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애플은 이를 두고 “우리가 휴대전화를 재발명했다”고 표현했다. 사실 그런 자신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아이폰은 2007년 1월 발표되었고, 2007년 6월 출시되었다. 지금 애플의 가장 큰 라이벌로 여겨지는 삼성은 – 그로부터 일 년 가까이 지난 2008년 3월, 무려 ‘햅틱’을 내놓았다.
2007년의 첫 아이폰이 멀티터치를 통해 휴대전화 인터페이스의 새 기원을 열었다면, 햅틱이 발표되던 그 해 등장한 애플 앱 스토어는 스마트폰 시장을 완전히 재편해버렸다. 경쟁자들은 애플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급히 윈도 모바일을 개선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벤치마킹 대상을 블랙베리에서 아이폰으로 급히 변경한 안드로이드는 그만큼 어설펐다. 옴니아 2가 아이폰 3GS의 대항마로, 갤럭시 S가 아이폰 4의 대항마로 나섰지만 완성도는 여전히 떨어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이폰 4S부터였을 것이다. 1년 4개월 만에 등장한 이 모델은 전작인 아이폰 4와 완전히 똑같은 생김새에 심지어 더 무거워지기까지 했다. 디자인에 민감한 휴대용 가전기기 시장에서 이건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칩셋의 성능은 경쟁 제품을 압도하지 못했으며, 내장 용량도 그대로였다. LTE도 지원하지 않았다. 마침 당시는 애플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스티브 잡스의 병세가 깊어지던 시기였고, 호사가들은 그의 죽음과 아이폰 4S의 실망스런 변화를 연관 지으며 입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그런 실망스런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아이클라우드(iCloud)와 시리(Siri)라는 걸출한 소프트웨어 혁신이 있었기에 아이폰은 아이폰만의 매력을 계속 지켜갈 수 있었다. 클라우드와 음성 인식 모두 애플이 처음 선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도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하는 뛰어난 완성도로 애플은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산 시리는 멍청한데다 말귀도 늦게 알아듣는 바보지만(…).
이번에는 반대다. 아이폰 5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제품이다. 유니바디 디자인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았고, 칩셋 성능은 당대 경쟁기종을 압도했다. 더 큰 스크린을 달고도 얇고 가벼워졌다. 스크린 사이즈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잘 만들어진 하드웨어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에 올라간 소프트웨어가 여러모로 형편없다. iOS 6 말이다.
iOS 6는 대중에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스캔들을 터트렸다. ‘지도’ 스캔들이다. 우선 경쟁사인 구글의 지도에 비해 데이터의 양과 질이 형편없었다. 당장 청와대를 ‘청화대’라고 잘못 표기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일단 지도로서는 빵점이다. 아름다움에 골몰해 지도로서의 본분을 잊은 듯한 디자인도 그렇고, 랜드마크 대신 식당과 카페 위치만 잔뜩 표시하는 집착도 이해하기 힘들다. 핵심 기능으로 내세운 플라이오버(Flyover)는 멋은 있지만 스트리트 뷰(Street View)에 비해 효용이 현저히 낮다. 애플은 급히 지도 개선에 나선다고 발표했지만, 애플 지도 속에서 여전히 ‘청와대’는 ‘청화대’다.
그렇다면, 지도만 빼면 iOS 6는 쓸만한 운영체제인 것일까. 안타깝지만 그렇지도 않다. iOS는 판올림 때마다 시장을 선도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선보여왔다. 아이폰 OS 2.0에서는 앱 스토어를 열면서 새로운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고, 아이폰 OS 3.0에서는 푸시 알림 기능, 테더링 등을 포함해 아이폰의 주요 기능을 완전히 완성했다. 이름을 iOS로 바꾼 4.0은 아이폰만의 독특한 멀티태스킹 시스템과 폴더 기능을 선보였고, iOS 5는 아이클라우드와 시리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iOS 6는? 돋보이는 기능이 없다.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저 형편없는 지도가 가장 큰 변화다.
