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 윌리엄스의 A mile wide, an inch deep를 번역한 글입니다.
내가 최근에 인스타그램의 사용자 수가 트위터보다 많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고 한 말을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다. 해당 글을 읽어보면 내가 왜 알 바 아니라고 말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용한 문구는 다음과 같다:
“트위터가 세상에 미친 영향력을 인스타그램과 비교해본다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둘은 간단하게 비교할 수 있는 대상들은 아니다. 트위터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트위터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반영하는 실시간 정보 네트워크이다. 중요한 일들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고 세계의 지도자들도 트위터를 통해 대화하기도 한다. 이것이 사실인 만큼, 인스타그램의 더 많은 사용자들이 예쁜 사진들을 보든 말든 그것은 내 알 바 아니다.”
물론 내가 사람들에게 인스타그램이 갖는 중요성을 너무 과소평가하듯 말하기는 했다. 인스타그램은 예술의 창조와 향유와 함께 인간 대 인간의 연결을 가능하게 해 주는 아름답고 좋은 앱이다. 하지만 내가 갖는 불만은 그 사실과는 상관이 없다. (트위터와도 사실 상관이 없다.) 내가 갈수록 불만인 것은 보도하는 언론, 투자자, 소비자를 위한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하는 사람들이 성공의 기준을 논하는 수준이 매우 1차원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무 중학생이나 데려다가 한번 물어보자. 가로 6cm인 직사각형이 더 큰가, 아니면 가로 5cm인 직사각형이 더 큰가? 당연히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질문이 말이 안 된다고 답할 것이다. 크기를 비교하려면 세로의 길이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문자 그대로 한 가지 수치만 놓고 어떤 회사나 서비스가 “더 큰 지”를 논하고 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 한 가지 수치는 최근 30일 동안 “사용”한 사람들의 수이다. “사용”의 정의에 대해 굳이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게 매우 멍청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관한 경우, 윌 오레머스(Will Oremus)가 슬레이트(Slate)에 기고한 글은 단지 어떤 것이 “더 크다”는 식의 제목을 뽑은 글이 아니었다. 그는 비교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를 훌륭하게 설명하였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인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이 트위터보다 크다? 아니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는 다른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대체로 사적이고, 트위터는 대체로 공적이다. 인스타그램의 중심은 사진이고, 트위터의 중심은 말과 글이다. 둘 다 매우 크고, 지금도 성장 중이다.”
미디엄은 저번 주에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아니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medium.com에 접속한 순방문자(unique visitor, UV)의 수가 대박을 친 것이다. 주된 원동력은 포스트 한 편이 (주로 페이스북에서) 바이럴로 히트를 친 것이 크다. 하지만 그 절대 다수의 방문자들은 펑균적인 방문자들이 사이트에 접속해있었던 시간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접속해 있었으며 읽은 글도 별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우리가 미디엄에서 사용하는 최우선의 기준은 총 소비 시간(total time reading)의 축약어인 “TTR”이다. 이는 사람들이 기사 페이지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불완전한 측정이다. 우리는 이것이 사람들이 미디엄의 가치를 잘 활용하는지를 추측할만한 괜찮은 척도라고 생각한다. TTR에 따르면, 지난 주도 꽤 큰 편이었지만, 10월 첫째 주는 그에 비해 TTR이 50% 더 많았는데, 이는 순방문자가 60%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각 방문자마다 실제로 읽었던 시간이 더 길었다는 말이다.)
맷 호난(Mat Honan)은 뉴 미디어의 현황에 대하여 와이어드(Wired)에 기고한 훌륭한 기사를 통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관심 받기 전쟁”을 하고 있다고 정확하게 짚어내었다. 그러나 호난은 이 전쟁에서 여러 웹사이트들이 어떤 실적을 내고 있는지 비교하기 위하여 순방문자의 수를 사용한다.
(“독자층(readership)”이라는 현혹시키는 이름이 붙은) 이 기준에 따르면, 버즈피드는 뉴욕 타임즈보다 “더 크다”. 그러나 이 기준에 따라서 본다면 미디엄은 10월의 TTR이 높았던 주보다 지난 주에 규모가 더 큰 것이 된다.
