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커밍아웃 안 해?”
한 때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던 이야기다. 사람들은 별 편견이 없는데, 게이들이 괜히 위축되고 스스로를 숨긴다는 이야기다. 사실 나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게이들이 제발 당당히 커밍아웃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게이 드립도 좀 맘놓고 치지. 게이 드립은 웬만큼 웃기지 않으면 욕먹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했다. ㅍㅍㅅㅅ 페이스북에 올린 한 장의 사진에 대한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보다시피 이 사진은 매우 훈훈하고 감동적인 사진이다. 덕택에 페이스북에서도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이미 24시간만에 350건의 공유가 이루어졌고 65,000명이 좋아요를 클릭했다. (해당 게시물 링크)
문제는 댓글이다. 멋지고 감동적이라는 댓글도 많지만, 상당수가 자기 친구들을 태그로 소환하며, “XX야. 넌 문제가 없어.”, “XX야. 너희 아버지 심정이 이럴 거야.” 등의 댓글을 달면서 놀고 있었다.
게이 소재 농담, 농담이라고 용납될까?
물론 나는 이런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가졌으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동성애에 대해서 관용적이기에 이런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정말 동성애혐오자들은 오히려 “동성애를 어떻게 용인할 수 있냐?”, “동성애는 병이다.”, “자연의 섭리를 어긴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댓글을 남기고 있다.
표면적으로 한국은 동성애에 대해 상당한 관용을 가진 것 같다. 2000년 아웃팅 당하다시피 커밍아웃 ‘된’ 홍석천은 연예계를 잠정 은퇴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활용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SNL 코리아에서의 모습은 그야말로 레전드급 개성과 웃음을 가져다주고 있다.
농담이라서 좋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당장 홍석천도 이걸로 먹고 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전 전유성 씨 밑에서 잠시 이런저런 걸 배운 적이 있는데, 그 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리승환 : 전라도 등 지역의 희화화가 위험하다고 보는데, 방송에서 가능한가요?
전유성 : 응. 할 수 있어.
리승환 : 이거 좀 지역차별적이지 않습니까?
전유성 : 전라도 사람만 가능해. 마찬가지로 살찐 사람 희화화도 살찐 사람만 해야 돼. 안 그러면 방송국 전화 불 터져.
이는 세계 어디에나 통용된다. 미국의 유명 코메디언이자 영화 제작자인 크리스 락 쇼에서도 검둥이(nigger, nigar)를 소재로 비슷한 내용을 다룬 바 있다.
즉 홍석천의 자기비하적 개그와, 이성애자의 동성애자 비하 개그는 엄연히 다르다. 심지어 매일같이 모두까기를 시전하는 사우스파크 시즌6 2화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제길, 계속 먹어. 그러지 않으면 케니(주 : 맨날 죽는 역할)보다 더 죽을 때까지 패 줄 거야!”
“야, 그거 듣기 안 좋다. 케니 죽음을 농담하면 안 돼. 아직 너무 일러.”
“언제부터 농담할 수 있는데?”
“22.3년. 슬픈 일이 웃겨지려면 그 시간이 걸려.”
“그거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네.”
우리 사회는 동성애에 관용적인가?
이 대사처럼 슬픈 일이 웃기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슬픈 일이다. 송준모님께서 제공해주신 ISSP의 자료 (2008)에 따르면 한국의 동성간 성관계에 대한 인식은 터키, 남아프리카 공화국, 우크라이나, 러시아, 필리핀 등과 함께 가장 부정적인 나라로 꼽힌다. 심지어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먼저 쎾쓰를 했는지 묻는 게 예의 아닙니까?
물론 주변 사람 기분 안 상하게 할 자신이 있다면 경우에 따라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섹드립만 해도 웬만큼 센스 없이 하다가는 욕들어먹기 십상인데, 더 민감한 동성애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마이너에 대한 개그가 문제라면, 메이저에 대한 개그는 왜 되냐고?
여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오해가 있다. 마이너는 단순히 수가 적은 소수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가깝다. 즉 서민은 부유층보다 수가 많지만 그들은 사회에서 좀 더 무시당하는 마이너다. 즉 ‘소수자’라는 번역어가 주는 뉘앙스의 문제이지, ‘약자’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언제 부유층이나 정치가를 조롱하는 유머에 그렇게 강하게 반발하던가?
뭔가 부적절한 예시가 들어갔는데(…) 그렇다면 왜 서민과 달리 동성애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감이 형성되지 않을까? 이는 동성애자는 쪽수까지도 심히 밀리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쪽수가 많은 서민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만, 동성애자는 숫자는 물론 (결집에 따른 피해가 예상되기에) 결집력까지 떨어진다. 그래서 오히려 정치권은 동성애에 반대하는 크고 아름다운 특정 종교의 눈치를 본다.
이쯤 되면 왜 동성애 개그가 폭력적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동성애자들은 종교와 문화 등으로 인한 편견으로 사회적 차별을 받는 데다가, 눈치 본다고 자기들끼리 뭉쳐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다. 물론 이전보다야 나아졌다고 하지만, 반복하자면 ‘슬픈 일이 웃을 수 있는 일이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동성애 혐오국 한국, 그리고 평범한 외국인의 한마디
동성애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는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등에 박식한 다른 분들에게 맡기고자 한다. 그리고 ㅍㅍㅅㅅ에서도 몇 차례 동성애 관련 유머 짤방을 사용했는데 앞으로 좀 자제하고자 한다. 나아가 캡콜드 님의 말처럼 ‘이런걸 PC할까말까에 대한 양심의 가책 없이 넣는, 이들이 더이상 ‘성소수자’가 아닌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에 대한 한 외국인의 글을 덧붙인다.
이런 영상이 올라오는 나라에서는 한 번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