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재보선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로 끝났다. 한국 정치지형 재편이라는 거대한 지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진보의 몰락과 보수우위의 공고화가 가시권에 들어 온 것이다.
진보진영은 경제영역의 좌파 기득권, 지역적으로 호남, 정치이념상 진보성향유권자의 3者연합체다. 1987년 이후 유지되어 온 이 3者연합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좌파 기득권의 일방적 패권주의에 반발하는 호남과 진보성향 유권자의 이탈로 진보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진보만의 균열은 보수우위 체제로의 재편과 보수패권의 공고화로 직결된다. 이것이 4.29 재보궐이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진보진영의 참패로 끝난 429재보선의 의미를 국회의원 선거구 네 곳의 재보궐 선거결과에 불과할 뿐이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진보진영의 패배에 후렴구처럼 붙는 재보궐 선거의 낮은 투표율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도 감지된다.
투표율이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논란이 많은 주제이므로 별도의 분석을 요한다. 이 글에서는 진보진영의 참패 원인을 재보궐 선거의 낮은 투표율에서 찾는 주장들에 대한 반증을 제시하는 선에서 매듭짓고자 한다.
이명박정부 시대인 2009년 10월 28일 치러진 다섯 곳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은 3석을 얻어 승리하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경남 양산의 박희태, 강원 강릉의 권성동 두 후보가 승리하였는 데, 두 곳 모두 전통적인 보수 우세지역이었다. 반면 민주당 세 석은 경기 수원의 이찬열, 안산의 김영환, 충북 증평의 정범구의 승리였다. 이중 안산을 제외한 두 곳 또한 전통적으로 보수가 강한 곳이고, 표심의 향배를 보여주는 중부권에 속한 곳이라, 전체적으로는 진보진영의 압승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2011년 성남 분당에서의 손학규의 승리도 재보궐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낮은 투표율로 변명을 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치뤄진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진영이 거둔 성과를 보면 재보궐 선거의 낮은 투표율이 429참패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진보진영 인사들이 즐겨 쓰는 이명박근혜라는 표현대로, 두 정부의 보수적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박근혜정부가 상대적으로 국정운영을 더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리스트는 여권 입장에서는 악재 중의 악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어차피 우리나라 정치에서 내가 잘해서 선거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양당체제하에서 상대방이 더 못하면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선거의 경우 박근혜정부가 잘해서 여당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박근혜정부 총체적 난국이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 말 그대로 “이보다 더 못할수는 없다”이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을까의 질문은 지난 정부에 비해 이 정부에서 진보진영이 더 잘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의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아젠다 중 딱 두 가지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공무원 연금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이다. 이는 진보진영이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두 가지고, 진보균열을 부른 두 가지다.
앞서 밝혔듯이 이 두 가지도 박근혜정부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잘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국민여론의 측면에서 볼때 진보진영, 새정연에 비해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쟁점이 중요한 첫번째 이유는 둘 다 유권자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제적 쟁점이라는 점에 있다.
진보진영은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쟁점에서 강점을 보인다. 이것이 선거 쟁점이 되면 진보진영에 유리하다.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두 진보 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선거에서 정치적 쟁점의 영향력은 줄어 들었다. 그 자리를 경제적 쟁점이 차지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4대 개혁입법 등 정치중심의 노무현정부에 대한 반발로 경제와 중도실용을 내건 보수진영 이명박후보의 2007년 대선 압승이다. 노무현정부에서의 종합부동산세, 2008년 총선의 뉴타운, 2010년 지방선거에서의 무상급식이 경제적 쟁점에 속한다. 이는 돈의 문제, 즉 누구한테 세금을 걷어서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둘 다 해당선거의 승패를 가른 핵심적 쟁점이 되었고, 이를 내건 진영이 승리하였다.
이번 선거의 경우, 여당에 악재인 성완종리스트는 정치적 쟁점이다. 이외 세월호 등 여타 쟁점에서도 보수진영에 유리한 것은 없었다. 공무원연금개혁이 유일한 경제적 쟁점이었고, 진보진영에 불리했던 유일한 쟁점도 이것이었다. 승패는 여기서 갈렸다.
