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안의 일베 같은 소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 접근의 한심함 때문이다. 이런 공자님 얘기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다 할 수 있다. 아무거나 하나 대봐라. IS에다 갖다 붙여 볼까? 우리 안의 IS. 너는 네가 적대하는 사람에 대해 말살해 버리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낸 적이 없는가? IS는 이러한 우리 안의 악마를 드러낸 거울이다.
진짜 세상 모든 일에 이런 자기 성찰적 진단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게 어떤 실천적 의미가 있을까? 잠재된 악마성과 현실화된 악마성을 구별하지도 못하고 사회가 수용가능한 일탈과 수용해선 안될 일탈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그저 ‘싸잡아서’ 도매금에 넘기는 지적 자위 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베가 일베인 이유: 그냥 사이트 전체가 막장이다
깨시민과 일베는 거울이 아니다. 절대값(깨시민) = 절대값(일베)가 아니다. 절대값(깨시민) < 건널 수 없는 사차원의 벽 < 절대값(일베) 다. 깨시민이 싫어서 일베가 되었다면 깨시민과 방향만 다를 뿐 정도는 같아야지. 하지만 일베는 그렇지 않다. 그 정도에 있어서는 넘사벽이다. 진영을 빼고 정도만 비교하자면 일베의 경쟁 상대는 야갤이나 코갤, 막장갤이다. 왜 그걸 깨시민에 갖다 붙여.
일베가 일베인 건 일베기 때문이다. 막장성으로 치자면 야갤이나 일베나 난형난제다. 그러나 일베와 야갤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그게 뭘까?
야갤은 디씨인사이드의 한 갤러리고 일베는 일베라는 사이트다. 이 차이를 간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차이는 일베를 거론함에 있어서 절대 빠져선 안될 중요한 내용이다. 내가 일베에서 패륜짓을 하는 개별 유저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일베를 문제삼는 이유다.
야갤은 디씨라는 거대한 사이트의 한 갤러리다. 사회로 치면 뒷골목 같은 곳이다. 그곳에선 온갖 막장성 스토리들이 오고간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다. 여기는 뒷골목이고 여기서 거론되는 것들은 그래서 허용가능한 것이라고. 그곳은 철저하게 언더그라운드고 그래서 배설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베는 처음부터 ‘민주화’라는 버튼을 반대의 의미로 달아놓고 시작한 사이트다. 많은 사이트들이 내용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중립과 불편부당성을 내거는데 반해 처음부터 강한 정치성과 막장성을 노골적으로 표방하고 출발한 사이트다.
그동안 뒷골목에서만 통용되던 스토리들을 대로변으로 끌어내놓은 것이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통하는 곳: 일간베스트
그러자 이제 그런 막장성들이 언더그라운드에 머물지 않고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하고자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작된 것이다.
어두운 밤 뒷골목에서 자지를 덜렁거리던 바바리맨이 이제 백주 대낮에 대로변에서 자지를 드러내고 다니게 된 것이다. “일베에서 왔습니다”라는 말로 다른 사이트에 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위시해서 실생활에서까지 일밍아웃을 하고 일베인증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
이렇게 사회가 수용해선 안될 패륜적 행위에 시민권을 부여해 줄 뿐만 아니라 이를 조장하고 경쟁시켜서 이윤을 획득하는 것에 일베의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다른 사이트들이 사이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막장의 컨텐츠를 전면에 배치하지 못하는 것에 반해 일베는 막장을 내 걸고 조장할수록 이익을 얻게 돼 있는 구조다. 애초에 출발이 그러했기 때문에.
왜 그 수많은 패륜집단들 중에 항상 일베가 문제가 되는가?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이트가 이를 조장하고 경쟁시켜 활용하기 때문.
혹자는 일베에 패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이야기도 많다. 그럼에도 그들을 모두 단일한 성격으로 규정짓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사갤이든 코갤이든 막장성 컨텐츠가 필요하면 그곳에 찾아가서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일베는 사이트 전체가 막장을 지향하면서 그것을 삶의 모든 영역에 세분화해서 갖춰놓았다. 예전처럼 유머는 유머사이트에서 취미는 취미사이트에서 취하고 막장은 코갤에서 취하던 행태가 아니라 일베에 가면 내 구미에 맞는 모든 컨텐츠가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에 막장성이라는 코드까지 가미되어서. 이렇게 하나의 생태계가 갖춰지자 그 속에서만 생활하는 자들에겐 일반 사회와는 전혀 다른 규범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것과 사회를 분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가 경악하는 패륜적 행위들이 일베충을 통해 자꾸 드러나는 것은 이런 도덕적 도착상태의 결과다.
너무나 가벼운 말 “우리 안의 일베”
나는 일베같은 사이트에 대해서는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베를 운영하는 주체는 베일에 싸여있다. 일베에 대한 수많은 분석기사를 봤어도 일베의 소유구조, 수익구조, 운영구조에 대한 분석글은 본 적이 없다. 무슨 국정원보다 더 안개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아.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어떻게 가능하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니까 가능하지.
정권의 비호 없이 이게 가능할 거라고 나는 절대로 보지 않는다. 일베라는 것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일베를 자율적인 사이트로만 보는 건 너무 너무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다. 흔한 알바타령을 하려는 게 아니라, 타인을 향해 내재한 분노를 발산하려는 공격적인 악성 유저와 이를 조장하고 경쟁시켜 이윤을 얻으려는 악질적 운영자와,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비도덕적인 정권의 3박자가 빚어낸 추악한 덩어리가 일베인 것이다.
이 셋에 대한 총체적 분석 없이 ‘우리 안의 일베’ 같은 소리는 얼마나 한가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