우리가 다른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고 주목 받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고 하더라도, 이는 우리에게 별로 중요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는다.
버즈피드가 뉴욕 타임즈보다 받는 관심의 총량은 더 많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우리는 그 근거로 이런 1차원적인 그래프를 들이미는 것은 좀 멈춰야 한다.
에누리해서 듣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좀 더 제시하자면, 위의 차트를 비롯하여 언론사에서 웹사이트 트래픽에 대해 비교하는 많은 기사 내용들은 컴스코어(Comscore)가 제시하는 수치를 기반으로 하며 미국 내 사용자 수만을 측정할 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1) 대부분의 사이트 운영자들은 자신들의 수치가 컴스코어가 제시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이트의 규모가 더 작을수록 이는 사실일 확률이 더 높다. (표본 추출 방식 때문에 그렇다). 컴스코어가 중복 사용자를 걸러낸다고 주장한다더라도 말이다.
2) 미국의 모든 웹사이트의 총 사용자 수에서 일정 비율은 아무리 작더라도 전세계 사용자가 포함된다. 그러니 미국인 사용자만 조사하겠다고 앞서 일러두었다면 또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서 미국인 사용자의 수만 보여주는 것은 독자를 현혹하는 행위이다.
마지막으로, 컴스코어의 수치가 앱 트래픽을 포함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컴스코어가 앱 사용도 어느 정도 측정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위 차트에 나온 모든 NYT 앱에 대한 정보(와 버즈피드 앱에 대한 정보)를 다 측정하였을까?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우리가 미디엄에 접속한 방문자의 수보다 글을 읽는데 소요한 시간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한한 컨텐츠가 펼쳐진 세상에는 관심을 끄는 오만 것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널려 있는데다가 계속 알림이 날아오는데, 이 중에서 무언가를 오랜 시간을 들여 본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든지 가치가 있으려면 어느 정도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화면과 인터넷 연결이 제공되는 단말기를 언제 어디서나 휴대함에 따라 사람들이 매체와 인터넷에 들이는 관심과 주목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지만, 여전히 유한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만 이런 관점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차트비트(Chartbeat)의 토이 헤일(Tony Haile)은 (“클릭 웹(Click Web)”의 대척점에 있는) “관심 웹(Attention Web)”의 개념을 장려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관심을 측정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것이 웹 환경을 개선할 것이라는 데에 희망적이다.
“품질을 중시하는 publisher들에게, 광고의 가치를 클릭 수가 아닌 시간과 유도하는 관심에 따라 매기는 것은 그들이 찾았던 생명선일 수 있다. 웹 상에서의 시간은 희소한 자원이며 우리는 불량이 아닌 양질의 컨텐츠를 보는 데에 시간을 더 할애한다. 광고의 가치를 시간과 관심에 따라 매기는 것은 뛰어난 컨텐츠를 제공하는 publisher들이 링크 낚시질이나 하는 publisher보다 광고비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워디(Upworthy) 역시 목소리 높여 시간이 곧 품질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선호하는 것은 이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사람들이 클릭만 많이 하는 것이 아닌 진정 즐기고 가치를 부여하는 컨텐츠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순방문자나 페이지뷰의 측면에서는 그만큼 힘을 못 쓴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사용자 만족에 초점을 맞추는 기준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손해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와이어드 기사에서도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왜 보는 시간이 중요한지를 언급한다.
“클릭 수도 중요하고 눈길도 중요하지만, 광고업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보는 사람의 시간이다. publisher들은 단순한 페이지 조회수가 아닌 독자가 웹사이트에서 소요하는 시간에 따라 광고 판매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읽는 시간이 긴 기사일수록, 동반하는 광고의 값도 역시 비싸지는 것이다.”