진보진영이 수세에 몰렸던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두 가지 쟁점이 미친 영향력은 이번 선거결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보진영을 근본부터 흔드는 강력한 지진과 같은 메가톤급 이슈다. 진보진영과 새정연의 전략수정이 없다면, 진보균열의 심화를 피할 수가 없다.
진보진영은 경제영역의 좌파 기득권, 지역적으로 호남, 정치이념상 진보성향 유권자, 이 세 그룹의 연합체다. (좌파기득권에 대해서는 <진보의 역설, 좌파기득권> 참조). 거대한 지각이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이지만,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세 가지 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진보진영이라는 큰 덩어리 아래 위의 3者가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 3者연합체의 내부적 갈등, 즉 균열을 증폭하는 쟁점이 위 두 가지다.
경제영역의 좌파 기득권을 대표하는 것은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노조다. 대표적으로 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공무원 노동조합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좌파 기득권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새정연의 친노-386그룹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무원 연금과 노동시장 개혁에 반대하거나 미적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들이 진보진영을 심판한 가장 중요한 이유도 이것이다.
경제영역에서는 좌파 기득권이, 이들과 일란성 쌍둥이인 친노-386 그룹이 정치영역에서 진보진영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3각축 중 또 다른 두 축, 즉 호남과 진보성향 유권자는 좌파 기득권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영남과 보수성향 유권자에 비해 좌파 기득권에 대한 지지가 진보진영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상대적인 의미에서 그러하다.
호남 유권자의 다수는 좌파 기득권에 대해 잘해야 양비론적이다. 재벌도 나쁘지만 민주노총과 공무원 노조가 잘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공무원 노조만 편드는 친노-386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물론 이번 선거의 경우, 호남 이탈의 직접적 원인은 친노-386의 일방적 패권에 대한 반발과 견제 심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좌파 기득권과 친노-386에 대한 인식은 서로 맞물려 있다. 그리고 호남은 이 두 가지에 모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반발의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여타의 진보성향 유권자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진보진영의 3대축 중 패권을 장악한 좌파 기득권 세력과 호남과 진보성향 유권자라는 나머지 두 축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일치하지 않는다. 적대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진보진영 내 균열구조가 현실화될수록 진보진영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이번 재보궐 선거결과는 그 서막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유권자를 이념성향으로 분류하면 크게 보수와 진보가 각각 35%, 중도가 30%정도다
단기적인 요동은 있었지만 그간 보수와 진보진영은 50對50의 팽팽한 균형상태를 유지해 왔다. 30%의 중도가 15對15로 보수와 진보진영에 거의 비슷한 비율로 갈려갔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에서 균열없이 진보진영에서만 균열이 가시회된다면 이 50對50의 균형상태가 깨지는 것이다.
양당체제가 지속된다면 진보지지에서 이탈한 중도유권자에게 남은 선택은 보수진영으로 투항뿐이다.
그럴 경우 50對50의 균형상태가 깨지고 65對35의 보수패권시대로 한국의 정치지형이 급격하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미국, 영국 그리고 한국의 보수패권시대
일본에서는 보수진영이 대략 60% 이상의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보수패권은 심각한 도전없이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중도층의 이탈로 인한 급격한 보수화의 또 다른 사례는 미국과 영국이다. 두 나라에서 1980년대를 풍미했던 보수혁명과 신자유주의 열풍이 그것이다. 당시 보수패권을 가능케 한 직접적 원인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다. 구체적으로 이를 주도했던 집단은 이념성향상 중도였던 중산층들이다. 이 점에서 우리와 동일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로 인한 양당체제라는 점에서 우리와 동일한 미국의 사례다. 진보진영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점쳐지던 1970년대 말 상황에서 미국 중산층은 대기업 노조라는 좌파 기득권에 대한 반발로 보수를 선택했다. 좌파 기득권은 무능하고 유약했던 민주당의 카터행정부에서 극성기를 맞는다. 이 점에서 카터행정부는 우리의 노무현정부와 유사하다. 이에 대한 반발이 미국에서는 레이건정부, 한국에서는 이명박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의 정권재창출이 가능했던 이유와 박근혜정부 하에서 치러진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진영의 참패도 같은 원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좌파 기득권과 이들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친노-386에 대한 국민적 반감, 이 중심에 양 진영을 모두 싫어하는 중도 유권자들이 있다.
