비 소굴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돈을 벌었었다. 그리고 해외에 나와 있는 지금도 도박장은 근처도 가지 않는다.
내가 본 도박장은, 그야말로 세상의 밑바닥이었으니까.
ps. 이런 글을 쓴 건,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