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원의 유혹
서울 봉천동 어디쯤, 한 달에 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작은 밥집이 있다. 여기서 당신은 어떤 느낌을 받으시는가. 월 이삼백을 채 채우지 못하는 당신의 월급 명세서가 아쉽게 느껴지진 않으시는가. 그렇다면 조금 마음을 푸셔도 될 것 같다. 저 밥집 주인은 사실 생각보다 그리 큰 돈을 벌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당장 폐업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서울 봉천동 6969-69번지 팝핀세상 빌딩 1층에 위치한 횟집 ‘폭풍수산’. 신선한 양식 광어와 우럭이 주력인 이 횟집은 저렴한 가격으로 주변 거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작은 횟집이다. 휴일 없이 돌아가는 이 횟집은 하루 평균 열 테이블 남짓의 손님을 받는다. 직원은 회를 뜨는 사장 본인과 카운터 및 서빙 등을 맡는 직원까지 모두 두 명. 이 작은 횟집은 한 달에 천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그러나 폭풍수산 사장의 입에선 한숨이 떠나질 않는다. 이 작은 횟집은 보증금이 5000만 원, 매달 임대료가 200만 원이다. 여기에 횟집을 유지하는 데 드는 전기요금 및 수도요금 등 각종 공과금, 세금과 각종 유지비를 합치면 또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 가까이 나간다. 직원에게는 매달 150만 원을 주는데, 사실 여기에 세금과 4대 보험, 식비 등을 계산하면 실제로 지출되는 돈은 200에 가깝다. 이 가게를 여는 데 든 권리금이 대강 6000만 원, 보증금과 권리금 덕분에 매달 나가는 은행 이자가 또 수십 만원이다. 그러니까, 회가 단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 해도, 매달 고정적으로 600여만 원이 ‘비용’으로 나가는 셈이다.
물론 폭풍수산 사장이 회를 바다에서 직접 잡아오지 않는 이상, 재료비도 만만치 않다. 재료비가 음식값의 1/4만 된다고 해도 벌써 200여만 원이 또 추가로 지출된다. 거기에 세상 모든 물건에는 감가상각이란 게 있어서, 시도때도없이 여기가 망가지고 저기가 망가지고 난리가 난다. 그래서 폭풍수산 사장의 손에 최종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얼마인지를 보니, 딱 150만 원이 남는다. 낮과 밤이 뒤집힌 생활 패턴을 쉬는 날 하루 없이 매일 출근해 손에 넣는 돈이 그렇더라는 말이다. 물론 여전히 빚으로 남은 보증금과 권리금은, 뭐, 답이 없다.
천만 원의 현실
이 사례가 대단히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사례는 중소기업청이 조사하는 소상공인 실태 보고서에 따른 ‘평균치’를 가상의 가게 ‘폭풍수산’에 대입한 것이다. 평균 매출 990만 원, 평균 순이익 149만 원. 이 숫자가 지금 자영업이 놓인 현실이다(2010년, 중소기업청 보고서 기준). 누군가는 이 사람들이 탈세를 위해 매출이나 수익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자영업에 뛰어든다고 생각하고 계산을 해 보면, 이게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작년 말 페이스북 등에서 화제가 된 문서가 하나 있다. ‘프로그래머는 치킨집을 차릴 수 있는가‘. 뭐 잘 나가던 프로그래머가 다들 말년엔 치킨집을 하고 있다더라, 프로그래밍을 하다 막히면 회사 앞 치킨집에 가서 물어보면 사장님이 다 알려준다더라 하는 농담들이 한 편의 역작(?)을 낳았다. 실제로 치킨집을 열었을 때 드는 비용, 입지 선정의 어려움 등에 대해 무척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대작이면서도 술술 읽히고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어쨌든, 사실 저 폭풍수산의 사례는 오히려 대강 계산한 경우고, 실제로 자영업을 벌이려 하면 온갖 난제들이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개중에서도 역시 가장 큰 장벽이 바로 보증금과 권리금, 임대료와 세금이다. 자영업에 뛰어들려 하는 모든 사람에게 거대한 허들일 뿐 아니라, 일단 가게를 열고 나서도 괴롭힘을 멈추지 않는 실로 악마 같은 존재다. 설령 사업에 실패했더라도, 보증금과 임대료, 그리고 계약이 그들의 발을 붙들어 맬 것이며, 보장받지 못할 권리금이 또 그들의 갈 길을 가로막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사업이 망해가더라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고정된 비용이라는 것이다.