시간으로 측정하는 데 따르는 문제는 가치를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용물을 통해 가치를 간접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광고업자들이 필요한 것은 사실 시간이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에는 소비자의 돈이 되기도 원한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독자 여러분의 시간을 원하지 않는다. 독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 필자의 목적이다. 필자의 필력이 좋아 짧은 시간 안에 글을 쓰고, 독자들이 짧은 시간 안에 글의 요지를 잡아낼 수 있다면 이는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미디엄을 운영하는 우리로서도 사람들의 시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고 싶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다.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교감하고 싶다. 이런 것들을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만약 미디엄에 우리가 생각하기에 의미 있는 가치가 있거나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지만 매우 중독성 있고 인기를 끌 만한 장르나 글의 형태, 혹은 저자가 등장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미디엄 게시물계의 막장 드라마나 “팜빌(Farmville)”이라고 할만한 것이 떴다고 하자. 미디엄의 TTR 차트는 대히트를 기록할 것이고, 우리는 성공의 환상에 휩싸여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실제 목적이 아니다.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과는 정반대이다.
이는 모든 1차원적인 기준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조나 페레티의 말과 같이, 세상에 “절대 기준”이란 없다:
“요즘 업계에서는 모두들 컨텐츠를 평가하기 위한 절대 기준을 찾기 위해 날뛰는 것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공유 수라든지, 소비 시간(time spent)라든지 페이지 수(page)라든지 순방문자 라든지 한 가지에만 목을 맨다. 문제는 최적화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뿐이기 때문에 그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며, 여러 것을 최적화하려고 한다면 타협만 하다 날이 샌다는 것이다.”
구글의 초기 단계에는 칠판에 (크레용으로) 그려놓은 차트가 쿼리 수에 관한 것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는 가치를 측정하는 매우 현명한 방법 같았다. 게다가 사실 사람들의 시간을 최대한 덜 잡아먹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제공하는 서비스가 미디어가 아닌 유틸리티라면 이는 바람직한 목표라고 봐도 좋다.
(트위터는 미디어와 유틸리티의 특성을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 트위터의 장점은 무지하게 간결하다는 것이다. 또한, 트위터가 갖는 목적의 큰 부분은 구글과 마찬가지로 링크를 걸어 다른 사이트로 안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접속 소요 시간을 최적화하는 것은 트위터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될 것이다.)
또 다른 일류 전자 기기 회사인 애플 사를 보자면, 애플은 분명히 자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수를 굳이 최적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네트워크상의 영향력과 수익을 본다면 사용자 수에도 관심을 분명히 기울인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애플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 중에 하나로 꼽히는 비결은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실제로 애플의 전략 중 하나는 통합된 제품의 집합체를 제작하고 이를 단골 고객들에게 최대한 많이 (충분한 이윤을 남겨) 판매하는 것이다.
사용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그에 따라 가치도 증가하)여 칭송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다시 지상으로 곤두박질친 과거 기업들의 역사적인 예시를 통해 배울 점이 있다.
넓이보다 깊이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대부분의 인터넷 관련 회사들은 더 좋은 것을 창조하고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넓이가 아닌 깊이에 주의를 기울였던 시절이 있긴 있었다. 초기 웹 환경에서는 페이지뷰가 적어도 순방문자 수만큼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전의 “조회수(hit)”나 마찬가지로) 오래 전에 무의미해졌으며, 앱의 도래가 이 사실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2006년에 이를 지적하는 블로그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었다.
“기술적인 이유로 페이지뷰가 단지 구식의 기준이라면 MAU/UV를 강조하는 것은 유독성인 느낌을 준다.”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다거나 그에 대해 취재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이 파악하기 매우 힘들어진다. 직사각형의 크기가 아닌 다차원적 공간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과 같아서 그렇다. 사물을 측정하는 것은 종종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여러 기준과 일화를 통해 최대한 많이 학습하는 수밖에 없다.
회사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론적으로는 더 많이 간단하다. 재무의 관점에서 본다면 회사의 가치는 주어진 시간 동안 수익을 내는 능력이다. 이는 쉽지 않으며, 신규 회사들의 경우에는 성장 곡선의 궤적이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점은,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이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기업들은 예시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수 = 가치”라는 등식을 믿는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유한 회사의 가치 측정 및 벤처캐피탈과 기술 언론의 집착으로도 이어진다.
당신이 경영인이라면(혹은 공개 기업의 직원), 이러한 착각에 빠지지 말기를 바란다.
수치는 중요하다. 사용자 수는 중요하다. 그 외에도 중요한 것들은 많다. 서비스의 종류가 다르면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당신의 직감을 수치만큼 (아니면 수치보다 더) 신뢰하라.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좋은 것을 창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