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토크 콘서트 테러
2014년 12월 10일,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저자 신은미 씨와 전(前)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황선 씨가 주최한 토크 콘서트에서 테러가 일어난다. 범인은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으로, 그는 인터넷에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줄알아라” 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범행을 예고한 뒤 토크 콘서트에 참석, 불을 붙인 냄비를 던지려 시도했다. 이 행위는 현장에서 즉시 제지되었으나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이 화상을 입었다.
당연히 피의자는 범행에 대해 수사를 받았고 아직도 법적 절차가 진행중이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이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종편을 위시한 언론은 황선과 신은미의 종북 성향을 집중적으로 성토했으며, 이 사건만 보면 피해자라 해야 할 신은미 씨가 강제출국 조치를 당하고 황선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직후인 15일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5년, 주한 미국 대사 테러
2015년 3월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민화협 조찬 행사에서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에게 피습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김기종은 식사를 시작하려던 리퍼트 대사에게 다가가 그를 넘어뜨리고 과도로 공격했다. 그는 한미 연합 훈련이 통일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로 이 범죄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는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이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이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빈다는 명목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가 난타 공연과 부채춤 공연 등을, 공화당 총재 신동욱 씨가 석고대죄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공연은 그 해괴한 모양새 탓에 여러모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발생 일주일 후인 12일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백주대낮에 이렇게 테러하고 국가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걸 용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두 개의 테러를 바라보는 박근혜의 ‘이분법적 세계관’
여기에서 주목해 볼 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이다. 그는 리퍼트 대사가 당한 테러에 대해서는 “백주대낮 테러 용납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황선 신은미 토크콘서트에서 일어난 테러에 대해서는 “종북 콘서트가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완벽한 이분법적 세계관이다.
주한 미국 대사에 대한 테러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임은 분명하고, 이런 백주대낮의 테러가 용납되어선 안 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황선 신은미 토크콘서트 테러에 대해서도 마땅히 테러가 용납되어선 안 된다는 반응을 먼저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가 규정한 ‘종북’ – 신은미, 황선 씨가 당한 테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유감의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날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갈등과 분열의 악순환을 끊어내자”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 발언에는 전혀 울림이 없다. 이 목소리가 조소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야말로 바로 그 갈등과 분열의 숙주이며 기생생물이기 때문이다. 수 개월의 간격을 두고 한국 사회에 일어난 두 번의 테러에 대한 그의 상반된 반응은, 그가 원하는 것이 갈등과 분열의 종식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뜻대로 따르는 전체주의에 불과한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의심케 되는 대목이다.
저항하는 자는 악인이다
이런 박 대통령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인터뷰가 하나 있다. 1989년 박경재 씨와 가진 인터뷰다. 여기에서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은 10.26이 없었더라도 박정희는 결국 국민 저항에 맞닥뜨리지 않았겠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악인들이에요? 왜 그렇게 저항을 하고 그래요?”
유신 정부가 반(反) 민주적인 정부라는 것은 심지어 여권을 지지하는 지식인들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이에 저항하는 것을 ‘악’이라고 단언한다. 법과 질서를 마음껏 씹어먹는 그가 늘 법과 질서를 논하는 것은, 아마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사실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예뻐보일 정치인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노골적인 단어 – ‘악인’ – 를 선택하는 정치인은 없다.
“인혁당 사건에는 두 개의 판결이 있다”
이와 정 반대 지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일화라면 역시 인혁당 사건에 대한 그의 유명한 발언 – “인혁당 사건에는 두 개의 판결이 있다” – 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9월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게 사과할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이 대답이 논란이 되자 곧 견해를 바꾸고 사과했지만, 민심과 지지율에 목을 매는 대선 후보라는 입장에 있었음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본인의 신념이 정말 그 짧은 새 바뀌었을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인혁당 사건은 만인이 인정하는 현대사의 상처이자 박정희 치하에 일어난 명백한 사법 살인이다. 이처럼 시비가 명백한 사건에서조차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피해나가는 이가 저항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악인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한다니 소름끼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워야 할 덕목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이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자 이렇게 말했다. “두 분 묘역 참배를 둘러싸고 계속 갈등하는 것은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진정한 국민통합은 역사의 가해자 측에서 지난 역사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들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이루어진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이 모두 독재자의 행보를 걷다가 물러났었음을 고려하자면 문재인 대표의 참배가 부적절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적절성은 일단 차치물론하고, 그의 행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와 정확히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 진영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자기 진영에만 손을 내밀고 상대 진영은 악으로 포장하면서 국민 갈등 해소를 주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마땅히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