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가 떴다. 좀 이상한 방향으로.
대선 정국의 첨예한 이슈 중 하나였던 ‘국정원 직원 불법 선거운동 의혹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흔히 ‘국정원 女’로 불리던 바로 그 사건, 민주당이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바로 그 사건 말이다. 결국 대선 당일까지 뚜렷한 물증이나 반증 없이 유야무야되었지만, 대선 이후로도 사건은 진행 중이다. 오늘은 그가 실제로 인터넷 사이트에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한 글을 수십 차례 올린 사실까지 확인되었다.
그가 활동한 것으로 밝혀진 사이트가 바로 유명 유머 사이트 ‘오늘의 유머’, 약칭 ‘오유’다. 사용자들이 게시판에 소소한 유머 자료를 올리면, 개중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은 ‘베스트 게시물’이라는 게시판으로, 개중에 또 더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게시판으로 옮겨간다. 여기에 올라오는 글들은 보통 귀여운 동물이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유머부터 시작해, ‘도가니’ 느낌의 사회 고발적인 글, ‘안생겨요(ASKY)’란 유행어로 대표되는 연애 망하는 내용(…)까지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고 어지럽다.
며칠 전, 문제의 국정원 직원이 실제로 하던 일이 이 사이트의 종북 성향 글을 추적하는 일이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중앙일보는 단독 기사에서 ‘종북 성향의 글이 상당수 올라왔다’며 이 사이트에 종북 사이트의 틀을 씌웠고, ‘종북 사이트 오유’라는 말은 삽시간에 인터넷 일각의 유행어가 되었다.
국정원 관계자의 증언도 이러한 중앙일보의 보도를 뒷받침한다. 오마이뉴스의 기사다.
국정원 관계자는 7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김씨가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에서 ‘활동’한 것과 관련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북 업무를 일일이 설명할 수 없지만 (김씨는) 대북 업무와 관련해서 오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북 업무하는 사람들은 오유, 일베(일간베스트)에 들어간다”며 “(오유에서) 좌파세력, 종북세력들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파악하고 업무에 대한 단서를 포착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유라는 사이트 자체가 종북 글 아니면, 정치적인 글밖에 없다”면서 “그 사이트를 보면서 지나가다 한 번씩 글에 (찬반을 )클릭한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근래 오유를 가장 불태웠던 글이라면 역시 ‘회식남‘이다. ㅍㅍㅅㅅ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했던 글로, 4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글도 ‘정치’글이나 ‘종북’ 글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서 힌트 하나. ‘나’를 대한민국을 좀먹는 종북세력, 차장님을 일본, 부장님을 미국으로 보고, ‘그녀’를 북한으로 본다면 어떨까? ‘내’가 차장님과 부장님을 택시 태워 보내고 ‘그녀’와 밀회를 즐기는 이 내용,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이것은 종북세력이 일본과 미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비밀 회담을 가졌다는 내용이 아닐까! … 아닌 것 같다고? … 죄송합니다…
한편 중앙일보가 오유의 대표적인 종북 글로 꼽은 ‘북한의 경제전략은 선군경제전략‘이란 글은 무엇인가? 이 글은 특별한 내용 없이 새세상연구소라는 곳에서 제작한 동영상만 달랑 올린 글인데, 과연 내용이 이상하다. 나로호는 실패했는데 북한은 성공했다, 대단한 기술이다, 인터넷 등 민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이 이런 군사기술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게 북한의 강성대국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는 등, 뭔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전개다. 뭐 기껏 찾아낸 게 글 하나뿐이라니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어쨌든 뭐 이 정도면 종북 사이트 맞지 싶은데! 종북 out!
뭐 댓글은 하나같이 뭔 멍멍이 소리냐 하는 분위기고, 조직적인 추천 정황도 굳이 국정원이 나설 필요 없이 사용자들이 알아서 밝혀내 댓글에 쓴 데다가, 도리어 이 글을 추천한 사람들의 아이디가 하나같이 뭔가 일부러 종북인 척 티를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실로 해괴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것도 뭐 상관없다. 북한에 대한 내용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동영상을 이렇게 유포한 것만으로도 마땅히 종북이라 칭해야 할 것이다. 종북 out!
그럼 좀 더 본격적으로, 오유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들어가 보자. 앞에서도 설명했듯, 이곳은 오유 안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들만이 올라오는 일종의 ‘명예의 전당’이다. 과연 우리는, 여기에서도 종북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북한’으로 검색해 보았다.
북한을 나쁘게 묘사하는 연막작전이 게시판을 꽉 채운 가운데, 드디어 종북세력의 꼬리를 잡은 느낌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스펙의 북한간첩이라니, 북한을, 그것도 간첩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단 말인가. 뭐 물론 이 사람이 단국대 사학과 교수이며 튀니지대 사회경제 연구원이자 말레이대 이슬람 아카데미 교수, 12개 국어 구사자이며 산 크리스트 어 연구자인 무함마드 깐수로 위장한(…) 베이징대 동방학부 수석 졸업, 주 모로코 중국대사관 외교관이었으며 평양외국어대 아랍어과 교수였던 정수일 씨(…)에 대한 글이긴 하지만, 그리고 전향한 인물이긴 하지만, 알 게 뭐람! 종북 out!
이번에는 ‘김정일’로 검색해보았다. ‘북한’으로 검색했을 때보다 더욱 뚜렷한 종북의 색깔이 배어 나온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심지어 김정일 게시판을 만들어달라는 청원까지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올라온다. 뭐 중간에 단어 하나를 생략한 것 같지만 상관없다. 종북 out!
사이트의 심장이라 할 수 만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와 ‘오늘의 베스트’는 시뻘건 색으로 칠해져 있고, 핵심적인 시스템인 추천 / 반대 수도 빨간색. 이상 ‘오늘의 유머’가 종북 사이트인 이유를 탐방해보았다. 아무도 정치/종북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한 글로 사이트의 상당 부분을 채움으로써 시선을 빼앗는 대담한 연막 전략, (반대 댓글만 우수수 달리지만 어쨌든) 북한 관련 동영상이 올라오는 모습, 김정일 X새끼 게시판을 만들어달라는 청원에 이르기까지 ‘종북 사이트’로 부를 만한 다양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비록 국정원 직원이 여기에서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한 글을 대량으로 올린 것이 확인되었으나, 이런 사이트라면 과연 국정원 직원으로서의 본분을 지켰다 평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안보를 좀먹는 종북 세력에 맞서 싸우는 자유의 전사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