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회사는 공채라는걸 합니다. 이런저런 분들이 신입으로 들어오시는 가운데, 어떤 분들은 무난하게 회사생활 잘 해나가고 또 어떤 분들은 적응 못하고 1-2년 내에 퇴사하기도 하더군요. 몇년에 걸쳐 이런걸 보아오다보니, 커리어를 시작할 때 어떤 프로젝트에서 일하느냐가 나름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잠깐 ‘제가 가진’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사실 게임 디자이너를 하려는 분들에게 자기가 처음 일하게 될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만약에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이 얘기가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그러나 이게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생각이라는 것, 그러니 참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개인의 생각’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것도 염두에 두세요.
너무 크지 않은 프로젝트
게임 개발에는 그 프로젝트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게임이라면’ 반드시 해야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모든 게임에 적용된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한국의 게임 개발환경’하에서는 어느정도 교집합이 존재합니다. 시스템도, 컨텐츠도, UI도 여기에 속하죠.
프로젝트의 규모가 작다면, 갓신입인 분들에게 이런 여러 분야에 대한 경험이 고루 주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컨텐츠로 입사했지만 시스템도 어깨너머로 살짝 볼 수 있고, 또 간단한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볼 경험도 주어질 수 있죠. 레벨 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퀘스트의 전체 스토리라인에 의견을 낼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즉 게임 디자인의 ‘다양한 분야’를 맛볼 수 있는 문이 큰 프로젝트들에 비해 좀더 열려있는 편입니다.
반대로 엄청나게 큰 프로젝트에 ‘신입’으로 입사했다면, 몇년간은 아주 간단한 일들을 전담해서 해야하고, 다른 분야를 살펴볼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가 아는 어떤 프로젝트는 게임 디자이너만 50명 남짓인데, 이런 규모의 팀에서는 게임 디자인 업무도 매우 세분화되기 때문에 한동안은 다른데로는 눈도 못돌리고 그 일만 집중적으로 해야할 수가 있어요.
중소규모의 프로젝트에서는 게임 디자인의 다양한 분야들을 횡적으로 두루 살펴볼 기회가 주어질 수 있지만, 너무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는거죠. 2000년대 초반에는 지금처럼 큰 규모의 프로젝트는 흔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때 커리어를 시작한 분들 대부분은 개발 전반의 일들에 대해 처음부터 익힐만한 기회가 많았어요.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이 생기면서, (제 의견에 따르면) 신입분들이 일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포지션에 종종 신입 분들이 가기도 하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말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단지, 갓신입분들은 아직 제네럴리스트’조차’ 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제네럴한게 뭔지 알고는 있어야 스페셜티도 가치가 좀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규개발 팀보다는 라이브팀
신규개발팀에서 게임 개발 프로세스는 시시각각으로 달라집니다. 개발의 어떤 단계인가에 따라서, 개발 방향성에 따라서, 때로 (불합리할지도 모르지만) 개발팀 수장의 조카의 의견이나, 사장님이 어젯밤 완독하신 개발 방법론 책에 의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미 다양한 개발 프로세스를 경험해 본 시니어들에게 이런 환경은 낯익은 것입니다. 적응도 빠릅니다. 프로세스가 너무 극단적으로 변하지만 않는다면, 이미 자신들이 알고 있는 틀 내에서 어떻게 소화하면 좋을지, 소위 말하는 ‘킬각’이 나오죠.
그러나 갓신입분들은 그런걸 알기가 어려워요. 뭐가 어떻게 변화한건지 파악하기도 어려운데 거기에 적응하긴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무서운건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질 때죠. 시간을 꽤 지났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반면에 라이브팀의 개발 프로세스는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갓신입이라고해도 여기에 적응하는건 조변석개하는 신규개발팀보다 월등히 쉬운 편이에요. (프로세스에 적응이 쉽다는거지 일하는게 쉽다는 얘긴 아닙니다 ^^;; 대부분의 라이브팀은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거든요.) 일단 라이브팀에서 어느정도 ‘프로세스가 무엇인가’를 익힌 후에, 그래서 프로세스가 뭔지, 왜 필요한건지에 대해 최소한의 경험이 쌓인 후에 다양한 다른 프로세스들을 접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결론
그래서 제 생각은, “중소규모의 라이브 프로젝트”로 입사하는게 ‘커리어의 시작’ 지점에서 가장 많은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겁니다. 쪼렙때 스킬 많이 배워놔야 이후의 레벨업이 편해지니까요. 물론 여러분에게 얼마나 폭넓은 선택권이 주어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주어진다면. 이런 생각도 고려해보시면 좋겠네요.
사실 제가 정말 ‘게임 디자이너 지망생’에게 하고픈 말은… ‘때려쳐. 프로그래밍을 배워라!! 그중에서도 서버를 배워라!!’
원문: 인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