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N THE MIDST OF THE CITY 블로그에 바클리 톰슨이 쓴 글을 번역했습니다.
마커스 보그는 병마와의 오랜 싸움 끝에 오늘 아침 명을 달리하였다. 나는 오늘 오후 마커스의 친구인 교회 교구민으로부터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나는 헨드릭스 대학 2학년 시절에 처음 마커스 보그의 이름을 들었다. 그의 획기적인 저서 <예수: 새로운 선견(Jesus: A New Vision)>이 막 출간된 때였다.
그 책은 적절한 시기에 나의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다. 나는 하느님을 알았고, 하느님을 더욱 많이 알아나가던 철학, 종교 전공자였지만, 내 삶 속에는 예수님을 위한 자리와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다. 마커스의 책이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접점을 제공한 것이다. 예수를 역사적인 예수, 즉 지혜의 스승, 치료자, 사회적 예언자 등의 인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커스를 처음 본 것은 그가 헨드릭스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그는 카디건 스웨터에서부터 곰방대까지 전형적인 대학 교수였다. 그의 말은 침착하면서도 열정적이었으며, 그의 말을 처음 드는 순간 나는 또한 처음으로, 온화함과 열정이 공존하는 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마커스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알게 된 것은 내가 정식으로 사제가 된 이후였다. 그가 로어노크 교구 성요한 미국 성공회 교회의 강연자였을 때 우리는 같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매료되었으며, 그의 연구와 기독교에 대한 접근법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해 말하는 대신, 나와 성요한 교회, 성직자의 직무, 내가 젊은 사제로서 교회에서 한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였다. 그는 나에게만 관심을 쏟으며 대화하였고, 나는 그 순간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와 식사를 여러 번 함께 하면서 친교를 꽤 쌓은 후, 나의 그리스도론은 해가 갈수록 점점 향상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그러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 나는 주저 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화신이며, 역사적인 중심점이고, 죽음을 이겨낸 자이며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희망을 충실히 실현해낸 삶을 산 사람이었노라고 증언할 수 있다.
게다가, 성경에 대한 나의 접근법, 나의 사회적인 신념, 미국 성공회에 대한 나의 애정은 마커스 본인의 관점을 상당히 밀접하게 반영하게 되었다. 한번은 마커스가 교회에 강연을 왔을 때, 나는 그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 저녁 보그 교수님이 하시게 될 말씀 중 약 75%는 동의합니다.” 연단에 올라선 마커스는 내 말을 받아쳤다. “예정된 내용대로 강의를 하는 대신 톰슨 신부님과 제가 동의하지 않는 25%에 대해 토의하고 싶어지는군요!”
종교라는 분야를 다루는 (많은 무신론자와 열성적인 신자들을 포함한) 많은 수의 저술가들과 달리, 마커스는 겸손했다. 한번은 나의 교구민 중 한 명이 질의응답 시간에 그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교수님이 옳다는 사실을 확신하실 수 있지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그 교구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모르겠군요. 제가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난 매우 많은 사람들이 마커스의 복음 설파를 통해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그는 자신이 복음을 전도한다는 표현엔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마커스는 기독교인이었고,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그리스도를 따른 신도였다. 그는 예수님(과 특히 그의 부활)에 대하여 나와 다르게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진실되었고, 온화하였으며, 열정적이었음은 분명하다.
내가 마커스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작년 11월이었다. 나는 그의 안부를 물었고, 그는 답하였다.
“내 삶은 한 10년 정도 남은 것 같네. 내가 그보다 더 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 언젠가는 모든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오지. 그리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 전에 모든 것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네. 나는 축복이 넘치는 삶을 살았거든.”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마커스는 그 자신도 남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축복받았다. 그는 나의 삶에 축복을 가져다 주었고, 나는 그에게 감사한다.