어떤 대립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가게에 출근한 폭풍수산 사장 리수영 씨는 근처에 생긴 포장마차를 발견한다. 아나고와 세꼬시, 굴 따위가 있는 여느 포장마차. 하지만 회를 비롯한 수산물을 취급하는 폭풍수산에게는 그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도끼 같은 존재다.
이 포장마차로 인해 폭풍수산의 매출이 20% 줄어들어 800만 원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매출이 20% 줄어들었다는 것은 순수익이 20% 줄어들었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이런 소규모 자영업은, 비용 대부분이 임대료나 세금, 공과금과 인건비 등의 항목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출이 20% 내려갔다고 해서 임대료가 20% 내려가진 않는다. 매출이 20% 내려갔다고 해서 월급을 20% 깎을 수도 없다. 매출이 1000만 원이든 800만 원이든, 600여만 원의 고정된 비용은 그대로 주머니에서 빠져나간다. 여기에 재료비 등 각종 비용을 더하면, 폭풍수산이 건져가는 돈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여기가 포장마차 거리로 활성화되고 손님들이 급증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림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가정이다. 막대한 고정된 비용을 바닥에 깔고 있는 폭풍수산에게, 포장마차와 가격 경쟁에 나서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요구다. 값을 10%만 내려도 이미 남는 순수익이 없다. 종종 출동하는 공무원들의 점검도 은근한 압박이다. 어쨌든 가게를 차린 이상 위생을 비롯해 신경 쓸 부분이 많다.
이 대립에서 ‘파이를 나누고 공생하라’는 조언은 아름답긴 하지만 무의미하다. 파이를 나누고 공생하기에는, 멀쩡히 ‘세금 내고 정정당당하게 장사하는’ 폭풍수산이 오히려 더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는, 폭풍수산에게는 나눌 만한 파이가 애당초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량진의 경우
서울 노량진역. 1호선과 9호선이 환승하는 나름 큰 역이고, 유명 학원가와 수산시장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지역이지만, 요즘에는 좀 분위기가 다르다. 2013년, 노량진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컵밥’이다. 노량진역에 내리면 역 앞 인도에 빼곡히 들어찬 포장마차에서 다들 ‘밥’을 팔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름은 컵밥이지만 정말 컵에 담아 파는 것은 아니고, 일회용 밥그릇에 밥과 반찬거리를 대강 담아 한 끼 식사로 내놓는 물건. 대형 편의점 프랜차이즈는 물론 대형 마트까지 이를 흉내 낸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밥’을 파는 노점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게 너무 많이 생겼다는 것. 떡볶이나 핫도그, 계란빵이나 닭꼬치 등 주전부리 거리를 팔던 노점과 달리, 진짜 본격적으로 ‘밥’을 파는 노점은 인근 식당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특히 노량진의 고시생과 학생들에게 저렴하면서도 십 분 안에 금방 한 끼를 해치울 수 있는 컵밥은 대단히 매력적인 상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밥’을 파는 노점의 인기가 늘면 늘수록, 주변 상권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그 ‘파열음’이 직접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건 2012년 봄 무렵. ‘컵밥’ 노점이 본격적으로 늘고, 노량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컵밥 얘길 들어봤을 즈음과 대강 일치한다. 인근 식당에서는 노점의 컵밥 판매에 불만을 갖고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구청은 컵밥을 팔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고, 당연하게도, 노점은 계속 컵밥을 팔았다. 파열음이 계속 나오면서도 본격적인 충돌은 벌어지지 않는 –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만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 가까이 지난 지난 1월, 구청은 강제 철거에 나선다. 인근 식당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었던 컵밥 일부를 강제 철거한 것이다. 경향의 표현대로 이미 지역의 ‘명물’이 되어버린 컵밥 노점의 철거는 여느 단속과 달리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주요 일간지의 기사가 되기도 했다.
경직된 시선 vs. 피할 수 없는 딜레마
사태를 다룬 경향의 기사는 건조하다. 하지만 그 건조함 때문에 오히려 어느 한 쪽을 편드는 것처럼 보인다. 노량진 명물 ‘컵밥’ 일부가 강제철거되었다, 주변 상권과의 영업권 갈등 때문이다, 노점상 주인은 ‘굶어 죽으라는 거냐’고 항의했다, 민노련 노점들은 영업시간을 정하고 인근 식당과 같은 품목을 팔지 않는 등 나름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게 대강의 개요다.
