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꽤 여자를 잘 웃기는 편이다. 여자를 살살 꼬실 때 이 재능은 정말이지, 빛을 발한다. 작년 백화점에서 매대 여직원이 너무 귀여워서 몇 마디 농담을 건넸다. 당연히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고, 나는 계산을 할 때 무언가가 떠오르며 갑자기 카드를 집어넣고 현금을 꺼냈다.
여자 : 현금영수증 끊어드릴까요?
승환 : 네.
여자 : 전화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승환 : 010 – 1818 – 2828 이에요.
여자 :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 너무 재미있네요. 덕택에 진짜 많이 웃었어요.
승환 : 제 전화번호 알려드렸으니, 그 쪽 전화번호도 알려주시면 안돼요?
당연히 그 여자는 빵 터졌지. 그럼 그렇지. 내 유머에 견디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 내가 알고 보면 좀 카사노바라고. 겨우 웃음을 수습한 그녀가 수줍은듯이 말했지.
“I’m sorry. I have no time.”
영어가 짧은 아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시간 없다고 꺼지래.
이쯤에서 다시 듣는 Keane의 She has no time.
남자는 왜 그렇게 유머에 집착하나?
남자에게 유머는 진화의 본능이다. 여자를 웃기지 못하면 짝을 얻기 힘들다. Askmen.com에서는 남성의 유머를 엄청나게 높게 평가한다. 이하 각종 링크들은 과학적 근거가 그리 또렷한 건 아니지만 대충 넘어가자(…)
– 유머 vs 외모 : 유머 승리
– 유머 vs 야망 : 야망 승리
– 유머 vs 돈 : 유머 승리
– 유머 vs 머리 : 무승부
흔히들 열폭한 남자들이 여자는 돈만 보고 배경만 보고 어쩌고 하지만, 사실 돈이나 배경보다는 유머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제프리 밀러는 뛰어난 유머감각이 건강한 뇌를 나타낸다고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뇌가 뛰어난 유머감각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유전자들이 해로운 돌연변이 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또한 유머감각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테스토스테론이 과잉이면 정줄 놓은 짐승새끼가 되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많으면 카리스마가 질질 흐르고, 여기에 여자가 꼬이는 경우가 많다.
굳이 학자의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유머 있는 놈치고 머리 나쁜 사람 보기 힘들다는 생각은 다들 해봤을 테다. 성적이야 떨어지는 놈이 많겠지만 잔머리나 두뇌 스피드는 확실히 엄청나다. 또 유머러스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잘 이끄는 경우도 많이 겪어봤을 거다.
남자의 유머, 그 억울한 굴레…
그런데 이게 남녀관계로 들어가면 남자들에게 꽤나 스트레스 덩어리다. 돈은 악착같이 모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도 올라간다. 하지만 유머를 어떻게 익히란 말인가? 개그콘서트라도 달달 외우고 개인기라도 연습하란 말인가? 이를 행한다면 그야말로 망조의 지름길이다. 어설프게 인터넷에서 본 유머를 전달하거나, 개콘 따라했다가는 소개팅 자리가 특전사 겨울 훈련 자리가 되어버린다.
왜냐고? 여자들이 유머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건, 단순히 웃기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밤마다 딸 잡고 있겠는가?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유머는 funny나 humorous를 넘은 sensitive, stylish, smart 등을 포함한다.
본인은 뚜쟁이 짓거리를 잘하는데, 보통 예쁜 여성과 능력 있는 남성을 붙인다. 그러면 여성들은 나중에 한결같이 토로한다. “저 사람 되게 괜찮은데, 너무 센스가 없어서…”, “사람은 좋은데, 재미가 없어서…” 이거 만회하려다가 좀 공격적으로 나가면… 매너까지 없다고 욕먹는다(…)
한마디로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는 남자’가 좋다는 거다.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에서도 이런 결과를 볼 수 있다. 남자의 웃음 코드는 ‘순간의 재치’이지만, 여성의 웃음 코드는 ‘이야기의 흐름’이다. 한마디로 ‘능숙한 남자!’. 아아… 그래서 여자들은 모쏠을 싫어하십니다. 차라리 놀아본 남자가 낫다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뭐, 너무 눈치 빠른 것 보다는… 순수한 남자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청정 모쏠입니다!”
“아… 네… 가던 길 살펴 가세요.”
부익부 빈익빈의 센스의 세계
여자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저 남자, 센스 좀 가졌으면 좋겠어.”
하지만 암쏘쏘리 벗알러뷰 다거짓말. 센스 있는 남자는 흔하지 않다. 차라리 돈 되는, 직장 번듯한, 학벌 좋은 남자 찾기가 편할 거다. 물론 유머와 능력은 (아마도) 서로를 올려 줄 거다. 어차피 가진 거 없을 때 돈이나 직장, 혹은 학벌이라도 있는 남자는 메리트가 있으니까. 그나마 시도 기회라도 있고, 여자에게 호되게 당하는(…) 과정을 가진다면 유머와 센스도 길러지게 마련이다.