물론 성능 개선과 자잘한 변화가 있긴 했다. 돋보이진 않지만 유의미한 변화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눈길을 잡아끌기 위해서는 그 돋보이는 변화가 필요하다. 일종의 쿠폰책인 패스북(Passbook)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휴대전화 자체가 결제 수단이 되고 있는 변혁의 시대이긴 하지만. 아이폰 안의 컨텐츠를 HDTV로 볼 수 있다는 ‘에어플레이’가 눈길을 잡아끌지도 모른다. 딱히 쓸모도 없는 애플 TV를 사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기능이지만. 페이스북 통합이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안드로이드가 훨씬 다양한 위젯을 제공하긴 하지만. 사진 공유 기능이 사람들을 매혹할지도 모른다. iOS 유저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긴 해도.
iOS 6가 진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사실 애플이 자랑하는 신기능보다 짜증 나는 버그와 불안정성이다. 와이파이와 테더링 접속이 종종 말을 듣지 않는 탓에 수많은 사용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지만, 애플은 아직도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라 하면 역시 인터넷인데, 거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방해금지 모드’는 사용자가 설정한 시간 동안 중요하지 않은 전화 및 문자음을 들리지 않게 해 주는 기능인데, 하필 애플이 이를 소재로 광고를 시작한 것과 동시에 버그를 일으켰다. 그야말로 망신이다.
미려한 디자인도 옛 얘기다. 일관된 룩앤필을 제공했던 구 버전의 iOS에 비해 앱 디자인이 중구난방으로 변질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당장 ‘음악’ 앱과 ‘Safari’ 앱을 비교해보시라.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룩앤필이 다르다. 스큐모픽 디자인에 대한 집착도 도를 넘었다. 새로운 Podcast 앱은 쓸데없는 테이프 감기는 효과나 넣느라 정작 중요한 기능들은 화면에서 빼 버렸다. 사진이나 파일을 열 때 쓰인 새로 디자인된 아이콘은 기존 아이콘과 이질감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그리드 배치로 나열되어 있어 뭔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
물론 같은 기간 동안 안드로이드가 엄청난 혁신을 이루었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이패드를 따라잡겠다고 급히 출시한 허니콤은 거의 흑역사급 취급을 받고 있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안드로이드를 한 단계 위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화제가 되었던 얼굴 인식 잠금 해제나 안드로이드 빔은 막상 그리 대단한 사랑을 받진 못하고 있다. 젤리빈은 부드러운 UI로 사용자들을 매혹했지만 그 목표는 애당초 ‘아이폰처럼’ 부드러운 UI였다.
하지만 문제는 안드로이드가 뚜벅뚜벅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컵케이크’와 아이폰 OS 3.0는 꽤 큰 차이를 보였지만 ‘프로요’와 iOS 4의 차이는 그만큼 크지 않았고,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와 iOS 5에 이르러선 절대 “아이폰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가 없어졌다. 수많은 제조사들이 서로 다른 개성의 단말기를 생산하는 안드로이드 진영이 운영체제에 있어서도 iOS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면, 아이폰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모바일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모든 전문가들과 모든 사용자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사실이다. 안드로이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여기에 넥서스 4와 넥서스 7, 넥서스 10을 앞세운 전방위적인 가격 공세로 애플을 압박하고 있다. 넥서스 4의 가격은 349달러, 아이폰 5의 가격은 649달러다. 넥서스 7의 가격이 199달러인 데 비해 아이패드 미니의 가격은 329달러이며, 넥서스 10의 가격은 399달러지만 아이패드 4세대의 가격은 499달러다.
이런 상황에 애플이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역시 소프트웨어다. 다양한 경쟁 기종들이 스펙을 내세울 때, 애플은 늘 소프트웨어의 강력한 힘으로 한 발자국씩 앞선 행보를 걸어왔다. 경쟁업체의 가격 공세에 맞서기 위해 가격을 같이 내리는 것은 애플 스타일이 아니다. 역시 이번에도 소프트웨어가 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애플은 iOS 6라는 애플 사상 가장 취약한 소프트웨어를 패로 들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강력함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말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애플이 당장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력 없는 소프트웨어로 시장의 패자로 군림할 수는 없다. iOS 6는 사람들을 매혹하지 못했다. iOS 7이 마찬가지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호사가들의 입방아처럼 정말 PC 대 맥의 경쟁이 재현될 수도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