문제는 경향을 비롯한 많은 언론이 이 사태를 인근 상권의 ‘영업권’과 노점의 ‘생존권’ 투쟁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경향의 기사 역시 양측의 목소리를 모두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노점은 ‘굶어 죽을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인근 상점은 ‘매출 하락과 임대료’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담았다. 군소 언론은 물론 주요 일간지 몇 곳도 이런 도식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시각은 무리한 해법을 낳는다. 뉴스 1의 기사는 제목에서 이미 ‘상생 해법이 있다’고 선언하고 들어간다. 노원구청처럼 생계형 노점상과 기업형 노점상을 분리하여 대처하거나, 남대문시장의 ‘야채호떡집’이 주변 상권을 함께 진흥시키는 차원에서 다시 부활한 사례를 든다. 도로를 점유하는 데 대한 비용과 세금을 적절히 매기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나온다. 경향의 한 칼럼은 컵밥 문제를 이 시장에 진출하려는 대기업과 가난한 노점 간의 대립으로 축소하고, ‘공생의 정치’를 주문하기도 한다.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심도 있는 보도는 한겨레에서 나왔다. 한겨레가 지적하는 문제의 근원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인근 식당과 노점, 구청은 물론 인근 주민의 생각까지 골고루 청취한 뒤 한겨레가 내놓는 의견은 이렇다. 여기에서는 이미 ‘밥을 팔기 위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나 고시생이 많은 노량진 지역의 특성상 저가 음식점의 수가 지나치게 늘어났고, 임대료 등 고정된 비용을 생각하면 가격을 더 낮출 수 없을 정도로 박리다매 경쟁의 구도에 돌입했다. 박리다매의 시장 구조는 결국 공멸의 지름길이다. 여기에 ‘밥’을 파는 컵밥 노점의 등장은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했다. 노원구 식의 ‘분리 정책’도, 남대문시장 식의 ‘다 같이 부흥하는 길’도 여기에는 없다. 이곳 시장은 이미 고학생들로 꽉 들어찼고, 생계형과 기업형을 분리해봤자 이 문제를 해결할 대책으론 턱도 없다. 매출 규모나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노점의 특성을 고려하면 생계형과 기업형을 나누는 기준 또한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공생의 정치’는 개중에서도 가장 속 편한 소리다.
비싼 식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배를 곯는 노량진의 젊은이들, 박리다매의 경쟁 구도에 내몰린 상인들, 그리고 거리에서 컵밥을 파는 상인들에 이르기까지, 여기엔 나눌 파이가 더는 없다. 파이를 만들 밀가루조차도 남아나지 않았다.
폭풍수산을 위하여
이 무서운 현실에서 도망쳐, 우리는 다시 폭풍수산으로 돌아오고자 한다. 폭풍수산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생존권’의 문제다. 개인사업자의 절반은 3년 이내에 휴업하거나 폐업하며, 생존비율은 1/4에 불과하다. 이 수치가 무서운 또 한 가지 까닭은, 이게 병원 등 ‘전문직종’을 포함한 수치라는 것이다. 학원이나 주점, 음식점 등은 그중에서도 생존 기간이 특히 짧은 경우다.
물론 생존 기간이 짧다고 해서 모두 망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실제 자영업자의 순수익 규모를 보면 결코 이 수치를 긍정적으로 볼 수가 없다. 한때는 치킨집, 또 한때는 카페, 그리고 지금은 닭강정집, 유행이란 말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업계의 흐름은 현실을 더욱 부정적으로 보게 한다. 유행 대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라는 말, 말은 쉽지만, 그럴 재능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에 따르는 위험 부담은 끔찍할 정도로 크다. 보증금과 임대료는 물론 권리금까지 그들을 잡아먹는 현실은 도전을 얘기하기엔 이미 충분히 고달프다.
최근 꾸준히 늘어나던 자영업자 수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무섭지만,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추세’와 ‘양상’이다. 수 년 전부터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의 창업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40대 이하 청년층에서도 자영업 선호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저부가가치 부문의 ‘레드 오션’이 커지고 있어 실속도 없고, 고용의 지속적인 부진 때문에 전망도 어둡다. (자세한 내용은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를 참고.)
공생하자는 말, 무척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이미 나눌 파이가 없다. ‘잘 사는 가게 사장님’과 ‘가난한 노점 아줌마’의 대립 구조는 한참 옛날 얘기다. 가게의 영업권과 노점의 생존권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야 온정에 기댈 수라도 있겠지만, 실상은 생존권과 생존권이 대립하고 있는, 만인이 만인과 맞서 싸우는 극한 상황이다. 보증금과 임대료는 끝도 없이 높아지지만, 순수익은 쥐꼬리만 하다. 이미 권리금은 누구의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 ‘폭탄’이 되어, 다음 세입자에게 ‘어떻게든 넘겨야’ 할 돈이 된 지 오래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어쩌면 이미 지옥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