‘센스’는 서술 가능한 지식이라기보다는 ‘암묵지’에 가깝다. 또 ‘수행적 지식’에 가깝다. 야구에서 배팅 폼, 투구 폼을 잡아주는 건 기본까지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직접 치면서, 던지면서 최적의 폼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 과정은 험난하다. 나이 들어 한 순간에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미 센스 시장에서 뒤쳐진 남자는 2군에도 끼이지 못하는 연습생마냥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점 연애 시장에서 뒤쳐진다. 뭐, 여자 입장이라고 딱히 좋을 건 없다. 드라마 속, 영화 속 남자들이 잘생겨서 여자들이 학학대는 게 아니다. 원래 로맨스물이란 건 여성을 대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모녀가 나란히 앉아 시어머니를 까고, 남자 주인공에 꺅꺅거리는 것이지. 여자들 눈은 저만큼 높아졌는데 (차라리 드라마 속 남자의 돈은 비현실적이기라도 하지!) 현실에 그것을 충족해줄 남자들은 없으니… 오호. 통재라!
접점은 없다. 이미 결혼에 대한 압박이 낮아진 현대 사회. 여자들은 차라리 여자들끼리 잡담 떨면서 잠시 어울릴 수 있는, 결혼보다 연애 상대로 적합한 센스 있는 남자와 노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글쎄… 뭐, 세상은 넓고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가 나오기는 하겠지. 다만 그 일이 갈수록 어려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더러운 세상, 이왕 이렇게 된 거 센스를 익히자
사교육 공화국 대한민국인만큼 솔루션이 없으면 사람들이 짜증을 내길래… 남자들이 센스를 익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보겠다.
1. 상대의 관심사와 시나리오를 짜맞추자.
이게 의외로 쏠쏠하다. 어차피 처음에는 남자가 대화를 리드하게 된다. 그러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몇 가지 시나리오 정도는 준비해 두자. 어려울 것 없다. 야겜, 아니… 미소녀 게임 하면 삼지선다 나오잖아.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해 두면 속 편하다. 특히 여성향의 주제들은 기초적으로 알아두면 대화 이어나가기도 좋고, 자기가 잘 몰라도 ‘남자니까’하고 넘어가기 쉽다.
특히 상대의 관심사를 미리 파악하면 상대가 자신을 잘 이해한다는 개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나중에 들키면 “ㅋㅋㅋ 그거 다 준비한 거였음… 이라고 하면, 이 남자가 나를 존나 좋아하는구나…” 하는 더블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너무 빨리 들키면 병신 되니까 시나리오 좀 많이 준비하는 게 좋다(…)
2. 외우고 자신까지 속이자.
코메디언들은 외우고 또 외운다. 재미있는 상황이 나오면 메모하고, 자신의 것으로 숙지한다. 유머와 센스까지 갈고 닦아야 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어찌 하겠나? 우리 이미 더러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능, 내신, 논술, 봉사, 토익… 등등을 다 해야 하는 더러운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그리고 웃기는 이야기 어디서 좀 늘어놔봐야 아무 것도 안 된다. 다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적당히 꾸며야 한다. 하지만 여자들은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구라인 걸 쉽게 눈치챈다. 그냥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머리 속에 억지로 세뇌하자. ‘난 7살 때 고추가 너무 커서 동네 여자애들이 100원 씩 내고 내 고추를 봤어…’라고 스스로를 속이자. 그러면 여자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
3. 이도저도 안되면 낚시를 시전하자.
솔직히 1과 2를 다 한다고 해서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남자는 개마냥 종적 특성이 강하지만, 여성은 고양이마냥 개체적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그냥 닥치고 듣는 게 좋다. 들으면서 괜히 답이 뻔하게 나올 질문을 던지자. 그러면 어쨌든(…) 대화는 이어진다. 최소한 맥 끊기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그렇다고 취조하듯 하면 곤란하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듣고 질문하기 거시기하면 뭔가 자신이 아는 포인트로 살짝 옮겨오는 것도 삶의 지혜다. “저는 레드 컬러가 좋아요.”라고 하면 “네. 저 그래서 이번에 박근혜 찍었어요.” 식으로 옮겨 오는 거다. 자신이 아는 주제로 살짝 옮기면서도 상대방의 관심사를 배려할 수 있다. 뭐, 예시를 좀 잘못 든 것 같기는 하지만…
여튼 이딴 개소리 하나도 도움 안되는 거 안다. 그냥 솔루션 안내놓으면 개욕먹는 개 같은 대한민국 현실에 개탄하며 개 같은 개소리 해봤다. 내가 프로면 1년 가까이 고자 생활 하겠냐고. 개쌍놈의 커플 새끼들아. 썩을 놈의 커플놈들, 아귀계와 축생계를 헤매이다, 지옥의 업화 속에 불타버려라.
남자들이 못 웃기고 센스 없다고? 그럼 니들이 웃어주며 맞출 수 있냐?
여자들아! 니들이 웃겨 보라고! 니들이 센스 좀 가지라고!
…라는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여자들이 웃겨봐야 남자들 호감은 별로 안 높아진다. 되려 별로 안좋아한다는 연구도 있다(…) 웃기면 남자처럼 보인다나(…)
그보다 남자는 잘 웃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남성이 해야 하는 요구는 “이 년들아! 좀 웃어 달라고!”에 가깝겠다. 뭐, 본인이 여성의 3대 외형 매력 요소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예쁜 웃음인데, 다른 건 모르겠고 진심으로 웃는 여자는 다 예뻐 보이더라. 아…. 개소리였고, 평소보다는 예뻐 보이더라.
아무튼 남자들에게 그토록 무거운 요구를 하는 여성들이여. 남성연대(…)의 대표주자로써 나도 당신들에게 요구 좀 하겠다. 얘네들처럼 좀 웃어 보라고! 그리고 유머와 센스 타령 좀 들이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