보수진영이 단일대오를 유지한 상태에서 진보진영만 균열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보수패권의 공고화와 장기화다. 국민적 불행이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은 단일대오인가? 아니다. 진보진영과 마찬가지로 보수진영도 3者연합체다. 대기업 중심의 우파기득권에, 지역적으로 영남, 이념성향상 보수성향유권자가 결합되어 있다.
진보와 마찬가지로 보수진영이라는 거대한 땅 덩어리 아래 3者연합이라는 세가지 판들이 존재하는 데, 이 판들이 이동하면서 서로 충돌하면 지진이 발생한다. 그 때 땅 덩어리 중 금이 간 부분, 즉 균열(cleavage)이 존재한다면, 이 틈으로 용암이 분출한다. 이것이 지축을 뒤흔드는 지진이다. 용암이 어디로 분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중 가장 약한 부분, 즉 금이 간 균열의 틈새로 비집고 나온다는 것은 분명하다.
진보진영과 마찬가지로 보수진영에도 균열이 존재한다. 문제는 어디가 더 약한가? 즉 더 큰 균열이 어느 진영에 존재하는가이다. 4.29는 진보진영의 균열이 충격에 더 약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정부까지 보수정부들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혹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국민적 분노라는 용암이 보수진영이 아닌 진보진영을 뒤덮었을까?
양 진영간 가장 큰 차이점은 보수진영에서 우파 기득권이 점하는 패권이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진보진영의 좌파기득권은 그 수가 만만치 않다. 공무원 100만, 민주노총 조직원 70만, 한국노총 100만이다. 이들의 직계가족만 합쳐도 유권자 규모는 400백만 명 수준이다. 이는 호남의 영향력을 압도한다.
보수진영의 우파 기득권은 경제적인 면에서 영향력은 압도적이지만,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는 숫자는 그 다지 많지 않다. 1천만 영남 유권자가 이 점에서는 패권을 쥐고 있다. 보수진영을 지지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영남 유권자들이 우파 기득권자는 아니다. 그래서 보수진영에서도 균열의 가능성은 항상 내재되어 있다. 문제는 정치세력이다.
좌파 기득권을 충실히 대변하는 친노-386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인 친노-386은 좌파 기득권을 충실히 대변한다. 돈과 표 모두에서 좌파 기득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어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매우 낮다. 반면 보수진영의 새누리당은 여차하면 우파 기득권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을 감행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그럴 의지는 없을 수 있지만 보수진영 전체가 위기에 빠지면 그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이 우파 기득권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이 성공할 가능성은 진보진영보다 매우 높다.
아군에게나 적군에게나 균열은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급소다. 아군의 균열을 최소화하고 적군의 틈을 공략하여 대오를 흐트러트릴수 있는 진영이 승리한다. 정치나 선거도 마찬가지다. 진영내 기득권 세력의 양보와 자기희생이 균열 최소화가 유일한 해법이다. 진영내 갈등을 증폭하는 균열에 대한 치유없이 상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는 어찌되었든 이명박의 친서민 중도실용노선이나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도 이러한 인식하에 가능했다. 이는 보수진영내 우파 기득권의 패권에 반감을 가진 보수와 중도성향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최선책이다. 물론 이를 통해 중립지대나 적군의 투항을 유도할 수도 있다. 아군의 단결력을 높이고 적군의 투항을 이끌어낸다면 백전백승이다.
이번 선거 직전의 새누리당 유승민의 원내대표 연설도 보수진영내 균열의 치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진보진영은 이 점에서 무능하고 전략도 없다. 그래서 참패한 것이고, 이러한 무전략(無戰略), 무뇌(無腦)상태가 계속되면 진보의 몰락은 피할 수 없다.
보수의 균열없이 진행되는 진보만의 균열은 당연히 65對35의 보수패권 시대를 예고한다. 국민적 불행이고 국가적 위기다. 보수패권시대를 막을 유일한 대안은 30%에 달하는 중도성향 유권자의 독자세력화다.
보수 35%, 진보 35%의 평형상태에 30%의 중도가 균형추로 역할할수 있다. 이 균형상태에서 진행되는 진보의 균열로 이탈한 기존의 진보지지 유권자들은 보수진영에의 투항이 아닌 중간다리 중도로 수렴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진보가 균열해도 보수 35%는 유지된 상태에서 진보와 중도의 세력분포만 변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